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펙스 레전드>는 어떻게 배틀로얄 장르를 발전시켰나

  • 기자명 박현우
  • 기사승인 2019.02.19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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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요즘 흔히 나오는 게임들은 발표를 한 뒤 몇 개월 뒤에 출시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의 경우, 한국 게임사들은 사전에 계정을 만들어두면 인게임에서 쓸 수 있는 쓸만한 아이템을 주겠다며 게이머들을 유혹하고, 미국 게임사들도 딱히 다르지 않다. <에이펙스 레전드>와 같은 배틀로얄 장르 게임인 <포트나이트> 역시 게임을 발표한 뒤 사전 가입한 자들에게 인게임 아이템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게임사가 게임을 먼저 발표하고 그 뒤에 출시를 하는 이유는 게임이 출시되는 첫 날에 유저들이 충분히 많이 모여야 ‘좋은 시작'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업계에서도 개봉 첫 날 성적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출시 첫 날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하기 위해서는 출시 날짜를 정확하게,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해야한다. 기를 모은 뒤 폭발시키기 위한 날짜니까.

사전 예약이라는 마케팅을 통해 출시 첫 날에 좋은 성적이 나오면 게임사 입장에서는 ‘첫 날에 동접자 X만명 달성!’하면서 홍보 자료를 배포하기에 좋다. 또, 유저가 많이 모인 게임은 큰 기대를 받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해당 게임에 별 관심이 없거나 간만 보고 있던 자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유입하는 계기로 작용하고는 한다.

그런데 <에이펙스 레전드>는 2월 5일, 사전예약 같은 것도 없이 발표와 동시에 게임을 출시했다. 업계에서 흔히 쓰지 않는 문법으로 게임을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장르의 게임인 <배틀그라운드>나 <포트나이트>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출시 1주 만에 누적 가입자 2,500만 명을 돌파했고, 동시 접속사 200만 명을 달성했다. 참고로 <배틀그라운드>는 출시 16일 만에 100만 장을 기록했고, <포트나이트>는 2주 만에 동시 접속자 52만 명을 달성했다. 또, <배틀그라운드>는 얼리 액세스 시점 기준으로 반 년 만에 1,000만 장을 판매했으나, <포트나이트>는 2주 만에 1000만 명의 누적 가입자를 확보했다.

<배틀그라운드>는 <포트나이트>나 <에이펙스 레전드>와 달리 유료 게임이니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어찌됐건, <에이펙스 레전드>의 성장세가 같은 장르의 게임들에 비해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이는 <에이펙스 레전드>가 그만큼 훌륭한 게임이란 것도 보여주지만, 업계가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신뢰해왔던 비즈니스 방식이 과연 효과적이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부분에서 발전했나?

게임이 흥하기 위해서는 판매 방식도 중요하지만, 게임 자체도 중요하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수많은 배틀로얄 게임 장르들 사이에서 왜 이렇게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걸까? 결론만 미리 말하면, 배틀로얄 장르에서 게이머들이 원했던 요소들을 게임 안에 세심하게 채워넣었다. 게임을 잠시만 플레이해봐도 이 게임이 배틀로얄 트렌드에 묻어가려는 게으른 게임이 아니란 걸 파악할 수 있다. 배틀로얄 장르에 대한 깊은 연구와 사랑을 바탕으로<에이펙스 레전드>는 장르적 발전을 도모했고, 훌륭하게 이뤄냈다. 어느 부분에서 장르적 발전을 확인할 수 있는지는 아래에서부터 다뤄보겠다.

 

의사소통 방식의 발전

<에이펙스 레전드>는 3인 파티가 기본이다. 루머에 따르면 1인 모드나 2인 모드도 곧 지원될 예정이지만, 아직 개발사인 리스폰측의 공식 입장은 없다. 배틀로얄 장르에서 2인 이상이 팀플을 하게되면 게임플레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의사소통이다. 물론 배틀로얄 장르에서만 의사소통이 중요한 건 아니다. 팀플레이에서는 모두 효과적인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다만, 배틀로얄 장르로 오면 의사소통이 더 중요해진다. 적이 발견되면 즉각 반응해야하고, 아군에게 필요한 아이템이 있다 싶으면 정보 공유를 해 필요한 아이템을 가져가라는 신호도 해야한다.

