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침략을 정당화한 레벤스라움(생활권)의 탄생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19.01.3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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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나라들이 제국이 되면서 박물학은 시대의 주목을 받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작은 섬나라였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고, 프랑스는 그 영국이 아프리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걸 막으며 아프리카의 동서를 관통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는 프랑스령이 되었고, 말레이제도는 네덜란드가, 인도는 영국이 차지했지요. 북아메리카의 위쪽은 프랑스가 아래쪽은 영국이 가졌습니다. 남아메리카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땅이었고, 필리핀도 스페인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곳에 원래 살던 이들은 그러나 영국시민도 프랑스 국민도 아닌 배제되거나 노예가 될 운명이었을 뿐이었죠. 그리고 그렇게 식민지가 된 곳마다 여러 가지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땅에는 새로운 식물이 있었고, 그 식물을 먹이로 하는 새로운 동물이 살고 있었죠. 사막과 초원과 우림이 있었고, 협곡과 산맥, 고원과 늪지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 땅을 지배하는 제국에게는 알아야할 정보입니다. 그리하여 식물학과 동물학, 지질학과 지리학을 하는 이들이 그 땅을 탐험하고 조사합니다. 가히 박물학, 자연사의 전성시대였죠.

박물학의 발전에 드리운 제국주의 그림자

낯선 거대한 영토를 확보한 제국으로서는 박물학자들에 의한 연구와 조사가 당연히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의 지식과 연구 성과도 높아져갔습니다. 식물학과 동물학은 점차 발전하면서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형성하였으며, 생물학 내에는 생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생물을 분류하는 분류학도 발전했죠. 식물과 동물들을 제대로 분류하고 동정하는 일이 학문적으로도 중요했지만, 상업적으로도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지질학도 마찬가지여서 지층에 대한 분석과 광물 및 암석에 대한 비교는 필수적인 지식이 되었습니다. 새로 확보한 식민지의 어디에 어떤 지하자원이 숨어있는지를 찾기 위해 지질 전문가가 대량으로 필요해집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식민지에 도로를 내고, 요새를 건설하고 군대가 머물 곳을 찾으며, 다른 제국과의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선 지리학이 필수적인 학문이 되었습니다. 물리학과 수학, 천문학 정도만이 학문적 구성을 갖추던 이전 시기에 비해 과학의 분과학문들이 급속도로 다양해지고 넓어집니다.

이들의 노력이 과학에서만 커다란 성과를 올린 것은 아납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유용한 작물은 원산지를 떠나 비슷한 기후 환경의 다른 식민지에 옮겨 심어졌습니다. 브라질의 고무나무를 가지고 와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거대한 고무농원을 만들었죠. 커피도 마찬가지였고, 바나나도 그러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대평원엔 밀농사가 시작되었고, 남아메리카의 평원에선 소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참혹합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고무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해 엄청난 면적의 열대우림이 베어져 나갔고 그곳에 살던 동물들도 당연히 사라졌으며 그 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던 이들도 모두 내쫓겼습니다. 그 곳에 살던 모든 생명을 쫒아낸 제국의 기업가들은 거대한 플랜테이션에 노동자를 끌어들였습니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선 원주민들의 노동으로, 아메리카에서는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들의 노예노동으로 플랜테이션을 유지했습니다. 단일 작물의 재배는 현지의 경제 구조를 파탄시켰고, 그 부는 모두 제국의 기업가들에게 돌아갔습니다. 16세기 제국주의로부터 시작된 대규모 플랜테이션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지요. 다만 노예노동만 임노동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지리학과 통계학, 독일에서 탄생하다

지리학도 이러한 박물학의 발전 속에서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근대 지리학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독일에서부터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지리학이 있었지요. 지질학과 관련된 영역도 있었고, 생물학과 관련된 영역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마다 공식적으로 지리학과를 두고, 각 급 학교에서 지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갓 통일을 달성한 독일 제국이었습니다. 수 백 개의 공국과 자치도시들을 그러모아 이제 막 통일을 이룬 독일 제국은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치는데 그 중 하나가 지리학이었습니다. 독일이 애초부터 하나의 국가로 통일될 환경적, 지리적 운명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리학의 한 영역이었던 통계학이 독자적인 학문이 된 것도 독일이었습니다. 통계학statistics의 어원은 state, 즉 국가입니다. 한 국가의 인구, 공업생산물, 면적, 수출량 등 다양한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최초의 통계였고, 이는 응용지리학의 한 영역이었던 것이죠.

이렇게 국가적 지원 속에 독일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초기 근대 지리학은 환경 결정론적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게으르다든가하는 속설은 바로 이런 초기 지리학의 환경 결정론으로부터 나온 것이죠. 이런 이론은 생물학의 인종주의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에 대한 유럽인의 지배를 당연시하게 여기게 만드는 여러 바탕 중 하나였습니다. 환경 결정론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이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입니다. 그는 지리적 환경이 그곳에 사는 이들의 성격과 민족적 속성을 결정한다는 환경 결정론을 주장하며, 여기에 더해, 그런 민족적 속성은 이주를 통해 전파될 수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레벤스라움'을 받아들인 독일 나치와 '대동아공영권'의 일본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레벤스라움Lebensraum이란 용어입니다. 독일어로 살 공간, 생활권 정도의 의미를 가지며 영어로는 Living Space 정도로 번역됩니다만 그 용어에 깃든 나치의 흔적을 명확히 하기 위해 대부분 번역하지 않고 레벤스라움이라고 씁니다. 이 레벤스라움이란 결국 ’독일의 영토를 넓혀 독일 민족이 살 공간을 마련해야만 독일 아리아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죠. 그는 독일 민족은 당시의 좁은 영토만을 생활공간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위대성에 걸맞은 생활공간-레벤스라움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요. 라첼의 이러한 주장은 국가가 존재하는 당위성이 영토정복과 생활공간의 확장이라고 생각에 근거했습니다. 진화론을 어거지로 적용한,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은 유사과학인 사회 진화론의 한 경향이었지요. 사회도 국가도 약육강식의 논리에서만 바라본 것입니다. 그에 따라 그는 독일이 여타 민족을 지배하고 팽창하듯 서구 유럽이 지구를 정복해가는 과정 또한 합리화합니다. 그의 이 주장이 이후 독일의 영토팽창정책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사용됩니다.

1차 대전 당시 독일 제국 정부가 내세운 9월 계획은 폴란드 서부 지역과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를 정복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레벤스라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차 대전 때로 오면 나치는 유대인과 슬라브족이 지배하고 있는 동유럽을 장학하고 동유럽을 게르만민족이 곡창으로 개간한 뒤 슬라브족을 노예로 삼아 천년제국을 만들겠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동유럽이야말로 게르만족의 레벤스라움이라는 것이죠. 당시 독일 나치의 정책인 게네랄플란 오스트Generalplan Ost에 이런 정책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도 레벤스라움 이데올로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근대 지리학과 제국주의 사이에는 아주 깊은 연관관계가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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