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대마 합법화'는 정말 반쪽짜리인가

  • 기자명 박한슬
  • 기사승인 2019.03.0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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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1일 국회에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며 국내에서도 ‘의료용 대마’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해당 법률이 정식으로 시행되는 것은 오는 3월 12일. 1주 후부터는 국내에서도 합법적으로 의료용 대마의 유통, 소지가 가능한 것입니다. 기존의 뉴스톱 보도에서 의료용 대마에 관한 제도와 관련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짚어봤다면, 본 기사에서는 의료용 대마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이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짚어봤습니다.

 

대마에서 ‘환각’을 일으키는 성분은 THC

흔히들 ‘커피 원두’에 들어있는 성분이라고 하면 카페인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로스팅을 하지 않은 녹색 커피콩에 들어있는 성분만 따져도 1,000가지가 훨씬 넘습니다. 그렇기에 똑같이 카페인이 들어있어도, 커피 품종마다 다양한 향과 맛을 내는 것이죠.

대마초 역시도 뭉뚱그려서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류’ 정도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대마 초에도 수많은 성분들이 들어있고 그 중에서 특히 환각 작용에 기여하는 물질은 THC(tetrahy drocannabinol)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마초에는 이런 THC 성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CBD(Cannabidiol)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 성분이 아동의 뇌전증(예전 명칭으로 간질)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입니다.

물론 대마는 기호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마약류의 일종입니다. 그렇기에 대마는 규제의 대상이 되어오기만 했었는데, 뜻밖의 의학적 효과가 입증이 된 것이죠. 이를 허가해야 말아야 하나는 논란이 세계 각국에서 일었고, 일부 국가는 의료용으로 대마 자체를 흡연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아예 대마 자체를 합법화하는 방향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국내는 좀 달랐습니다.

환자 권리와 오남용 방지 사이의 줄타기

앞서 말했던 커피의 비유를 빌리자면, 한국에서는 일종의 ‘디카페인’ 커피만 허용을 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의료 목적으로서의 대마 이용 전면 허가했다간 대마초에 과량으로 함유된 THC 등으로 인해 의존성이 생길 수 있으니, 아예 CBD나 여타의 의학적으로 유효한 성분만을 정제한 공인된 의약품만 허용을 한 것입니다. 오남용의 가능성으로 대마를 전면금지했던 입장에서는 한 발 물러선 것이지만, 오남용 위험성에 더 무게를 둔 것입니다.

그렇게 허가된 것이 총 5가지 제품으로, MARINOL(성분명 Dronabinol), CESAMET (성분명 Nabilone), CANEMES(성분명 Nabilone), Sativex(성분명 THC, CBD), Epidiolex(성분명 CBD)가 오는 3월 12일부터 이용 가능한 의료용 대마의 전부입니다. 의료용 대마초 합법화를 두고, 대마초를 허용했다 한국이 마약국가가 된다는 일부의 주장이 무척이나 허망한 이유죠.

문제는 환자단체가 이런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는 지난 12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런 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대마 성분을 이용해서 만든 다양한 제품이 있는데, 딱 5개의 제품을 한국희귀의약품센터에서만 공급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는 것이죠. 이에 대해 식약처는 2월 21일 열린 정책설명회에서 “해외 의약품 허가기관에서 효능과 안전성 등을 입증해 허가된 마약류 의약품은 모두 신청이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현재는 4개뿐이지만, 추가 신청을 통해 충분히 다른 제품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는 의료용 대마 허용을 최소화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의료용 대마 규제, 완화될까 강화될까

현재 의료용 대마의 의학적 근거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닙니다. 몇몇 특수한 질환에 한정해서, 뾰족한 치료제가 없는 경우에 대안적으로 고려해 볼 정도의 가치는 있는 수준이죠. 앞서 얘기한 간질에 CBD가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약물저항성 뇌전증(drug-resistant epilepsy, DRE)에 대해서 보조적인 요법으로 사용했을 때 유의미한 것 같다는 연구가 나온 것이지 이를 단독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습니 다.

이런 대마 성분 의약품의 제한적인 장점에 비해, 마약류에 대한 위험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대검찰청의 2017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5년도는 마약류사범이 1만1916명이었으나 2017년도에는 1만4123명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나 그 원인을 인터넷·SNS라는 신종 유통채널로 꼽았죠. 기존에 마약 전과가 있는 마약류 사범뿐만 아니라, 마약을 접한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도 국내외 마약류 공급자들과 쉽게 연락을 주고 받으며 마약류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국내 환경을 감안하면, 오남용 가능성보다 환자의 치료권리가 더 우선시되긴 힘들 것으로 판단됩니다. 물론 대마 자체가 마약으로서 규제되어야 하느냐는 문제도 논쟁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현행법상으로는 ‘디카페인 커피’가 최선이라는 것이죠. 게다가 최근의 불법 향정신성의약품 사용(소위 ‘물뽕’) 논란을 감안하면, 규제가 더 심해질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약물 저항성 뇌전증에도 적용 가능한 새로운 신약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위태위태한 대안적 치료법에 기대는 상황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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