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기만 한 줄 알았던 너... 종이테이프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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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기만 한 줄 알았던 너... 종이테이프의 배신
  • 선정수 팩트체커
  • 승인 2022.12.29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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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제거해서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저를 포함한 우리집 식구들은 쇼핑에 큰 취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꼭 필요한 것 아니면 거의 사지 않습니다. 환경 보호에는 꽤 민감한 편입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종이테이프에 관한 것입니다. 맞벌이 부부와 초2 어린이로 구성된 우리집은 장보기를 주로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합니다. 처음엔 업계 1위 회사를 이용했습니다. 로켓을 타고 오는 속도가 신박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쌓여가는 종이 상자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독점적 지배력을 구축하려는 1위 업계의 확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업체를 바꿨습니다. 여러모로 ‘신경 쓰는 이미지’가 신통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보라색 큰 보냉 가방을 구입하면 그 안에 물건을 넣어주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어서였습니다. 가끔 주문한 물건이 많아 보냉 가방에 다 들어가지 않을 때는 종이 상자에 물건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이 회사는 ‘올 페이퍼 챌린지’라는 모든 배송 포장재를 종이로 바꾸는 일을 한다고 광고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업체는 종이 상자에 비닐 테이프를 붙여서 보내주는데 이 회사는 종이테이프로 마감돼 있었죠. 환경보호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적인 느낌. 왠지 비닐테이프처럼 일일이 떼어버리지 않아도 왠지 마음이 덜 불편한 뭐 그런 겁니다. 그래서 한동안 ‘환경을 생각하는’ 이 업체를 통해 장을 봤습니다.

출처: 한국소비자원
출처: 한국소비자원

2022년 12월27일 한국소비자원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보도자료를 하나 내놨습니다. <종이테이프도 상자에서 제거한 후 분리배출 해야>라는 제목입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종이테이프 25개 제품을 수거해 시험해봤더니 22개 제품이 재활용이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입니다. 이들 종이테이프 업체들은 명확한 근거 없이 ‘친환경’, ‘인체 무해’ 등의 표현을 사용해 온라인으로 광고하고 있었습니다.

출처: 한국소비자원
출처: 한국소비자원

‘종이로 만들어졌으면 종이로 분리배출해서 재생용지로 재활용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테이프의 구조는 몸통에 해당하는 지지체와 박리지, 점착제 등으로 구성됩니다. 테이프를 떼지 않은 상태로 종이상자를 재활용 공장에 보내면 재활용 공정을 방해합니다. 불순물이 많이 섞일수록 재생용지의 강도와 품질을 떨어뜨립니다. 종이테이프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이테이프가 택배 상자의 재활용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알칼리 용액(수산화나트륨: 양잿물이라고 부름)에서 완전히 풀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소비자원과 환경산업기술원의 시험 결과에선 종이테이프 25종 중 22종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은 것(해리성 없음)으로 조사됐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종이로 만든 테이프니 괜찮겠거니 하고 테이프가 붙은 채로 상자를 재활용장에 내다 버렸지만 결국 종이상자의 재활용을 방해하는 짓이었다는 거죠. 종이테이프 회사 25곳 중 19곳은 한술 더 떠서 “분리수거시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잘못된 분리배출 정보를 표시∙광고했습니다. 보도자료의 제목과 마찬가지로 소비자원과 환경산업기술원은 “근거 없이 친환경을 표방하는 제품의 구매를 지양할 것과 재활용 공정에 이물질 혼입이 최소화되도록 재질이나 인증 여부와 관계없이 현행 지침에 따라 종이테이프를 분리 배출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식구들도 식료품 상자에 붙어오는 종이테이프를 가차없이 제거해서 종량제봉투로 버려야겠습니다.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우리집이 애용하는 온라인 장보기 업체에 물어봤습니다. 업체에 “현재 사용 중인 종이테이프의 알칼리 해리성과 분산성에 관한 시험결과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을 거부당했습니다.

출처: A 온라인 장보기 업체
'올 페이퍼 챌린지'를 선언한 온라인 장보기 업체가 종이테이프를 사용한다고 홍보한다. 출처: A 온라인 장보기 업체

해당 업체의 ‘올 페이퍼 챌린지’와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포장재 사용을 줄이겠다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합니다. 그러나 종이상자의 원활한 재활용을 위해 “종이테이프는 따로 떼서 버리십시오”라는 안내가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해당업체가 사용하는 종이테이프가 알칼리 용액에 잘 녹아 재활용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최선이겠죠. 그러나 업체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한 제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출처: 한국소비자원
출처: 한국소비자원

아직도 ‘종이테이프를 종이로 버리는데 뭐 어때’라고 생각하실 분에게 알려드릴게요. 택배 상자에붙어있는 테이프에는 점착제, 박리제 등 다양한 물질이 첨가돼 있습니다. 종이 상자가 재생 공장으로 보내지면 파쇄한 뒤 양잿물에 풀어 펄프를 걸러내는 공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플라스틱 찌꺼기 등 이물질이 섞이면 공정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접착성 이물질이 섞이면 재생종이에 구멍을 만들거나 검은 반점으로 나타나 제품 외관을 해칩니다. 이런 이물질을 걸러내기 위해 세척기 그물망 크기를 줄이게 되면 펄프의 긴 섬유까지 제거되기 때문에 재생용지의 강도를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택배상자의 송장 스티커 또는 포장용 테이프를 제거해서 분리 배출하라고 하는 것이죠. 종이 테이프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님들의 요청이 많고 뉴스톱이 재정적 여력이 되면 주요 온라인 장보기 업체가 사용하고 있는 종이 테이프를 한번 모아서 공인시험업체에 보내 종이로 분리배출 해도 되는지 알아보고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언제쯤 가능하려나 모르겠네요.

선정수   su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3년 국민일보 입사후 여러 부서에서 일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 이달의 좋은 기사상', 서울 언론인클럽 '서울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야생동물을 사랑해 생물분류기사 국가자격증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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