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블라인드 채용' 덕에 공공기관 지방대 출신 입사 늘었다?

  • 기자명 이강진 기자
  • 기사승인 2021.11.26 16: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17일, 뉴스톱에서 <‘한국형 블라인드 채용’ 득인가 독인가>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발행했습니다. 이 기사를 본 독자 A 씨가 뉴스톱에 연락을 주셨습니다. 기사의 본문 중에 “비수도권 대학 출신자의 비율이 증가했다. (…) 이는 ‘지역인재 할당제’와 블라인드 채용을 병행한 결과이기에 이 성과를 오로지 ‘블라인드 채용’의 성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이 독자는 이 문장에 공감한다며,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 지방대 출신 합격자가 많아진 것이 ‘블라인드 채용’ 덕분이라는 고민정 의원 페이스북 게시글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주제에 대한 팩트체크를 제안했습니다.

블라인드 채용법을 발의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진출처: 중앙일보 영상 캡처.
블라인드 채용법을 발의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진출처: 중앙일보 영상 캡처.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블라인드 채용법’을 발의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고 의원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공공기관에 비수도권 대학 출신 비율이 늘었다”는 내용의 참고자료를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는 블라인드 채용제뿐만 아니라 ‘지역인재 할당제’도 동시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지역인재 할당제란, 지방의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신입을 채용할 때, 지방 소재 대학 출신 지원자에게 선발인원의 일부를 할당하거나 가점을 주는 제도입니다.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인재할당제’는 별개입니다. 따라서 “블라인드 채용 덕분에 지방대 출신 합격자가 늘었다”고 단언하기 전에, 지역인재 할당제가 지방대 출신 비율 증가에 끼친 영향은 없는지도 분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고 의원의 발언처럼, 공공기관에 지방대 출신 비율이 늘어난 것은 블라인드 채용만의 영향일까요?

출처: 고민정 의원 페이스북
출처: 고민정 의원 페이스북

 

‘지역인재 할당제’는 언급하지 않은 고민정 의원

9월, 재단법인 ‘교육의봄’과 고민정 국회의원실이 <253개 공공 기관의 블라인드 채용 결과 및 효과를 확인한다>라는 제목의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고민정 의원이 언급한 해당 참고 자료는 바로 이 포럼에서 다뤘던 연구 보고서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당시 교육의봄 보도자료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 도입의 첫 번째 효과로 ‘출신학교 배경의 다양화’를 언급했습니다. 이어서 그 근거로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발행한 <편견 없는 채용블라인드 채용 실태조사 및 성과분석 최종보고서>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습니다. 이 보고서에도 “블라인드 채용제가 도입된 2017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의 공공기관 채용 결과 비수도권대 출신 비율이 ‘38.5%’에서 ‘43.2%’로 증가했다”고 언급돼있습니다.

출처: 교육의봄 보도자료(21.09.13). 한국산업인력공단, ‘편견없는 채용 블라인드 채용 실태 조사 및 성과분석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출처: 교육의봄 보도자료(21.09.13). 한국산업인력공단, ‘편견없는 채용 블라인드 채용 실태 조사 및 성과분석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하지만 해당 보고서의 원문을 찾아보니, 블라인드 채용뿐만 아니라 지역인재 할당제가 같이 언급돼있었습니다. “각 기관의 전체 채용인원 중에서 지역인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평균 18.50%에서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21.99%로 증가했다”며, “2017년 하반기부터 블라인드 채용과 함께 도입된 지역인재 할당제를 통해 지역인재의 비율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한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편견없는 채용 블라인드 채용 실태 조사 및 성과분석 보고서’. p.34
한국산업인력공단, ‘편견없는 채용 블라인드 채용 실태 조사 및 성과분석 보고서’. p.34

실제로 알리오(ALIO,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에 공시된 지방 소재 공공기관의 채용공고문을 보면, ‘지역인재’를 위한 우대사항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지방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의무적으로 지방대 출신 지원자에게 가점을 부여하거나 일정 비율의 지방대 출신을 채용해야 하므로, 지역인재 할당제가 시행되면 이전보다 공공기관에 지방대 출신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교육의봄의 보도자료나, 고민정 의원의 페이스북 게시글 어디에도 지역인재 할당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알리오
출처: 알리오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인재 할당제'의 충돌

지역인재 할당제의 취지는 바람직합니다. 수도권 과밀인서울 대학 출신 선호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방대 출신 지원자에게 혜택을 주는’ 지역인재 할당제는 ‘출신 대학이 아닌 실력으로만 평가하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와 상충할 수 있습니다. 공정 평가를 명목으로 채용과정에서 ‘인서울 대학’의 흔적은 지워버리면서, ‘지방대’는 특별 대우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출신 대학’이 채용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민정 의원도 추가로 게시한 페이스북 글(15일)에서 “지방이든 서울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럼에도 지역인재 할당제에 대한 논의 없이 블라인드 채용법만 주장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다각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출처: 고민정 의원 페이스북
출처: 고민정 의원 페이스북

코로나19의 여파로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공공기관·공기업은 ‘신의 직장’이라 불리며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지역인재 할당제 이슈'는 인서울 대학과 지방 대학 졸업생들 사이에서 첨예한 문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따라서 청년 정책을 발의하는 국회의원들은 블라인드 채용뿐만 아니라 지역인재 할당제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독자 A 씨는 현재 공기업 입사를 목표로 하는 취업준비생입니다. A 씨는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공채에서 불합격한 인서울 대학 출신 지원자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은 지방대 출신 지원자가 합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울 소재의 공공기업에서 비수도권 대학 출신에게 혜택을 줘서 오히려 지방에 있는 인구가 서울로 유출되는 사례도 있으며, 학점도 보지 않고 지역‘인재’라고 명명하며 혜택을 주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라고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공공기관에 지방대 출신 비율이 늘어난 것은 지역인재 할당제 시행의 결과입니다. 물론 채용과정에서 학벌이 노출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이 지방대 출신 지원자에 대한 '간접적인 혜택'이라면, 지역인재 할당제는 '직접적인 혜택'입니다. 따라서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 이후 공공기관에 지방대 출신 비율이 높아졌다는 고민정 의원의 주장은 ‘절반의 사실’입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