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천부경'을 논문 근거로 인용...사이비학회·과학자 '천태만상'

  • 기자명 김우재
  • 기사승인 2019.03.2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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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일보는 와셋 사태 이후에도, 중국의 ‘비트’라는 엉터리 학술대회에 참석한 서울대 38명을 포함한 471명의 학자들의 실태를 고발했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일자리 잡기가 어느 곳보다 어려운 한국에서, 그렇게 골라 뽑힌 인재들이 학계에서 전통적으로 권위 있는 학회와 엉터리 학회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필자 역시 하루에 엉터리 학회로부터 10개가 넘는 이메일을 받고, 훈련된 연구자의 눈에 그런 이메일은 시작부터 끝까지 엉터리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순진한 연구자가 있어서, 한 두번 그런 학회나 학술지에 관여했더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하는 진지한 연구자라면, 한 두번의 방문 후에는 그만두었어야 정상이다. 연구자로 훈련받는 과정이 엉터리를 가려내는 방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에서 이미 교수나 연구원으로 대접받는 연구자들이, 엉터리 학회를 구별조차 할 수 없다면, 그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연구자로 훈련받지도 못했고, 연구자로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도 없고, 따라서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엉터리는 사방에 있다: 김현원과 응용미약에너지학회

얼마전 뉴스타파는 엉터리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를 이용해 가짜 약 등을 판매하는 현직 대학 교수와 연구자들을 고발했다. 여기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재직 중인 김현원 교수로, 그는 ‘기적의 물 박사’로 통하는 인물이다(그의 사기행각은 2007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동아는 심지어 그를 한국판 ‘로렌조 오일’로 소개했다). 뉴스타파는 김현원 교수가 엉터리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을 가지고, 방송에 출현해 자신의 아내가 경영하는 회사의 제품인 미네랄수를 팔고, 이를 만병통치약인냥 선전했으며, 이미 한번 방송에 들통이난 적이 있음을 고발한다.

 

김현원은 단지 엉터리 학술지에 논문을 출판하고, 이를 이용해 물을 팔기만 하는게 아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물의 기억력’이라는 주제를 아주 치밀하게 과학으로 포장해 판다. ‘물의 기억력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과학과 의학’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첫 구절을 이렇게 적고 있다.

“과학은 항상 진리를 추구하나 과학의 진리추구는 그 시대의 패러다임 안에서 진행되는 한계를 보인다. 괴델은 어떤 명제가 참인지 여부를 그 패러다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음을 수학적으로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새로운 명제의 진위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패러다임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과학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구절은, 그가 나름대로 열심히 과학철학을 공부해왔음을 드러낸다. 과학철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는 토마스 쿤이라는 과학사가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제시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차용해, 자신의 이론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따라서 기존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현재의 과학자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지 모른다는 식으로, 자기정당화를 하고 있다. 이후 이 논문은 김현원 교수의 입맛에 맞는 몇 가지 사례들을 입맛에 맞게 가져와, 물의 3D파동이 물의 기억력의 원천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나아가 자신의 이론을 물질을 넘어서는 뉴패러다임 과학으로 포장한다. 심지어, 진지한 학문연구자라면 하지 않았을, 위키피디아를 참고문헌에 넣은 이 논문이 출판된 학술지는 '응용미약에너지학회지' 라는 곳이다.

 

그는 이 학회에서 2013년부터 활동해 왔으며, 학회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학회는 1996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한, 전통을 지닌 학회다. 그런 학회에서 김현원은 Won H. Kim, Hyun-Won Kim, 김현원 세 이름을 사용하며 논문을 발표해왔다.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교수들을 전임회장으로 보유한 이 학회를 엉터리라고 치부한다면, 한국 대부분의 학회를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김현원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이 학회의 학회장을 역임했고,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김현원이 발표한 대부분의 논문은 미네랄환원수의 치유력이나 물의 기억력 등에 관한 것으로, 뉴스타파의 보도에 의하면 그 중 상당수는 와셋/오믹스 등에 자기표절로도 발표된 영어논문이다.

 

<응용미약에너지학회>에서 발행간 논문 리스트.

 

김현원의 논문이 심사된 과정은 학회내부의 자료이므로 알 수 없고, 다만 아직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인증을 받지 못한 이 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이 학술지에서 학문적 진지함을 찾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홍영선 볶은곡식의 인체 회전전자파 전사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논문은, 홍영선 볶은곡식을 만든 제조사의 대표가 자신이 만든 식품의 효능을 검증하는 논문의 저자로 등록되어 있다. 이건 누가봐도 분명한 이해상충에 해당한다. 논문의 이해상충이란 해당 학술논문이 어떤 기업이나 정부 혹은 이익단체로부터 사주받거나,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경우, 이를 기술해야 한다는 학계의 오래된 윤리다. 왜냐하면 과학적 탐구는 여러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인 진리만을 기술해야 한다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논문은 홍영선 볶은곡식의 효능을 제조사 대표가 다른 과학자와 함께 증명하면서도, 전혀 이해상충에 대한 기재를 하지 않았다.

 

'홍영선 볶은곡식의 인체 회전전자파 전사에 관한 연구' 논문 첫 페이지. 논문 초록에 이해상충에 대한 얘기를 전혀 싣지 않았다.

