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복잡계와 진화가 밝혀내는 부의 근원적 기원

  • 기자명 이승윤
  • 기사승인 2022.11.1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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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 대한 관점은 저마다 다르지만 부에 대하여 무관심한 인간은 거의 없다. [부의 기원]의 저자 에릭 바인하커는 복잡계와 진화론의 관점에서 부를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부에 대한 관점은 저마다 다르지만 부에 대하여 무관심한 인간은 거의 없다. [부의 기원]의 저자 에릭 바인하커는 복잡계와 진화론의 관점에서 부를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1. 2022년 9월 13일 22세의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테헤란에서 도덕경찰에게 붙잡혔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구금 중에 9월 16일 갑자기 죽음을 맞았다. 사인은 심장마비였으나 곧 사인을 부정하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구치소로 연행하던 도중 경찰들이 그녀를 마구 구타하여 의식불명 상태였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나왔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오랫동안 자유를 제한당해왔던 이란 국민들은 젊은 여성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억눌렸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우선 마흐사 아미니의 고향 쿠르디스탄주에서 반정부 시위가 촉발되었다. 그리고 시위는 빠르게 이란 전국으로 퍼졌다. 시위가 시작된 지 두 달 가까이 되어가고 있는 11월 초 현재, 이란 정부의 유혈 진압으로 3백명이 넘는 이들이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 또 하나 있다. 이란 전국으로 확산된 반정부 시위가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지난 11월 1일(현지시간) 미국의 언론 <월스트리트저널>은 논란이 될만한 국제 기사 하나를 보도했다. 이란이 비밀리에 사우디 일부 지역 및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에르빌 지역을 공격하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는 기사였다. 이란은 즉각 근거 없는 보도라고 일축했으나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아 보인다. 좀처럼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꺼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란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론의 시선을 외부로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하필이면 의문의 죽음을 맞은 마흐사 아미니가 쿠르드족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란의 8천만 인구 중에서 쿠르드 족은 약 1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쿠르드 족은 터키와 이란,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 약 3천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촉발된 시위를 통해 정치 세력화하고 더 나아가 독립 국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중동에는 메가톤급 격랑이 휘몰아치게 될 것이 뻔하다. 이란 정부는 대내적, 대외적으로 강경 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3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중간선거 유세연설 중에 ‘이란 해방’을 언급했고 이란 정부는 즉시 발끈했다. 곧바로 다음 날 11월 4일 이란 대통령 에브라임 라이시는 바이든 대통령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했다. 양국의 갈등이 현재 진행중인 이란의 핵무기 폐기 협상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은 뻔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 11월 1일 총선 승리 이후 다시 이스라엘의 총리직에 오른 인물은 대표적 강경파인 네타야후이다. 안보 문제 상 이스라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란의 핵보유를 용납할 수가 없다. 중동의 정세가 혼란스러워 짐에 따라 잠시 하향세를 보였던 국제 유가는 다시 상승기조로 방향을 틀었다. 국제 유가의 상승은 세계 경제의 초미의 관심사인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아마존 밀림의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거대한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복잡계라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아마존 밀림의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거대한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이 나비효과이다. 이러한 나비효과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복잡계라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2. 2022년 9월, 22세 젊은 이란 여성의 죽음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불과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이란을 넘어서 중동 정세 더 나아가 세계 경제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직접적이든 혹은 간접적이든 간에 한 여성의 느닷없는 죽음과 세계 경제의 흐름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세계가 거대한 하나의 복잡계(複雜界)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복잡계란 거미줄처럼 얽힌 네트워크의 세계이며 소위 나비효과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세계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저술가인 에릭 바인하커가 지은 명저 <부의 기원>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바로 그 복잡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3. <부의 기원>은 책의 제목처럼 인류 영원의 관심사 부(富)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부의 기원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기에, 책의 서론부터 여러 다양한 기존의 경제이론들을 거론하며 짜깁기하기 바쁠 것 같지만 실은 <부의 기원>은 정반대의 입장에 선다. 즉 전통적인 경제이론들에 대해 온전히 거부하는 입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가 바라보는 전통 경제학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전통 경제학은 대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경제학이고, 또 언론에서 논의하거나 산업계, 정부 등에서 흔히 말하는 그런 경제학이다. 말하자면 학문적 경제학의 주류적인 입장을 의미한다.”

<부의 기원>의 저자가 바라보는 전통적 경제학의 핵심은 균형이다.

“시장 경졔에서 참여자들은 어떤 가용한 자원이 주어졌을 때 가능한 한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상태에 이를 때까지 자유롭게 거래를 한다. 이런 거래를 통해 경제는 미끄러지둣 자연스럽게 정지 지점인 균형에 이르게 된다. 이 균형점은 공급이 수요와 일치하고,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되며, 사회적 후생이 파레토 최적인 상태이다.”

