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임대 안 하고 비워두면 벌금 추진...샌프란시스코의 '징벌적 재산세'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9.02.11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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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샌프란시스코에선 오래 된 서점 한 곳이 문을 닫았다. 1978년 영업을 시작한 아드바크북스(Aardvark Books)의 폐업이었다. 주인이 키우는 '귀여운 고양이가 있는 서점'으로 40년 동안 사랑 받았던 서점이 문을 닫은 건 지난해 말 세 들어 있던 건물이 팔린 데 따른 것이었다. 고양이 얘기를 잠시 하자면, 주인은 40년 동안 한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면 다른 고양이를 입양했고, 고양이는 그렇게 서점의 마스코트가 됐다. 하여튼 이 서점이 다른 건물에 세를 얻어 영업을 이어가지 못한 이유는 간명했다. 임차료는 급등했고 세상은 '아마존의 시대'로 변했는데 마땅한 활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웹사이트에는 고양이 사진과 더불어 '매일 밤 10시 30분까지 영업'이란 내용이 여전히 올려져 있다.

지난해 12월 초 샌프란시스코의 비디오대여점 '비디오 웨이브(Video Wave)'에 갔을 때의 일이다. 1983년 문을 연 이 가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넷플릭스의 시대'에도 아직 생존하고 있는 두 곳의 비디오 대여점 중 한 곳이자 그 중 오래된 곳. 시내 중심 상권에서 벗어난 동네에 있고 규모는 크지도 작지도 않다. 자주 보는 스타벅스 매장 사이즈. 그곳에서 만난 주인 콜린 허튼 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임차료를 월 4000달러를 내는데 5000달러로 올려 달라고 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지만 언제 그만두게 될지.”

샌프란시스코 비디오대여점 ‘비디오 웨이브’ 내부. 한달에 400만원 이상 월세를 내야 한다. 2018. 12. 2. 황장석
1983년 문을 연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비디오대여점 ‘비디오 웨이브’ 주인 콜린 허튼 씨. 2018. 12. 2. 황장석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선 임차인 없이 비어 있는 상업용 건물주에게 벌금을 매기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도 상업용 건물이 임차인 없이 1개월 넘게 비어 있으면 건물주가 곧바로 시에 보고해야 하고, 그로부터 9개월 내에 임차인을 찾거나 건물을 팔지 않으면 벌금을 물려왔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보고하는 경우가 드물고 누군가 신고로 발각돼도 통지서를 받은 시점부터 9개월 동안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또 그 기간 안에 임대를 하거나 팔지 않아도 내야 하는 벌금은 711달러.

이 같은 방안의 중심엔 시의원 두 명이 있다. 샌드라 리 퓨어(Sandra Lee Fewer) 시의원은 상업용 건물이 1개월 넘게 비어 있으면 즉시 보고하도록 하되 보고와 동시에 일단 711달러를 내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보고하지 않을 경우 적발 단속도 강화하려 한다. 애런 페스킨(Aaron Peskin) 시의원은 그보다 훨씬 강력한 규제안을 마련하고 있다. 6개월 넘게 임대나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건물이나 사무실이 비어 있으면 6개월 넘는 순간부터 임대나 매매가 이뤄지는 순간까지 하루에 수백달러씩 재산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징벌적 재산세'다. 두 시의원의 방안은 주민에게서 돈을 더 걷는 안건이라 시의회에서 통과돼도 올해 11월 주민투표까지 거쳐야 한다.

이런 방안이 등장한 배경엔 임차료 급등이 있다. 적지 않은 건물주들이 원하는 금액을 내겠다는 임차인이 나올 때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넘게 사무실, 건물을 비워 놓고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들이 일정 기간 비워 둬도 계약만 잘 하면 한 방에 훨씬 많은 수입을 보장 받을 수 있으니 손해가 아니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대체 샌프란시스코 임차료는 얼마나 될까. 현지신문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은 지난해 10월 부동산중개회사 자료를 인용해 샌프란시스코 시내 중심 상권의 임차료가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3분기 임차료가 평방피트당 81달러 25센트로, 닷컴버블이 꺼지기 직전이었던 2000년 4분기 80달러 16센트를 넘어섰다는 것이었다. 약 35평방피트가 1평이라고 치면, 평당 2800달러 수준. 1달러를 1100원으로만 환산해도 평당 3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샌프란시스코 임대표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KRON4 캡처

같은 보도에 따르면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고층건물을 뜻하는 A급(Class A) 건물의 임차료 호가는 2010년 이후 124% 가량 증가했다. 페이스북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빌딩 두 개를 임차하고, 구글은 아예 빌딩을 사들여 세까지 놓고, 아마존도 직원 700명 규모의 건물을 빌리는 등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그럼 샌프란시스코에 놀고 있는 상가 건물은 얼마나 될까. 지역언론 샌프란시스코이그재미너는 미국우편서비스(USPS) 데이터를 통해 90일 넘게 우편물을 받지 않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상가 건물을 분석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3632개 상가 건물이 비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 주변 구역(District 6)은 상업용 건물의 공실률이 8.52%(1157건)로 가장 높았다. 그 동네에 있는 임대용 점포의 8.52%가 90일 넘게 비어 있다는 의미. 차이나타운과 노스비치 등을 포함하는 구역(District 3)이 7.87%(1399건)로 두 번째로 비율이 높았다.

상황이 이러니 건물주가 원하는 만큼 임대료를 받을 때까지 건물을 비워두는 경우가 많다는 게 징벌적 재산세를 도입하려는 측의 판단이다. 하지만 건물주 측에선 '내 건물 내 맘대로 한다는 데 웬 참견이냐'며 반발할 수 있는 문제다. 건물주마다 임대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모든 건물주가 임대료를 더 받거나 더 높은 금액에 매각하려는 이유에서 건물이나 점포를 비워둔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추진 과정에서 세부적으로 상당한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임대 안 나가면, 건물 비워두면 벌금 내라는 방안.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재산권 행사에 일종의 제약을 가하겠다는 징벌적 재산세 방안의 앞날은 어떻게 전개될까. 시의회를 거쳐 주민투표까지 통과하게 될지, 통과되면 지역상권, 골목상권에는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지켜볼 문제다.

오클랜드도 세입자 없으면 연 수천달러 부과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이웃 도시 오클랜드에선 같은 취지에서 올해부터 징벌적 재산세를 부과한다. 주거용 상업용 건물의 경우 50일 넘게 세입자가 없으면 대부분의 건물에 연간 6000달러의 재산세를 추가로 부과한다. 아파트나 듀플렉스(두 세대 용 주택) 등에는 연간 3000달러를 부과한다.

그런데 내년 세금고지서를 발부하기 전까지 적용 과정에서 정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징벌적 재산세를 모든 건물주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오클랜드의 경우 예외조항들을 두고 있다. 건물주가 저소득층이거나 고령이면서 저소득층인 경우, 장애 보조금을 받고 있는 경우, 추가 재산세를 부과했을 때 생계가 어려워지거나 하는 등의 경우엔 이 같은 재산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연간 소득으로 볼 때 어느 수준까지 저소득층으로 볼지, 생계곤란자 범위를 어느 선으로 정할지, 간단치 않은 문제들을 주민 의견을 반영해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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