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치면 친일? 고스톱은 한국 것이다

  • 기자명 김형민
  • 기사승인 2019.02.20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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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에 어느 매체에서 “화투 이래도 치시렵니까?” 하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보았다. 내용인즉슨 화투는 “‘트럼프를 자기식대로 바꾼 일본인의 창조적(?) 얼’이 담긴 것으로 일본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된 게임 도구”이며 “왜색이 짙고 일왕을 상징하는 11월의 패(속칭 '똥광')를 얻으면 좋아하는 화투판은 그 자체로 일제의 잔재일 수밖에” 없기에 화투를 마냥 마음 편히 손에 쥘 수 없다고 비분강개하는 글이었다. 

화투가 일제 잔재라며 '놀이문화의 자주성을 살려야 한다'는 오마이뉴스 기사.

글을 읽으면서 여러 번 웃었지만 화투에서 벗어난 ‘자주적 공동체 놀이문화’를 만들자는 대목에서는 한 번 크게 웃고 말았다. 화투나 트럼프 비슷하지만 단군 왕검이 등장하고 이순신 장군이 칼을 휘두르는 ‘자주적’ 게임 도구를 만들자는 것인가 싶어서 말이다. 저 자주적인(?) 나라 북한도 일본 화투는 몰아냈다지만 서양 카드 놀이를 근간으로 한 ‘주패’를 즐기고 있는데 그것도 ‘비자주적’이라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고스톱의 연원은 가히 짐작하기 어렵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양한 ‘썰’이 있을 뿐이다. 정초 벌어진 집안 고스톱판에서 우리 장인어른은 “옛날 일본군들이 잠 안재우는 훈련하기 위해 이걸 개발했다.”고 단언하셨으나 믿기 어렵다. 한겨레신문 1997년 8월 18일자(25면 '일제는 이땅에 화투를 남겼다')에서는 “50년대 일본에서 개발돼 70년대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쓰고 있지만 60년대 중반 해외 중소기업 탐방단으로 유럽 각국을 방문했던 일행이 ‘선반이 있는’ 영국 기차에서 고스톱판을 벌여 영국의 노년부인들로부터 “화툿장이 굉장히 예쁘다는 칭찬을 받았다.”고 (1966년 9월 3일자 매일경제) 기록하고 있으니 ‘고스톱’ 게임의 연원은 예상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하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게임 도구를 가지고 자주적이니 비자주적이니 하는 자체가 매우 우습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트럼프를 치면서 JQK 카드의 인물들이 다윗을 상징하는지 카이사르를 표현한 것인지 부르봉 왕가나 합스부르크 왕가를 빗댄 것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듯이 나는 화투 12월 비광 속 인물이 일본의 아무개인지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고 서양 사람이 나에게 그게 누구 그림이냐 물었을 때, “몰라. 일본 사람 누구라던데.”라고 대답해도 하등 부끄럽지 않다. 화투가 일본 것이든 말든 우리 문화와 삶 속에 녹아 내렸다면 좋든 싫든 그건 일본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할 줄 아는 유일한 도박(?) 인 고스톱에 이르러서야 닐러 무삼하리오.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세월 속에 고스톱은 한국적 문화 세례를 듬뿍 받았고 한국인들의 손때가 묻었으며 한국인들의 기호에 맞는 게임으로 뿌리를 내렸다. 일본의 코이코이게임에서 유래한 듯도 하지만 이미 ‘귤화위지(橘化爲枳)’, 즉 남쪽의 귤이 회수(淮水) 북쪽으로 넘어와 탱자가 돼 버린 이상의 변형을 거쳤고 한국적으로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풀어 보기로 한다. 다만 밝혀 둘 것은 이어지는 내용은 ‘팩트체크’가 아니며, 단지 고스톱의 룰이라는 ‘팩트’에 기반한 필자의 해석이라는 점이다. 이를 양지하고 읽어 주시고 허무맹랑하다 타박하실 양이면 이쯤에서 걷어치우시는 것이 좋겠다. 

