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겨울철 나무 감싸는 '잠복소', 해충 제거 효과 있나?

227개 자치단체 잠복소 설치 현황 전수 분석
산림청 지침은 "해충 오히려 늘어, 자제 당부"

  • 기사입력 2022.12.06 12:33
  • 최종수정 2023.03.07 10:45
  • 기자명 선정수 기자

겨울이 시작됐습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지고 목도리를 두른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선 가로수에 짚을 엮거나 털실로 짠 ‘나무 목도리’를 두른 모습도 눈에 띕니다. ‘잠복소’라고 부르는 이것은 겨울 동안 해충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해충 방제 효과는 미미한 대신 거미 등 익충을 없애는 부작용에다가 이걸 제거해서 태우는 까닭에 산불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산낭비가 우려되기 때문에 잠복소는 설치하지 말라는 게 산림청의 지침입니다. 과연 지역 행정 현장은 어떨까요?

뉴스톱은 전국 227개 기초자치단체의 잠복소 설치 현황 및 소요 예산 등을 파악했습니다.

제작:뉴스톱
제작:뉴스톱

①전국 기초자치단체 전수분석

뉴스톱은 전국 227개 기초자치단체(세종특별자치시 포함)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관내 가로수 잠복소 설치 현황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11%인 25곳의 지자체가 잠복소를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중구, 동작구, 부산 서구, 동래구, 연제구, 대전 대덕구, 경기도 안산시, 군포시, 하남시, 파주시, 김포시, 강원도 춘천시, 강릉시, 영월군, 평창군, 충남 보령시, 논산시, 전북 익산시, 정읍시, 완주군, 전남 장흥군, 경북 영천시, 상주시, 영덕군, 경남 창원시가 잠복소 설치 내역이 있다고 회신했습니다. 이들이 잠복서 설치와 관리에 쓴 예산을 모두 더하면 2억1392만원입니다.

11곳은 짚으로 잠복소를 만들었고, 14곳은 털실 뜨개질이나 직물로 만든 잠복소를 옷 입히듯 나무에 씌웠습니다. 예전엔 짚으로 만든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갈수록 지푸라기 재질은 줄어들고 뜨개질한 옷을 입히는 방식이 늘고 있습니다. 그래피티 니팅이라는 작업이 서구에서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일부 도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 중구, 동작구, 경기도 군포시, 강원도 평창군, 전북 익산시는 자원봉사자가 설치하거나 주민이 제안하는 주민참여예산으로 채택돼 설치된 사례입니다.

출처: 산림청
출처: 산림청

②산림청, “해충 오히려 늘어, 자제 당부”

해충을 잡고, 도시를 아름답게 한다는데 왜 비판이냐고 하실 분들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 잠복소가 나무의 입장에선 별달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해를 입힐 수도 있다고 하는군요.

산림청은 잠복소 설치를 자제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 산림청이 낸 보도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제목부터 <겨울철 나무에 감싸는 잠복소, 해충 제거에 실효성 없어...>입니다. 산림청은 “겨울철 가로수의 줄기를 감싸는 잠복소가 해충 제거에 실효성이 없으며, 오히려 잠복소를 소각하여 폐기하는 과정에서 산불이 발생할 수 있어 잠복소 설치를 자제할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잠복소에는 솔나방, 미국흰불나방, 버즘나무방패벌레 등의 수목 해충도 발견되지만, 수목 해충의 천적인 거미류와 같은 절지동물이 더 많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잠복소는 과거 솔나방과 미국흰불나방이 극성을 부리면서 시작된 방제법이나 잠복소에서 많은 천적곤충이 확인되어 지금은 권장하지 않는 방법”이라며, “봄철 잠복소 폐기 시 부주의로 인한 산불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잠복소 설치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출처: 산림청
출처: 산림청

③남부수종 동해방지

잠복소를 설치한 기초자치단체 상당수는 ‘동해 방지’를 이유로 내걸었습니다. 주로 배롱나무, 동백나무 등 ‘남부 수종’의 ‘동해 피해’를 방지한다는 목적입니다. 남쪽 지방이 원산지인 나무들은 상대적으로 더 추운 중부 지방에 심어놓으면 겨울 동안 줄기가 얼어붙어 고사하는 ‘동해’ 피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줄기를 지푸라기나 옷으로 감싸 얼어붙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이죠.

산림과학원 관계자는 뉴스톱과 통화에서 “동해 예방이 필요한 일부 수종들이 있는데, 땅 위로 노출된 나무줄기부터 가지까지 감싸주고 덮개 등으로 씌우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거 해충 방제를 위해 설치했던 형태로 나무 일부분만 감싸는 방식으로는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나무를 지속적으로 감싸놓는 것은 나무의 생육에 좋지 않기 때문에 봄이 돼 날씨가 풀리면 곧바로 풀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부산 서구, 동래구, 연제구, 전남 장흥군, 경남 창원시 등 남부 지방에서도 ‘남부 수종’의 동해 방지를 위해 잠복소를 설치했다는 점입니다. 원산지에 살고 있는 나무들은 별다른 인위적인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자연의 방식이지요.

중부지방의 지자체들은 왜 남부지역 수종을 가로수로 심었을까요? 애초에 지역 기후 특성에 맞는 나무 종류를 선택했다면 추가적으로 혈세를 투입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죠.

가로수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 등 사유지에 심은 나무에도 잠복소를 설치한 것이 많이 눈에 띕니다. 이 역시 해충구제를 목적으로 설치했다면 당장 떼어버리는 게 타당합니다. 

출처: 살충포집기를 이용한 수목병해충 방제에 관한 분석시험(2011)
출처: 살충포집기를 이용한 수목병해충 방제에 관한 분석시험(2011)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2001년부터 산림청은 잠복소의 해충구제 효과가 미미하고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하면서 설치 자제를 권고하는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22년 현재까지 전국 지자체 10곳 중 하나 이상이 잠복소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해충방제 목적으로 잠복소를 설치한다는 지자체도 여럿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남부지역에서 '남부수종의 동해방지'를 위해 나무에 옷을 입히는 사례가 발견됐고, 도시 미관 개선을 위해 나무에 옷을 입힌다는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가로수 정책 담당자들이 나무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선정수   su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3년 국민일보 입사후 여러 부서에서 일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 이달의 좋은 기사상', 서울 언론인클럽 '서울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야생동물을 사랑해 생물분류기사 국가자격증도 획득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뉴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