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법'은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을 부추긴다?

  • 기자명 박한슬
  • 기사승인 2019.02.08 08: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년의 마지막 날, 무척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강북삼성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외래 진료를 보던 임세원 교수가 본인이 진료하던 환자의 칼에 찔려서 사망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경찰에서 밝혀낸 가해자의 범행 동기는 ‘임세원 교수가 본인의 머리에 설치된 소형 폭탄을 제거 해달란 요청을 묵살해서’였습니다. 평생을 우울증 환자들을 위한 연구와 저술활동에 힘쓰던 이가 그런 황당한 이유로 인해 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사건이 이슈화되자 의사들 사이에서는 SNS에서 ‘임세원 교수님을 추모합니다’는 프로필 사진을 게시하는 추모가 이어졌고, 각종 의료계 단체들은 성명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도의사회는 병원 출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놓았고, 故 임세원 교수가 활동했던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진료실 내 비상문 설치라던가 병원에 청원경찰을 배치하는 등의 안전한 진료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부응하여 국회에서도 각종 법률안들을 쏟아냈는데, 민주당 윤일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주축이 되어 낸 법들이 새로운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을 다시 시작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비자발 입원' 필요하지만 악용되면서 논란

이번에 논란이 된 ‘강제입원’ 제도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강제입원, 좀 더 정확하게는 ‘보호자 동의 입원’ 제도는 정신질환자를 보호자의 의사에 따라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하는 제도입니다. 환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호자의 의지에 따라 입원이 결정되다 보니 보통은 ‘강제입원’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저런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여기실 수도 있지만, 정신질환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면 그리 쉽게 단정 내리긴 힘듭니다.

일반적인 질환을 생각하면 비자발 입원 제도는 별 필요가 없습니다. 보통은 환자 본인이 건강에 이상을 느껴서 치료를 받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본인이 치료를 원치 않는다면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거나 특별히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니 방치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정신질환의 경우입니다.

예컨대 故 임세원 교수를 살해한 환자와 같이 ‘머리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망상(Delusion)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의 증상을 병이라고 인식하질 못합니다. 그런 생각에서만 그치면 다행인데, 본인 머리에 폭탄을 설치했다며 타인을 공격하거나 스스로 머릿속의 폭탄을 꺼내려고 자해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는 일반적인 질환보다도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환자 스스로 입원을 하지 못하니, 결국 제3자가 입원을 시켜 치료를 받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이런 경우들이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연로한 부모를 ‘치매 환자’라며 강제로 입원을 시키는 것이죠. 격리병동에 갇힌 부모는 재산에 대한 처분 권한을 잃고, 자녀들은 보호자 자격으로 부모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갈취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가짜 치매환자를 눈감아주는 대신 모종의 대가들을 얻었죠. 분명히 불법이지만, 치매 환자가 본인이 멀쩡하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와 멀쩡한 사람이 본인이 치매 환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를 구분하기는 무척 난망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그냥 ‘아는 사람만 아는’ 음습한 괴담으로만 남았었는데 2016년에 헌법재판소가 결단을 내립니다.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다룬 영화 <날 보러와요>의 한 장면.

 

정신보건법 헌법불합치 결정 뒤 '강제입원' 어려워져

헌법재판소는 2016년 비자발 입원을 가능하게 하던 (구) 정신보건법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2014헌가9)을 내렸습니다. 비자발입원 제도가 추구하는 목적은 물론이고, 수단의 적절성도 어느 정도 인정이 되지만 절차적인 보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비자발 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으므로 경증 질환인데도 강제로 입원을 당할 가능성이 있고, 보호의무자와 정신질환자 사이의 이해충돌을 적절히 예방하지 못하고 있으며, 입원 결정을 정신과전문의 1인에게 전적으로 부여함으로써 권한 남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도의 문제들을 아주 정확히 짚은 것이죠.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국회에서는 법률 개정에 나섰습니다. 기존에는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전문의 1인의 판단에 따라 비자발 입원이 강제로 가능했지만,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기준이 엄격해지게 된 것입니다. 논의를 거쳐 보호자 동의 입원은 진단 목적으로 딱 2주 이내로만 가능하게 하고, 그 기간 동안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최소 1인은 국공립의료기관 근무자)에게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은 경우에만 3개월 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입원 기간을 연장하려면 같은 절차를 거쳐 3개월 단위로 연장이 가능하도록 했죠. 나름대로 절차를 보완한 합리적인 대안이 도출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의료계는 이런 변화를 그리 반기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병원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특히나 그 중에서 1명은 국공립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여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장 법률이 시행되면 기존에 상대적으로 완화된 조건으로 보호자 동의 입원 상태에 있던 환자들도 모두 재심사를 받아야 할 것인데, 이 인원을 고작 5개에 불과한 국공립의료기관의 정신과의사들이 모두 심사 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복지부는 ‘민간 의료기관도 심사기관으로 지정하여 업무를 위탁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렇다면 애초에 국공립의료기관 의사들에게 2차 심사를 하도록 하는 법률 조항이 애초에 의미가 없다는 반론이 나왔죠.

실제로 2017년 7월 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법률이 시행된 지 약 한 달 만에 입원 정신질환자 270여 명이 감소했습니다. 일부의 예측처럼 대량 퇴원사태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리 적지 않은 환자들이 제도변화로 인해 병원을 나서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故 임세원 교수를 살해했던 가해자 박 씨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약 20일간 입원 치료를 받던 그는 퇴원 후 아무런 진료를 받지 않고 있다가 계속 증상이 악화되었고, 결국 2년이 지난 후 그의 주치의를 찾아가 칼로 찌르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MBC 화면 캡처

"정신질환자는 국가 책임" 의료계 목소리 커져 

정신질환으로 인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박 씨도,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그런 일을 저지를 가능성은 낮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범죄 발생률은 정신질환을 앓고있지 않은 사람들의 범죄 발생률보다 낮습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정신질환자 10만 명 당 범죄자는 33.7명으로, 전체 한국인 10만 명 당 범죄자 수인 68.2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숫자입니다. 그럼에도 잔혹한 사건들 몇몇이 이슈화가 되다보니,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전에 임 교수가 강조했던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거둬 달라’는 말이 무색하게 말이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책임이 절실합니다. 일선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비자발 입원에 대한 법률 개정 당시부터 보호의무자인 가족에게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사법입원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어왔습니다. 재발위험이 높은 환자들에게 꾸준히 치료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여타 선진국과 동일하게 사법부가 의무적인 치료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행 법률에서는 보호의무자에게 정신질환자를 책임질 의무를 모두 떠넘기고 있으니 치료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그 비용이 감당되지 않는다면 치료를 받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질환자에 의한 잠재적인 위험을 예방하려면, 치료비용을 보호의무자가 아니라 국가가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용 문제로 사회적인 손실을 정신질환자 가족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 핵심은 보호의무자 제도의 폐지입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책임을 보호의무자에게 떠넘기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일정 범위의 가족 등 친지가 정신의료기관이나 광역단체장에게 '보호입원‘을 신청하면 자해 혹은 타해 위험이 큰 환자인지를 상호 독립적인 정신과 전문의가 판단하여(국공립 의사일 필요 없음) 법원에 입원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입원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외래치료명령을 내려 국가나 지자체가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할 수 있도록 명시함으로써, 비용 문제로 인해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강제입원’만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는 조치이며,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양됨이 마땅하다는 것이죠. 인권이 역행하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보호의무제도 폐지와 더불어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두고 강제입원만 부각하는 것은 사실관계의 왜곡에 가깝습니다. 故 임세원 교수의 유족이 조의금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기부하며 당부했던 진의가 오해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