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 빠진 일본의 국책 문화지원사업 ‘쿨재팬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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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위기 빠진 일본의 국책 문화지원사업 ‘쿨재팬기구’
  • 윤재언
  • 승인 2023.01.09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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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대항마'로 키우려던 상징적 펀드 대규모 적자 기록 중
수천억엔 투자했지만 손실 확대되며 통폐합 가능성까지

한류는 일본에서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지만, 그럼에도 폄하하려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때마다 근거로 제시되는 게 한류의 세계적 인기가 정부 지원으로 이뤄졌다는 ‘국책 지원론’이다.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낮춰 보는 일종의 프레임으로, 한국에 반감을 가진 일본인 사이에서 기정사실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다.

한류가 국책만으로 성공했다는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나, 그럼에도 지난 아베 정권 때 내에서는 이 같은 인식을 어느 정도 공유했었다. 그 상징이 2013년 출범한 ‘쿨재팬기구’다. 일본의 문화 부흥 슬로건 ‘쿨 재팬(Cool Japan)’을 표방한 쿨재팬기구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출자해 “전세계에서 일본문화 붐을 일으키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관민합동펀드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류에 대항하려는 취지였고, 국수주의적 성향이 강한 아베 정권의 대결 의식이 기저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쿨 재팬 로고(출처: 일본내각부)
쿨 재팬 로고(출처: 일본내각부)

쿨재팬기구의 정식 명칭은 ‘주식회사 해외수요개척지원기구’다. 이름으로부터 알 수 있듯, 해외사업 지원과 투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출자금은 모두 1263억엔으로 민관 합동을 내세웠지만, 민간 출자는 107억엔에 그치고, 나머지 1156억엔은 정부 출자다. 결국은 세금으로 문화 콘텐츠 사업 등을 지원하는 전형적인 국책 사업인 셈이다.

 

쿨재팬기구 홈페이지 화면
쿨재팬기구 홈페이지 화면

이런 쿨재팬기구와 관련해 놀랄 만한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6월까지 누적 적자가 무려 309억엔에 달한다는 뉴스였다. 쿨재팬기구는 아베 정권 때 특히 힘을 받았던 경제산업성(경산성, 구 통상산업성)이 주도했다. 당시 민관합동을 내세운 각종 투자 펀드가 난립했었는데, 쿨재팬기구도 그 중 하나였다. 

방대한 누적 적자에 대해 정부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성(구 대장성)에서는 “다른 기금과 통폐합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쿨재팬기구는 2000년대 이후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사업 구조조정에서 실패를 거듭해온 경산성의 또 하나의 패착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전통적으로 재정 안정화를 중시해온 기시다 파벌(코치카이)과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을 중시해온 구 아베파벌(세이와카이)의 입장차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결착 지어질 듯하다.

쿨재팬기구의 발표 자료를 통해 상세히 살펴보면 실패의 전체상이 대략적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반복되는 전형적인 ‘관치 투자’의 양상이 재확인되기 때문이다. 

경산성이 2021년 발표한 설명 자료를 통해 당초 의도와 구성을 살펴보자. 경산성은 쿨재팬기구의 목적에 대해 “일본은 인구감소에 직면해 내수가 축소 경향에 있어, 외부수요를 끌어들여 경제성장으로 연결지을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타국이 따라할 수 없는 일본 고유의 매력을 외부수요 획득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콘텐츠, 패션, 음식, 지역산품, 관광 등으로 해외 사업 전개와 인바운드(관광) 강화에 힘을 쏟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사업을 벌이는 업체들의 리스크를 줄이고 지원을 촉진하겠다고 한다. 또한 정책적 의의를 내세우면서도 ‘수익성 등의 확보’도 내걸며 단순히 돈만 쏟아붓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름을 올린 주요 출자자와 임원 구성을 보면, 과연 쿨 재팬과 관련한 콘텐츠 문화 산업을 이해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문화 기업으로는 대형 광고홍보사 덴츠(電通)와 하쿠호도(博報堂), ADK 가 눈에 띄고, 콘텐츠 기업으로는 반다이 남코 정도와 인쇄 업체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덴츠와 하쿠호도는 정부 사업을 사실상 과점 수주하는 것으로 이름(혹은 악명)이 높기 때문에, 과거부터 투자에 참여했더 것으로 생각된다. 덴츠와 ADK는 도쿄 올림픽 스폰서 로비 사건에서도 뇌물 관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외에 유명 주요 콘텐츠 기업, 그 중에서도 대형 출판사(명칭은 출판사지만 영상과 웹 발신 등 말 그대로 콘텐츠 대기업이라고 봐도 된다) 이름은 보이지 않고, 닌텐도나 소니 등 게임 관련 업체도 없다. 미디어 기업 가운데는 후지 미디어 홀딩스가 있는데, 여기는 산케이신문과 후지테레비의 사실상 지주회사다. 아마도 아베 정권과 가깝다는 정치적 이유가 참가 배경이 아닐까 싶다. 다른 지상파 방송사나 언론사는 단 한 군데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 외에는 ‘전주’로서 은행과 금융사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임원 명단을 보면 의문은 더욱 배가된다. 대표이사 사장 가와사키 겐이치는 증권사 출신이다. 2019년 쿨재팬기구에 들어온 뒤 임원을 거쳐 2021년 6월 사장이 됐는데, 콘텐츠 산업 경험은 없고 오로지 증권, 투자사 경험만 있는 인사다. 공개된 다른 비상근 사외이사들은 일본은행, 투자회사, 계산기 회사(카시오), 변호사, 의류회사, 음향기기회사 출신이다. 이들이 얼마나 콘텐츠 산업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출신으로만 봐서는 와 닿지 않는 게 사실이다.

