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마블>이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라고?

  • 기자명 박현우
  • 기사승인 2019.03.26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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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은 개봉하기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가장 논쟁거리였던 건 배우의 외모였다. 캡틴 마블을 연기하기로 되어있는 건 브리 라슨이었는데, 많은 대중-특히 남성들은 브리 라슨의 외모를 견디지 못했다. 그들은 브리 라슨을 ‘사각턱'이라 놀리고, 자칭 객관적인 전문 영화 리뷰어-유튜버들은 브리 라슨의 머리를 전기(?)가 관통하는 사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브리 라슨의 외모를 조롱했다.

<캡틴 마블> 한 장면

어떻게든 본인이 외모 때문에 브리 라슨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했던 남성들은 브리 라슨의 과거 행적을 소환했다. 스탠 리를 추모할 때 예의가 없었다는 거다. 브리 라슨은 페미니스트로서, 한 명의 여성으로서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성추행 혐의가 있는 스탠 리를 추모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태도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는데, 납득이 전혀 안되는 행동은 아니다.

또, 남성들은 브리 라슨이 페미니스트라는 것도 지적했다. 이 글의 주제가 페미니즘이기는 하지만 브리 라슨이 페미니스트인지 여부는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고 다룰 생각도 없다. 다만, 흥미로운 지점을 지적하고는 싶다. <아쿠아맨>의 메라를 연기한 앰버 허드도 꽤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였는데, 누구도 앰버 허드의 이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앰버 허드는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줬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들은 브리 라슨과 함께 캡틴 마블의 후보로 올랐던 캐서린 위닉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캐서린 위닉은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로서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캐서린 위닉은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미안하지만(사실 안 미안하다), 캐서린 위닉도 페미니스트다. 그는 히스토리 채널의 오리지널 드라마 <바이킹스>에서 라게르타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인스타그램에 “라게르타에게는 모든 소녀와 여성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라면서 동영상 하나를 게시했다. 하지만 캐서린 위닉이 캡틴 마블을 연기했다면 남성들은 그가 페미니스트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을 거다. 앰버 허드를 지적하지 않은 것처럼.

 
 
 
 
 
 
 
 
 
 
 
 
 

Lagertha has a message for all the girls and women out there... #TimesUp @kristacreative

Katheryn Winnick(@katherynwinnick)님의 공유 게시물님, 

 

브리 라슨과 별개로, <캡틴 마블>은 페미니즘 영화라는 이유로 불매 운동이 일기도 했고, 별점 테러의 대상이 됐다. 비단 한국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니다. 미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처럼 브리 라슨의 외모를 가지고 조롱했는지는 직접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페미니즘 영화라는 이유로 별점 테러가 이루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캡틴 마블>을 보고는 싶은데 차마 페미니즘 영화는 볼 수 없었던 남성들과 이미 <캡틴 마블>을 봤는데 자신의 소비를 어떻게는 정의(?)롭게 포장하고 싶어했던 남성들은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했다. 정말 그럴까? 정말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가 아닐까? 이 글은 이런 주장에서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다. 이제 본론으로 가자. 스포일러 주의하시라.

<캡틴 마블> 같은 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의 정체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규정해주는 장치는 빌런이다. 비단 히어로 영화에서만 이런 건 아니다. 대부분의 영화 주인공은 장애물을 통해 성장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비범한 인물이 되고, 그렇게 캐릭터가 완성된다. <배트맨 비긴즈>의 배트맨은 스케어크로우 앞에선 스케어크로우와 달리 공포를 제어할 줄 알고 공포를 보다 선하게 쓰는 캐릭터이지만, 라스 알 굴 앞에서는 아무리 악하더라도 범죄자를 살인하지 않는  불살주의자의 정체성이 강화된다. 이런 배트맨은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를 만나면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 되고,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베인 앞에서도 새로운 인물이 된다.

<캡틴 마블>의 빌런은 욘 로그다. 욘 로그는 가스라이팅의 화신이다. 그는 캡틴 마블-캐럴 댄버스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억누르면서 진정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고 그는 반복해서 여성들이 살아오면서 줄곧 듣는 말을 캡틴 마블에게 한다. “감정적으로 굴지마" 여성들만 등장하는 최근 나이키의 광고 <Dream Crazier>에도 같은 맥락이 등장한다. “우리가 감정을 보이면 사람들은 우리를 감정적이라고 합니다.”

욘 로그는 가스라이팅으로 여성을 억누르는 전형적인 남성을 상징한다.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감정적으로 굴지 말라’고 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판을 짠 뒤 그 룰 안에서 경쟁하자고 한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캡틴 마블과 욘 로그의 스파링을 보라. 욘 로그는 감정적으로 굴지 말라면서 포톤 블래스트를 쓰지 못하게 캡틴 마블에게 ‘충고'한다. 표면적으로는 충고지만, 캡틴 마블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억누른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영화의 막바지에 가서 캡틴 마블과 전투를 벌일 때도 자신의 실력만으로는 게임이 안될 걸 알기에 캡틴 마블에게 포톤 블래스트는 쓰지 말라면서 ‘진짜 싸움'을 통해 실력을 증명해보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유리할 거라 생각되는 판을 짠 뒤 실력을 증명해보라고 하는 치졸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캡틴 마블은 감정적으로(?) 포톤 블래스트를 쏴서 그를 가볍게 제압한 뒤 한 마디를 내뱉는데, 이 대사는 이 영화가 초반부터 쌓아오던 것을 완결짓는다. “나는 너한테 증명할 필요 없어.” 영화는 말한다. 여성은 남성에게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엠빅뉴스 유튜브 화면 캡처

가스라이팅하는 빌런을 통해 여성의 삶을 대변한 히어로 영화가 <캡틴 마블>이 처음은 아니다. 넷플리스 오리지널 드라마 <제시카 존스>도 이 길을 걸었다. 첫 시즌의 빌런은 킬그레이브인데, 이 양반은 어떤 말을 하면 상대가 그 말을 진정으로 믿게 만들 수 있다. 킬그레이브는 가스라이팅의 화신으로서 제시카 존스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게 만들고 강간했는데, 제시카 존스와 같은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한 둘이 아니고, 모든 피해자는 여성이다.

한편, 이 영화의 주역은 남성이 아니다. 한 유튜버는 퓨리 국장의 과거가 나온다면서 캡틴 마블이 싫더라도 이 영화를 통해 그의 과거를 볼 수 있다면서 이 영화 나름의 의의를 주장했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역할은, 퓨리를 포함해 굉장히 미미하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구원 받는 존재이고 뭘 모르는 존재다. 반대로 여성은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남성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존재다.

비행선을 조종해 수많은 생명들을 살리는 것도 한 흑인 여성이다. 이 여성이 비행선을 몰게 되는 과정도 대단히 페미니즘적이다. 처음에 그 여성은 비행선을 몰지 않으려고 한다. 비행선을 조종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 대부분의 여성을 상징한다. 실력은 출중하지만, 육아를 위해 삶의 대부분을 포기한 여성들.

하지만 그는 결국 한 명의 개인으로서, 실력 좋은 파일럿으로서 비행선을 몰고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다. 그가 비행선을 몰았다고 그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이기적인 어머니가 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이나 공장에 나가는 모든 블루 칼라 노동자-아버지들은 이기적인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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