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침술이 잘못된 신화? 무지와 오만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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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침술이 잘못된 신화? 무지와 오만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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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0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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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켑틱 칼럼 '침술의 신화에 침을 놓다'에 대한 반론
최근 교양과학잡지인 <한국 스켑틱> 25호에 '침술의 신화에 침을 놓다'라는 칼럼이 게재됐습니다. 침술의 역사가 수천년이 아니라 수백년에 불과하고 플라시보 효과에 기대고 있으며 실제 의학적 효과는 크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한의사인 김나희 칼럼니스트가 뉴스톱에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한국 스켑틱 칼럼에 대한 팩트체크 형식의 칼럼입니다. 뉴스톱은 사실에 기반한 합리적인 논쟁을 환영합니다. 반론에 대해서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반론과 기고는 contact@newstof.com으로 보내시면 됩니다) 

 

스켑틱 25호 표지
스켑틱 25호 표지

2021년 한국 스켑틱 25호에 ‘침술의 신화에 침을 놓다’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저자 해리엇 홀은 아래와 같이 칼럼을 시작합니다.

"침술 미신에 일침을 놓을 때가 됐다 .침술용 침으로 놓는 것이 괜찮겠다. 당신이 침술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틀렸다." 

-'침술 신화에 침을 놓다' 칼럼 중

 

저자 해리엇 홀은 침이 고대로부터 전해진 것도 아니고 중국 기원의 것도 아니라고 자신있게 선언합니다. 이제부터 내가 진실을 알려주겠다는 호언장담을 합니다(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자의 태도는 마치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신화에 근거하고 있는 현재의 침 치료를 논파하려는 것 같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침이 유래했다는 당신의 믿음이 깨지면 침 시술에 지장이 생기겠죠?” 라는 복합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현대 임상의 침 치료는 그러한 아우라에 기대고 있지 않습니다. 임상에서 그런 신화는 의미없기 때문에, 실제 신화로서 기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해리엇 홀이 자신있게 밝혀낸 ‘침의 기원은 중국 아님’은 심지어 사실도 아닙니다. 홀이 제시한 “증거”는 폴 언슐드(Paul Unschuld)라는 학자 한 명의 ‘의심’ 뿐 입니다. 정통적인 문헌과 유물의 다양한 증거는 중국에서 침이 기원했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이었다 해도 ‘그래서 그게 뭐?’라고 할 사안인데, 심지어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침술의 역사는 최소 2천년전 황제내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내경은 2200년 전에 쓰였으며, 약 80만자의 한자로 되어 있고, 소문 파트와 영추 파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추 파트가 통째로 침 전문서이고 아예 이명(異名)이 침경(鍼經; 침의 경전)입니다. 이처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방대한 양의 기록이 있는데, 침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저자의 글에 아연실색했습니다. 황제내경에는 9종류 침의 길이와 모양과 용도가 상세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중 길이 1.6촌(약 5.3센티미터·1촌은 3.3센티미터) 원침은 알 모양으로 근육을 안마하는 데 쓰였고, 길이 4촌(13.3센티미터) 너비 2.5촌(8.3센티미터)피침은 끝이 검끝처럼 생겼는데 고름을 빼내는 데 쓰였습니다. 황제내경의 침은 요새의 침보다는 범위가 넓은 단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가느다란 금속침에 해당하는 3.6촌(12센티미터) 호침은 모기입처럼 끝이 날카로운데 서서히 침을 놓고 약간 오래 놔둔다고 용도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형태와 용도가 현대의 침과 일치합니다.

하북지역 만성한묘에서 의술 관련 유물과 함께 발견된 금제와 은제의 침. 황제내경의 9종류 침 중 3종류와 모양이 일치
하북지역 만성한묘에서 의술 관련 유물과 함께 발견된 금제와 은제의 침. 황제내경의 9종류 침 중 3종류와 모양이 일치

결정적으로 하북지역 만성한묘(기원전 113년에 사망한 유승의 묘)에서 의술 관련 유물과 함께 금제와 은제의 침이 발견되었는데 황제내경의 9종류 침 중 3종류와 모양이 일치합니다. 이 시기에 출토된 금속제 침이 이미 존재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해리엇 홀은 400년 전까지는 요즘과 같은 가느다란 침을 만들 기술도 없었다고 단언합니다. 엄연히 유물이 출토되고 있고, 째는 침이나 사혈 말고 가느다란 침으로 놓는 침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는데, 저자는 어찌 이렇게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을까요. 명백한 날조입니다.

게다가 2017년에 이루어진 중국의 연길 지역 소영자 유적의 출토품에 대한 연구에서 침치료의 전통이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마저 제시되었습니다.