<배틀그라운드>나 <포트나이트>의 경우, 적을 발견하거나 공격을 당할 때, 혹은 어떤 아이템이 있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팀원들에게 알릴만한 방법이 없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게이머들은 인게임 보이스 채팅이나 보이스 채팅 서비스인 디스코드를 이용해 보이스 채팅을 한다. 하지만 모두가 마이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타인과의 보이스 채팅을 달가워하지 않는 게이머들의 수는 상당하다. 여성 게이머들은 마이크가 있어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거나 보이스 채팅을 아예 끄기도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면 성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자치고는 잘한다던가, 목소리가 이쁘다던가, 팀원 중에 여자가 있어서 불리하다던가.

<에이펙스 레전드>는 이 문제를 핑 시스템으로 완전히 해결했다. 굳이 보이스채팅을 하지 않아도 마우스만으로 의사소통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만약 당신에게 무기가 없다고 해보자. 당신은 그저 인벤토리 창을 열고 무기 칸에 마우스 커서를 올린 뒤 마우스 휠을 누르면 된다. 그러면 팀원들에게 당신에게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 무기는 있는데 탄이 없다? 그러면 무기에 마우스 커서를 대고 휠을 누르면 된다. 그러면 그 총에 맞는 탄이 필요하다 걸 팀원들에게 알릴 수 있다.

한 팀원이 핑을 통해 어떤 장비가 필요하다는 걸 알리거나 그에게 어떤 장비가 없다는 것을 게임 화면을 통해 파악했는데 당신의 눈 앞에 그 장비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 그 장비에 마우스를 대고 휠을 누르면 된다. 그러면 그 장비의 위치가 팀원들에게 공유된다. 이렇게 공유된 장비의 위치를 향해 아까 그 팀원이 휠을 누르면 ‘확인했다’라는 신호가 팀원들에게 공유된다.

당신이 파밍을 하기 위해 어떤 공간을 갔는데, 문들이 열려있고, 적들이 오간 흔적이 있다. 그 적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파밍을 떠났을 수도 있지만, 구석에서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며 대기를 타고 있을 수 있다. 당신은 그 곳이 위험할지도 모르기에 팀원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다. 이때, 당신은 휠을 누르고 홀드한 뒤 한 쪽 방향으로 움직이고 놓으면 된다. 아래 사진을 참고하라.

이미지에는 ‘적 흔적’이 표시되어있지만, 마우스 방향에 따라 총 8가지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여기로 이동하면 좋을 것 같다’, ‘적의 흔적이 있다’, ‘, ‘이쪽을 감시하겠다’, ‘이쪽을 방어하겠다’, ‘이쪽으로 이동하겠다’, ‘이 곳을 공격하겠다’, ‘여기 전리품이 있다’, ‘적이 있다’. 참고로 휠을 한 번만 클릭하면 ‘여기로 이동하면 좋을 것 같다’가 표시되고, 더블 클릭하면 ‘적이 있다’가 표시된다.

 

직관적인 게임 디자인

의사소통에 있어서만 이런 편의성을 도입한 건 아니다. 게임은 전반적으로 직관적으로 디자인되어있어서 누구나 쉽게 플레이할 수 있다. 이 게임에는 탄 종류가 크게 경량, 중량, 에너지, 산탄 등 총 4개가 있는데, 각각의 탄은 모두 노란색, 짙은 녹색, 형광 녹색, 붉은색을 띄고 있다. 이런 탄의 색은 해당 탄을 쓰는 총에도 그대로 공유되어있어서 특정 총을 주웠을 때 어떤 탄이 그 총에 맞는지 딱히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만약 게이머가 중탄을 쓰는 장비로만 무장하면 인벤토리에 있는 경량탄은 쓸모가 없어진다. 이 때, 게임은 그 탄을 쓸 총이 없다는 표시를 해준다. 비단 총탄에 있어서만 이런 표시를 해주는 건 아니다. 특정 장비에만 쓰이는 부착물이 인벤토리에 있는데 정작 부착할 특정 장비가 없을 때도 이런 표시가 주어진다. 아래의 사진을 참고하라.

