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BC리그, 프로구단 없는 도시에서 '지역의 동반자'가 되다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9.03.12 13: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로야구는 ‘메이저’와 ‘마이너’로 나뉜다. 프로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에선 메이저리그 구단 산하에 7개 마이너리그 팀이 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선 1군과 2군 리그가 별도 운영된다. 차이는 있다. 미국 마이너리그 구단은 메이저리그의 소유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2군은 독립된 구단이 아니며, 모든 선수는 KBO에 등록돼 있다.

그리고 메이저도 마이너도 아닌 별도의 리그가 있다. 이른바 독립 리그다. 정규 리그(Organized Baseball)와 별도 협약 관계 없이 자체적으로 구단을 운영한다. 미국에선 1993년 설립된 프론티어리그를 비롯해 모두 8개의 독립리그가 운영 중이다. 일본에도 2005년 시코쿠아일랜드리그를 시작으로 네 개의 독립리그가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하나는 2010년 설립된 ‘일본여자프로야구’다.

마이너리그, 혹은 2군에 대해 “눈물젖은 빵을 씹는다”는 표현이 있다. 프로야구의 연봉 구조는 피라미드형이다. 2019년 KBO리그 평균 연봉은 1억5026만원, 최고 연봉은 롯데 이대호의 25억원이었다. 하지만 중앙값 연봉은 5500만원에 불과했다. 2군에는 최저 연봉(2700만원)만 받고 뛰는 선수가 많다. 독립리그는 더 열악하다. 미국에서 독립리그의 시작은 1936년 설립된 캐롤라이나리그다. 이 리그는 첫 시즌을 끝으로 해산했다. 이후 무려 30개의 독립리그가 생겨났다 소멸했다. 일본에서도 지금까지 세 개의 독립리그가 문을 닫았다.

한국에선 2011년 고양 원더스가 최초의 독립 구단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무리한 투자로 2014년 9월 11일 해산했다. 지금은 KIBA 드림리그와 경기도챌린지리그 두 곳이 운영 중이다. 미국과 일본의 독립리그가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면, 한국에선 야구 아카데미 성격이 짙다. 프로의 부름을 받지 못했거나, 탈락한 선수들이 회비를 납부하면서 야구를 한다. 그래서 독립리그의 존속 가능성에는 의문 부호가 찍히기도 한다.

베이스볼챌린지리그(BC리그)는 후쿠시마, 이바라키 등 10개 현을 연고지로 하는 일본의 독립리그다. 2007년 4개 구단 체제로 출범해 지금은 10개 구단 체제다. 출범 이후 매년 일본프로야구(NPB) 드래프트에서 지명선수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BC리그는 2월 26일부터 이틀 간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한국 선수들을 대상으로 트라이아웃을 개최했다. 트라이아웃에서 무라야마 데쓰지 리그 대표이사를 만났다. 그는 광고회사 덴쓰 동일본에서 지역 프로스포츠 마케팅 기획을 한 뒤 2006년 7월 주식회사 재팬베이스볼마케팅을 설립하며 BC리그를 출범시켰다. 그에게 일본 독립리그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일본 야구 전문 칼럼니스트 서영원씨가 맡았다.

일본 BC리그의 한국 트라이아웃

 

-한국 야구팬에게 BC리그를 소개한다면.

“2007년에 4개 구단으로 시작해 올해로 11개 구단이 됐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생겨난 독립리그다. 팀 수는 지속적으로 확장돼 왔다. NPB 구단이 없는 지역을 기반으로 선수, 구단, 팬 모두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 한국 독립리그는 프로 도전을 위한 아카데미 성격이 짙다. 반면 일본은 수익을 실현하고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시스템이다. 리그 사무국은 어떤 준비를 하나.

