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를 꿈꾼 '스카이캐슬' 과학자 엄마의 수법

  • 기자명 김우재
  • 기사승인 2019.02.17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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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윤리보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숭고하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유행해서였을까, KBS의 '끈질긴K' 코너가 '교수 딸 논문이 국제학술지에...누가 썼나 추적했더니'라는 기사를 썼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최근 과학기술계엔 연구와 논문을 둘러싼 처참한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엔 국민일보에서 국내 교수들이 자녀의 이름을 논문에 공저자로 표기하고, 이를 자녀의 스펙으로 사용했다는 폭로를 했다⁠. 이런 관행은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고, 그렇게 적발된 교수들 중 얼마나 처벌을 제대로 받았는지 알 수 없다.

뉴스타파는 와셋/오믹스 등으로 대변되는 부실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해적학술지로 의심되는 대부분의 학술지와 학술단체의 정보는 빌의 리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실학회에 외유성 관광을 다녀온 연구자들의 실태를 고발했다. 겨우 한 두개의 가짜 학술대회를 뒤졌을 뿐인데, 무려 1300여명의 연구자가 적발되었다⁠. 뉴스타파가 고발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실적을 쉽게 올리기 위한 얄팍한 술수로, 국민세금이 계속 낭비되고 있을 것이다(과학기술계만 이런 상황인건 아니다. 인문사회계의 논문대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최근엔 법대 교수가 논문을 대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논문 저자의 순서가 중요한 이유

이번 보도에 등장하는 이 모교수는 필자와 같은 생물학자다. 그래서 그 교수가 누구이며 이번 사건이 어떤 성격을 띄고 있는지 좀 더 전문적으로 조사할 수 있었다⁠(실제로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실명은 공개하지 않지만, 약간의 정보만 있으면 해당 교수가 누구인지는 자명하게 알 수 있다. 완전범죄는 불가능하다). 이 사건을 좀 더 파헤치기 전에, 기본적으로 의생명과학계의 논문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기 위해 Plos Biology라는⁠ 오픈액세스 학술지에서, 이 모교수 전공인 면역학, 즉 Immunology로 검색을 해서 나오는 첫번째 논문을 사례로 삼겠다(과학의 공공도서관이라는 이름의 PLoS, Public Library of Science 학술지는, 노벨상 수상자 등의 과학자들이 과학학술지 시장의 독점 기업을 견제하고, 과학의 연구결과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돌려주기 위해 만든 회사다. 이런 운동을 오픈액세스 운동 Open Access Movement라고 부른다. 뉴스톱의 '상위 1% 연구자 논란의 이면, 오픈 액세스 운동' 참고 ).

맨 윗줄의 학술지 정보 아래로, 논문 제목인 "An Immunological Marker of Tolerance to Infection in Wild Rodents"가 보이고, 그 아래 더 작은 글씨로 논문의 저자 이름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논문의 저자를 나열하는 방식은 학문 분야마다 다른데, 어떤 분야는 알파벳 순서로 나열하기도 하지만, 의생명과학은 논문에 가장 기여가 많았던, 중요한 저자부터 맨 앞에서 뒤의 순서로 나열한다. 제일 뒤에 나오는 저자를 '교신저자 corresponding author'라고 부르며, 교신저자는 이 논문의 최종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논문 저자 순서에서 맨 앞이냐 아니냐에 따라, 논문의 기여도가 평가되기 때문에, 가장 앞에 등장하는 저자, 즉 '제 1저자 first author' 자리가 아주 중요해진다. 이번 사건에서 이 모교수의 딸이 바로 이 제 1저자가 됐고, 교신저자는 K대학의 김 모교수였다. 논문의 기여도를 정확하게 따진다는게 매우 어렵고, 공동연구의 경우 저자 순서를 놓고 갈등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가끔 공동 제1저자, 혹은 공동교신저자처럼 여러 명의 저자가 제 1 저자를 나눠갖기도 한다. 하지만 의생명과학계의 관행은, 가장 앞 혹은 뒤에 나온 사람을 논문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 혹은 논문의 주요저자로 본다. 그리고 실제로 가끔은 논문의 숫자보다, 해당 연구자가 저자 순서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만 중점적으로 보기도 한다.

