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년 과학 장비를 짊어지고 안데스를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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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과학 장비를 짊어지고 안데스를 오르다
  • 탁재형
  • 승인 2019.03.1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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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재형의 여행 에세이] ② 등산으로 과학지식을 얻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

 

1786년,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몽블랑이 그 정상을 인간들에게 내어준 이후, 알프스는 더 이상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 전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험준한 봉우리들이 차츰 기지(旣知)의 세계로 편입되었고, 알프스 너머 신대륙의 고산지대로 눈을 돌리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 초상화. Portrait by Joseph Karl Stieler (1843)

1802년 6월 24일, 한 떼의 유럽인들이 에콰도르 중부의 산등성이를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이 산의 이름은 침보라소(Chimborazo). 높이는 해발 6,268m로 당시로서는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해발 4,700m 지점에서 원주민 포터들이 더 이상 오르기를 거부하고 내려가 버렸기에, 그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쇳덩이-당시로서는 최신식의 과학 측정기구-들을 직접 나누어 지고 점점 좁아지는 능선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었다. 이들을 이끄는 것은 프로이센 출신의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 남작(1769-1859)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그것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선대의 유산으로 무장한 그는, 자연의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남아메리카를 탐험하기 위해 3년 전 대서양을 건너왔다. 그리고 이 등반은 안데스 산맥을 형성시킨 힘이 화산활동이라고 믿는 그에게 꼭 필요한 증거수집의 일환이었다. 물론 성공했을 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본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질 터였다.

처음 길을 나설 때만 해도, 넉넉히 쳐준 급료 탓에 노새를 끌고 온 몰이꾼이며 짐을 나눠 진 포터들로 일행은 북적였다. 하지만 해발 4천m가 넘어가자, 구름이 몰려들어 눈이 오기 시작했고 기온은 뚝 떨어졌다. 하얗게 빛나던 봉우리는 안개에 휩싸여 자취를 감췄다. 원주민 일행이 모든 짐을 내팽개치고 내려가 버린 것은 이 시점이었다. 자신들도 포기하고 내려갈 법도 했지만, 훔볼트 일행은 이미 오리노코 강 유역의 정글지대와 안데스의 가파른 화산들을 극복해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한 장의 지도로 정리해 체계화 하려는 과학적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망원경, 수은이 든 유리관으로 되어 있는 기압계와 온도계, 구리로 된 비등점계(물이 끓는 온도를 측정하기 위한 도구), 그리고 각종 측량도구들이 들어있는 궤짝을 나누어 멘 일행은 정상부를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그나마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던 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이내 이들은 네 발로 기어야만 했다. 능선의 폭이 5cm미터 정도로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구역질과 어지럼증, 안구의 충혈, 잇몸 출혈이 일행을 덮쳐왔다. 이전에도 해발 4천m가 넘어가면 이따금씩 찾아오는 증세였기에, 훔볼트는 막연히 이것이 고도에 따른 산소부족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좁디 좁은 칼날 능선 위에서, 현기증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증상이었다. 다리를 헛짚기라도 하면 그대로 죽음으로 이어질 터였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장갑도 없이 모직 코트를 걸쳤을 뿐인 이들의 발을 감싸고 있는 것은 바닥이 평평한 가죽신이었다. 눈이 다져져 얼음이 된 곳을 딛기라도 하면, 그대로 미끄러져 골짜기 바닥에 처박히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렇듯 죽음의 그림자가 도처에서 손짓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고도를 100m 높일 때마다 궤짝을 풀어헤쳐 각종 도구를 꺼내 고도와 기온을 재고, 하늘의 푸르른 정도를 기록하고, 암석과 식물을 채집했다. 이렇게 기록된 데이터는 나중에 ‘열대 지역의 고산도’라는 한 장의 그림으로 정리되어 유럽의 연구자들이 안데스의 자연환경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훔볼트가 남긴 침보라소 지도.

신발 밑창을 뚫고 들어온 날카로운 바위 때문에 발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가파른 능선과 사투를 벌이기를 몇 시간 여. 이들 앞의 지형이 눈에 띄게 완만해졌다. 정상부의 완만한 능선에 접어든 것이다. 날도 개기 시작해, 만년설에 덮인 봉우리가 눈부시게 빛났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침보라소의 정상부였고, 그 곳에 도착하면 사화산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산 꼭대기에 과연 분화구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안데스의 여신은 아직 인간에게 침보라소의 정상을 허락할 마음이 없었다. 훔볼트 일행 앞에, 거대한 크레바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우회하려면 설사면을 따라 대체 어디까지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 내내 태양열을 받은 만년설이 불안정해져, 조그마한 충격으로도 눈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시간대였다. 훔볼트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기압계와 측량도구를 꺼냈다. 그리고 추위에 곱은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여, 자신들이 있는 위치와 정상부의 고도를 쟀다. 이들이 도달한 곳의 높이는 5,917m. 그 후로 50년이 지나도록 깨어지지 않은, 인류가 올라가 본 가장 높은 지점의 기록이었다. 훔볼트 일행은 알 길이 없었겠지만, 침보라소의 정상에 사람의 발자국이 닿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63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알프스와 안데스를 잇는, 등산의 역사를 바꾼 천재 산악인의 출현을.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탁재형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이자 작가. 14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해외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다. 2013년부터 여행부문 1위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다. 전 세계의 술 이야기를 담은 <스피릿 로드>와 여행 에세이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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