황제내경뿐 아니라 기원전 100년 전에 활동한 사마천의 사기(편작창공전)에도 경맥에 놓는 침치료의 존재가 확인되고, 정확한 자리에 시침하는 혈위에 대한 내용이 나오며, ‘자(刺)한 자리를 눌러서 출혈이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침으로 찌른 자리에 출혈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사혈과는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자는 요새 같은 침이 아니라 피나 고름을 내는 란셋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합니다. 물론 사혈용이나 농양배출용 메스 같은 침(砭石)이 먼저 등장했다는 데는 의사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합니다. 하지만 농 배출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악화되지 않고 그 전에 침과 약으로 치료하여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좋다는 개념이 이미 황제내경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옹저가 곪으면 살아남는 이는 열 사람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인은 화농이 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몸이 수척한 사람에게는 사혈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농 배출이나 사혈, 독한 약 처방까지 가기 전에 미리 침과 약으로 병의 악화를 막아 치료율을 높인다는 개념이 발전됨과 동시에 가느다란 호침이 제조되어 기원전에 이미 임상에 쓰이고 있었습니다. 농양이 될 때까지 방치했다가 치료를 시작하면 늦으니, 농양이 되기 전에 초기 증상이 나타날 때부터 치료하라는 치미병(治未病)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해리엇 홀은, 이 치미병을 ‘고대 중국 의사들은 침이 병이 드러나기 전인 병의 아주 초기에만 쓰여야 하는 미묘한 것이라고 하던데 이게 바로 고대의 지혜냐’(진짜 병은 고칠 자신이 없으니, 병이 드러나지도 않은 때에만 신비하게 작용한다고 사람들을 속인 것이냐)라고 비아냥대며 왜곡해서 풀어놓습니다.

해리엇 홀은 서구 사회에 침이 소개된 기록이 없음을 들어 침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 합니다. 유럽에는 사혈이 기원전부터 19세기 초까지 주된 치료법으로 계속 쓰이고 있었습니다. 사혈이 주요 치료법으로 쓰이던 기간 동안 유럽에는 침뿐만 아니라 다른 치료법도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유럽인들의 기록 속 침의 부재가 동아시아 침의 부재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타 지역 기록의 부재는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합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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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취향을 객관적인 사실로 포장하는 해리엇 홀

그리고 나서 해리엇 홀은 미국에서 익사자에게 소생을 위해 침치료를 했으나 무효했다는 기록을 언급합니다. ‘퉁퉁 불은 시체에 침을 찔러대는 건 아마 역겨웠을 것이다’라고 불필요한 상상까지 동원합니다. 홀도 잘 알겠지만 익사로 뇌의 저산소증이 3분 이상 지속되면 침뿐 아니라 세상 어떤 방법을 써도 소생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홀은 침의 쓸모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논지에 어울리지 않는 에피소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침과 역겨운 이미지를 부당하게 연결시킵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가 전통의학 말살 정책을 취한 것, 공산당 정부가 전통의학 부흥 정책을 취한 것, 마오쩌둥이 개인적으로는 침치료를 받지 않은 것 모두 양면적인 해석이 가능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홀은 전통의학 말살은 진실된 정책이었고 전통의학 부흥은 정치적인 의도가 들어간 정책이었다고 해석합니다. 홀의 개인적인 취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근거도 대지 않은 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책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치켜세우고 자신이 싫어하는 정책은 정치적인 선택이었다고 폄하하는 홀의 태도는 공정하지 않습니다.

미국 기자 제임스 레스턴은 1971년 베이징 반제병원에서 충수돌기염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침치료를 받고 진통 효과를 느낀 경험을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바 있습니다. 홀은 ‘그가 느낀 진통 효과는 정상 장 움직임이 돌아오면서 우연히 겹친 것이었을 뿐이다’라고 아무런 근거 없이 강변합니다. 한편 뒷부분에서 홀은 ‘침에 진통 효과가 있지만 플라시보와 구분 안 된다’라고 썼습니다. 홀의 글에 일관성이라도 있으려면 ‘레스턴이 느낀 진통 효과는 플라시보였을 것이다’라고 썼어야 하는데, ‘진통 효과는 없었는데 우연을 착각한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홀은 ‘플라시보와 구분되지 않는 침 효과’마저 끝끝내 인정하기가 싫은 것으로 보입니다.

홀은 “1995년에 중국을 방문한 미국인 의사는 겨우 15~20%의 중국인만이 중의학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합니다. 1995년이라니요? 근거가 고작 26년 전에 “들은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지식생산자로서 게으른 태도입니다.

