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다 사람이 먼저다' 샌프란시스코의 주차장 실험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9.01.18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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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남부에 있는 집에서 자동차를 몰고 1시간 넘게 북으로 달려 샌프란시스코에 들어설 때마다 주차가 걱정이다. 실내 주차장에 주차를 하자니 대체로 너무 비싸다. 일단 주차하면 단일 요금으로 24시간 한도 내에서 25달러 정도를 받는 곳이 많다. 길거리 주차를 하면 좀 싸지만 빈 곳을 찾아 빙빙 도는 차들이 많을 만큼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동네마다 조금 다르지만 최대 2시간 정도까지만 주차할 수 있다. 요금도 동네마다 다른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 오라클파크(얼마 전까지 에이티앤티파크) 근처 도로주차 요금은 경기가 열리는 날의 경우 시간당 7달러나 한다. 하여튼 샌프란시스코는 주차하기 쉽지 않은 도시다.

그런 샌프란시스코가 건물을 지을 때 실내주차장을 지어야 하는 의무 규정을 없앴다. 샌프란시스코보다 앞서 미국에서 주차장 설치 의무를 없앤 도시가 있지만 소도시가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 중에서 주차장 설치 의무를 없앤 건 샌프란시스코가 처음이라고 한다. 예외적인 경우인 셈이다. 예컨대 한국에서도 '주차장법 제12조 3(단지조성사업 등에 따른 노외주차장)'에 의해 아파트단지를 조성하거나 할 경우 건물 규모에 따라 적정 비율의 주차공간을 마련하는 게 원칙이다.

샌프란시스코 에이티앤티 파크의 주차공간 전경.

영안실 빼곤 주차장 의무 사라져

샌프란시스코 시의회가 건축 시 실내주차장 확보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의 조례를 통과시킨 건 지난해 12월 초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2월 21일 런던 브리드(London Breed)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서명을 완료함에 따라 2019년 1월 20일부터 바뀐 조례가 발효된다.

개정된 조례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시 전체에서 건물 신축 시 실내주차장 확보 의무는 전면 폐지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건물을 신축할 때 건물 내부에 최소 주차공간 확보 의무 규정이 만들어진 건 1950년대 일이다. 그리곤 1973년 이후 이 규정을 완화하거나 주차공간 규모를 줄여왔다. 교통체증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며, 주거 건축 비용을 줄인다는 취지였다.

이번 조례 개정 전에도 구역별로는 최소 주차공간 확보 의무를 이미 없앤 지역들도 존재했다. 다만 시 전체에 걸쳐 해당 의무를 전면 폐지한 건 조례 개정에 따른 것이다. 개정된 조례를 살펴보면 유일하게 주차공간 확보 의무가 있는 시설로는 영안실 단 한 곳이 있을 뿐이다.

주차장을 안 지어도 된다고 조례를 바꾼 건 샌프란시스코 시가 1973년부터 규정을 완화하거나 주차공간 규모를 줄여온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자가용 숫자를 줄여 교통체증을 덜고, 주차장 대신 주거공간을 더 지을 수 있도록 유도해 집값을 낮추는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교통체증 악화, 집값 급등...살기 힘든 샌프란시스코

사람이 많아지면서 차도 많아지니 샌프란시스코의 교통체증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10년 이후 실리콘밸리를 포함해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지역 경기가 호황을 이어가면서 생긴 일이다.

지난해 10월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내놓은 '운송네트워크회사(TNC)와 교통체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중요한 수치들이 등장한다. 보고서에서 초점을 맞춘 건 2012년 이후 빠르게 인기를 모은 우버, 리프트 같은 TNC가 교통체증에 미친 영향이었는데,전반적인 샌프란시스코 교통상황을 알 수 있는 숫자들이 등장했다. 그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오전 오후 출퇴근 시간에 시내 도로의 차량 속도는 각각 26%, 27% 감소했다. 4분의 1 수준으로 느려진 것이다. 같은 기간에 새로운 일자리가 15만개가 생겼고 주민은 7만명이 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우버, 리프트 현황에 대해선 앞선 글 샌프란시스코 택시 몰락과 시의 '원죄'를 참조.