논문 초록, 논문 본문 등이 모두 등장하고 맨 아래 참고문헌 Reference 직전에 '저자 기여도 Author Contribution'이라는 섹션이 보인다. 이 섹션은 원래 오래된 논문엔 없었던 것인데, 과학이 거대화되고, 논문 저자의 순서를 놓고 수없이 많은 갈등이 생기자, 대부분의 학술지가 체택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된 논문의 경우, 이 모교수의 딸은 연구의 개념과 디자인, 데이터 수집, 데이터 분석과 해석, 논문작성 전반에 기여했다고 되어 있다. KBS 보도에 따르면 이 모교수의 대학원생들이 대부분의 실험을 수행했다고 했고, 딸은 실험실에 나와 증거사진 정도나 찍었다고 했으니, 저자기여 섹션에 쓰인 말은 거짓이다. 특히, 이 논문에는 실험을 수행한 이 모교수의 대학원생들 이름과, 이 논문을 위해 국민세금으로 지원된 연구비를 사용한 이 모교수의 이름도 들어갔어야 했다.

지능적 완전범죄를 꿈꾼 S대 이 모교수

이번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 이 모교수의 논문에 자녀 끼워넣기 수법은 위에서 언급된 사건들보다 훨씬 치밀하게 준비된 지능범죄다. 우선 이 모교수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논문에 저자로 기재된다는 것의 이해충돌 및 비윤리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딸이 다니던 대학의 교수를 교신저자로 넣는 방안을 기획했다. 더 흥미로운건, 바로 그 교신저자가 될 교수로 자신과 비슷한 면역학 연구를 하는 동료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중으로 잠금장치를 하면, 자신과 딸의 이름이 동시에 들어가지도 않고, 교신저자인 김교수의 연구와도 크게 벗어나지 않아 의심을 살 위험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마 이런 경우가 이 모교수 외에도 상당수 퍼져 있을 것이라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다(실제로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제보를 한 건 받았다). 왜냐하면 교수사회야말로 폐쇄적으로 상당수의 정보를 공유하는, 대한민국의 엘리트 계층이기 때문이다.

K대학 김 모교수는 확실한 공범이다

제보자들의 진술이 모두 일치하기 때문에, 이 모교수의 비위는 명백하다. 연구기간에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던 딸이, 실제로 수행하지도 않은 연구의 논문 저자가 되게 만들었다. 그 실험을 대신한 대학원생 모두의 인권을 유린했으며,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비를 가지고,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작은 규모로 일어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궁금한건 그 논문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발표한 K대학의 김 모교수다. 김 모교수는 공범자다. 왜냐하면 그의 학부생 제자가 자신이 연구한 결과라고 가져온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 과정에서, 중대한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자신의 실험실에서 수행하지도 않은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넣었다. 또한 자신이 하지도 않은 기여를 저자 기여 섹션에 적어 넣었다. 학생이 어머니 실험실에서 실험을 진행했다는걸 알면서도, 학생의 어머니를 저자 이름에 넣지 않았다. 이건 분명한 공모의 흔적이다. 이 모교수가 김 모교수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기 딸의 편의를 봐달라고 전하지 않았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분명히 기여한 논문에 이름이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할 과학자는 없기 때문이다. 이 모교수는 완전범죄를 위해 자신과 대학원생의 존재를 논문에서 완전히 감췄다. 그리고 김 모교수는 이 모든 과정이 범죄임을 알면서 도왔다. 그는 공범이다.

