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비닐봉지에 담긴 뜨거운 국물은 위험하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2.05.2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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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에 음식 배달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배달 음식은 보통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온다. 국물은 얇은 비닐봉지에 두 겹으로 포장돼 배달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배달 기사님들의 번개 같은 일처리와 배달통의 보온 능력으로 우리는 따뜻한(종종 뜨거운) 상태로 음식을 받아 먹을 수 있다. 다 먹고 난 뒤 쌓이는 플라스틱 그릇을 보며 포만감에 흐뭇함을 느끼는 한편 쓰레기를 만들어냈다는 죄스러운 느낌도 든다. '비헹분섞(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다)' 기준에 따라 분리배출을 하고 나면 또다른 불안감이 밀려온다. 플라스틱에 뜨겁고 기름진 음식을 넣었는데 괜찮을까? 환경호르몬 어쩌구저쩌구 하든데 과연 괜찮나?

뉴스톱은 플라스틱 용기 또는 비닐봉지에 음식을 담는 것 또는 조리하는 것의 안전성에 대해 분석해봤다.

출처: 중앙일보 홈페이지
출처: 중앙일보 홈페이지

◈중국, 비닐봉지에 담긴 뜨거운 국물 먹었더니...

중앙일보는 지난 20일 <비닐 담긴 뜨거운 국물 먹었더니...소변서 나온 '놀라운 것'>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다.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봉지에 담았던 뜨거운 수프나 국물을 먹으면 플라스틱에 있던 프탈레이트 성분을 섭취하게 돼 소변에서 프탈레이트 대사 산물의 농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다. 사람 몸속에 들어온 프탈레이트는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내용은 중국 광시의대 연구팀이 지난 18일 ‘환경과학기술(Envir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이라는 국제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토대로 작성됐다. 중국에서 진행된 연구이지만 기사 본문에는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버려지는 플라스틱 음식 포장 용기의 사진을 첨부했다.

기사를 접한 독자들은 포털 뉴스 댓글창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플라스틱 및 비닐에 뜨거운 음식 담아서 팔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야 된다”, “중국 동남아 국가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뜨거운 배달 음식들 모두 비닐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판다”는 등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플라스틱 그릇(또는 비닐봉지)에 담은 음식은 위험한가?

우리나라 식품위생법과 하위법령은 ‘식품용 기구 및 용기∙포장의 기준 및 규격’을 정해놓고 있다.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은 판매 또는 영업에 사용할 수 없다. 식품용 기구와 용기, 포장에 함유된 위해 우려물질이 접촉을 통해 식품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식품용’으로 표시된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담는 것 만으로는 건강상 위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식품용 용기에는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를 사용할 수 없고, 기구 및 용기·포장에서 용출돼 식품으로 이행될 수 있는 프탈레이트, 비스페놀 A 등 물질은 리터 당 30mg 이하로 규제되고 있다.

DEHP는 PVC의 유연성 등을 향상시키기 위해 첨가되는 가소제이다. DHEP 등 프탈레이트류는 급성 독성은 낮으나, 지방 대사의 변화, 고환위축, 생체 이물 대사의 장애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DEHP의 경우 쥐 실험을 통해 정소위축과 정자수 감소를 유발하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를 유도한 것으로 보고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식품용 그릇은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과 페트병의 원료인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스티로폼이라고 불리는 PS(폴리스타이렌) 재질이 주로 사용된다. DEHP 등 프탈레이트류는 PVC(염화비닐수지) 재질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데 PVC는 일부 랩 제품을 제외하고는 식품용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뉴스톱은 식약처에 플라스틱 그릇에 음식을 담는 것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품용으로 제조된 제품의 경우 안전성에 대해 우려할 필요는 없다”며 “플라스틱 용기에 대해 프탈레이트류나 비스페놀A 등에 대해 기준·규격을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식품용 기구·용기·포장에 대한 프탈레이트류나 비스페놀A에 대한 이행량(용기에서 식품으로 화학물질이 우러나는 양)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모두 기준·규격에 적합해 안전성 우려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플라스틱 그릇(또는 비닐봉지)에 담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넣으면?

