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사전투표 대혼란 어디서 비롯됐나?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2.03.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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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지급하고, 선거인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걷어 선거사무원이 투표함에 넣는 웃지 못할 일이 2022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부랴부랴 사과문을 발표하는 수모를 겪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뉴스톱이 분석해봤다.

출처: 국회 속기록 홈페이지
출처: 국회 속기록 홈페이지

①빗나간 확진자 예측…확진(격리) 투표 대상자 50만명 증가

이번 3.5 사전투표의 대혼란을 유발한 가장 큰 원인은 선관위의 확진자(격리자) 투표 수요 예측으로 귀결된다. 선관위는 대선 투표에 참여할 확진자(격리자) 수를 최대 100만명으로 예측하고 선거 준비를 진행했다.

대선 본투표일 한 달 전인 2월9일 국회 정개특위, 행안위 속기록(윗 그림 참조)을 살펴보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세환 사무총장은 사전투표일과 본투표일에 대선 투표에 참여할 대상자들이 최대 100만명에 이르러도 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초지일관 고수했다.

감염자가 많아 가장 관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는 서울지역도 투표소 별로 투표 참가자들이 분산되면서 최대 40명 정도 투표 현장을 찾을 걸로 내다봤다.

그러나 지난 5일을 포함해 이전 7일 간의 확진자는 154만7580명에 이른다. 최대로 예측했던 100만명보다 무려 54만여명이 증가했다. 서울지역에서 20만명으로 예측했던 확진자는 같은 기간 33만1107명이었다. 당초 예측보다 무려 150% 이상 확진(격리)자 투표 대상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확진자 발생 예측 실패에는 질병관리청도 한 몫 거든 것으로 보인다. 김세환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질병청에서는 (확진자 투표 참여 수요를)70만명 정도로 봤는데 저희는 100만명 정도로 보고 어떻게 할 것이냐, 그들의 참정권을... 그런 검토 끝에 오늘 답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질병청은 선관위보다 더 보수적으로 확진자 발생을 예측했던 것이다.

 

②빗나간 투표율 예측+갯수 적은 사전투표소

선관위는 당초 확진(격리자) 예상 투표율 최대치를 30%로 보고 투표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선관위의 투표율 예측도 실패했다. 김 사무총장은 "지난 두 번의 선거에 걸쳐서 (자가격리자 투표율이) 20% 남짓 나왔는데 대선 때는 투표율이 높으니까 한 10% 더해서 30%로 봤을 때 수치가 한 4만에서 한 5만, 이 사이가 되거든요"라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의 국회 발언은 선거일 본투표를 상정한 것이다. 3월9일 선거 당일 투표소는 전국 1만4464곳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3월5일 실시된 사전투표는 전국 3552곳 투표소에서 진행됐고 서울지역은 425곳에서 실시됐다. 

선거일 당일 투표를 상정하면 서울지역의 경우 2200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투표소 한 곳당 기표소를 세 개 정도 설치해 투표를 진행하기 때문에 40분 정도면 확진(격리)자 투표가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 5일 실제로 확진자 사전투표가 진행될 당시, 전국 투표소 여러 곳에서 투표하러 온 확진자들이 두 시간 이상 실외에서 대기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실제상황을 놓고 계산을 해보자. 3월5일 0시 기준으로 7일 전까지 서울지역에선 33만1107명이 확진됐고, 서울지역의 사전투표율은 37.23%를 기록했다. 확진자 가운데 85%가 18세 이상의 유권자라는 선관위의 분석을 토대로 계산하면 확진자 10만478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를 서울지역 사전투표소 425곳으로 나누면 사전투표소 한 곳당 246명이다. 선관위가 최대치로 예측한 40명보다 6배 이상 많다. 당연히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이런 차이는 확진(격리)자의 투표 참여를 사실상 무제한 허용한 공직선거법 개정(2월16일)과 이에 따른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2월 24일)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전까지 선거에선 보건소에 외출 허가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아야 투표에 참가할 수 었었지만 법령 개정으로 인해 관할 보건소장이 외출 시 주의사항 등을 통지하는 것으로 절차가 간소화됐다. 이에 따라 재택치료 중인 확진자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리면서 대기 시간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③의원들도 놓친 소쿠리 선거