2012년 북경시 일원 10개 의료기관의 의료인 및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용자의 64.4%가 지난 3년간 중서의결합 또는 중서의 협진 진료 경험이 있으며, 의료인의 58.7%가 중서의결합 서비스 공급 및 이용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답한 결과가 있습니다. 15~20%의 중국인이 중의학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64% 정도의 중국인이 중의학을 선택합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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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의학도 서양의학처럼 최근에 빠르게 발전중이다

홀은 중의학, 일본전통의학, 타이전통의학, 한의학, 인도전통의학 등의 형태 대부분은 최근 수십년 안에 등장했기 때문에 정해진 실체가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통의학도 함께 발전하는 것이 대체 왜 문제인가요? 서양의학의 약, 백신, 진단법, 처치법도 역시 최근 수십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서양의학이 대량사혈의 흑역사에 머물지 않고 계속 혁신되어 온 것처럼, 중의학과 한의학도 현재진행형으로 혁신되고 있습니다.

서양의학에서 대부분의 변화가 최근에 일어났다면, 한의학과 중의학의 대부분의 변화도 최근에 일어난 것이 당연합니다. 예를 들자면 시스템 리뷰(systemic review) 개념은 코크란 데이터베이스가 활동을 시작한 뒤인 1990년대 후반에서야 널리 퍼졌습니다. 코크란 라이브러리의 유명한 로고는 한 상징적인 연구의 포레스트 플롯(forest plot)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 연구는 미숙아에게서 폐 성숙을 촉진하기 위한 출생 전 코르티코스테로이드 사용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통합하여 메타분석했습니다. 결과들을 통합하기만 했더라면 미리 그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었을 텐데, 정보가 흩어져 있었던 탓에 수천 명의 목숨을 안타깝게 잃었다는 뼈아픈 교훈이 코크란 로고에 들어 있습니다. 급속도로 발전되는 연구 기법과 치료 기법이 서양의학에 적용되듯, 한의학과 중의학에 적용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홀은 전통의학이 ‘전통적’이라서 싫어합니다. 그런데 홀은 전통의학이 ‘동시대적’이라서 또 싫어합니다. 네. 홀은 전통의학이 어떻게 작동하든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홀은 침이 엔도르핀을 분비시켜 통증 치료에 유효하다는 내용을 “망치로 엄지손가락을 내리쳐도 엔도르핀이 나와서 두통은 까맣게 잊게 될 것이다”라며 물타기를 합니다. 홀은 침치료와 망치로 인한 둔상을 동일시하지만, 망치로 엄지를 내리치면 수지골 골절, 연부조직의 심각한 손상, 대량 출혈, 맞섬운동의 장애 등이 초래되고, 침치료를 할 때는 그런 문제들이 생기지 않습니다.

최근 하버드 연구 팀에 의해 침이 전신 염증을 조절하는 기전으로서 특정 분자 표지자(PROKR2)를 발현하는 뉴런이 침에 의해 활성화된다는 미주신경-부신 축 기전이 밝혀졌습니다. 이 연구는 침 위치(족삼리)와 자극 방법(저강도 전침)이라는 특이적 매개변수로 이 축이 활성화되고, 또한 이 자극이 교감신경을 통한 효과와는 다르다는 것도 밝혔습니다. 홀의 말처럼 아무데나 되는 대로 찔러도 같은 효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홀은 엔도르핀밖에 못 들어본 것 같지만, 침치료의 진통 기전으로는 아데노신 A1 수용체(Adenosine A1 receptor) 매개의 국소 진통기전, 분절 자극(segmental stimulation)의 관문 조절(gate control)을 통한 진통기전, 내인성 오피오이드, 세로토닌, 노어아드레날린 등을 통한 하행성 조절 기전 등이 복합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침에 의한 뇌신경조절은 뇌, 척수에 대한 직접 자극 및 장-뇌 축에 의한 것으로 이미 기전이 밝혀졌고, 자율신경계를 통하여 전신 염증을 조절하고 장-뇌 축 조절을 통해 장 질환을 호전시키고 장내미생물도 조절시킨다는 다양한 기전이 계속 밝혀지는 중입니다.

그런가 하면 엔도르핀 분비가 딱히 질 낮은 치료인 것도 아닙니다. 무해한 침치료로 내인성 오피오이드 분비를 유도하면 중독성 약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주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유의미합니다. 미국 정부에서 침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이유도 미국내 진통약물 남용과 중독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홀처럼 엔도르핀 분비 기전에 대해 비아냥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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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은 “침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침 임상시험에 자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이 문장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침이 효과가 없을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침 임상 시험에 자원하지 않을 것이다”. 홀처럼 침은 어떤 효과도 없을 거라고 굳게 다짐하고 있는 사람이 애시당초 한의사나 중의사에게 침을 맞으러 올 리도 없습니다. (황제내경에서도 이미 "병 치료를 허락하지 않는 경우 병은 반드시 치료되지 않고 치료해도 소용없다"-病不許治者 病必不治 治之無功矣‘-라고 적어 일종의 노시보 효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 어떤 임상시험에 그 술기를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이 자원하겠습니까? 그런 자원자의 존재가 가능합니까? 예를 들어 안티백서가 백신임상시험에 자원할 리는 없습니다.