KBS 화면 캡처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것은 대학원생들

가장 슬픈 사실은, 대학원생 노조가 생기고, 대학원생 인권 문제가 대통령 입에서도 등장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이런 갑질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교수의 제자들은 입을 모아, 그 딸의 교육에 자신들이 노예처럼 동원되었다고 진술했다. 군대 장교가 자식의 교육에 행정병들을 동원한 뉴스는 자주 봐왔지만, 대학교수가 이런 갑질을 지속적으로 했다는 뉴스는 드물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해본 이들은 모두 안다. 학계라는 좁은 영역에서, 교수의 갑질이 지닌 권력이 얼마나 강력하며, 그 권력을 사용해 교수들이 얼마나 대학원생을 노예화하고 있는지를. 교수는 도덕적 기준으로 임용되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곧 권력을 인지하게 되고, 그 권력을 사용할 욕망도 느끼게 된다. 그런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권력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 뿐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심지어 성추행 교수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다. 사법권력이,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이 처벌받지 않는 사회에선, 교수도 그 권력이 처벌받지 않음을 알고 이를 활용할 뿐이다. 그 속에서 대학원생은 보호받지 못하는 을이다. 대학원에 자식을 보낸 모든 부모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대학원생 지배적 관계에서 비롯된 질병적 사건

딸을 서울대 치의학대학원에 입학시킨 생물학자 이 모교수는, 어긋난 엄마의 사랑이 만들어낸 교육시장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를 찾는건 어렵지도 않았다. 그가 평소 연구하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딸의 논문과, 이미 공개된 성씨만 알면 생물학자 누구라도 그를 지목할 수 있다. 그는 교수가 된 모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모두를 마친 국내파 과학자다. 그가 연구하던 당시만 해도 국내 박사가 한국 대학에서 교수가 되는 일은 드물었으니, 그는 엄청난 노력파였을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 경험을 쌓고 금의환향했다. 그리고 벌서 36년째 교수로 살아 가고 있는, 한국 생물학계의 노장이다. 그의 약력엔 수도 없이 많은 수상실적이 적혀 있고, 그는 규모가 큰 학회의 학회장까지 역임한 유명한 과학자다. 하지만 자신의 경력을 쌓는 방법에는 밝았지만, 타인의 삶을 배려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는 연구자가 되지는 못했다.

이번 사건을 그저 이상한 교수 엄마의 일탈이라고 생각한다면, 뉴스의 이면을 놓치는 것이다. 자녀의 이름을 자신의 논문에 끼워넣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의생명과학분야의 학자들이었다. 과학분야에서 연구비가 가장 많이 투입되는 분야도 의생명과학이다. 그리고 그 연구비는 국민의 혈세다. 한국의 교수들은, 자신이 대학원생을 돌본다고 생각한다. 이 모교수도 대학원생들에게 "내가 너희들 논문을 잘 봐주고 있으니 너희도 나에게 보답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방식으로 불법을 청탁했다. 한국 교수들은 자신이 대학원생의 부모라고 착각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원생을 자식처럼 아끼는 사람이, 자신의 친자식을 위해 또 다른 자식을 희생시킨다면, 그건 부모로서 최악이다.

교수는 연구실과 강의실을 책임지는 직업이다. 교수가 제자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게 무슨 미덕처럼 포장되는 사회는 이상하다. 왜냐하면, 교수는 제자를 잘 가르치고, 제자는 교수를 잘 지원해서, 제대로 된 학문적 동지 관계를 만드는 것 이외의 관계는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유교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런 부모-자식 관계는 변태적 질환을 유발한다. 한국의 변태적인 유교 이념이 만들어낸 괴물, 그게 교수와 학생의 관계다. 대학이라는 시스템이 망해가는데도, 교수들은 여전히 자기 배 불릴 생각만 한다. 이번 사건은 멀쩡해 보이는 한국 대학의 교수조차, 심하게 썩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가능하게 한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임에도 자녀가 논문을 출판한 교수 부모들에 대해,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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