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스카이캐슬' 입시컨설턴트가 암약하는 미국 대입시장 실태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9.04.03 10: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류층 부자와 스타 연예인 부모가 연루돼 최근 미국 사회를 뒤흔든 입시비리 사건. 연방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이 밝힌 내용을 보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부자 부모들이 명문대 입학을 보장한다는 입시컨설턴트에게 막대한 금액을 지불했다. 입시컨설턴트는 대학 스포츠팀 감독들에게 돈을 주면서 해당 학생들을 체육특기생으로 뽑아달라고 했다. 감독들은 체육특기생으로 뽑을 만한 실력이 안 되는 학생들을 선발했다.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격인 표준화된 시험(SAT, ACT)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해선 시험 성적을 조작했다. 감독관을 매수하고 ‘대리시험의 달인’으로 불리는 전문가로 하여금 시험을 보도록 해서 성적을 올렸다.

이번 사건은 일부 부유층의 비윤리적 행태와 더불어 미국 대학입시 제도의 몇가지 현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관련 기사: <‘미국판 스카이캐슬’ 입시컨설턴트 “761가족 부정입학 도왔다”,> <'미국판 스카이캐슬’엔 하버드 출신 ‘대리시험 달인’ 있었다>)

미국에도 입시컨설턴트가 활동하며 불법적 활동을 하는 것 역시 한국과 다르지 않다. 왼쪽부터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입시컨설턴트로 활동하며 대리시험을 본 마크 리델,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 입시컨설턴트 김주영역의 김서형, 미국 입시비리 총 설계자인 윌리엄 릭 싱어.

위험하지만 ‘확실한 합격’ 보장한 체육특기생 부정입학

검찰과 FBI가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붙인 작전명은 ‘오퍼레이션 바서티 블루스(Operation Varsity Blues)’였다. 대체로 대학이나 고등학교 스포츠팀을 일컫는 ‘바서티’와 관련한 작전이라는 의미였다.

명문대에 체육특기생으로 뽑히려면 공부는 기본이고 주요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을 정도로 해당 스포츠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 프린스턴대 입학처 부처장 출신의 한 입시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한다. “명문대학들은 고등학교 스포츠팀에서 활동했다는 것만 가지고는 점수를 주지 않는다. 대학 스포츠팀에 선발될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미국고교체육연맹(NFHS)에 따르면 2017-2018학년(한 학년은 대개 8월 중후반에 시작해 다음해 5월말, 6월초에 방학) 고등학교 스포츠팀에서 활동한 학생 숫자는 798만명 가량. 거의 800만명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 큰 대회에 출전해 상을 받을 정도가 아니면 체육특기생은 꿈꾸기 어렵다. 달리 보면 스포츠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명문대 진학이 그만큼 수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나온 걸 보면 취미로 즐길 정도 실력밖에 안 되거나 그마저도 안 되는 학생들이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입학한 뒤엔 크게 다쳐서 운동을 할 수 없다는 둥 구실을 대 팀에서 활동하지도 않았다. 고교 시절 스포츠팀에서 활약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고 대학 스포츠팀 감독을 돈으로 매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학 스포츠팀 감독이 특정 학생을 선발하고 싶다고 하면 학교 측을 설득해 충분히 합격시킬 수 있다. 검찰과 FBI의 소장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입학처는 스포츠팀 감독들마다 일정 숫자의 선수 선발권을 준다.”

고등학교 풋볼 선수로 활약하다가 하버드대에 합격한 한국계 학생의 사례를 다룬 기사 ‘체육특기생으로 대학 입학하기’를 보면 미국에서 명문대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선수를 선발하는 감독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알 수 있다.

 

기부입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에서 부모가 돈이 많으면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쉽다. 기부입학이 대표적이다. 거액을 기부해 학교에 건물을 지어주고 자녀를 입학시키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얼마를 내면 합격시켜준다고 노골적으로 광고하지 않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기부 과정에서 학부모와 학교 사이 암묵적 협약이 맺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딸이 명문사립대 USC(남가주대)에 합격했다고 트위터에 올린 래퍼 겸 프로듀서, 사업가 ‘닥터 드레(Dr. Dre, 본명 안드레 영)’.  그는 2013년 이 대학에 7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 사실이 다시 거론되자 그는 트위터에 올린 글을 지웠다. 공교롭게도 USC는 이번 입시비리 사건에 연루된 대학 중 한 곳이다.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학교 발전을 위해 거액을 기부한 것이지만 ‘돈으로 딸의 명문대 합격증을 산 게 아니냐’는 눈초리가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사회에 발을 디뎠다.