홀은 중국의 침 연구가 한심한 수준이라고 비웃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출판 편향은 모든 연구 분야에서 관찰되고, 개선 방안이 계속 제시되지만 아직까지 근절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게다가 중국 이외의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도 수준 높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유럽, 북미 등에서도 역시 침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플라시보침'이 아닌 '진짜 침'의 효과는 연구로 검증되었다

홀은 침의 플라시보 효과가 크다는 이유로 침을 계속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침이 플라시보 약에 비해 효과가 큰 기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밝혀진 사실도 많습니다. 플라시보 침은 생리적 활성이 큽니다. 플라시보 침은 블라인드 인덱스(Blinding Index)가 -0.33(틀린 추측이 많음, 즉 진짜 침이라고 추측한 피험자들이 많음), 진짜 침은 BI가 0.55(맞는 추측이 훨씬 많음, 즉 진짜 침이라고 추측한 피험자들이 많음) 정도로 체계적 고찰에 보고되고 있습니다. 생리적 활성은 크고 눈가림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다른 물리적 플라시보들에서도 공통적인데, 플라시보침은 다른 물리적 플라시보들 중에서도 생리적 활성이 가장 크게 나옵니다. 그리고 fMRI로도 플라시보침은 진짜 침과 비슷한 두뇌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이 2008년에 글을 쓴 이후, 플라시보침과 분리되는 진짜 침의 효과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었습니다. 미국 국립보완통합의학센터(NIH) 산하 NCCAM의 지원 하에 질 높은 RCT만 통합하여 약 18000명의 피험자에 대한 메타분석을 시행한 결과, 만성 통증(요통-등통증, 목통증, 골관절염, 만성 두통, 견통)에 대한 침 치료는 플라시보침 및 무처치군에 비해 모두 우월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홀은 “최고의 대조군 연구들에서 단 한 가지만 의미있었다: 환자가 침을 맞고 있다고 믿는지의 여부”라고 썼지만, 위 메타분석에서 눈가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피험자 수가 적은 연구들을 제외하고 분석해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이 연구는 2018년에 다시 추가 분석을 시행해서 약 21000명으로 분석 대상 수를 늘렸고 역시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글 전체의 요지는 ‘침에 대한 미신으로 인한 플라시보를 제거하면 네가 느끼는 침 효과는 사라지겠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는 여러 겹의 잘못된 전제 위에 쌓아 올린 <복합 질문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홀의 주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침이 고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건 잘못된 믿음이다.

2. 침이 고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신비감으로 플라시보가 작동한다.

3. 플라시보가 크면 사이비 치료다.

4. 침 치료는 플라시보와 구분되지 않는다.

 

이 잘못된 전제들을 하나씩 해체해 보겠습니다.

1. 침이 고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유물, 문헌, 실증적 증거가 매우 많다.

2. 설령 침이 오래되지 않았다 해도 침치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침의 신비감과 치료 효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3. 플라시보침의 효과가 크다고 침이 사이비 치료인 것이 아니라, 플라시보침이 생리적 활성이 클 뿐이다.

4. 심지어 가장 생리적 활성이 큰 종류의 플라시보침에 비해서도, 침치료는 더 강한 진통효과를 나타낸다.

이 글은 원래 2008년에 스켑닥(회의주의적 의사)에 실렸습니다. 13년 된 오류투성이 글을 왜 2021년에 와서 한국 스켑틱에서 소개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는 한국어로 된 한의학 관련 연구결과가 더 많이 쏟아지고 있고, 영어는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로 된 연구결과를 일차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연구자들도 많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왜 굳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문헌에 대한 문해력이 없는 미국 저자가 13년 전에 쓴 칼럼을 한국 스켑틱에 실은 배경은 무엇입니까? 동아시아의 의학/의학사는 해당 지역에서 일차 자료를 접하기 쉽고 연구도 활발할 것입니다. 일차 자료를 접하지 못하고 영어로 번역된 좁은 범위의 자료만 보는 저자의 글이, 그것도 거짓과 오만으로 가득찬 글이 왜 굳이 소개되어야 합니까?

한국 스켑틱의 답변을 요구하며 상기의 글을 2021년 11월에 스켑틱 페이스북 페이지에 전체공개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 다음 호에는 해리엇 홀의 또다른 글이 버젓이 실렸습니다. 과학적 회의주의라는 모토가 무색합니다.

필자 김나희는 한의사이다. 국제인증수유상담가(IBCLC)로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와 베이비뉴스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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