KBS는 2017년 1월 26일에 '설 연휴, 이런 '화투' 놀이 어때요?' 뉴스를 통해 대형 화투를 가지고 노인들이 노는 장면을 내보냈다. 오마이뉴스 주장대로라면 공영방송이 일제 잔재 놀이문화를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아무튼 패를 돌려 보자. 고스톱은 일단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평등의 기회를 제공한다. 선을 잡은 사람은 모두에게 공평한 패를 돌리고 맨 마지막으로 자신의 패를 자기 앞에 놓는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선을 잡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광을 파는 사람이다. 고스톱은 3인 롤 플레이 게임이지만 3명이서만 패를 돌리는 경우는 별로 없고 재미도 없다. 4~5명이 플레이를 해야 패가 안좋을 때 ‘죽어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거니와 ‘광’이라는 불로소득의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선의 바로 왼쪽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판이 깔리고 기계가 돌아가기 직전,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은 ‘선’(先)이다. 누가 패를 돌리고 먼저 화툿장을 들이쳐 우선적으로 패를 ‘먹을’ 권리를 갖느냐이다. 그런데 이 선을 정하는 규칙이 밤낮에 따라 다르다. ‘밤일낮장’을 원칙으로 패를 넘겨 낮에는 숫자가 많은 달을 넘긴 사람이, 밤에는 그 반대의 사람이 선을 잡는 것이다. 이는 밤과 낮이 달랐던 역사, 즉 밤을 지배하는 권력과 낮을 통제하는 힘이 요즘 줏가 올리는 드라마 <킹덤>의 좀비의 시간처럼 변모하던 역사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었던 공포의 시간, 태극기와 인공기를 동시에 갖추고 행색과 말투에 따라 대한민국 만세든 인민공화국 만세들 선택해야 했던 밤과 낮의 역사 말이다. 또 어느 유수의 신문사 논설위원이 자신들 술자리에서 그 회사 사주에게 “회장님이야말로 진정한 밤의 대통령”이라고 아부를 떨었던 사례를 비추어 보아도 한국 사람들에게 ‘밤과 낮’은 그 규칙이 달라져야 할 만큼의 차이가 있었으리라. 

선이 정해지면 불로소득자(?)가 생긴다. 그저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서 배밭을 가꿀 뿐이었는데 별안간 고속도로가 뚫리고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처럼. 모진 놈 옆에 있으면 벼락을 맞을지 몰라도 힘 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돈벼락을 맞을 가능성이 있었던 대한민국의 역사처럼. 물론 그 불로소득을 위해서는 ‘광이나 쌍피’라는 베이스가 필요하다. 대대로 강남 땅에서 살아왔어도 땅 한 뙈기 없이 소작만 하는 집안이었다면 개발 과정의 득은 커녕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 손가락만 빠는 것이다. “그 흔한 쌍피 하나 안들어오나.” 자신의 운을 탄식하면서. 

2010년 9월 25일자 MBC <무한도전>은 멤버들이 같이 고스톱을 치는 장면을 내보냈다. 일부 언론은 방송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플레이어가 결정되고 패가 돌아가면 또 한 번 희비가 교차한다. 환상의 7각패를 들었다면 일단 ‘출신 성분’이 좋은 편에 들 것이다. 그런데 별 영양가 없는 패들이 두 장씩 들어온 ‘2학년 2반’이 되고 그 흔한 쌍피나 광 하나 없다면 이건 ‘흙수저’의 출발일 터. 그러나 고스톱에서는 한국인들이 즐겨 쓰는 관용어구 “인생은 한 방이다!”를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 같은 달의 화툿장 3장이 들어올 경우에는 비록 승리의 확률이 적을 망정 "흔들거나" "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반격의 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4장이 한꺼번에 들어올 경우 그대로 그를 쥔 사람의 승리를 인정해 버린다. 이름하여 ‘대통령’(총통)이다.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패가 있어도 상황 끝이다. 심지어 광을 팔아 희희낙락하던 사람도 대통령 값은 줘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대통령은 그냥 판을 갈지, 아니면 한 장을 내놓고 폭탄을 던지는 수법으로 판을 키울지를 결정할 권리까지 지닌다. 오호라 이 유구한 대통령 중심제. 그 말로가 좋지 않았을망정 청와대를 차지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실질적인 ‘왕’ 노릇 했던 역사가 어슴푸레 떠오르지 않는가. 

