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는 '공화共和'를 어떻게 이해하고 '민주공화국'이라 칭했나

  • 기자명 이영석
  • 기사승인 2019.03.1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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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에서 ‘공화주의’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강조하고 또 논의하는 경우가 잦다. 3.1운동 100주년과 관련해 임시정부 헌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 헌법 강령은 대한민국의 정체를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이로 보아 당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공화주의’ 이념이 퍼져 있었고, 오늘날 한국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공화주의 정신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948년 제헌헌법 1조에서도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민주’와 ‘공화’라는 언어가 연결된 것이다. 그렇다면, 임시정부 헌법초안을 기초한 당시 독립지사들은 ‘공화’라는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까? 이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공화정(공화국)과 ‘공화주의’를 나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이들 개념어의 어원과 동양에서 번역과정을 검토해야 한다.

1948년에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제1공화국) 국민축하식.

흔히 공화국(공화정)은 ‘군주가 없는 국가’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한편, 공화주의(republicanism) 정치이론은 고대 로마적 전통에서 비롯했지만, 근대 여명기 마키아벨리를 거쳐 17, 18세기 영국 문필가들에 의해 재구성되었다. 이 정치제도가 공화주의 담론의 영향 아래 새롭게 부활한 것은 미국 독립 이후의 일이다. 미국의 정치제도는 공화주의 영향을 받아 분명 고대 로마의 정체政體(정부형태)를 재현한 것이다. 가끔 나는 농담조로 미국의 헌정憲政이 사실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키아벨리 이후 근대 정치사상사에서 공화주의는 무엇을 핵심으로 하는가. 그것은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시민 개인의 권리를 넘어 公民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virtus)의 함양을 강조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다. 개인의 이해관계보다는 공동체의 일(주로 정치와 시민군)에 헌신함으로써 자아를 실현하고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화국의 특징은 ‘혼합정체混合政體, 시민군제(militia), 토지 균분제均分制’로 나타난다.

원래 로마 공화정을 가리키는 라틴어 ‘res publica’는 ‘공공의 것’을 뜻한다. 크롬웰시대의 정체政體를 ‘Commonwealth’로 불렀던 것도 같은 의미다. 국가는 공공의 것이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적극적 참여와 헌신을 시민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설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공화정의 로마적 전통은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혼합정체‘가 바로 그것이다. 폴리비우스는 로마 정치를 예찬하면서,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군주정·귀족정·민주정의 장점을 가졌다고 기술한다. 즉 군주의 ‘명령’, 귀족의 ‘권위’, 민주정의 ‘자유’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집정관의 명령권, 귀족으로 구성된 원로원의 위상, 그리고 민회와 호민관을 통한 평민 권익보호와 자유를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혼합정체를 단순화하면, 귀족과 평민에 관련된 두 정치제도를 수평적으로 연결한 것이다. 키케로의 표현을 빌리면, 공화정은 ‘계급의 화합和合’(concordia ordinum)이다. 로마 공화정은 원로원-집정관으로 이어지는 제도를 통해 귀족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고, 민회-호민관으로 이어지는 제도에서 평민의 이해를 수렴했다. 그리고 이 두 제도가 서로 견제하면서도 병존하는 전통을 견지한 것이다(집정관의 명령권 imperium과 호민관의 거부권 veto, 둘 사이의 상호견제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로마적 전통이 근대 대의제도와 연결될 경우, ‘공공의 것’에 대한 공민으로서의 직접 참여라는 공화정의 근본정신은 변질될 수밖에 없다. 공화정과 대의정치는 근대 정치 기획에서 서로 불가피하게 접목되었지만, 그만큼 상충되는 특징을 지녔던 것이다.

<카테리나(오른쪽)를 추궁하는 키케로>. 이탈리아 화가 체사레 마카리,1889년 프레스코화

동아시아에서 이 개념어는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19세기 말에 등장한 ‘공화共和’라는 이자성어二字成語는 특이하게도 일본이 아니라 중국에서 먼저 사용된 번역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번역어의 어원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죽서기년竹書紀年>의 기록과 관련된다. ‘共’ 지방의 제후 ‘和’가 국왕을 대신해 정치를 한 고서古事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기史記> ‘주周본기’의 기록과 관련된다. 주대周代에 여왕厲王이 쫓겨난 후에 주정공周定公과 소목공召穆公이 함께 정사를 맡았다는 고사, 즉 ‘주소공화周召共和’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견해다. 두 고사 모두 한편으로는 ‘왕이 없는 정치’를 가리키면서, 그와 동시에 [계급의] 화합 의미가 강하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문제는 한자어의 특성상 ‘共和’라는 말의 의미가 키케로의 언명인 ‘계급의 화합’(concordia ordinum)으로 인식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 res publica나 republicanism을 ‘공화정’ ‘공화주의’라고 번역한 중국 지식인들은 아마도 ‘왕이 없는 정치’ 또는 ‘여러 신분의 화합’이라는 의미로 이해했을 것 같다. 근대국가 수립에서 신분 계급의 차별 없이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열망으로 연결되지 않았을까. 1910년대 이 말을 썼던 한국 지식인들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했고, 이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깊이 따져볼 일이다. 임시정부 헌법은 향후 대한민국의 政體에 관한 한 미국식 제도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왕이 없는 정치’와 직결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는 ‘공화정’을 구현하려 했다고 본다. 그러나 요즘 강조하는 공적 헌신과 시민적 덕목(virtus)의 의미는 약하지 않았을까? 어디까지나 추론에 지나지 않지만.

이영석 팩트체커는 서양사학자로 광주대 명예교수다. 저서로 『영국 제국의 초상』(2009), 『공장의 역사』(2012), 『지식인과 사회』(2014),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들』(2015), 『영국사 깊이 읽기』(2016), 『삶으로서의 역사』(2017) 등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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