이번 확진(격리)자 사전투표에 참여한 선거인들이 가장 분노한 지점은 선거인이 직접 자신이 행사한 표를 투표함에 넣지 못했다는 점이다. 확진자들은 투표소 외부에서 투표지를 수령한 뒤 임시기표소에서 기표한 뒤 봉투에 넣어 선거사무원에게 건넸다. 이를 받은 선거사무원이 투표함으로 가져가 봉투에서 기표된 투표용지를 꺼내 넣었다. 

이 과정에서 택배상자, 쓰레기봉투, 비닐봉지 등 통일되지 않은 수거 도구가 사용됐고 직접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지 못해 마음이 상한 선거인들은 재차 자신의 소중한 한표가 소홀히 취급당하는 것 같은 분노를 느끼게 됐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코로나19 발병 이후 치러진 이전 선거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됐다. 다만 앞선 선거 당시에는 확진(격리)자 투표 대상자가 적었고 대기 시간도 길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확진자가 급증과 이에 따른 대기시간 정체를 예상하지 못한 선관위의 책임이 크다. 최소한 통일된 투표용지 수거 장치를 마련했더라면 확진(격리) 선거인들이 서운한 마음을 덜 느꼈을지 모른다.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④선거 당일 본투표는 어떻게?

안일한 선거사무에 국민적 공분이 들끓자 선관위는 부랴부랴 개선책을 내놨다. 일반인 대상 투표가 끝나는 오후 6시 이후 확진(격리)자 만을 대상으로 일반인과 똑같은 절차대로 투표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사전투표에서 노출됐던 선거인이 직접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지 못하는 문제와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문제 등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본투표에 사용되는 투표소는 사전투표에 비해 4배 이상 많고, 일반인 투표와 마찬가지로 선거인 본인이 직접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게 되기 때문이다. 

 

⑤왜 사전투표는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도대체 선관위는 왜 사전투표에서 확진(격리)자 선거인의 투표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놨을까? 확진(격리)자 투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관위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것은 ▲확진자와 일반인의 동선 분리 ▲투표소 별로 1개의 투표함을 사용이다.

확진자와 일반인의 동선 분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선관위는 사전투표 당시 확진(격리)자 선거인들은 보건소의 외출허용시각부터 18시 이전까지 투표소에 도착하면 임시기표소에서 투표하는 방법으로 동선을 분리했다.

임시기표소는 투표장소 외부에 마련해 일반인 선거참여자와 선거사무원과의 접촉을 원천봉쇄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따르면 확진(격리)자 선거인과 대면하는 사람은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하고 투표용지를 나르는 소수의 선거사무원 뿐이다. 다분히 투표장 안에 있는 선거사무원들의 감염 예방 대책에 방점이 찍혀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직접투표(선거인이 직접 투표함에 표를 넣는 방식)와 비밀투표(일부 선거구에선 투표지가 투명비닐봉지에 담김)의 원칙을 침해했다는 지적을 초래했다. 

여기서 아쉬운 부분은 사전투표도 본투표처럼 6시 이후에 투표하고 일반인과 동일한 투표방식을 사용하지 않은 점이다. 근본적으론 선관위와 방역당국의 확진자 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역상황 악화에 따른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한 점도 큰 실책으로 꼽힌다. 2월9일 국회 상임위 논의가 진행됐고 2월24일 법령 개정이 완료됐다.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2월18일부터 10만명을 웃돌기 시작했다.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확진자 5만명 상황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며 "자신있다", "경험이 있다", "충분하다"고 큰소리를 쳤던 선관위의 총체적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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