일단 기계가 돌아가고 담요에 화툿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게 있다. ‘뒷손’이다. 아무리 패가 좋아도, 즉 광 넉 장에 고도리 석 장을 한 손에 들었다 해도 뒷손이 맞지 않으면 그 패는 장마철에 꼬리 펴는 공작새에 불과하게 된다. 본인이 아무리 똑똑해도 주변의 협조와 ‘빽’이 없으면 될 일도, 되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고스톱 판에서 뒷손은 곧잘 ‘관(官의) 협조’'에 비유된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빵빵한 자본 보유한 자라 해도 어디 대한민국에서 ‘관의 협조’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었으리오. 모름지기 관(官)은 알 수 없는 존재였다. 조변석개로 변덕이 심하고 조삼모사로 야비하기도 하고 고려공사삼일로 갈피를 못잡게도 하여 잘 나가는 이의 발을 걸기도 하고 때로는 떼돈을 안겨 주기도 하며, 안되는 놈은 피 한 장 못 가져가게 심술을 부리는 화툿장의 ‘뒷손’이 떠오르지 않는가. 고스톱에 능한 이들은 화투판의 판세를 잽싸게 읽고 ‘초출’, 즉 처음 내는 패를 일부러 들이밀어 ‘효자뻑’을 내는, 공무원 구워삶기 이상의 영악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2015년 4월 3일에 방영된 tvN '슈퍼대디 열'의 한 장면.

자 이제 점수 계산이다. 점수는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삼세번, 3점이 나야 승패를 가르는 점수로 인정된다. 아무리 먹은 것이 그득하여도 3점에 이르지 못하면 인정받지 못한다. 아무리 어떤 장르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도 대학은 나와야 하고, 하늘에 닿는 학문적 위업을 달성해도 박사 학위 없으면 교수 자리 얻기 힘든 것이다. 우선 광(光)은 단 세 개만 들어오면 게임을 끝낼 수 있고 상대방에게 ‘광박’을 씌울 수도 있다. 상대방이 아무리 휘황찬란한 패를 모아들여도 똑똑한 놈 석 장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박정희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던 김재규가 그랬다. “똑똑한 놈 세 놈만 있으면 된다.”고. 

광박을 씌우는 위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중산층(?) 중에도 ‘똑똑한 놈’ 셋은 족히 한 판의 승리자로 만들어 준다. 고도리 석 장의 새 5마리는 가히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파워 엘리트들같은 위력을 발휘하여 광 석 장 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따내고 초단 홍단 청단의 삼각편대도 가끔 무시 못할 중산층의 반란을 감행한다. 드문 경우지만 10자리 패로 3점을 달성할 경우 ‘멍박’을 씌우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고스톱 최고의 매력은 ‘민중봉기’다. 

피 한장은 아무런 값어치가 없지만 그것이 10장 이상이 되면 정말 "피 하나가 모여서 백만이 되는"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민중’이라 할 피를 소홀히 한 자들은 곧 민중을 외면한 댓가를 피눈물나게 치러야 한다. 피박이라는 그 끔찍한 철퇴다. 피박이 무서운 것은 무궁무진하게 그 위력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광박은 뒤집어써봐야 제한이 있지만 피는 몇 점으로 불어날지 누구도 모른다. 즉 통제되지 않으며 어디까지 가야 만족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민중봉기처럼. 몇 년 전의 촛불들처럼. 