2002년 당시 이베이(eBay) 최고경영자였던 메그 휘트먼은 모교 프린스턴대에 3000만달러를 기부했다. 휘트먼의 두 아들은 이후 프린스턴대에 입학했다. 소송 때문에 2016년 8월 문을 닫은 가십 전문 인터넷매체 고커(gawker)의 과거 보도를 보면 휘트먼의 아들들은 재학 중 부를 과시하고 폭음을 하는 등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1999년 하버드대에 입학한 것도 부동산 재벌인 그의 아버지가 1998년 25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서약한 직후였다. 2006년 미국 부유층 자녀들이 명문대에 입학하는 과정을 파헤친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원제: The Price of Admission)>를 쓴 탐사보도언론 프로퍼블리카 대니얼 골든 기자는 학교에서 누구도 쿠슈너가 하버드대에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학교 성적도, SAT 점수도 하버드대에 가기엔 턱도 없이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며 다른 부문에서 특출함을 보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차라리 기부입학을 하지 그랬느냐’는 비난이 나오기도 한다. 한데 따져보면 수천만달러 규모의 막대한 기부금을 내고 학교의 ‘암묵적 혜택’을 받아 입학하는 것보다 체육특기생 부정 입학에 드는 금액이 훨씬 적다. 게다가 체육특기생은 거의 100% 합격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식. 왜 이번 비리가 발생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스티브 잡스도 고객으로 둔 입시컨설턴트 영향력

이번 사건으로 입시컨설턴트 업계도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부유층 부모들만 입시컨설턴트를 찾는 건 아니다. 입시컨설팅 시장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보도를 보면, 2005년부터 2018년 사이 입시컨설턴트 숫자는 4배로 증가했다. 시장조사회사 IBISWorld에 따르면 입시컨설팅 산업 매출 규모는 지난해 20억달러, 종사자 숫자는 4만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됐다. 컨설턴트들이 대학 선정부터 원서작성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받는 금액은 2000달러에서 1만달러 사이. 서비스 종류와 시간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 7만5000달러 이상을 받기도 한다는 걸 보면 개인차가 적지 않다.

학교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상담하는 진학지도교사 격의 카운슬러가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외부 입시컨설턴트를 찾는 건 상담받을 학생에 비해 학교 카운슬러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필자가 살고 있는 실리콘밸리 지역 오크그로브 고등학교(Oak Grove High School)의 경우 총 1800명을 넘는 학생들을 담당하는 카운슬러는 5명에 불과하다. 물론 각 학교 재정 형편에 따라 카운슬러를 더 고용할 수도, 덜 고용할 수도 있어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난다.

실리콘밸리 유명 인사들도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입시컨설턴트를 이용한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투자사로 불리는 클라이너퍼킨스(KP)의 스타 투자가인 존 도어(John Doerr)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번 입시 비리 사건의 중심에 있는 입시컨설턴트 윌리엄 릭 싱어의 고객이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클라이너퍼킨스 측은 “다른 많은 실리콘밸리 유명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통상적인 입시컨설팅 서비스를 받았을 뿐”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도어는 연방검찰과 FBI의 수사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도어의 딸은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브라운대에 합격해 졸업했다. 실리콘밸리 지역언론 팰로앨토온라인은 “싱어는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존 도어, 고 스티브 잡스 등이 자신의 고객이었다고 밝히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입시 비리에 연루된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레거시(legacy), 입학원서를 ‘한번 더’ 보게 하는 차이

스탠퍼드 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명한 기술기업에서 일하는 대만계 미국인 친구가 있다. 그는 현재 고등학생인 큰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매년 몇 백달러씩 스탠퍼드대에 기부하고 있다. 이른바 ‘레거시’ 덕을 보기 위해서다. 명문 사립대의 경우 부모가 졸업생이면 자녀가 지원했을 때 플러스 점수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약 18년 동안 매년 얼마씩 모교에 기부를 하는 건 그런 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하버드대가 아시아계 학생 차별 논란과 관련한 소송 과정에서 공개한 문건에는 동문 자녀 합격률이 33% 정도로 그렇지 않은 지원자의 합격률보다 5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탠퍼드대의 경우 2013년 당시 존 헤네시 총장이 인터뷰에서 “동문 자녀 지원자의 합격률이 일반 지원자보다 2, 3배 높지만”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학교 측은 “동문 자녀일 경우 한번 더 원서를 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는데, 수많은 지원자가 낸 원서들 중에서 한번 더 보게 된다는 건 상당한 혜택이 아닐 수 없다.

가디언은 미국에서 힘 있는 인물들이 부모가 졸업한 대학에 혜택을 받고 입학해왔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1935년 존 F 케네디가 하버드대에 지원할 때 원서 첫 페이지에 아버지가 하버드대 졸업생이라고 밝혔는데, 성적이 딱히 좋지 않았음에도 합격했다는 것이다. 또 1964년 조지 W 부시도 성적은 엉망이었지만 아버지, 할아버지가 졸업한 예일대에 합격한 것도 마찬가지 경우로 봤다.

오고 간 돈의 규모 2500만달러, 한 명의 입시컨설턴트와 그에게 돈을 건넨 학부모를 포함해 연루된 피의자만 50명인 이번 입시비리 사건. 교육부는 예일대, 스탠퍼드대, 조지타운대, USC, 웨이크포레스트대, UCLA 등 연루된 대학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체육특기생 전형 감독을 강화할 것이며 SAT, ACT 시험 관리도 강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입시경쟁 자체에 변화가 없는 한, 자녀의 대학입시에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하려는 경쟁이 약화될 것 같지는 않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