 

공개된 임원 명단(출처: 경산성 홈페이지, https://www.meti.go.jp/policy/mono_info_service/mono/creative/2110CoolJapanFundr1.pdf)
공개된 임원 명단(출처: 경산성 홈페이지, https://www.meti.go.jp/policy/mono_info_service/mono/creative/2110CoolJapanFundr1.pdf)

투자 안건은 미디어 콘텐츠가 16건, 라이프스타일(백화점, 패션) 13건, 음식 및 서비스가 13건, 인바운드가 7건 등이다. 미디어 콘텐츠 투자 내역에는 ‘해외에서의 크리에이터 육성(5억엔)’이나 ‘동영상 미디어를 통한 일본의 매력 발신(10억엔)’ 등 정체와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도 보이고, 라이프 스타일에는 ‘일본발 차세대 섬유소재 사용 어패럴 사업(30억엔)’, ‘일본의 기술, 소재 등을 활용한 가구, 라이프스타일 상품 브랜드(40억엔)’ 등 쿨 재팬을 가장한 기존 산업 투자도 눈에 띈다. 결국은 정체 불명의 사업과 정부 주도 일본 홍보 사업에 눈먼 돈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 안건 목록(출처: 경산성 홈페이지, https://www.meti.go.jp/policy/mono_info_service/mono/creative/2110CoolJapanFundr1.pdf)
투자 안건 목록(출처: 경산성 홈페이지, https://www.meti.go.jp/policy/mono_info_service/mono/creative/2110CoolJapanFundr1.pdf)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11월 22일 보도에서 쿨재팬기구가 단행한 투자 56건 가운데 대부분이 실패했다고 비판적으로 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영상 콘텐츠의 해외 전개를 예로 들면서,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세운 애니메이션 회사 ‘아니메 컨소시엄 재팬(10억엔)’과 위성방송 ‘WAKUWAKU(44억엔)’가 넷플릭스 등의 성장으로 큰 타격을 봤다고 한다. 결국 이들 업체의 정부 투자분은 손실을 남기며 민간에 매각됐다. 흥미로운 것은 해당 기사에 인용된 경제관청간부(익명)의 코멘트다. 

“지금 쿨 재팬 같은 걸 누가 얘기하나? 전부 한류에  점수를 빼앗기고 있다. 애니메이션조차도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결국 한류에 대한 잘못된 대항심으로 출발한 문화 부흥 ‘국책 펀드’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앞서 적었듯 쿨재팬기구의 당초 의도와 맞지 않게, 의료품 소재 업체나 대두 사용 대체육 개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경산성 쪽은 2025년 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가능성이 높지 않고, 정치적 뒷배(아베)도 사라진 마당에 존속은 어려워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역시 ‘쿨 재팬은 민간에 맡겨라’라는 지난 연말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리스크를 감안해 투자하는 것은 본래 민간 기업의 역할이다. 특히 오락이나 생활관련 분야는 유행 등에 좌우되어 예측이 어렵다. 우리들은 출범 때부터 관 주도의 투자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해왔다.”(역주: 우리=니혼게이자이신문)

“’쿨 코리아’ 정책으로 성공한 한국에서는, 예를 들어 영화의 경우, 투자는 기본적으로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영화학교 개설에 의한 인재 육성이나 영화 데이터베이스 정비와 공개 등을 담당해, 지금의 성공을 견인했다. 배우나 아이돌의 국제적 인기를 관광객 유치에서 살리는 등 분야를 넘나드는 연계에도 실력을 발휘했다. 투자는 민간 자금을 활용하고, 정부는 인재 육성이나 해적판 방지 등 규칙이나 환경 정비를 철저히 하는 게 옳다. 타국 사례를 참고로 기구의 존폐를 판단해야 힐 시점이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한류의 성공을 1차원적으로만 이해한 일본 정부, 특히 아베 정권의 실패이자 그 동안 지속되어온 관치 산업 정책의 패배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반도체 산업에서도 비슷한 착각(?)이 아베와 가까운 세력에서 여전히 보여지는데, 적어도 기시다 총리 쪽이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지는 않는 듯 보이는 점이 일본에는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싶다.
 

윤재언   sharply2u@gmail.com    최근글보기
일본 히토츠바시대 강사, 전 신문기자. 연세대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2010년 매일경제신문 입사. 예전부터 갖고 있던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자일을 뒤로 한 채 2015년 훌쩍 바다를 건넘. 2021년 히토츠바시대에서 박사 학위 취득 뒤 연구자의 길에 접어듦. 전공은 국제관계(국제정치경제)지만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정치 / 경제 / 사회(특히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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