실리콘밸리와 그 주변 지역이 비슷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역시 어지간히 벌어서는 먹고 살기 힘든 곳이다. 지난해 6월 미 주택도시개발부(HUD)가 발표한 지표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4인 가구 기준으로 연간 소득이 11만7400달러 이하면 저소득층이었다. 1달러를 1100원으로만 환산해도 1억3000만원 수준이다. 1년에 이 정도 벌어도 저소득층이라고 분류한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집값, 월세다. 우선 집값. 캘리포니아부동산중개인협회(CAR)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가격은 중위값(median price)이 144만2500달러였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가격이 금리인상과 경기둔화 우려 등이 겹치면서 그나마 한 풀 꺾여서 낮아진 가격이다. 한 달 전 조사에선 160만달러였다.

샌프란시스코의 일반인 기숙사 운영 회사인 스타시티 홈페이지. 쾌적한 환경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인 기숙사 공동주택 인기...저소득층 외곽으로 밀려나

월세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중개서비스를 제공하는 질로우(Zillow)를 찾아보면, 유명 관광지인 유니언스퀘어 근처에 있는 방 하나, 욕실 하나 아파트 월세가 3000달러 정도(인터넷, 전기, 수도 요금 등은 별도) 나간다. 시내에서도 동네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방 2개, 욕실 1개 아파트는 어지간하면 월세 4000달러는 줘야 한다.

작은 방 하나를 사용하면서 부엌, 거실, 세탁기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일반인 기숙사' 같은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낡은 건물을 부수고 수십 명이 사는 이런 형태의 기숙사를 짓는 사업이 주목 받았다. 대표적인 회사인 스타시티의 경우를 보면, 인터넷, 전기, 수도, 청소 서비스 등을 포함한 월세가 2000달러 정도에서 시작한다. 지난해 5월 현지언론은 '이 회사의 공동주택(당시 건설 중인 52가구 규모 건물을 포함)에 입주를 원하는 대기자만 1만3000명이라고 한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연봉 5만~9만달러를 버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다.

집값, 월세가 오르면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 주민들은 샌프란시스코 바깥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그룹이 흑인 주민들이다. 지난해 9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Berkeley) 연구팀과 캘리포니아 주정부 관계 기관(California Housing Partnership)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2000~2015년 집값, 월세가 오르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만 흑인 주민 전체에서 17%에 이르는 3000 가구 가량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밀려난 주민들은 집값이 싼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됐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샌프란시스코 실험은 성공할까

실내 주차장 확보 의무를 없앤 건 무엇보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논리가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다. 차를 위한 공간을 짓는 대신에 그만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더 지어서 공급하는 게 합당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조례 개정안을 내며 모든 과정을 주도한 인물은 민주당 시의원 중에서도 진보 성향이 강한 한국계 제인 킴(Jane Kim) 전 시의원. 얼마 전 임기를 마친 그가 낸 조례 개정안은 다양한 단체, 기관의 지지를 받았다. 건축 규제를 완화해 더 많은 집을 지어야 한다는 단체(YIMBY Action)를 비롯해 우버, 리프트 등의 기업들까지 힘을 보탰다. 다만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아 시의회 투표에선 6대 4로 통과됐다.

냉정하게 보면 시 전체에서 주차장 대신 집을 더 짓도록 유도하겠다는 정책만으로 샌프란시스코가 주거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 다만 차를 둘 공간보다 사람이 살 공간을 우선하겠다는 취지를 살려나간다면 어느 정도 상황을 완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땅이 넓고 대중교통은 취약한 주변 다른 도시들과 달리 샌프란시스코는 서울의 5분의 1 면적에 대중교통은 상대적으로 편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자가용 없이 살만한 곳이라는 의미다. 과연 이 도시에서 주차장 확보 의무를 없애기로 한 실험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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