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조선일보 "바베큐 사전각인 효과"는 있는 말인가

  • 기사입력 2022.09.30 09:42
  • 최종수정 2022.09.30 11:28
  • 기자명 김정은 기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어제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 본사를 항의차 방문했습니다. MBC가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일어난 '비속어 논란'을 악의적으로 보도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MBC는 사과하라", "박성제(MBC 사장)는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여당의 공세는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석해 야당과 MBC의 '정언유착'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힘 의원들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동일한 단어가 반복적으로 보입니다. 

① 박정하 수석대변인 논평 <공정보도를 포기한 자막 왜곡 보도, 그 시작은 MBC였다 (9/27)>

"MBC는 영상을 접한 다른 언론과 국민들로 하여금,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자막과 함께 '바이든'으로 들리도록 '바베큐효과'를 의도했다."

② 이용호 의원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출연 (9/27)>

"저도 처음에 그것을 보고 바이든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러니까 애매한 상황에서 그게 바베큐 효과라고 그럽니다만 저도 그렇게 자막이 되니까 그렇게 받아들여진 것이거든요."

③ 김행 비대위원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출연 (9/27)>

"이재명 당대표께서도 혹시 모르니 진상규명을 하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잘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바베큐 효과'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자막이 있으면 자막이 있는 것처럼 들려요."

국민의힘 의원들은 '바베큐 효과'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국립국어원의 표기법에 따르면 barbecue의 한글 표기는 '바비큐'지만 여기서는 원문을 인용해 '바베큐'라고 적습니다). 주장을 종합해보면 MBC의 '바이든'이라는 자막 때문에, 윤 대통령의 발언이 '바이든'이라고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리학적 용어에 '바베큐'라는 음식 명칭이 쓰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뉴스톱>은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활용해 '바베큐 효과'의 기원을 추적했습니다. 먼저 '바베큐 효과'를 검색하니, 24건의 보도가 검색됐습니다. 심리학적 용어와 관련 없는 보도를 제외하면, 아래와 같이 8건의 보도가 남습니다.  (*검색기간 설정: 2021-01-01 ~ 2022-09-29)

[조선일보] 바이든? 날리면?… 尹 발언, 소리전문가는 어떻게 들었을까 (9/23)

▲ [YTN] 들을 때마다 달라지는 매직...바이든? 날리면? 발리면? 말리면? (9/23)

▲ [문화일보] 몬더그린 현상 (9/26)

▲ [매일신문] 바베큐 효과와 가짜 뉴스 (9/26)

▲ [헤럴드경제] 與 "MBC가 훼손한 건 대한민국 국익과 국격" (9/27)

▲ [YTN] 장경태 "사과하고 넘기면 끝났을 해프닝" vs 김행 "해프닝? 왜곡 보도 밝혀야 (9/27)

▲ [디지털타임스] 국힘 "MBC 尹 발언 왜곡보도후 美백악관에 이간질까지…`바이든` 자막의도 밝혀야" (9/27)

▲ [강원도민일보] 박정하 "MBC, 백악관에 메일 보내 한미관계 이간질" (9/27)

 

조선일보 "바베큐성 사전각인 효과" 첫 언급

이 가운데 조선일보의 기사가 가장 처음 보도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선일보는 23일 기사에서 '각인효과'라는 심리적 현상 때문에, 녹음된 소리가 왜곡돼 들릴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효과(각인효과)는 '바베큐성 사전각인 효과'로도 불리는데, '바베큐'라는 단어를 반복해 들려주는 유명 실험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바베큐'를 여러 번 들려줄 때 자막에 '밥익혀요' '밤에키워' '아늑해요' 등 발음이 비슷하게 들리는 다른 단어를 보여주면, 사람들은 '바베큐'가 아닌 자막 속 단어로 음성을 인식하게 됨을 보여주는 실험"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유명한' 바베큐 실험, 도대체 어디에서 시행된 걸까요? 조선일보의 상세한 설명 덕분에, 해당 실험의 출처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KBS 예능 <스펀지> 324회에서 등장한 실험이었습니다(2010년 3월 5일 방영). <스펀지>는 지난 2010년 창사기념일을 맞이해, 시청자의 제보를 바탕으로 실험 코너를 꾸렸습니다. 한 시청자는 "보는대로 (다르게) 들리는 말이 있다"고 제보하면서, '바베큐'라는 단어를 예시로 들었습니다.

