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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본 의원은 남대문을 보지 않았다[탁재형의 여행 에세이] 나가오 타카시의 혐한 트윗과 천지학

대구가 고향인 김수박 작가의 그래픽 노블, ‘메이드 인 경상도’에는 90년대에 광주로 중고차를 인수하러 가는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떠나기 전, 아버지의 친구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광주 가가, 대구말 쓰마 식당 가서 밥도 못 얻어 묵는다 카드라.”

“어허이! 우리가 뭘 잘몬했는데, 밥도 안 주노?”

“암튼, 쓸데없이 말 마이 하지 말래이. 내 진짜로 카는 기데이.”

당시는 지역감정을 집권에 적극 활용했던 군사정권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였고, 대구와 광주를 잇는 88올림픽 고속도로가 개통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변변한 터널 하나 없이 산허리를 구불구불 오르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2차선 고속도로가 영호남을 잇는 유일한 가교이던 시절. 두 지역의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미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 친구의 걱정이 사실이었던 것도 아니다. 아마도 그들에게 광주를 자주 오갔던 경험이 있었다면, 그토록 말이 되지 않는 걱정까지는 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월 10일, 일본의 자민당 소속 나가오 다카시 국회의원은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지금의 한국처럼 상식을 벗어난 나라에 가면 일본인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중략) 우선은 일본인이 한국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삼가는 일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그는 한국을 와보지 않았거나, 왔다고 하더라도 의원들끼리 회의하고 밥먹고 골프치고 하는 것 이외에는 해본 경험이 없는 인간일 것이다. ‘남대문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이 싸우면 안 본 사람이 이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로부터 어떤 장소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전파하는 목소리 큰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사는 동네를 한 치도 벗어나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천지학자’들처럼.

15-16세기, 유럽인들이 한창 대양으로 나서던 시절, ‘천지학’(Cosmography)이라는 학문은 그들의 앞날을 비춰줄 등불처럼 여겨졌다. 점점 증대하는 지리적 지식을 집대성해 우주와 지구의 완벽한 모습을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학문에는 커다란 오류가 있었는데, 바로 그것은 이 학문의 연구자들 대부분이 유럽을 한 치도 벗어나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몸으로 깨우친 실증적 지식들보다는, 항해자들의 주장과 풍문, 그리고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문헌자료를 모아 새로운 주장을 만들어내고 치열하게 논쟁했다. 숫제 남대문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끼리 남대문의 모습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형국이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의 주장을 믿고 바다로 향했던 사람들의 몫이었다.

ⓒwikimedia

1520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남미 대륙의 남쪽을 돌아 태평양에 진입하려 했다. 그의 목적지는 일확천금을 가능케 해주는 보물섬, 인도네시아의 향신료 제도였다. 그는 당시의 유명한 천지학자였던 루이 팔레이루의 계산에 근거해, 남위 40도까지만 내려가면 대륙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가 그 지점에 도달했을 때, 남미는 아직도 1/3이 더 남아있었다. 성난 부하들의 반란을 겨우 진압하고, 죽을 고생을 겪으며 태평양에 들어선 이후에도 잘못된 정보로 인한 시련은 계속되었다. 천지학자들의 계산으로는 며칠만에 태평양을 건널 수 있어야 했지만(당시에 그들은 지구의 둘레를 훨씬 더 작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마젤란 함대가 태평양을 횡단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99일이었다. 비록 마젤란은 항해 도중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부하들 중 극소수가 겨우겨우 출발지로 돌아오는 데 성공을 했다. 지구의 둘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게 된 것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옛 문헌과 씨름하던 학자들이 아닌 이들 덕분이었다. 결국 천지학자들은 르네상스 최고의 키보드 워리어이자 가짜뉴스 생산자였던 셈이다.

나가오 의원의 트위터에는, 한국을 드나든 경험이 있는 수많은 일본 시민들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은 정말 함부로 말을 걸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서툰 한국말로 아줌마에게 길을 물었는데 전부 안내해 주고 사진까지 찍어줬다.”

“또 길을 잃으면 이것을 보여주라며 한 할아버지가 한글 메모를 써줬다.”

“경찰이 주민밖에 모르는 맛집까지 데려다줬다. 정말 무엇을 당할지 모른다.”

“한국은 정말 친절함이 상식을 벗어난 나라다.”

역시, 가보지 않은 사람의 무식한 소리를 제압하는 것은 가본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들이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사람은 자신의 발길이 닿은 넓이만큼 세상을 보는 안목과 식견을 키워 나가기 마련이다. 내가 기회있을 때마다, 정치인들이 여행을 해야 세계평화가 가능해진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다만 세금으로 가는 것은 무효).

김수박 작가의 “메이드 인 경상도”에서, 작가의 아버지는 광주의 식당에 들어가 호기롭게 묻는다.

“광주 와가 대구말 쓰마 밥도 못 얻어묵는다 카는데 진짠교?”

“그런 게 어딨소?...고것은 고것이고 밥은 묵어야제, 안 그렇소? 뭐, 밥값을 안 내면 또 모를까. 허허허!”

*2019년 2월 7일 오후 2시 12분 1차수정: 필자 요청으로 제목을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 때 '개고생'한 이유는>에서 <그 일본 의원은 남대문을 보지 않았다>로 바꿨습니다.

탁재형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이자 작가. 14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해외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다. 2013년부터 여행부문 1위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다. 전 세계의 술 이야기를 담은 <스피릿 로드>와 여행 에세이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등을 펴냈다.

탁재형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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