 

심지어, 이 논문은 단 세 쪽자리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래프가 등장하는가 하면, 홍영선 대표가 만든 은줄 목걸이, 수정 발찌, 건강떡, 볶은 곡식 등을 단 두명의 피험자인 하정자, 최재벽에게 시험했을 뿐이다. 이건 누가 봐도 건강식품 혹은 건강제품을 만들어 파는 제조사의 대표를 노골적으로 돕기 위해 급조된 논문이다. 논문의 참고문헌은 단 두 개 뿐이며, 이 논문에 근거이론이라고 사용된 것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천부경 이론이다. 이런 논문이 진지하게 학술지에 과학적 검증으로 출판된다는 건 불가능하다. 

 

논문의 제1저자인 오흥국은 아주대학교의 명예교수다. 천부경 이론으로 건강식품보조제 효능을 검증하는 이 노학자는, 현재 응용미약에너지학회 논문의 상당수를 혼자 작성하고 있다. 그는 2018년에만 오흥국 또는 Hung-Kuk Oh라는 이름으로 열 편이 넘는 논문을 게재했다. 더 흥미로운건, 이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학자의 숫자가 몇 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학회는 이미 김현원과 그 일당에 장악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처럼 어이없게 유지되는 학회가 한국에 몇 개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에서 학자라 불리는 사람들과, 학회라는 단체를 모두 의심해봐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홍영선 볶은곡식의 인체 회전전자파 전사에 관한 연구'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부경 이론을 근거로 인용했다.

 

단지 물을 파는게 아니다: 김현원과 창조과학회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현원의 자기표절 논문 중, 내 눈길을 잡아 끈 제목은 ‘태초에 빛이 있었다 Light in the beginning’이라는 논문이었다. 물의 기억력에 관한 논문들과 비슷한 구조를 지닌 -위키피디아를 참고문헌으로 단다던가- 이 논문의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논문은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논문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영화나 쇼의 제목을 논문제목으로 차용하는 과학자들의 엉뚱함은 자주 학계에서 용인되곤 한다. 문제는 기독교의 성경구절로 김현원 교수가 말하고 싶은 의도다. 여기서 창조과학을 떠올리는 사람은, 한국의 사이비 과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구글에 김현원과 창조과학으로 검색을 하자마자, 그가 이미 오랫동안 창조과학회에 몸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창조과학회는 미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으로 전파된 사이비 과학의 한 조류로, 얼마전에는 이 학회에서 임원까지 역임한 박성진 포스텍 교수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후보로 거론되어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브릭에 창조과학연속기고를 기획해 연재한 적이 있다. 김현원이 창조과학회에서 활동했다는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개인적 신앙 혹은 오컬트로서의 창조과학과 사이비과학의 존재를 용인한다. 물론 한국 과학의 성지라는 대전 카이스트에 창조과학회의 본진이 있다는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종의 오컬트 집단이 자신들이 좋아 함께 모여 이상한 학문을 만들어낸다는데, 그걸 굳이 막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이 단순한 취미활동인 사적 영역을 넘어, 교과서나 식품 판매 등의 공적 영역으로 넘어오는 순간, 이들을 막을 법적 혹은 정책적 제재방법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물론, 법은 문화적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한국에서 창조과학회와 같은 오컬트 학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중요한 공직자 후보로 내면서도, 청와대가 아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건 한국의 과학에 대한 인식 수준이 그 정도라는 반증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학회들이 난립하고 일반인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사기를 당한 사람이 수천 명이 넘어서야만, 뉴스에 등장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전인창조과학회 홈페이지 캡처

김현원은 뉴스타파 보도 이후 잠시 종적을 감췄지만, 그는 이미 한번 언론에 의해 들통이 났음에도 대학에서 퇴출되지 않고, 다시 화려하게 복귀했으며,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이미 그는 ‘전인창조과학회’라는 정체불명의 오컬트 학회와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하며, 물의 기억력이라는 그의 사이비 이론과, 기독교 신앙을 표출하는 창조과학회의 융합을 추구하고 있다. 전인창조과학회의 공동학술대회 링크를 찾아가, 학회사진이라고 걸어 놓은 천태만상을 보면, 한국에선 이미 학자와 약장수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탄식이 새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런 학회에 참여하고 있는 교수가 수 천명이 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채,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김현원 교수 같은 사이비 학자들이, 식약처나 연구재단 등의 감시가 소홀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단지 자신의 교수직이나 연구원직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를 넘어 사업적 이익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계는 물론 정부에서조차 이를 단속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학계는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조차 모호한, 학문을 빙자한 사기꾼이 당당하게 자신의 엉터리 학문을 선전하고 다니면서도, 법의 제제나 학계의 자정작용을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만약 누군가 이런 엉터리 학자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런 방법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학계의 문제는 단지 이런 엉터리 학자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계는 오히려 극도로 자본주의화된 학술시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으며, 이런 엉터리 학회는 그런 구조적 모순의 부차적 파생물일 뿐이다.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기는 하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만나는 모든 한국 학자, 특히 교수들을 의심하라’. 의심은 과학의 출발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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