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윤석열 특별사면, 무원칙-편파적-반성없는 사면이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2.12.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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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2월 28일자로 이명박 전 대통령 등 1373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첫해를 마무리하며 범국민적 통합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의 저력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무원칙’, ‘여권만 대통합’인 사면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특히 사죄는커녕 반성도 없는데 사면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무원칙, 편파적, 반성없는 사면이라는 주장은 정치적인 발언이기에 틀렸다 맞았다를 따지기엔 쉽지 않습니다. 이런 발언이 나오게 된 맥락을 살펴보고 얼마나 사실에 부합되는지 따져봤습니다. 

 

 

특별사면은 헌법과 사면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권한

첫번째는 '무원칙'이라는 주장입니다. 사면권한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입니다. 헌법 제79조에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뉘는데, 특정 범죄 종류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지만, 형 집행 면제를 하는 특별사면은 사면법에서 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입니다. 애초에 헌법에 사면의 원칙이나 범위 등에 대해 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면권이 무원칙이라는 주장은 법리적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헌법 제79조

①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②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③사면·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이 때문에 1948년 정부수립 이후 8차례 있었던 일반사면은 1996년 이후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는 반면, 특별사면은 이번 사면까지 모두 88차례 단행됐습니다.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긴 하지만 실효성이 크진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면심사위원회는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남용을 견제하려고 국회가 2007년 사면법을 개정해 도입한 제도이지만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통해 사면심사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다 심사 결과에 구속력도 없습니다. 사면심사위가 반대하더라도 대통령 마음대로 특별사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지난 8·15 광복절 기념 특별사면 당시 사면심사위원장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재진의 ‘사면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은 이전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1년 전인 2021년 12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특별사면을 단행했고, 당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27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사면 관련 구체적인 경위나 대상 범위를 정하는 과정 등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사면을 할 때는 국민통합이라는 명분하에 특정 대상을 사면하는 혹은 사면 안하는 '원칙'을 밝히곤 합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사면권이 남용된다는 지적을 받고 정치인과 공직자의 횡령과 배임, 알선수재와 알선수뢰, 뇌물 등 5대 중대 부패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사면함으로서 원칙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의 사면의 원칙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 사면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직무상 잘못된 관행에 따라 불법 행위를 저질러 법의 심판을 받았던 주요 공직자 66명에 대해서 다시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습니다"라고 사면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형을 완전히 마치고서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에 중대 범죄자들을 대거 사면복권하는 원칙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2014년에 발행된 <대통령 사면권의 정당성과 한계> 논문은 "현행 사면법은 행사방법에 관한 실체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오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사법심사를 통한 남용통제, 의무적 최저형량제도, 수형자의 사면신청권 부여, 사면실효·취소 제도의 도입을 입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KBS 방송화면 갈무리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주요 인사 대거 포함돼

두번째는 편파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정부 여당 인사가 주로 사면됐고 야당인사 혹은 시국 사범 등은 사면이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두 번째 특별사면인 이번 사면의 특징은 거의 대부분이 정치범이라는 겁니다. 정치인 9명, 공직자 66명, 선거사범 1274명 등이 대상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범죄로 △국정농단 사건(조원동) △화이트리스트 사건(김기춘, 조윤선, 박준우, 신동철, 오도성, 정관주) △블랙리스트 사건(최윤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최경환,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이헌수,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국정원 통한 불법사찰 사건(우병우)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수사 방해 사건(장호중, 이제영) △채동욱 전 검찰총장 뒷조사 사건(서천호) 등이 포함됐고, 이명박 정부 시절 범죄로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원세훈, 민병환, 유성옥) △기무사령부 여론조작 사건(배득식) △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사건(옥도경, 연제욱) △국정원 특활비 횡령 사건(김진모, 장석명) △국정원 특활비 어용 노조 설립 사건(이채필) 등이 포함됐습니다.

법무부 보도자료 갈무리
법무부 보도자료 갈무리

정치인 9명의 경우 여권인사가 5명, 야권 인사가 4명이었습니다. 공직자 66명 중 법무부가 실명을 밝힌 35명의 경우 김경수 전 도지사를 제외한 전원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요직을 지낸 인물입니다. 김 전 지사는 남은 형기 5개월만 면제됐고 복권은 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2024년 총선은 물론 2027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습니다.

법무부 보도자료 갈무리
법무부 보도자료 갈무리

28일 진행된 정부 브리핑에서 신자용 법무부 검찰국장은 여권 인사가 많은 이유에 대해, “국민통합 관점에서 균형을 잡고자 노력했지만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형사처벌 받았던 이들이 보수진영 쪽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가장 책임이 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된 점을 크게 고려했다”고 말했습니다. 편향적이라는 주장은 각자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사면 대상 숫자나 내용을 봤을 때 충분히 그렇다고 느낄만 합니다.

 

반성도 사죄로 없는데 ‘너의 죄를 사하노라’?

세번째는 반성없는 사면이란 주장입니다. 이번에 사면을 받은 인사 중 다수가 사죄는커녕 반성도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주요 사면 대상자들은 재판 과정에서 계속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7년 다스의 실제 주인으로 드러나 횡령 등으로 재판을 받을 때,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불법 사찰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보수단체 화이트리스트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조윤선 전 장관도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태도는 민주당 계열 인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드루킹 댓글 사건’의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자필 가석방 불원서를 통해 “처음부터 줄곧 무죄를 주장해 온 나로서는 가석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히며, 대법원에서 확정된 유죄 판결을 인정하지 않았고, 뇌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병헌 전 정무수석과 신계륜 전 의원은 죄를 인정하지 않거나 법원을 비판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별사면에 대해 원칙과 기준 없는 ‘묻지마 사면’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데도 면죄부를 주는 건 윤 대통령이 강조한 법치주의에 반하고 국민통합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한국일보는 ‘‘적폐’까지 풀어준 정치인 특사, 국민통합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엄선’이라고 표현했으나, 사실상 사면되지 않은 비리 정치인·공직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규모”라면서 “또한 대부분이 여권계열 인사들이어서 사실상 ‘국민통합을 가장한 내 편 풀어주기’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면을 받은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전두환·박근혜 전 대통령,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도 같은 사례였습니다. 이처럼 특별사면 기준과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은 종종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과거 검찰에서 ‘적폐 수사’를 진두진휘했던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당시 수사 대상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직접 사면·복권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입만 열면 '법치주의'를 강조했지만 결국 이 두사람이 앞장서서 법치주의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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