헌데 피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 똥 껍데기, 비껍데기같은 두 배의 능력을 발휘하는 쌍피가 있되 본디는 중산층 지식인 계급(?)에 속하지만 쌍피로 통용되기도 하는, 아니 대개 쌍피로 인식되는 9월 국진 10짜리가 있다. ‘민중 속으로’ 들어간 엘리트들이라고나 할까. 국진 10자리 쌍피가 상대방의 ‘폭탄’이나 ‘싹쓸이’로 빼앗길 우려가 생겼을 때는 이를 잽싸게 본연의 자리로 옮겨 놓을 수 있다. 그 후 그의 신분은 고정되고 다시 쌍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한때는 민중과 함께 하니 어쩌니 했던 인간들이 안면 바꾸고 제 자리로 돌아갔던 예가 어디 하나 둘이었으랴. 한때 누구보다 유능한 운동권이었다가 누구보다 꽉막힌 꼴통으로 늙어가는 이들이 어디 열 스물이었으랴. 아 이런 9월 국진같은 자들. 

1988년 9월 9일자 한겨레 3면 하단 광고. "아웅산 고스톱에서 전두환 고스톱까지 새롭게 조명된 고스톱 천태만상"이란 광고문구와 함께 실린 <고스톱 공화국> 책광고가 눈에 띈다.

이 뿐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기존의 ‘표준’ 룰에 더하여 사회적, 정치적 변동을 민감히 반영한 룰을 창조하여 게임의 묘미와 더불어 세상에 대한 풍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러 언론에서 이 풍자 고스톱의 계보를 설명하고 있는데 필자와 아는 바와 사뭇 다른 구석이 있으므로 필자가 경험한 고스톱 룰을 추가하여 정리해 본다. 

이승만 고스톱 : 5점부터는 10점으로 인정하는 ‘사사오입’이 가능하다. 
박정희 고스톱 : 세 번 연속 선을 잡으면 그 다음부터는 계속 선이다. (삼선개헌 이후 종신집권) 10월 단풍 넉 장을 다 가지면 ‘풍박’을 씌운다. (10월 유신) 또는 “쓰리고를 했다가 고박을 쓰면 승자에게 3배의 돈을 물어줘야 한다. (삼선개헌 풍자)”(스포츠경향 2010년 2월 11일
전두환 고스톱 : 바닥에 깔린 패를 싹쓸이했을 경우 상대방이 먹은 패에서 원하는 대로 패를 광이든 피든 고도리든 아무거나 가져올 수 있다. (아아 광주여. 그리고 그 피바람 뒤의 전두환 왕국이여) 
최규하 고스톱 : 역시 바닥에 깔린 패를 싹쓸이했을 때 전두환과는 달리 피 한 장을 상대방에게 줘야 한다. (고려 공양왕만도 못했던 바보 같은 집권자 최규하) 
노태우 고스톱 : 고박 피박 다 쓰게 된 상황에서도 6월 모란과 2월 매화, 9월 국진을 갖추면 고박 피박 면하고 6+2+9 17점 승리자가 된다. (629 선언- 조선일보 1999년 1월 27일자) 
김영삼 고스톱 :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며‘ 패를 보여 주고 친다. 그래도 이기면 점수의 두 배를 받는다. (마음을 비웠다는 김영삼 대통령이 즐겨 쓰던 말) 
김대중 고스톱 : 일단 Go를 불렀는데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면 더 이상 점수를 못내도 ‘스톱’할 수 있다. (불출마 선언 번복을 꼬집은 룰 - 위 스포츠 경향 기사 중) 

위에 언급한 룰 외에도 얼마든지 많은 룰의 창조적(?) 변형을 통해 한국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살이를 화투판에 가져와서 씹고 녹이고 킬킬대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물론 명절에 남자들은 방에 틀어박혀 화툿장만 내리치고 여자들은 엄청난 중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극복돼 마땅하며, 아무데나 담요 깔고 화툿장 돌리는 풍습은 없어져야 하며, 그 판돈이 커지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돈을 따니 잃었니 가족간 친구간 의 상하느니 화툿장을 버려 버리는 것이 응당한 일이다. 하지만 길다면 긴 세월 속에 한국인들의 삶 속에 틀어박히고 한국인들만 이해할 수 있는 규칙과 변형을 가져왔으며, 또 재미도 있는 게임을 ‘일본 것’이라고 몰아내야 한다거나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고스톱은 우리 것이다. 외양은 일본적인지 모르나 내용만큼은 그 무엇보다 한국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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