“우리 리그 역시 소속 선수들이 더 높은 곳으로 진출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선수들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비공식전이지만 요미우리, 라쿠텐 3군과 교류전을 계속하고 있다. 선수 노출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구단에게는 여러 조언을 한다. 지역과 동반자가 돼 구단 운영이 수익성을 갖춘 모델이 되길 바란다. 팬들께는 ‘동반자’라는 느낌을 드리고 싶다. BC리그의 야구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됐으면 좋겠다. 스폰서 등 협력 관계도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와 일치하는지를 우선 고려한다.”

- 선수 육성은 어떻게 하나.

“심판은 NPB로부터 파견받는다. NPB와 같은 스트라이크 존을 적용하고 있다.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에서 적응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게 스트라이크 존이다. 우리 리그는 선수 스스로가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26세가 되면 은퇴해야 하는 룰도 이에 포함된다. 그러나 선수를 NPB에 보내는 게 우리 리그의 본질은 아니다.”

- 일반적으로 스포츠에서 스폰서는 돈과 현물을 제공한다. BC리그에서는 리쿠르팅기업과 ‘세컨드 커리어 파트너십’을 시작했다. 은퇴 뒤 선수의 진로 결정을 서포트하는 취지가 신선하다.

“BC리그에서는 매년 전체 선수의 40%가 새로 입단하고 또 퇴단한다. 선수들에게 BC리그가 잠시 거쳐가는 곳 이상의 인연이 됐으면 한다. 선수는 일단 리그에 소속돼 경기를 치르면 전력으로 야구에 집중해야 한다. 선수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고민하기 어렵다. 이런 부분을 리그 차원에서 돕는 것이다.”

- 심장제새동기(AED) 보급을 위한 AED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모든 선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하고 매년 AED 관련 매치데이를 치른다. 어느 날 리그 사무국으로 편지 한 통이 왔다. 니가타현의 한 어머니가 보낸 편지였다. 어린 아들이 야구 경기를 앞두고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이었다. 어머니는 지역의 BC리그 구단을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일이 더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연고지 팬들에 공헌하기 위해 AED를 보급하고, 사용법을 알리려 한다. 리그가 팬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가 하나 더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4개 구단으로 시작해 11개 구단으로 늘어났다. 규모가 커지면 경영이 부실한 구단이 생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리그에선 어떤 대비를 하고 있다.

“리그 가입 조건이 있다. 1억엔 전후의 자본금과 2천석 이상 야간 경기가 가능한 구장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부분부터 튼실히 만들어 가려한다. 물론 걱정스러운 점들도 있다. 리그의 운영 철학과 노하우를 구단과 공유하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구단들과 함께 움직이려 한다. 각자의 장점이 부각돼야 다른 구단과도 상생할 수 있다. 리그의 기본 철학은 팬을 모아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스폰서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선순환이 이뤄지면 구단 운영에도 힘이 생긴다.”

무라야마 데쓰지 일본 BC리그 대표

- 스포츠리그에는 좋은 선수와 좋은 경기도 중요하지만 행정과 마케팅 전문가도 필요하다. BC리그는 이 분야 인재 육성에 적극적이라고 알고 있다. 스포츠 행정 분야에서 일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나.

“리그가 가진 가치를 구성원과 팬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진심을 다해 서포트할 수 있는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포츠를 사랑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배우려는 자세도 중요하다.”

- 한국에서 야구를 하는 어린이는 줄어들고 있다.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야구의 미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한국의 사정은 사실 잘 모른다. 일본 야구는 최상위의 국가대표팀부터 프로야구, 대학야구, 고교야구, 중학야구와 초등야구라는 단계가 있다. 각 단계 사이에는 갭이 존재한다. 상위에서 하위로 좋은 것들이 전해질 수 있는 교류 매개체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선수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훈련 방법 같은 노하우다. 교류가 활발해지만 어린이들이 조금 더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트라이아웃에선 어떤 선수를 뽑고 싶나.

“리그와 팀, 그리고 팬을 생각하며 뛰는 선수가 왔으면 좋겠다. 이 모든 요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경기 직전까지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자세가 준비된 선수다. 이런 선수의 플레이에서 팬들은 기쁨을 느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