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위협적 좀비, 공포를 되살리다

  • 기자명 박현우
  • 기사승인 2019.02.0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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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하자드 2>를 리메이크한 게임 <바이오하자드 RE: 2>가 나왔다. 1월 25일에 출시했는데 첫 주 만에 300만 장을 팔았다. <바이오하자드 2>는 496만 장을 팔았는데 이 숫자를 뛰어넘는 건 시간 문제가 아닐까 싶다. 단순히 판매만 많이한 게 아니다. 이 게임은 첫 주부터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게임 판매 플랫폼인 스팀에는 이 글을 쓰는 기준으로 리뷰가 총 8,410건이 남겨져있는데 이 중 6,497개의 평가는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게임에 대한 소개를 더 하자면, 이 게임은 RE엔진으로 만들어졌다. 이 엔진은 캡콤에서 <바이오하자드 7>을 제작하기 위해 자체개발한 엔진인데, <바이오하자드 2: RE>와 3월 8일에 출시 예정인 <데빌 메이크라이 5>에도 쓰였다. 전작(?)인 <바이오하자드 7>을 플레이했던 유저라면 <바이오하자드 RE: 2>의 그래픽이나 게임 디자인이 친숙할 거다.

<바이오하자드 RE: 2>의 한 장면

<바이오하자드 RE: 2>는 어떻게 공포를 극대화할까? 우선, 좀비의 수를 최소화했다. 이 게임은 좀비 게임치고는 좀비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좀비가 동시에 10마리(?)가 등장하는 경우는 절대 없고, 많이 등장해도 4마리에서 5마리 정도까지 동시에 등장한다. 좀비가 많을 수록 공포가 극대화될 거라 생각했을 법도 한데, 캡콤은 좀비의 수를 최소화했다.

최근에 출시했거나 출시할 예정인 게임들을 보면 이런 부분은 다소 의아하다. 2019년 출시 예정인 좀비 게임 <데이즈 곤>의 게임플레이나 <월드 워 Z>의 트레일러를 보면 말 그대로 좀비 떼가 등장한다.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수의 좀비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게이머를 향해 달려든다. 하지만 정작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영화 <월드 워 Z>도 마찬가지였다. 좀비 떼는 무섭다기보다는 청소하고 싶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줬다. 게이머와 관객은 바퀴벌레 떼를 볼 때와 비슷한 감정 상태가 된다. 공포감보다는 혐오감을 느낀달까.

무섭지 않은 게 나쁜 건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월드 워 Z>나 <데이즈 곤>이 좀비 떼를 등장시킨 건 애초에 이 게임들이 ‘공포 게임'을 지향해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게임들은 <레프트 포 데드2>처럼 시원하게 좀비 떼를 청소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듯 보인다. 장르의 차이가 좀비의 수 차이를 불러왔달까.

리들리 스콧의 <Alien>(<에일리언>)과 제임스 카메론의 <Aliens>(<에일리언스>)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리들리 스콧은 에일리언을 통해 H.P.러브크래프트 느낌의 코스믹 호러 영화를 만들었고, 제임스 카메론은 해병대를 투입시키며 액션 영화를 만들었다. 물론 스콧 감독의 영화에도 액션이 있고, 카메론 영화에 공포를 자아내는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영화의 메인 요소는 아니다.

리들리 스콧은 단 하나의 에일리언-제노모프를 영화에 등장시키고, 그 존재를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신적 존재로 만들었다. 인간의 신체 능력을 아득히 초월한 저 제노모프의 앞에서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위시한 주인공들은 그저 무력할 뿐이다. 대항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어떻게든 피하고 도망치는 게 최선이다.

영화 <에일리언>의 한 장면

 

그런데 카메론의 작품으로 오면 1편에서 등장했던 제노모프의 위엄은 간 데 없다. 1편에서는 한 마리가 우주선 하나를 휘저으며 학살극을 펼쳤고 인간들은 그저 무력하게 도망이나 칠 수 밖에 없었는데, 2편으로 오면 제노모프는 해병들의 총알 몇 방에 간단히 나가떨어진다. 1편에서 신적 존재로서 아우라를 풍기던 존재가 2편으로 오면 특이하게 생긴 짐승 정도로 전락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제노모프가 총알에 찢겨나가는 쾌감은 얻었을지 모르지만, 제노모프를 보고 긴장을 하지는 않게 됐다. 인간의 무기가 저들에게 너무도 효과적이고 우리의 시고니 위버 누님이 어떻게든 저 덩치들을 해결해줄 거란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3, 4편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공포 게임인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이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스>가 아닌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을 참고한 게 우연이 아니란 걸 알 수 있게 된다.

