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별 성격, 환단고기, 뇌트레이너...학문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거대한 사기'

  • 기자명 김우재
  • 기사승인 2019.04.0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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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묻는 것을 예라고 부를 정도로 (是禮也) 학문적으로도 완성된 인간이었지만, 제자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인격적 완성을 이룬 (是丘也) 인간이었다. 그런 그조차 미워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이비 군자인 향원(鄕原)이다. 맹자는 제자 만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라고 하셨다. '사이비는, 외모는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즉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며, 선량해 보이지만 실은 질이 좋지 못하다.' 공자가 사이비를 미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향원(鄕原)을 미워함은 그가 덕을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향원은 사이비한 것이며, 덕을 해친다. 공자 시대의 향원이란 시골 고을의 점잖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들은 별 학문적 성취도 없는 주제에 배운척, 어질고 점잖은 척 스스로를 위장하며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계층이다. 공자는 어줍게 학문을 배운 이들을 증오했고, 사회의 뿌리뽑아야할 악으로 점찍었다. 나는 그런 사이비한 향원이 현대에 들어와 급속히 증가했고, 그 숫자가 이미 제대로된 학자의 수에 육박한다고 생각한다. 지적인 사기는 사회의 건강함에 반드시 해가 되며, 그것이 공자가 말한 덕을 해친다는 것의 의미다. 공자의 미움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혈액형별 성격' 주제로 출판된 수십개의 석박사 논문

일상생활 자체가 바빠, 시간을 쪼개 공부할 시간이 없는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한국교육학술정보원 RISS (이후 '리스')는 남의 나라 웹사이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생활에 지치고 힘들어 색다른 웃음이 필요할 때나, 인생이라는 힘들고도 외로운 싸움을 견디기 위해 분노할 곳이 필요할 때, 이 곳을 들러보길 권한다. 리스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쌓아올려진 학문을 가장한 똥떵어리들이 가득 쌓여 있는 보관소다. 이건 학문적 수준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학문으로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종류의 쓰레기들이, 기생수처럼 늘어난 대학의 학위장사의 결과로 학문의 탈을 쓰고 유통되는 세기말적 징조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다.

아무리 혈액형별 성격이 국민과학 혹은 국민심리학으로 유통된다 하더라도, 학자라는 직군의 사람들이 그 아이들 장난 같은 짓거리에 맞장구를 쳐, 연구비를 받아 연구를 진행한다면 다들 미쳤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더 시시하고 유치하다. 자, 리스에서 '혈액형+성격'을 검색해보자.

'혈액혁+성격'으로 RISS에 검색한 결과

놀라선 안된다. 가장 먼저 검색되는 논문은 '○○○○○종합대학원대학교'의 박사학위 논문인데, 제목이 "혈액형, 성격특성, 인지양식, 인지적 특성 및 부모 양육태도가 유아의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 : 경기도 Y시를 중심으로"이다. 학위논문으로 검색되는 34건 중, 어떤 논문은 ○○대학교 대학원의 국내박사학위 논문으로 제목이 "혈액형별 성격특징 고정관념 내용분석 및 정신건강과의 관계"이다. 심지어 ○○대학교의 석사학위 논문 중에는 "성악 진로교육을 위한 혈액형 연구"도 있다. 이런 논문들이 실제로 심사를 통과해 학위를 주었다는 것도 미스테리하고 처참한 일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름이 좀 알려진 ○○대학교나 ○○대학교 외에 ○○○○○종합대학원대학교라는 정체불명의 대학을 클릭했을 때 나타났다.

혈액형, 기공, 사주, 동양사상 등이 혼재된 이 대학교의 학위논문들 제목 속에서, 아찔한 마음이 든 것이 나 뿐이 아니길 바란다. 이 곳의 논문들 대부분이 과학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대상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루는 사이비과학의 일종이며, 이미 2007년부터 10여년이 넘는 동안 227개의 학위가 수여된 것으로 보인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대학교의 웹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는 동시에 발견된다. 멀쩡한 웹사이트처럼 보이는 대학내부를 둘러보자. 먼저 총장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현 총장의 이름은 이○○, 그는 인사말을 통해, 뇌교육은 " 한국고유의 정신문화, 국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지구 경영을 위한 인류의 자연치유, 인성회복, 창조성계발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교육방법론"이라고 소개하며, "우리 대학원은 지구인정신, 전문성, 실천능력을 갖춘 홍익인간을 양성하여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구평화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한다.