중고등학교 사회 과목에서 시장 가격을 다루는 수요 공급 곡선을 마치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과연 현실은 어떤가. 넘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증가된 공급은 곧 공급 과잉으로 치닫게 되고 공급이 과잉이 된 후 줄어들게 되는 수요 때문에 뒤를 이어 나타나는 현상은 늘 수요 부족이다. 따라서 경제 주체들은 늘 ‘샤워실의 바보’가 된다. 뜨거워진 물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수도꼭지를 돌리면 늘 너무 차갑고 다시 반대로 돌리면 너무 뜨거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실 경제가 수요 공급의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이유는 이 세계가 복잡계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경제 행위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가정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에 너무나 머리 좋은 사람들’로 모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균형이라는 관점에서 고정시켜 바라보기 위해 인간과 실제 세계에 대한 비실제적인 가설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였기에 그들의 이론이 현실 경제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경제학과 차별화되는, 복잡계 경제학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진화이다.

 

4. 저자는 우선 복잡계 경제학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의 법칙을 예로 든다. 저자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한 시스템에서 무질서나 임의성의 한 척도인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한다는 것으로 표현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르면 자연계는 필연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따라서,

“우주에 있는 모든 질서 구조 및 패턴은 시간이 가면 결국 고장나거나 쇠퇴하고 또 흩어져 사라진다. 자동차는 녹이 슬고, 빌딩은 부스러지고 산은 침식되며, 사과는 썩고, 커피에 들어간 크림은 골고루 섞이며 흩어져 없어진다.”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일종의 ‘열린 계’이다. '열린 계'란,

“에너지와 물질이 들어오고 나오는 시스템이다. 열린 계는 에너지와 물질을 활용, 일시적으로 엔트로피와 싸우면서 한동안 질서, 구조, 패턴을 창조한다. 우리의 행성은 하나의 열린 계다.”

“열린 계에서는 에너지의 힘에 의한 새로운 질서 창조와 앤트로피에 의한 질서 파괴 사이의 끝없는 싸움이 있다.”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 같은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당신의 방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을 경우,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시간이 지나며 점점 무질서화 즉 난장판으로 변할 것이다. 보다 못한 당신이 어느 날 청소기와 대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게 되었을 때 당신의 방은 다시 질서를 되찾게 된다. 엔트로피에 의한 질서 파괴는 집의 난장판을 의미하고 당신이 새롭게 에너지를 사용하여 집을 정돈하는 것은 새로운 질서 창조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점이 있다.

“자연의 계산법은 매우 엄격해서 열린 계에서 질서가 만들어질 때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있다. 우주의 어느 한 부분에서 질서가 창출되면 다른 어딘가에서 질서가 파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순 효과는 엔트로피의 증가, 다시 말해 질서의 감소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신이 에너지를 쓴 만큼 당신의 방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만 그 에너지는 (당신의 방이 닫힌 계가 아닌 열린 계이기에) 우주로 방출되기 때문에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는 증가된다. 이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열린 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우리의 경제는 당연히 밀접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경제는 단순히 은유적으로만 열린 계와 비슷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인 열린 계들로 이루어진 집합에 속하는 한 시스템이다. (중략) 부를 창출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은 어떤 형태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물질과 정보의 조작에 관계한다. (중략) 경제적 활동은 현실의 물리적인 세계에 확고히 뿌리를 두고 있고, 따라서 경제 이론은 열역학 법칙들을 피할 수 없다.”

 

5. 저자는 열린 계로서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진화의 개념을 접목시킨다. 우선 저자는 다양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소개하며 무목적적, 무합리적, 무계획적인 진화 알고리즘이 어떻게 자발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 혁신을 이루어 내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흥미로운 실험은 가상의 설탕 섬에 관한 것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팀은 1995년 컴퓨터를 이용하여 오직 설탕으로 이루어져 있는 설탕 산으로 이루어진 섬을 시뮬레이션했다. 또한 연구팀은 설탕을 찾고 움직이며 설탕을 먹을 수만 있는 일종의 NPC(행위자)들을 섬 주변에 무작위로 배치해 놓았다. 시간을 두고 NPC들을 관찰하였을 때 그 결과는 놀라웠다. 평균적인 부는 상승하였으나 부의 분포도는 한쪽으로 크게 치우쳤다. 빈부의 격차가 발생한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NPC들의 활동 능력 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설탕의 집적지, 거래 경로 심지어 계층적인 자본 시장 즉 은행마저 출현했다는 점이다. 이쯤되면 우리들 인간 세상과 다를 것이 없다.

