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과학의 '진보'가 이룩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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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과학의 '진보'가 이룩되는 과정
  • 이승윤
  • 승인 2022.10.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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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의 책의 재발견]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코페르니쿠스의 동상. 유럽 중세 사회를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무너지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때 세계는 결코 그 이전과 동일할 수 없었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토머스 S. 쿤은 그 변화를 혁명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코페르니쿠스의 동상. 유럽 중세 사회를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무너지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때 세계는 결코 그 이전과 동일할 수 없었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토머스 S. 쿤은 그 변화를 혁명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1. 2022년 10월 20일(현지시간) 위싱턴 포스트는 세계적인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러의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후 대규모의 인력 감축을 단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는 7천 500명 수준의 인력 중 무려 5천 5백명의 인원을 감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원 감축은 2022년 10월 26일 인수 계약이 마무리 된 후 진행될 예정이다.

2022년 10월 15일에는 한국 판교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 화재는 판교에 위치한 SK C&C 판교 데이터 센터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화재로 인하여 건물에 설치되어 있던 인터넷 서버 장비들이 손상을 입으면서 커다란 문제가 일어났다. 판교 데이터 센터 시설을 임차하여 사용하고 있던 카카오 그룹의 상당수 인터넷 서비스가 일시에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주요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다음’의 인터넷 서비스와 카카오 톡의 SNS 서비스, 뿐만 아니라 카카오 페이 서비스 또한 대부분 먹통이 되었다. 카카오 인터넷 시스템을 통해 인터넷 검색, 소통, 쇼핑, 결제 등 생활 상의 각종 편의를 누려왔던 무수히 많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엄청난 불편에 직면했다. 급기야 10월 19일 카카오 남궁훈 대표는 국가적 규모의 ‘먹통’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2022년 10월 20일 서울 목동 회관에서는 ‘망사용료 정책과 입법: 이슈 담론화와 여론 형성’을 주제로 하는 공동 세미나가 개최됐다. 관련 학회들이 공동 주관한 세미나의 가장 첨예한 이슈는 세미나 제목 그대로 망 사용료에 관한 것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터넷 망을 설치, 관리하고 있는 국내 이통사들과 그 망을 사용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ex: 구글, 넷플릭스 등)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망 사용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논점을 두고 개최된 세미나였다.

위에 언급한 기사들은 언뜻 보면 뚜렷한 상호 연관성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유심히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언급된 사건들이 서로 씨줄과 날줄의 엮임 같은 밀접한 연계망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눈 밝은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그 연관성의 핵심을 지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즉 연관성의 핵심에 4차 산업 혁명이라는 테마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본 서평에서 4차 산업 혁명을 다루기 위해 위의 사건들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본 서평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오히려 패러다임이다. 사실 4차 산업 혁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종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갑자기 패러다임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지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을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보다 명료하고 정돈된 사고 틀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말이다. 이제 토머스 S 쿤의 역작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패러다임에 대하여 알아보고 그 개념이 세상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있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한 살펴보자.

 

2. <과학혁명의 구조>의 저자 토머스 S. 쿤은 1922년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순수과학을 전공했던 그가 과학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은 1940년대 후반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한 과학 관련 강의를 준비하던 도중 17세기의 역학(力學)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1957년 과학역서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발표하였고 그 5년 후 1962년 대표작 <과학혁명의 구조>를 발표함으로서 세계적인 과학사상가의 지위에 오르게 됐다.

 

3. 토머스 S. 쿤의 주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언급하는 핵심 개념은 단연코 패러다임(paradigm)이다.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paradeigma)로부터 파생되었는데, 그 원뜻은 사례 혹은 범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저자는 과학사 서술에 패러다임이라는 언어를 차용하는 과정에서 그 개념을 원뜻과 조금 다르게 변용했다. 사실 저자가 패러다임 개념 그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혁명의 구조>를 저술한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 그 구조를 명료하게 설명하기 위한 보조개념으로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끌어들인 것이었다. 하지만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본의 아니게(?) 보조개념의 영역을 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혁신적인 사고 틀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렇다면 저자는 과연 어떠한 의미에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던 것일까.