출처: KBS 예능 <스펀지>, 2010.03.05 방영

스펀지는 실험을 통해 '바베큐'라는 단어가 '아늑해요', '바닥에 기어', '안익혀'와 같은 단어로 들린다고 방영했습니다. 

출처: KBS 예능 <스펀지>, 2010.03.05 방영<br>
출처: KBS 예능 <스펀지>, 2010.03.05 방영

KBS <스펀지> 실험 코너에서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교수(현 전자정보공학부 명예교수)는 "시각을 통해서 어떤 정보를 학습하면 머릿속에 각인이 된다. 그러한 정보에 해당하는 소리가 연이어 전달되면, 비슷한 소리일지라도 사전에 각인된 것이 있기 때문에 혼란스럽게 된다"며 "이것은 '사전 학습에 의한 각인 효과'로도 불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2018년 MBC <피디수첩>이 전문가들을 인용해 배명진 교수의 성문(음성) 분석이 전문적이지 않다고 보도를 했고 이후 양측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최근 기사에서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자문위원을 음성전문가 취재원으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배명진 교수가 자문위원에 포함됐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으나 오해를 살 수 있는 취재원 인용입니다.   

숭실대학교 전자정보공학부 배명진 명예교수. 출처: KBS 예능 <스펀지>, 2010.03.05 방영

각인효과는 몬더그린 효과, 앵커링 효과 등으로 불려

각인효과가 실제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KBS <스펀지>에서 '바베큐'를 예시로 사용했을 뿐인데, 조선일보가 자의적으로 '바베큐(성) 사전각인 효과'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베큐 효과'가 실제 있는 용어인 것처럼 정치권과 다른 언론들이 사용하게 된 겁니다.

조선일보가 사용한 '바베큐성 사전각인 효과'는 학계에서 여러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심리학에서는 '몬더그린 효과(Mondegreen Effect)'라고 부릅니다. 두 용어 모두 '최초의 정보가 이후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일컫는데요, 몬더그린 효과의 경우 '바베큐 효과'처럼 인터넷에서 퍼진 예시를 바탕으로 지어졌습니다. 

'몬더그린'이라는 단어는 1954년 '실비아 라이트(Sylvia Wright)'의 수필 <레이디 몬더그린의 죽음>에 처음 등장합니다. 수필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노래의 가사 중에 "and laid him on the green"이라는 부분을 "and Lady Mondegreen"으로 들었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쉽게 말해 기존에 접했던 정보에 의해, 발화자가 언급한 단어나 문장의 발음이 화자에게 다른 발음처럼 들리는 현상입니다. 

출처: 실비아 라이트 '레이디 몬더그린의 죽음'
출처: 실비아 라이트 '레이디 몬더그린의 죽음'

국제문화기술진흥원이 발행한 '언론미디어의 신어(新語) 사용 문제와 개선 방안(2022)'은 "신어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글로벌화, 문화의 다양성, 미디어의 발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언어의 혼종이 빚어지고 있다"며 "언어 사용 문제와 관련해 미디어 종사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과 교육 기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언급한 '바베큐성 사전각인 효과'는 학계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가 아닙니다. 구글 스콜라에서 확인한 결과, 그 어떤 논문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이전에 학습한 정보가 추후에 접하는 정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려면, '각인효과', '몬더그린 효과', '앵커링 효과' 등 전문 용어를 사용했어야 합니다. 조선일보의 자의적인 용어 사용으로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바베큐 효과'가 마치 학계에서 쓰이는 전문 용어인 것처럼 언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조선일보 보도 이후 나무위키에는 '바베큐 효과'라는 항목이 수정 생성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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