또 하나의 눈여겨 볼 시험은 칼 심스의 실험이다. 1994년 칼 심스는 슈퍼컴퓨터에 인공적인 컴퓨터 생물들이 사는 가상의 진화 세계를 만들었다. 간단한 컴퓨터 DNA를 컴퓨터 생물들에게 부여한 후 가상의 강을 빠르게 헤엄쳐 건너가게 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는데, 놀랍게도 컴퓨터 생물들은 서로 컴퓨터 DNA를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 진화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일부 컴퓨터 생물들은 등 뒤에 펄럭이는 꼬리를 가지는 등 핵심적인 몸체를 지니는 단계에 이르렀다. 단지 진화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었을 뿐인데도 컴퓨터 생물들은 자발적으로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를 이루었다. 이러한 일련의 실험들을 살핀 후 에릭 바인하커가 피력한 진화의 기본 알고리즘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진화의 과정은 제약 조건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적합한 디자인을 찾아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는 알고리즘으로 생각할 수 있다.

• 모든 진화의 과정은 개방형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그 결과 알고리즘은 국지적인 앤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임의성을 질서로 바꾸어 나간다.

•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알고리즘은 적합한 디자인을 찾아 매우 광활한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기 위한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알고리즘은 적합도 함수가 무엇을 윈하는지 학습하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는 디자인들을 추구한다. 이러한 학습 과정을 통해 지식이 축적된다.

• 진화 과정 동안 알고리즘은 상호 관계를 통해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여러 새로운 변종 디자인을 만들어 낸다. 그 새롭게 나타난 변종 디자인들이 상호 경쟁한 후 성공한 디자인들만이 살아남는다.

저자의 딱딱한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바꾸어 보면 이렇게 기술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화 대상들은 열린 시스템 안에서 가장 적합한 진화 형태가 무엇인지를 자발적, 임의적으로 학습한다. 진화 대상들은 시스템 안의 다른 대상들과의 경쟁적인 상호 네트워크 관계를 통해 축적된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진화된 형태(창발적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리하여 시스템 안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로 진화한 존재가 살아남게 된다.

“진화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혁신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다목적용의, 고도로 강력한 처방전이다. 이것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지식을 축적해 가는 하나의 학습 알고리즘이다. 진화는 자연 세계의 모든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설명해 주는 공식이다.”

이제 진화적 놀이의 역할과 각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정한 ‘부의 기원’에 대하여 탐색할 차례이다.

[부의 기원]의 저자 에릭 바인하커는 부는 지식이며 질서이고 부의 기원이 진화라고 주장한다. 각 행위자의 경쟁을 통한 상호 작용 속에서 질서가 구축되고 그 질서가 당대의 현실 흐름과 부합할 때 부가 창출된다는 의미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부의 기원]의 저자 에릭 바인하커는 부는 지식이며 질서이고 부의 기원이 진화라고 주장한다. 각 행위자의 경쟁을 통한 상호 작용 속에서 질서가 구축되고 그 질서가 당대의 현실 흐름과 부합할 때 부가 창출된다는 의미이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6. 저자는 ‘부의 기원’을 이루어내는 경제의 진화가 단일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3개의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공진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그 3개의 디자인 공간이란, 물리적 기술 공간, 사회적 기술 공간, 사업 계획 공간이다. 물리적 기술이란,

“물질, 에너지 및 정보를 어떠한 목적을 위해 현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환하는 방법과 디자인이다.”

“물리적 기술 그 자체는 제품(도끼, 소프트웨어, 마사지 등) 이 아니라 그러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디자인이자 지침 혹은 방법이다.”

저자는 인간이 만든 물리적 기술의 가장 놀라운 특성이 바로 그 스스로가 새로운 발명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행기의 발명이 엔진, 레이더, 무선 통신, 공항 시스템 등의 다른 영역의 기술 발전의 기폭제가 된 것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술이란,

“목표를 추구하면서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법 및 디자인이다.”

저자에 의하면 사회적 기술이란 용어는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제도’라는 용어와 아주 비슷하다. 조금 더 보태자면 사회적 기술에는 조직화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포함된다. 또한 저자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황소가 끄는 쟁기와 같은 물리적 기술의 진보는 촌락을 중심으로 하는 농경이라는 사회적 기술 혁신이 이루어진 후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마지막으로 사업 계획이란,

“그 내용을 식별하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추진할 수 있는 지침서들이다. 이 지침서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전략적으로 결합하여 사업 모듈(일종의 사업 모범 사례)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설명한다.”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사업 계획은 자유 시장의 공간에서 상호 관계를 맺고 공진화한다. 자유 시장이 상호 네트워크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하는 열린 계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진화를 위한 탐색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은 사업 계획의 선별을 위한 연역적 추론이 일어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은 사회 구성원의 광범위한 수요를 반영하는 적합도 함수와 선택 과정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시장은 선택된 사업 계획으로 자원을 몰아 주어 승자는 더욱 번성하게 하고 패자는 도태시키는 역할을 한다.”

