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폭염으로 가로수가 자연 발화됐다?

  • 기자명 이채리 기자
  • 기사승인 2022.07.20 12: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폭염이 지속되면서, 세계 곳곳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영국 런던에서는 폭염에 비행기 활주로가 녹아 아스팔트를 보수했고 프랑스와 포르투갈에서는 47도까지 기온이 올라갔으며 곳곳에 산불이 발생했다. 포르투갈에선 한주간 폭염으로 659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항저우 가로수가 계속된 폭염으로 자연 발화됐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기사에 따르면 현지 소방당국은 40도를 웃도는 폭염을 발화 원인으로 짚었다. 나무 기둥 속 빈 공간 및 구멍에 열기가 모여 불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이 보도에 대해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폭염이라해도 나무에 자연적으로 불이 붙었다면 다른 나무는 왜 멀쩡한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40도 안팎의 기온에서 나무 자연발화가 가능한지 <뉴스톱>이 전문가들에게 확인했다.

출처: 연합뉴스TV 캡쳐/ 중국 항저우 가로수 나무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출처: 연합뉴스TV 캡쳐/ 중국 항저우 가로수 나무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다

 

◈ 나무 자연 발화 온도는 400℃

자연 발화란 공기 중에 놓여 있는 물질이 상온에서 저절로 발열하여 발화 및 연소되는 현상이다. 자연 발화는 크게 3단계로 이뤄진다. 첫 번째, 물질이 공기 중에서 화학반응에 의해 자연 발열한다. 두 번째, 그 열이 장기간 축적돼 발화 온도에 이른다. 세 번째, 물질 자체에서 발생하는 가연성 가스나 접촉하고 있는 가연물 또는 물질로 인해 스스로 연소가 시작된다. 주위 온도가 높을수록, 발열량이 클수록, 공기 유통이 적을수록 자연 발화가 촉진된다. 폭염으로 가로수가 자연 발화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최소 온도는 몇 도로 유지돼야 할까. <뉴스톱>은 국립소방연구원 화재안전연구실 오부열 연구사에게 문의했다. 오 연구사는 "목재의 종별에 따라 발화점(점화원 없이 불이 붙는 최저 온도)은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목재의 발화온도는 섭씨 400도 안팎"이라고 답했다. 임산물유통정보시스템도 목재의 자연발화점을 400도라고 밝히고 있다.

소나무와 떡갈나무의 주요 부위별 착화특성에 관한 연구 논문 중.
소나무와 떡갈나무의 주요 부위별 착화특성에 관한 연구 논문 중.

다만 나무 종류 및 부위별 자연발화 온도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화재소방학회 논문 <소나무와 떡갈나무의 주요 부위별 착화특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침엽수 대표 수종인 소나무는 활엽수 대표 수종인 떡갈나무보다 자연발화온도가 낮아 착화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위별로 보면 낙엽-생엽-수피-가지 순으로 불이 잘 붙는다. 논문의 비교군에서 발화온도가 가장 낮은 것은 '소나무 낙엽'으로 섭씨 236도였다. 아무리 폭염이라 해도 40도 기온에서는 자연발화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 전문가는 담배꽁초 가능성 제기

<뉴스톱>은 현직 화재조사관 6명에게 중국 가로수 발화 영상을 보여준 뒤 취재 요청을 했다. 그 중 2명에게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경기 김포 소방서 이종인 화재조사관은 "방울나무(플라터너스)로 추정되는 가로수의 윗부분이 살아 있기 때문에 인위적 착화로 보인다"며 "자연 발화가 아닌 나무 구멍 속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조사관은 "만약 나무 구멍 안에서 불이 붙었다면, 발효열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발효열이란 곤충들의 배설물이 쌓여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의미한다. 실제로 하늘소와 같은 곤충들은 나무의 진을 먹기 위해 나무 구멍 안으로 들어간 뒤 배설을 한다. 

국립소방연구원 화재안전연구실 오부열 연구사 제공
국립소방연구원 화재안전연구실 오부열 연구사 제공

자연발화는 각 물질별 조건(발화점)과 에너지 조건이 충족됐을 때 발생한다. 에너지 조건에는 산화열, 분해열, 흡착열 ,중합열, 발효열이 있다. 

곤충의 배설물로 인한 발효열로 나무가 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구멍 주변이 썩어 있어야 하며 구멍이 닫혀 있어 열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영상을 보면 가로수는 나뭇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직사광선이 닿지 않고 있다. 구멍도 위로 뚫려 있어 내부 온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조사관은 "물론 구멍 안팎이 썩었는지는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나 영상 속 가로수의 윗부분은 살아있다"며 "배설물에 의한 발화는 힘들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강북 소방서 윤지혁 화재조사관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윤 조사관은 "나무 구멍 같은 공간이 썩어 들어가면서 톳밥이 나오는데 벌레, 비 이런 요소들이 함께 축적돼 자연 발화가 이뤄진다"고 밝혔다. 단, 구멍 속에 건조된 나무 가루가 있거나 열이 축적될 만한 습도, 부족한 산소 환경 등 모든 조건이 충족되야 자연발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 전 세계에 40도에 나무 자연 발화 보고된 바 없어

산림청 산불산사태연구과 권춘근 연구사는 한국, 미국, 캐나다 할 것 없이 폭염에 의한 자연발화 사례는 전 세계에 보고된 바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나무가 자연 발화한 사례는 번개에 맞아서 불이 붙는 경우 밖에 없다. 다른 가능성은 마찰열로 나무에 불이 붙는 경우다. 건조한 시기 강한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때 서로 맞닿은 가지들이 비벼지면서 마찰열로 불씨가 생성되는 사례가 있다는 거다. 하지만 영상의 가로수는 숲과 달리 인도에 조성돼 가지끼리 마찰할 수 없다. 

권 연구사는 "가로수가 자연발화하려면 열이 바깥으로 방출되지 못하고 축적돼야 한다. 이를 통해 온도가 착화점, 발화점까지 올라가야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로수는 열을 축적할 수 없는 구조다. 가로수는 거리에 노출되어 있다. 잎에 의해 그늘도 조성됐다. 주변 기온이 올라가더라도 나무 자체 온도가 400도로 올라가는 환경이 아니라는 거다..

담배꽁초로 발화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권 연구사는 "담배꽁초를 구멍에 버리는 등 임의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을 수 있다. 그런데 스스로 고온에 의해 불이 난다? 이것은 전혀 이론상으로 맞지 않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영상만으로는 단언할 수 없지만 자연발화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분석했다. 가로수의 특성상 40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자연발화가 아닌 다른 외부적 요인에 의한 화재 가능성은 있다. 건물 유리에 반사된 햇빛이 나무에 집중됐을 수도 있다. 담배꽁초를 나무 구멍에 넣어서 연기가 났을 가능성도 있다. 아예 조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가로수 중에서 한 곳에서만 불이 났다는 것은 이 사례가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40도에 가로수가 자연발화될 수 있다면 폭염에 해수욕장에서 오일 바르고 선탠하는 사람의 몸에서 불이 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 의견, 연구 결과를 종합할 때 40도 폭염에서 가로수가 자연발화했다는 주장은 '사실 아님'으로 판정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