[주장] "살려주세요" 가로수도 생명입니다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1.11.2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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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리에서 아파트에서 학교에서 공원에서 묵묵하게 살아가는 나무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 이유는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사람들 마음을 평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주며 무더운 여름에는 그늘을 주어 시원하게 해줍니다. 자동차가 많은 도로의 소음을 줄이고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을 막아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엄연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도시에서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새들과 곤충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기반인 ‘도시숲’입니다.

간혹 연세 많으신 어르신 나무도 계시지만, 대개 서른에서 마흔 살이 된 우리는 지금까지 과도한 가지치기와 무분별한 벌목으로 생존의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상가 간판을 가린다며, 전선을 보호하겠다며, 열매가 떨어지고 냄새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무자비하게 자르고 있습니다. 더욱이 너무 커서 쓰러질 우려가 있다며, 도로 확장을 위해서, 건물을 더 크게 짓겠다며 우리를 마구 베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닙니다.

출처: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페이스북
출처: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페이스북

 

사람들은 필요로 해서 우리를 심어놓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좁은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나뭇가지를 펼치기가 무척 힘듭니다. 대기오염과 폭염도 막고 탄소도 흡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건강해야 하고 나뭇가지와 잎이 많이 달려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친구들은 매년 가혹할 정도로 과도하게 잘리고 베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와 숲을 좋아한다는 데, 왜 우리를 이렇게 학대하고 멸시할까요. 공무원들은 나뭇가지를 강하게 잘라달라고 하는 민원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혜택을 받으면서도 자기들 집과 가게 앞에 나무가 크게 자라면 불편하다는 일부 사람들의 위선과 탐욕입니다. 동네의 나무들이 수난을 당해도 애써 외면해 온 다수 사람들의 무관심입니다. 싸그리 없애고 개발하는 토건개발 방식에서 만연된 자연과 생명체를 존중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사회 멘탈리티의 그릇된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닭발 나무, 몽둥이 나무가 아닌데 마치 사람들은 우리가 잘 살아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생리에 대한 오해이자 무지입니다. 이렇게 잘못 알려지게 된 책임은 나무를 관리하는 공무원과 기술자들의 자기합리화에 있습니다. 마구 잘라도 끄떡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올해 들어 과도한 가지치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모가지를 치는 강전정, 나무를 전봇대로 만들어 버리는 잘못된 관행은 예전부터 너무나 익숙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이제야 그 문제점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의 모습으로 온전하고 살고 싶습니다. 풍성하게 자란 우리를 제발 함부로 자르지 말아 주세요.

한국 사람들은 잘 몰라주지만, 나뭇가지의 25% 이상을 자르면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어렵고 나무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있습니다. 나뭇잎이 많고 나무가 건강해야 나무의 아낌없는 혜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실제 미국 국가표준협회와 국제수목관리학회는 가지의 25% 이내로 가지치기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가지치기로 잘린 면이 부패하기 시작하면 균이 스며들어 점차 나무 속까지 까맣게 썩게 됩니다. 나무 속이 흙 같이 부스러지기 때문에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어 위험하게 됩니다.

잘못된 관리로 위험에 처한 나무는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목’으로 지목되어 베어질 상황에 있습니다. 학대받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도 꽤 불편해졌습니다. 나무 자르기의 일상화는 특히 아이들의 생명감수성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큰나무를 스스럼없이 벤다는 것은 생명에 대한 몰인정과 야만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집과 흔적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장소에서 오랫동안 우리와 어우러진 도시경관, 함께 지내 온 수많은 사람과의 상호관계, 수십 년간의 추억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과도한 가지치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심은 나무를 건강하게 잘 자라게 관리해서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을 높이기 위해 나무의 수관층 면적 및 부피의 총량(Urban Tree Canopy) 지표를 사용합니다. 영국 런던의 도시숲 정책은 이 지표를 현재 21.9%에서 30%로 높이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잎을 달고 있는 나무의 총량이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미국 뉴욕에는 도심 가로수 온라인 지도가 있습니다. 도시숲을 탐색하고 정보 검색이 가능하고 가로수 한그루 마다 생물학적 정보와 관리현황 및 생태적 혜택을 알려줍니다. '내 나무'를 등록해 여러 활동을 기록하고 관련 내용을 주위 사람들과 공유도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안내지도 개념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나무를 키우며 교류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곁에서 온전하게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그릇된 탐욕과 무지를 깨우쳐주고자 저항에 나섰습니다. 그간 우리의 아픔과 외침이 외면을 받아왔는데, 요즘 우리의 도움 요청 신호를 받고 다가서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저항에 공감하고 연대해준 결과로 덕수궁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베어질 운명을 피해 존엄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포구 성미산에는 아까시나무도 귀한 대접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학교와 상가의 나무들도 새로운 삶의 활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재개발공사 현장에서도 어떻게 우리를 남기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문밖을 나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자연물이기도 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도시를 만드는 일은 동네의 나무와 숲을 아끼고 보살피는 시민의 마음과 행동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실 그 마음과 행동이 없이는 저 멀리 있는 북극곰을 살릴 수도 없으며, 설악산의 산양과 지리산의 반달가슴곰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탐욕과 무지에 저항하는 도시의 나무들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과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을공동체의 생태민주주의적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글쓴이: 최진우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대표


최진우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대표의 주장은 뉴스톱TV 유튜브 동영상으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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