상술한 이론적 주장을 현실 경제사에 적용시켜 보면 어떨까.

“19세기와 20세기를 통해 과학은 엄청난 물리적 기술을 창출하였고, 시장은 이러한 기술을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는 사업 계획의 진화를 촉진시켰다.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사업 계획 혁신 간의 선순환이 일어나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거대한 경제 발전 시대를 열었다.”

저자는 <부의 기원> 14장에서 마침내 진화론에 입각한 부의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그것은 바로 ‘적합한 질서’이다. 비록 우주 전체의 영역에서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무질서도는 증가할 수밖에 없지만 열린 계인 우리 인간 세계는 증가하는 무질서도에 맞서 싸울 수가 있다. 상술하였듯이 우리는 난장판인 방안을 청소하여 무질서도를 낮출 수가 있다. 저자는 앤트로피와 경제의 관계를 연구한 제오르제스쿠-로에겐의 주장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제 과정 역시 본질적으로 고앤트로피에서 저앤트로피로의 변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앤트로피의 단계란 무질서도가 낮은 단계이며 에너지의 방출이 상대적으로 낮은 효율적인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즉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그리고 이에 따른 사업 계획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것 그 자체가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며 그 질서가 당대의 현실적 흐름과 적합할 때 – 진화학적 용어로 진화에 적합한 디자인을 구축하였을 때 – 부가 창출된다.

“모든 부는 열역학적으로 불가역적이고 앤트로피를 감소시키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중략) 부는 적합한 질서이다. 상품과 서비스의 형태를 띤 경제적 질서의 패턴들은 소비자들의 필요, 욕구, 심지어 갈망 등을 두고 서로 경쟁한다. 우리는 경험과 선례를 참고하여 우리의 선호도를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경제적 질서의 패턴을 적합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부는 (질서이며) 지식이고 부의 기원은 바로 진화다.”

결국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것이 법칙인 자연계의 세계에서 그 무질서도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뒤로 돌려 적합한 질서를 창출할 때 그것이 진화의 성공 그리고 부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저자의 관점은 참으로 흥미롭다.

 

7. 이제 <부의 기원>에 대한 서평을 마무리할 단계가 왔다. 부는 질서이며 지식이고 부의 기원이 진화라는 관점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할까. 첫 번째 자세는 세계의 본질적 특성인 유동(流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진화 시스템에 기초한 복잡계이기에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고정적일 수 없다. 이를테면 수요 공급 곡선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복잡계의 세계에서는 현실 불가능하다. 너무나 많은 변수가 매 순간 서로 충돌하며 요동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세계가 안정성을 벗어나 급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고 판단에 있어 전제하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자세는 세계를 이분법적 혹은 편협된 관점이 아닌 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복잡계의 세계는 그 어떤 하나의 요소만이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다. 여러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 연계되어 영향을 발휘하는 공간이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한 젊은 이란 여성의 죽음은 다양한 요소들과 연계되어 세계 경제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점까지 그 파급력이 확장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이슈를 바라볼 때 닫힌 관점이 아닌 열린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만이 여기 복잡계의 세상에서 어떤 사건이나 이슈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자세는 결국 우리가 이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부의 기원>에서 살펴 보았듯이 진화는 결코 어떤 합목적적 계획이 없으며 구체적 계획 역시 지니고 있지 않다. 그저 진화 시스템 내의 구성원 간 경쟁적 네트워크 관계를 통하여 자발적으로 창발성을 획득해 간다. 따라서 우리는 온전히 세계의 총체적 질서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임의적인 온갖 다양한 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매 순간 변화해 가는 세계를 무슨 수로 온전히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세계에 대한 ‘불가지성’을 인정하는 것이 곧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포기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불가지성’ 곧 ‘불완전성’을 인정할 때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덕목은 바로 겸손이다. 겸손은 우리 자신의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 학습을 독려하고 또한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결국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몸을 가장 낮춘 그 지점에서 세계를 개선,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서로 함께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부의 기원>의 결말이, 앞서 서평에 올렸던 책들 <행운에 속지 마라>, <변화하는 세계 질서>, <과학혁명의 구조>의 결론의 핵심들과 상당히 맞닿아 있다는 점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앞서 소개한 책들 모두 그 어떤 고정된 관점을 지양하고, 그 대신 세계의 다양성 그리고 우리 자신의 무지성에 대해 인정하며 항상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주장을 기저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강조하는 관점들이 저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다른 세 권 모두 내용이 알찬 책들이다. 더불어 참고하신다면 보다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부의 기원>

에릭 바인하커/

안현실, 정성철 옮김/

랜덤하우스

(본 서평은 구판인 랜덤하우스 판을 사용하였다. <부의 기원> 신판은 2022년 9월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간되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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