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털사이트 뉴스에 달린 댓글이다. ‘야채'(野菜)’가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순 우리말인 ‘채소’를 쓰자는 것인데, 이 댓글에는 60개의 답글이 달렸고 1천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이 같은 주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주요 언론에 기고한 글도 있다.
먼저 댓글에 나온 채소-순수 우리말 주장은 틀렸다. 채소는 菜蔬라는 한자어다. 채소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은 ‘남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채소(菜蔬)는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 주로 그 잎이나 줄기, 열매 따위를 식용한다. 보리나 밀 따위의 곡류는 제외한다’는 뜻의 말이고, 야채(野菜)는 ‘들에서 자라나는 나물’, ‘‘채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채소는 ‘일부러 기른’의 의미가 강하고, 야채는 ‘들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난’의 의미가 강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어의 야채를 뜻하는 ‘야사이(やさい)’가 한국어의 야채와 같은 한자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야채는 일본식 한자어가 아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야채의 어원 자료가 없어서 판단을 보류하고 있고, 일본식 한자어로 볼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려워 공식적으로는 일본식 한자어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채소(菜蔬)’와 ‘야채(野菜)’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이전에 '야채'라는 단어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실록 55권 세종 14년 3월 1일 경신 1번째 기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 기간이 상당히 겹치는 한국의 역사에서 일제의 영향력을 전적으로 없애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언어에서도 서양언어가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경우는 더욱 그렇다. ‘철학’이라는 단어처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경우도 많다.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혹은 근거 없는 주장은 또 다른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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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훈 sinthegod@newstof.com 최근글보기프로듀서로 시작해 다양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시민을 위한 팩트체크 안내서>, <올바른 저널리즘 실천을 위한 언론인 안내서> 등의 공동필자였고, <고교독서평설>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KBS라디오, CBS라디오, TBS라디오 등의 팩트체크 코너에 출연했으며, 현재는 <열린라디오 YTN> 미디어비평 코너에 정기적으로 출연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