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야생동물 구조일지] 서울에 너구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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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야생동물 구조일지] 서울에 너구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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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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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개선충에 감염된 서울의 너구리

서울시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너구리들이 겨울을 힘겹게 버티면서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구리는 산 속에 사는 동물 아냐?' 라는 생각을 가지실 수 있겠지만 사실 너구리는 숲의 가장자리를 선호하는 종입니다. 우리가 도시를 키우고 도로를 늘리는 것이 숲 안쪽 면적은 줄이는 반면, 가장자리를 늘려 적응력이 강한 너구리의 살 곳을 넓혀 주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될 수밖에 없습니다. 번식시기가 끝나고 어미에게서 독립을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너구리는 꽤 먼 거리까지 이동하는 과정을 갖게 되고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시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됩니다. 이동 중 너구리는 많은 동물과 다양한 환경을 접하면서 경쟁, 과시, 구애, 공격행동 등을 통해 사회성을 키우고 야생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지는 것이죠.

자연 속 너구리. 출처:서울시야생동물센터
자연 속 너구리. 출처:서울시야생동물센터

서울시에서 너구리는 특히 안양천이나 탄천, 홍제천, 양재천 등 한강 지류를 따라 자주 발견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천의 대부분은 도심과 인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다 보니 하천정비공사, 자전거 및 산책로 조성을 통해 주로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꾸준한 개발과 같은 인위적 개입으로 인한 단편화된 서식지는 곧 파편화 및 고립 현상으로 더욱더 좁아지며, 동종과밀, 즉 동물들이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특히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 좁아질 대로 좁아진 서식지에서 먹이를 구하거나 자신을 보호해줄 은신처를 가지는 것이 어려워지면 영양결핍 상태가 지속되어 면역력이 약화되고 그 결과, 질병에 쉽게 노출됩니다.

너구리는 개선충(scabies, Sarcoptic mange)이라는 외부기생충에 많이 감염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조건들이 부족하지 않더라도 너구리의 생태적 특성상 공동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개체간의 교류가 왕성해 이미 감염된 개체에게서 전파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개선충증은 외부기생충인 Sarcoptes scabiei가 원인체입니다. 여우, 늑대 등 주로 개과동물에게 감염이 계속 확인되고 있으며, 피부 속으로 들어가 극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합니다.
개선충증은 외부기생충인 Sarcoptes scabiei가 원인체입니다. 여우, 늑대 등 주로 개과동물에게 감염이 계속 확인되고 있으며, 피부 속으로 들어가 극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합니다.
출처: 서울시야생동물센터

그런데, 개선충과 같은 질병에 감염되면(대부분의 질병 감염 시),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생리학적 반응은 식욕부진과 체온상승입니다. 식욕부진을 통해 에너지섭취가 줄어들게 되고, 열로 인한 에너지 사용(=체온상승)이 증가하여 결국은 저장된 에너지까지 고갈시키게 됩니다.

여기서 에너지란, 동물의 경우 먹이를 먹고 소화한 에너지는 호흡을 통해 생명과 체온을 유지함과 더불어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번식하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사용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기능에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에너지의 획득 및 사용경로입니다.
에너지의 획득 및 사용경로입니다. 출처:서울시야생동물센터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저장된 에너지마저 전부 사용해서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너구리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개선충은 피부에 붙기만 해도 분비물에 의해 가려움증을 유발하게 됩니다. 너구리는 가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자신의 피부를 씹고 뜯고 긁으며 심각한 경우 털까지 뽑아내기도 하지요. 계속해서 긁다보면 두꺼운 갑옷을 형성한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심각한 면역반응으로 결국 외부에서 관찰이 가능하도록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감염세포가 피부 위에 모여 죽은 피부가 형성된 모습(왼쪽)과 약 열흘 동안 집중적인 치료를 통해 회복된 모습(오른쪽)
감염세포가 피부 위에 모여 죽은 피부가 형성된 모습(왼쪽)과 약 열흘 동안 집중적인 치료를 통해 회복된 모습(오른쪽) 출처:서울시야생동물센터

위 너구리는 민가 주변의 공원과 같은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귀 뒤쪽부터 감염의 정도가 심했었고, 탈수에 의해 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너구리들은 수액처치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균형 잡힌 식단과 탈모로 인한 체온저하를 막아주면서 관리합니다. 다행히도 이 너구리는 개선충증에서 회복해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줄 털을 회복하고 자연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방생은 기존 구조 장소에 방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민가와 유동인구가 많은 점이나 너구리의 재정착 등의 문제를 고려하여 사람과의 접촉이 적고,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찾아가 방생해 주기도 합니다.

 

너구리는 환경적응력이 뛰어난 종에 속합니다. 서울시 관할구역 어디든 살아가고 있는 강인한 동물들이지요. 천만 인구가 살아가는 좁은 땅에서 너구리는 심심찮게 목격됩니다. 아픈 너구리가 발견되면 부디 외면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감염 후 심각단계에 이르기 전의 너구리는 전문가들이 모인다 하더라도 활동성이 떨어지기 전이라 경계반응도 남아 있어 포획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서울시야생동물센터에서는 신고전화를 받아도 바로 출동하지 않고, 활동성이 완전히 없어지거나 중증의 상태에 도달하기 전까지 개체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모니터링으로 대체하기도 합니다. 필요 시 포획틀을 설치하고 강제포획보다 자연스러운 포획으로 너구리와 사람의 안전이 확보되는 방법 역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선충에 듣는 약을 주변에 조금 뿌려주기도 하죠. 이렇게 진행된 모니터링 중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모습도 많이 관찰됩니다.

간혹 그저 외형적인 모습에 따른 혐오감과 두려움 또는 서울시에 너구리가?! 라는 신기함에 멀쩡한 너구리임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광견병 이야기와 함께 ‘위험해보이니까 이 너구리 좀 치워주세요’ 라는 입장을 표명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거나 다가가 손을 내밀거나 먹이를 제공하는 등 인위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 이상 너구리는 잠시 쉬어갈 뿐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습니다.

동물을 배려해 나눠주는 친환경적인 공간 속에서 잘 살아가는 너구리들도 있습니다. 야행성인 너구리는 보통 밤에 활동하고 또 사람을 두려워하기에 쉽게 발견되는 동물은 아닙니다. 서울시는 인구가 많아 상대적으로 발견빈도가 높기 때문에 자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지요. 너구리를 발견했을 때는 그저 너구리다! 하고 지나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과 멀어져 있는 도심지역에서 너구리를 봤다는 건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한 것과 다름없을 테니까요.

 

자연과 멀어져 있는 도심지역에서 너구리를 봤다는 건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한 것과 다름없을 테니까요.
자연과 멀어져 있는 도심지역에서 너구리를 봤다는 건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한 것과 다름없을 테니까요. 출처: 서울시야생동물센터

글:  김태훈 서울시야생동물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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