 

4. 저자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일컫고 있는 패러다임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류사에 있어 과학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는지에 대하여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아야 한다.

저자가 보기에 과학의 발전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1단계: 초창기 발전 시기 2단계: 정상과학 시기 3단계: 위기 시기 4단계: 과학혁명의  시기가 그것이다.

“초창기 발전 단계에서는 자연에 관한 상이한 견해들 간의 부단한 경쟁으로 특정지어지는데, 그 각각의 견해들은 모두 부분적으로 과학적 발전과 방법의 명령으로부터 유도된 것이며, 모두 그런 명령과 대게 부합하는 것들이다.”

저자의 문장이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풀어보면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하나의 과학 이론이 시대의 대표 이론으로 정립되기 전에는 저마다의 이론들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난립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장 강력한 하나의 이론이 실험과 검증을 통해 그 정당성과 권위를 인정받게 된다. 이때 비로소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시대가 열린다. 저자의 정의에 의하면 정상과학이란,

“과거에 있었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뚯하는데, 여기서의 성취는 더 나아간 실천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특정 과학자 공동체가 한동안 인정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정상과학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패러다임의 개념이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리스의 자연학(Physica),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Almagest),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와 광학(Optics) 등 (중략) 이 저술들은 두 가지 본질적인 특성을 공유했기 때문에 (중략), 그것들의 성취는 경쟁하는 과학 활동의 양식으로부터 끈질긴 옹호자 집단을 떼어내어 유인할 만큼 놀랄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재편된 연구자 집단에게 온갖 중류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남겨놓을 만큼 충분히 융통성이 있었다. 이 두 가지 특성을 띠는 성취를 이제부터 패러다임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용어는 정상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토머스 S 쿤은 다음과 같이 패러다임을 정의한다.

“나는 패러다임이 어느 일정한 시기에 전문가 집단에게 모범이 되는 문제와 풀이를 제공하는, 보편적으로 인식된 과학적 성취라고 간주한다.”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의 관계를 보다 쉽게 파악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를테면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바로 정상과학이다. 지동설은 저자의 설명에 걸맞게 과거에 있었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두고 있고 우리가 사는 과학자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지동설적 패러다임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것이 하나 있다. 패러다임은 결코 고정적이거나 무변(無變)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확고부동하고 영원히 그 권위를 잃지 않을 것 같던 하나의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요소는 바로 변칙현상(anomaly)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 혹은 가치관의 변화 등을 통해 새로운 관점의 과학 실험과 계측 활동이 발생하게 되고 그 속에서 기존의 과학적 성취와는 차별적인 변칙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변칙현상의 감지가 패러다임의 변화에 있어 필수적이다. 확고할 줄 알았던 정상과학의 위상이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상과학을 위협하는 변칙현상을 더욱 자주 발견하게 되면, 요컨대 위기가 점차 커지게 되었을 때 새로운 이론의 창안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이 잉태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패러다임 간의 세대 교체 과정은 대개의 경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신념을 잃기 시작하고 이어서 다른 대안을 궁리하기 시작할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위기로 몰고 간 그 패러다임을 바로 폐기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과학철학의 언어로는 그들이 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변칙현상들을 반증 사례로 간주하기 않는다.”

쉽게 이야기해서 기존 주류 과학자 공동체는 일단 기존 정상과학의 인식 틀에 매달려 변칙현상을 완강히 부정한다. 즉 기존의 패러다임에 흡수하여 해석하거나 혹은 그 변칙현상을 애써 무시해버린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각종 실험을 통해 증가하게 되고 그 변칙성이 유의미한 단계에 이르게 되면 새롭게 만들어진 패러다임이 점차 과학자 공동체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 과학적 연구에 관련된 관점이 재조정되게 되고 개념 체계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추어 변화하게 된다. 이리하여 패러다임 간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과학혁명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불러 일으키는 과학혁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내린다.