'식품용'으로 표시된 플라스틱 그릇에 음식을 담는 것은 안전하다고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 그렇다면 플라스틱 그릇에 음식을 넣어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은 어떨까?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식품 등의 표시기준’은 “전자레인지에 사용하는 합성수지제 기구 또는 용기ㆍ포장은 전자레인지용으로 구분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용도로 설계된 그릇은 ‘전자레인지용’으로 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전자레인지용’으로 표시되지 않은 플라스틱 그릇은 전자레인지에 넣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식약처에 따르면 ‘전자레인지용’으로 표시된 용기 재질은 내분비계 장애 추정물질(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류나 비스페놀A를 사용하지 않는다. 앞서 살핀 것처럼 프탈레이트류는 PVC를 가공하는데 쓰이고, 비스페놀A는 PC(폴리카보네이트)의 원료물질로 사용된다.

전자레인지용으로 표시되는 그릇의 재질은 PP, HDPE, C-PET, 내열PS 등이다. 이런 재질은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해도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 PS와 PET는 열에 취약한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 구멍이 뚫리거나 변형이 일어나기 쉽다.

멜라민수지로 만든 플라스틱 그릇은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안 된다. 멜라민수지는 멜라민과 포름알데히드를 결합해 만드는 단단한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매끈하고 단단한 표면의 질감과 촉감이 도자기와 비슷한 특징이 있다. 고온에 직접 또는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균열이 생겨 멜라민과 포름알데히드가 용출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멜라민수지 주방용품을 세척할 때는 솔 또는 연마분으로 세척하지 말고 부드러운 스펀지를 사용하여 세척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변색되거나 균열, 파손이 있는 경우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이 좋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우유팩 계란찜'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우유팩 계란찜'

◈전자레인지로 우유팩에 계란찜은?

TV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우유팩에 계란찜을 해먹는 내용이 소개된 이후 블로그 등을 통해 살림 상식으로 관련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우유팩 계란찜은 안전할까?

우유팩은 안팎을 저밀도폴리에틸렌(LDPE)로 코팅한 종이팩이다. LDPE는 비닐봉지를 만드는 소재이다. 말랑말랑한 성질을 지녀 가공하기 좋기 때문에 별도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환경호르몬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은 셈이다.

식약처는 폴리에틸렌에 대해 “폴리에틸렌이 녹는 온도는 105∼110℃로 끓는 물에는 거의 녹지 않는다”며 “적은 양이 녹는다 하더라도 폴리에틸렌은 분자량이 매우 크기 때문에 체내에 흡수될 수 없어 건강상 위해는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일회용 종이컵에 담아 전자레인지에서 조리하면 폴리에틸렌이 녹는 온도인 105 ~ 110℃를 초과하여, 폴리에틸렌이 녹거나 종이로부터 벗겨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식품회사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는 전자레인지에 기름기 있는 음식을 조리할 경우 부분적으로 100도 이상의 고온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근택 강릉원주대학교 식품가공유통학과 교수 연구팀은 2016년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 제23권 제3호를 통해 <전자레인지의 가열조리 시 포장재의 열변형 원인 규명을 위한 온도 측정 방법 비교>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포장음식을 전자레인지로 가열할 때 측정방법에 따라 최고 200도 이상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전자레인지로 우유팩에 계란찜을 만들면 핫스팟이라고 불리는 부분 고온 현상이 발생하면서 우유팩 내부의 폴리에틸렌 코팅을 녹일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환경호르몬에 대한 우려는 적을 수 있지만 녹아내린 플라스틱이 섞인 계란찜을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가급적 ‘전자레인지용’으로 표시된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인체 위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하지만 굳이 녹은 플라스틱을 먹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중앙일보는 중국 연구진의 논문을 인용해 비닐봉지(플라스틱백)에 담긴 뜨거운 국물 요리를 먹는 것이 체내 프탈레이트 농도를 높인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연구는 중국에서 이뤄졌지만 보도를 본 수많은 독자들은 국내 상황과 연결지으며 플라스틱 그릇 또는 비닐봉지에 음식을 담는 것에 대한 공포를 나타냈다. 뉴스톱 팩트체크 결과 '식품용' 표시가 있는 플라스틱 용기에는 음식을 담아도 건강 위해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았다. '전자레인지용' 표시가 있는 플라스틱 용기는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울 때 사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문제는 '오용'이다. 우유팩은 우유를 넣어 냉장 유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계란찜을 만들라고 고안된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우유팩을 이용한 전자레인지 조리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없다. 굳이 용도 이외의 물건을 조리에 사용하면서 미지의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사용설명서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제조사가 권장하는 용도와 용법을 지켜가면서 순리대로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생활 속 위험을 낮추는 지름길이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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