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원전 지역은 왜 임시저장시설 반대할까?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2.10.28 12: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자력발전은 우리 전기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데요. 쓰고 남은 연료봉은 고열과 방사선을 내뿜는 치명적인 물질이라 인간계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요. 그래서 원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로 비유하곤 하는데요. 정부는 땅 속 깊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파묻는 처리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관련 입법에서부터 부지선정, 적합성조사, 주민 동의 등 여러 단계를 37년 동안 완성하는 일정이죠. 당장 올해 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2059년에나 고준위 방폐장 처리가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태껏 사용해 온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이 포화된다는 겁니다. 2031년 고리, 영광 원전부터 부지 내에 사용후 핵연료를 쌓아놓을 곳이 없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한 보관 및 저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원전을 더 이상 가동할 수 없게 됩니다.

출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홈페이지
출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홈페이지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고준위 방폐장이 완공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할 중간저장시설을 만들려고 합니다. 정부가 내놓은 로드맵에 따르면 중간저장시설은 법안 통과 이후 13년차부터 20년차까지 7년에 걸쳐 건설됩니다. 마찬가지로 올해 법 통과가 된다고 가정해도 2042년부터 가동할 수 있는 것이죠. 최초로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되는 2031년부터 2042년까지가 공백기로 남게 되는 셈입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원전 부지 내에 저장 시설을 만들어 공백기에 대비할 계획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오는 28일 이사회 안건으로 '고리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안)'을 상정할 계획입니다. 당초 한수원은 황주호 신임 사장 취임 후 처음 열린 9월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을 처리하려고 했으나 사외이사 전원이 문제를 제기해 상정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 만에 다시 열리는 이사회지만 의장을 포함해 비상임이사들이 여전히 반대 의견인 것으로 알려져 표결에 부칠지 여부도 불투명합니다.

울산과 부산 지역 탈핵 단체들은 “한수원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임시시설’은 사실상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장 즉 방폐장이 될 것”이라면서 “고리핵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 건설 계획을 전면 철회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출처: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페이스북
출처: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페이스북

지역 단체들은 부지내 저장시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울산은 고리, 신고리, 월성, 신월성 총 16기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에 둘러싸인 방폐장이 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정부는 ‘임시시설’ 또는 ‘부지 내 한시적 저장’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40년 동안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장은 고사하고 중간처분장 부지 선정 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단체들은 한수원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임시시설’은 사실상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장 즉 방폐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리를 시작으로 부지 내 한시적 저장 시설 건설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한수원의 캐니스터 건설을 막지 못한다면 울산은 고리, 신고리, 월성, 신월성 총 16기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에 둘러싸인 말 그대로 방폐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죠.

고준위 방폐장 건설 추진 과정은 말 그대로 ‘흑역사’에 가깝습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론화, 협의, 토론 등에 취약한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번째 방폐장 확보 시도는 1986년, 3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한국전력기술(주)에 전국을 대상으로 부지환경 현황조사 용역을 의뢰합니다. 경북 울진, 영덕, 영일 등 3개 지역이 후보 지역으로 선정됐는데요. 중저준위 방폐장 영구처분시설과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입지하는 것으로 추진됐습니다. 그러다가 89년 임시국회를 통해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 계획이 알려지면서 지역내 반발이 거세지자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1990년에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 시설을 설치하려다가 ‘안면도 사태’가 빚어졌죠. 정부가 별다른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부지를 발표했다가 안면도 주민 1만5000명이 극렬하게 저항해 무산된 사건입니다. 2003년에는 ‘부안 민란’이라고 할 정도로 큰 반발이 있었는데요. 전북 부안군 위도에 방폐장을 지으려다가 부안군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빚어졌습니다. 결국 무산됐죠.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결국 9차례에 걸친 시도 끝에 20년 만인 2005년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장을 짓는 방안이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장은 아직 부지도 확정을 짓지 못한 상태죠. 윤석열정부는 전 정부와는 달리 원자력의 지속적인 이용을 탄소중립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전을 계속 가동하려면 ‘화장실’은 반드시 지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방폐장은 아무데나 지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용후 핵연료는 말 그대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데 매우 강한 에너지를 가진 방사선이 나옵니다.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죠. 발전에 쓰이고 남은 사용후 핵연료는 상당 기간 동안 고열을 내뿜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원전 격납고 안에 설치된 수조 안에서 열을 식힙니다. 열이 식더라도 수백, 수천, 수만년 동안 치명적인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한 곳에 최종 처분하게 됩니다. 지구상 유일하게 가동 중인 핀란드의 온칼로 처분장은 지하 400m 이상 깊은 곳에 설치됐습니다. 활성 단층이 지나가는 곳은 지진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방폐장을 설치할 수 없습니다. 기반암이 무르거나 지하수 흐름이 있는 곳도 설치하기 곤란합니다. 우리나라는 동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원전이 건설됐기 때문에 핵폐기물은 처분장까지 선박으로 이송할 가능성이 큽니다. 육로 운송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역대 방폐장 부지선정에선 해안·도서 지역이 우선 순위로 검토됐습니다.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은 우리나라에 별로 없습니다. 가장 유력한 곳은 강원도 남부 해안, 경북 북부 해안 지역입니다. 이런 지형적 특성을 충족하더라도 최종 관문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주민 수용성입니다. 안면도, 부안 지역의 사례에서 보듯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한 방폐장 추진은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태양광, 풍력 발전 또는 송전탑 건설에도 극렬한 반대가 일어나는데, 그보다 몇백배는 더 위험한 시설이 들어온다는데 순순히 뒷마당을 내어줄 지역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최종처분장 건설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원전을 멈춰 세우거나, 임시 저장 시설에 계속 쌓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 주민과 환경 단체들이 원전 부지내 임시 저장 시설 설치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겁니다. 임시 저장 시설에 사용 후 핵연료 보관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고준위 방폐장 확보에 사활을 걸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는 것이죠.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지금 한수원과 산업부는 꼼수인 캐니스터 건설로 시간을 벌 것이 아니라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공개로 10만년을 보관해야 하는 핵쓰레기에 대해 전기를 사용하는 국민 모두가 함께 책임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주민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 원자력 발전의 현주소입니다. 원전을 머리에 얹고 사는 인근 주민들은 불안합니다. 원전에 이어 고준위 방폐장까지 떠 안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원전 인근 주민들은 “그렇게 안전하다면 국회의사당 옆에 방폐장을 지으라”고 주장합니다. 바닷가에 원전을 짓고 송전탑을 만들어 사람 많은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냅니다. 수도권 사람들은 전기를 쓰고 위험과 불안은 원전 인근 지역 주민이 떠안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