어디선가 낯익은 그의 얼굴과 이름을 보고 검색해보니, 단월드라는 이름이 보인다. 단월드는 단학 선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단체로, 명상과 기체조 등을 바탕으로 회원을 모았으며, 정신교육의 목적으로 역사학에서 사이비로 취급되는 환단고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뇌호흡이라는 과학계에서 전혀 검증되지 방법으로 일종의 종교와 같은 형태로 퍼져나가 한 때 국학원을 설립하는 등 위세를 과시했던 단체다. 이 단체는 SBS <그것은 알고 싶다>에서 두 번이나 취재를 통해 비판했지만,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곳이며, 이 곳의 창립자가 바로 이○○ 총장이다.

나는 단월드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사람들까지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들이 대학원을 만들어 고급학위를 남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학위가 훗날 이들의 권위를 보증해주는 일종의 증표가 될까 우려한다. 이 대학의 웹사이트 아래를 보면 수많은 연구소가 링크되어 있고, 모두 겉으로는 진지한 학문연구의 장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 링크들을 클릭해 들어가면, 내용이 없는 정체불명의 연구소 웹사이트들만 확인된다. 예를 들어 뇌교육연구소는 학술논문이 있는 것처럼 메뉴를 만들어 놨지만, 로그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만들어 놨다. 두뇌과학연구소 웹사이트는 만들다 만 것처럼 보인다.

 

뇌교육연구소 홈페이지

 

사이비 과학으로 학문 생태계를 장악한 장사꾼들

내가 더 놀란 것은, 이 대학교의 교수가 원장을 맡고 있는 국학연구원의 '선도문화'라는 논문이 KCI에 등재지로 선정까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선도문화'라는 학술지는 환단고기 및 정감록 등을 진지한 학문의 소재로 사용해 논문을 양산하고 있으며, 아마도 이 대학교가 배출한 학위자들의 논문이 소비되는 장소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을 결코 무시해선 안된다. 그들은 단지 사이비과학과 사이비역사학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이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정도가 아니라, 치열하게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돈버는 법을 익힌 프로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트레이너라는 국가공인 민간자격증까지 만들어 시장을 넓히고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혈액형별 성격이나 환단고기 같은 사이비 학문을 교육하는 곳이, 뇌호흡이나 뇌교육 혹은 국학 등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사이비 과학을 포장해, 국가와 공인기관이 과학에 무지한 틈을 타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국가인증 자격증을 만들고, 학위를 수여하는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진 셈이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좀 더 슬픈 소식도 알려주고 싶다. 나는 다른 글에서 현재 나타나는 가짜 학회와 가짜 학술지의 문제는, 단지 외국 약탈적 학술지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학술생태계 전반에 퍼져버린 논문만능주의와 학위공장 시스템이 불러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이 가정이 맞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욱 자주 학계의 스캔들과 논문 조작, 학위 장사, 연구비를 둘러싼 더러운 학자들의 정치싸움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은 아마도 맞아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며칠전 듀크대학은 미국립보건성 NIH에서 받은 연구비 1000억원 정도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징계를 받았다. 연구자들이 짜고 계획서와 보고서의 데이터를 임의대로 조작했기 때문이다. 학문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의 아수라장으로 변한지 오래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부실학회 '오믹스'에 참석했다가 결국 낙마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홈페이지에 실린 이사장 프로필

나는 현재 이 대학의 이사장의 약력을 보고 하마터면 한국 학문에 대한 희망을 놓을 뻔 했다. 그는 연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경제학자이자, 전 과학기술처 차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을 역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사이비 과학을 양산하는 조직의 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서 학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가짜와 사이비를 구분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들을 무찌르기에는 우리가 너무 초라하고 나약하며, 그들을 피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만이 그나마 학자로 조용히 살아갈 수 있는 평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난처럼 혈액형별 성격 논문을 찾다가, 너무 거대한 한국 학문생태계의 그늘을 찾았다. 기쁘기보다는 억울하고 슬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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