“과학혁명이란 보다 옛 패러다임이 양립되지 않는 새것에 의해서 전반적이거나 부분적으로 대치되는, 누적적이지 않은 발전의 에피소드이다.”

“그러한 변화는 오히려 새로운 기반에 근거해서 그 분야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서, 그 분야 패러다임의 많은 방법과 응용은 물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일반화조차도 변화시키는 재건 사업이다.”

이처럼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한 과학혁명은 그 명칭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본질적으로 혁명적 특성 즉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의 특성을 지닌다. 여기서의 공약은 통약(通約), 상응을 뜻한다.

“경쟁적인 패러다임 사이의 이행은 공약불가능한 것들 사이의 이행이기 때문에, 논리나 가치중립적 경향에 의해서 추동되어서 한 번에 한 걸음씩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중략) 그것은 일시에 일어나거나 또는 전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즉 과학의 발전 변화는 지식의 누적을 통한 사선형이 아닌, 일시에 모든 것이 뒤바뀌며 점프하는 계단형으로의 이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의하여 그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고 뉴튼 역학의 절대 위치와 절대 운동성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훌륭한 실례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과학 이론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세계관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인간 세상이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의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인류의 세계관에 있어 얼마나 큰 변화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과학혁명의 구조>가 원래는 과학 발전의 구조적 특성을 서술하는 책이었으나 그 영향력이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 정치, 경제, 예술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패러다임의 변화가 인간사에 끼치게 되는 폭넓고도 결정적인 파급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과학사 기술을 위한 패러다임의 개념을 일상의 영역에까지 확장시켜 정의 내린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패러다임이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라고 일컬어진다. 이제 마지막으로 어째서 패러다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째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가장 첨예한 경제적 갈등이 반도체를 둘러쌓고 일어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째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가장 첨예한 경제적 갈등이 반도체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5. 본 서평의 시작 부분에서 세 가지 사건을 언급한 바 있다. 세 가지 사건은 시간과 공간적으로 동떨어져 있으며 그 사건의 양상 역시 제각각이다. 하지만 우리가 4차 산업 혁명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면 세 가지 사건은 곧바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 그 연관성이란 곧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이는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특성이 각 산업 간의 상호 융복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융복합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기술적 기반이 인터넷 네트워크라는 점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서평의 서두에서 언급한 세 가지 사건은, 향후 산업의 주류 흐름을 ‘네트워크’를 빼놓고 결코 이해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렇듯 패러다임적 사고가 가능해지면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흐름을 이해하는데 있어 상당히 유용한 분석 틀을 세울 수가 있게 된다. 일단 분석 틀이 갖추어지면 사고(思考) 기준을 잡을 수 있고 그 기준을 바탕으로 인지, 판단에 있어 혼돈의 여지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오늘날처럼 수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시대에서 올바른 사고 기준이 진짜 정보와 노이즈를 구분하는데 있어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 여기서 유념할 것이 있다. 세상을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수용 자세만큼은 유연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이야기하듯이 하나의 패러다임은 또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하여 뒤바뀔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열린 마음의 자세로 패러다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패러다임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성격의 패러다임을 끌어들여 서로 접목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레이 달리오가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바리 보았던 강대국의 흥망성쇠 관점에 입각한 패러다임 사유와 4차 산업 혁명의 관점에 입각한 패러다임 사유를 함께 고려하여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어째서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가장 첨예한 경제적 갈등이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지 손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패러다임은 절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될 수 있고 접목될 수 있고 확장될 수 있으며 심지어 전복될 수도 있다. 언제나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은 생물과 같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숙독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의 인식의 틀이 확장되고 또한 심화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지음

/ 김명자, 홍성욱 옮김

/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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