무기에 부착물을 장착하는 부분에 있어도 편의성이 진보했다. <배틀그라운드>에서는 부착물이 있는 총(A)을 더 선호하는 다른 총(B)으로 교환하면서 부착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을 때, A에 있는 모든 부착물을 모두 떼어낸 뒤 B로 총을 교환하고 그 뒤에 다시 부착물을 B에다 붙여야해서 상당히 불편했다. 그런데 <에이펙스 레전드>에서는 총을 교환하면 부착물도 자동으로 교환이 되서 클릭 최소화했다. 총을 교환했는데 기존 총에 있던 부착물이 호환되지 않는 장비라면 바닥에 버려진다.

만약, 인벤토리에 부착물이 있는데 바닥에서 그 부착물을 부착할 수 있는 총을 발견해 주우면 어떻게 될까? <배틀그라운드>였다면 총을 주운 뒤 부착물을 일일이 붙여줘야했겠지만, <에이펙스 레전드>에서는 아니다. 총을 주우면 부착물도 자동으로 부착된다. 나는 이런 부분을 ‘편의성의 진보’라 표현하지만, 어떤 이들은 후퇴라 평할지도 모르겠다. 부착물을 빨리 교환하는 게 일종의 실력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죽은 뒤 부여받는 또다른 기회

배틀로얄 게임에서 팀원 중 일부만 죽는 경우는 흔히 발생한다. 2~3인 팀플을 했는데 혼자 죽어서 팀원들의 게임 플레이를 심심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거다. 이 때 혼자 죽은 팀원은 파티에서 탈퇴하고 다시 게임을 돌리거나 짧으면 몇 분, 길면 몇 십 분까지 게임을 관전해야했다. 초반에 아군을 잃은 팀원은 더 적은 수로 적들을 상대해야했기에 게임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이들이 많아질 수록 한 판의 게임은 루즈해진다.

<에이펙스 레전드>에서는 한 번 죽더라도 다시 부활할 기회가 있다. ‘나’가 모든 체력을 잃고 기절하면 팀원에 의해 부활할 수 있는 거야 모든 배틀로얄 게임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기절한 상태에서 적에게 죽임당하면 완전한 게임 오버다. 그런데 <에이펙스 레전드>에서는 기절한 뒤 죽더라도 팀원이 시체(?)에서 ‘비컨’이란 것을 획득하면 특정 위치에서 부활시키는 게 가능하다. 

비컨만 확보하면 팀원을 부활시킬 수 있기 때문에 게임 초반에 죽더라도 팀원에 의해 부활될 수 있다. 이는 게임 한 판 한 판을 더 소중히 여기게 만들어준다. 초반에 죽은 자는 팀원에 의해 부활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에서 나가지 않을 동기가 충분하고, 초반에 아군을 잃은 팀원도 나중에 팀원을 부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아군을 잃었다고 절망하면서 게임에서 나가버리는 일이 상대적으로 덜 발생하게 된다.

 

총평

배틀로얄 장르는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더 발전할 구석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일 때, 리스폰과 EA는 말 없이 <에이펙스 레전드>를 출시하며 여전히 배틀로얄 장르가 핫하며 발전할 여력이 있다는 것을 직접 입증해보였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최근의 게이머들이 혐오하는 사전 예약 방식도 채택하지 않았고, 기존의 배틀로얄 게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한 시스템으로 게이머들과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아내고 있다. 저물어가는 장르는 없다. 소비자를 외면하고 변화를 거부해 도태되는 게임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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