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 뒤집혔나?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2.02.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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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에서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뒤집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뉴스톱은 과연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뒤집었는지 팩트체크한다.

출처: 다음 뉴스 검색
출처: 다음 뉴스 검색

◈문 대통령 뭐라고 했나?

문 대통령은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이 지닌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이고, 특정 지역에 밀집되어 있어 사고가 나면 그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믹스 전환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하며, “우리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등을 2084년까지 장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 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면서, “다만 적절한 가동률을 유지하면서 원전의 안전성 확보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지시했습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신한울 1, 2호기와 신고리 5, 6호기는 포항과 경주의 지진, 공극 발생, 국내자립기술 적용 등에 따라 건설이 지연되었는데, 그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기준 강화와 선제적 투자가 충분하게 이루어진 만큼,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출처: 2022. 2. 25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 서면 브리핑>

여태껏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탈원전 정책과 전혀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핵심은 신규 건설을 하지 않고, 계획 수명에 도달한 노후 원전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이런 식으로 현재 쓰고 있는 원전은 문 닫을 때까지 쓰도록 한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 기념사에서 탈원전 정책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원전 정책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습니다.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습니다.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하겠습니다.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수명을 연장하여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는 전력 수급 상황을 고려하여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습니다.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습니다. 지금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 비용, 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하여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습니다.

원전 안전기준도 대폭 강화하겠습니다. 지금 탈원전을 시작하더라도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앞으로도 수십 년의 시간이 더 소요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 국민의 안전이 끝까지 완벽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지금 가동 중인 원전들의 내진 설계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보강되었습니다. 그 보강이 충분한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겠습니다.

(중간 생략)

저의 탈핵, 탈원전 정책은 핵발전소를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어서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할 수 있는 탈핵 로드맵을 빠른 시일 내 마련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 기념사, 2017.06.19>

◈60년 동안 주력 기저전원?

보수 언론과 야당은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여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문장에 주목했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뒤집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이에 기반해 작성된 전력 수급 계획 등에는 이미 원전이 반영돼 있다. 

출처: 탈원전 로드맵
출처: 탈원전 로드맵
출처: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출처: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통해 보면 2034년까지 새로 준공되는 원전은 신한울 1, 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이다. 이 기간 동안 수명을 다한 원전 11기가 가동 중단된다. 가장 늦게 가동되는 신고리 5,6호기가 수명을 다하고 가동 중단되는 2084년에야 탈원전이 완성되는 것이다. 가동 중단될 때까지는 쓴다. 최선을 다해 안전을 점검해가면서 쓴다. 이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다. 신고리 6호기가 준공되는 시점까지는 원전 비중은 오히려 늘어날 예정이다. 당장 모든 원전을 끌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건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었다.

그러나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향후 60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 사용하겠다는 부분이다. 기저 전원이란 항상 일정하게 발전량을 유지하는 전원이다. 하루 또는 계절의 변동에 따라 전력 수요량이 변동하는데 보통 발전 단가가 낮은 순으로 발전기를 가동(경제급전)한다. 원전은 산업화 시대 이후 낮은 공급가격 덕에 기저 전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낮아지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안전 비용이 늘어나면서 원전의 발전 단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르면 원전의 발전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원전이 가동 중단될 때까지 기저 전원으로 사용할 수는 있어도 '주력' 기저 전원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주력(主力: 중심이 되는 힘, 또는 그런 세력)이 되려면 기저 전원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해야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을 따라갈 경우 2084년까지 원전이 '주력' 기저부하를 담당할 수는 없다. 2020년 21%를 차지했던 원전의 발전비중(실효용량 기준)은 2034년이면 15.5%로 낮아진다.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임기 석달 남기고, 왜 60년 이후를 얘기하나?

이번 문재인 대통령 발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공급 루트를 점검하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에서 나왔다. 하지만 에너지 공급망 점검보다는 원전에 방점이 찍혀있다. 문 대통령은 건설이 지연된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를 빠른 시간 내에 정상가동할 수 있도록 점검해달라고 요구했다. 소형모듈원전(SMR), 핵융합 연구, 원전 해체 기술 등 원전 관련 연구에 속도를 내달라는 주문도 내놨다. 탈원전과 원전 수출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도 당연하다'고 언급했다.

이런 일련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기존의 탈원전 정책을 재확인하면서도 '향후 60년의 주력 기저전원'이라는 립서비스를 통해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일부 유권자들의 표심을 돌리려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오는 5월 임기가 종료되는 문재인 정부는 원전과 관련된 정책을 수정하거나 신설할 상황이 아니다. 이미 차기 정부로 공이 넘어간 상황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감원전 정책'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을 약화시킨 버전 정도로 이해된다. 계획 단계에서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도 추진 재개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탈원전 정책을 재확인하면서도 탈원전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을 돌려세우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다보니 원전은 지속적으로 줄여 나가지만 '주력 기저전원'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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