다시 <바이오하자드 RE: 2>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이 게임에는 물론 액션 요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좀비 등을 상대하는 공포 게임이다. 게이머들이 좀비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좀비가 <에일리언>의 제노모프처럼 실제로 위협적이어야한다. 좀비들은 쉽게 죽어서도 안되고, 게이머가 조종하는 주인공 캐릭터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어야한다. 그리고 쉽게 죽지 않는 좀비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좀비가 너무 많이 등장해서는 안된다. 위협적인 좀비가 많아지면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니까.

이 게임에서 좀비는 거의 죽지 않는다. <워킹데드> 같은 미국 드라마에서는 좀비 머리에 총알 한 방 박아넣으면 바로 골로 가지만, 이 게임에서 좀비를 완전히 죽이려면 가까운 거리에서 산탄총으로 머리를 완전히 날려야한다. 처음에 주어지는 권총으로 좀비 한 마리를 죽이기 위해서는 최소 여섯 발 이상의 탄을 써야하는데, 그렇게 나가떨어진 좀비는 몇 초 후 다시 일어나 게이머를 위협한다.

또, 좀비는 위협적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주인공 캐릭터에게는 체력이 세 칸 있는데 일반 좀비에게 세 번만 물려도 캐릭터는 사망한다. 일반 잡몹인데 잘 죽지도 않고, 한 번 물리면 치명적이기에 무시하면서 냅다 뛸 수도 없다. 이런 경향은 게임 극후반에 가면 조금 나아지기는 하지만, 그 전까지는 좀비 한 마리 한 마리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바이오하자드 RE: 2>의 한 장면

위협적인 좀비 못지 않게 공포를 극대화하는 건 부족한 자원이다. 능숙한 플레이어에겐 상황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이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좀비를 어떻게 상대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총알이 언제 얼마나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좀비는 쉽게 죽지 않기에 최소한의 총알만 쓰면서 좀비들을 헤쳐나가야한다. 완전히 죽이면서 총알을 소비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 적은 총알을 쓰면서 다리를 쏴 기동력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

만약 <배틀필드> 시리즈의 주인공들처럼 주인공이 기관총을 들고 있고 넉넉한 총알을 보유하고 있다면 좀비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반의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무기는 기껏해야 권총과 샷건 정도인데 그나마 탄도 충분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선 저기서 느긋하게 걸어오는 좀비도 공포 그 자체다.

자원이 부족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심지어 칼에도 내구성이 적용되어있다. 칼이 있으면 좀비에게 물렸을 때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한 번 벗어날 수 있지만, 이렇게 한 번 칼을 쓰고 나면 칼의 내구도는 절반 가량 소모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칼을 소모해도 방금 게이머를 물려고 했던 좀비를 완전히 제압하지 않으면 그 칼을 회수할 수도 없다. 선택의 순간이다. 부족한 총알도 저 좀비를 제압하고 칼을 회수할 것인가, 칼을 희생하고 총알을 절약할 것인가? 가장 좋은 건 애초에 좀비에게 붙잡히지 않는 것이지만, 좀비는 맵 곳곳에 숨어있기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바이오하자드 RE: 2>는 게임 리메이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교범처럼 취급 받으며 고평가 받고 있다. 최신 게임인 <바이오하자드 7>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가져와 <바이오하자드 2>와 아주 절묘하게 섞어놔서 과거 팬들은 물론 <바이오하자드>를 접해보지 못한 게이머들까지 프랜차이즈로 흡수하고 있는 모양새니까. 이 게임은 공포 게임으로서나, 원작을 고증하는 문제에 있어서나 빈틈이 없다. 전투복으로 쫙 달라붙는 원피스에 하이힐 신는 누님이나 갑자기 키스하는 두 남녀의 로맨스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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