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인사이트 탁재형의 여행 팩트체크
'등로주의'를 주창한 앨버트 머메리, 8천미터에 도전하다[탁재형의 여행 에세이] ④ '머메리즘' 앨버트 프레드릭 머메리의 영향

비극으로 끝을 맺긴 했지만, 1865년 에드워드 윔퍼에 의해 마터호른이 정복되면서 점점 더 많은 모험가들이 알프스의 봉우리로 향했다. 차차 알프스에는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미답봉이 사라지게 되었다. 1854년에서 1865년 사이에만 149개의 알프스 봉우리들이 초등정되었고, 이들 중 절반이 영국 산악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산업 혁명 이후, 세계의 부를 끌어모으고 있던 영국엔 재력과 모험심을 겸비한 이들이 넘쳐났고, 이들에게 대규모 원정팀을 꾸려 유럽 본토의 산으로 떠나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차츰 이들은 알프스에서 눈을 돌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카프카스로, 그리고 그 너머의 히말라야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에 발맞추어 산악 지형을 극복하기 위한 장비들도 큰 발전을 이룬다. 1854년에는 등산용 지팡이의 머리 부분에 도끼가 결합된 피켈이 처음 등장했고, 1908년에는 영국의 산악인 에켄슈타인에 의해 우리가 흔히 ‘아이젠’이라 부르는 크램폰(Crampon)이 개발되었다.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안정적으로 걷고, 오를 수 있도록 해주는 이 쇠발톱에 의해, 산악인들의 활동영역은 비약적으로 넓어졌다. 1910년에 접어들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카라비너(한쪽을 쉽게 여닫을 수 있는 철제 고리)와 피톤(암석 또는 얼음에 박아 넣어서 로프를 고정할 수 있는 고리)이 발명되었다. 이러한 도구들의 등장은, 그 이전까지는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수직의 벽과 오버행(암벽의 일부가 튀어나와 머리 위를 덮고 있는 바위 형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에베레스트 산 남벽(남쪽 사면) 항공 사진. 앞에는 눕체와 로체가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1847년,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알려져 있었던 히말라야의 칸첸중가(해발 8,586m. 당시엔 영국 측량국에 의해, 현재의 이름 대신 ‘K8’-‘카라코람의 8번 봉우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를 측량하던 기술자들이 그 너머에서 거대한 봉우리 하나를 발견한다. 이들은 이 미지의 피크를 ‘K15’라고 명명한다. 수년간에 걸친 계산 끝에, 이 봉우리의 높이는 해발 8,848m로 판명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인정받았다. 마터호른이 정복되던 1865년, 이 산은 인도에 근무했던 영국 측량국장의 이름을 따 ‘에베레스트’라고 명명된다. 물론 이 산은 원주민들에 의해 다른 이름으로 불려오고 있었다. 북쪽 사면에 사는 티벳인들은 ‘초모랑마’(세 번째 여신)라고 불렀고, 남쪽 사면에 사는 네팔인들은 ‘사가르마타’(위대한 어머니)라고 불렀다. 하지만 식민지의 강토를 자신들의 장부에 기입해야 하는 재산 목록으로 치부했던 당시의 영국인들에게, 그런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이 되자, 유럽 산악인들의 본격적인 히말라야 러시가 시작된다. 1883년, 영국의 그레이엄 원정대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산악지역을 답사했고, 1892년에는 마틴 콘웨이의 원정대가 카라코람 빙하 지역을 답사하고 지도를 제작했다. 이 일대에 존재하는 2개의 8천미터급 봉우리, 브로드 피크(8,047m)와 히든 피크(8,068m 현재는 ‘가셔브룸 1봉’으로 불린다.)의 이름을 붙인 것도 이들이다. 1907년에는 영국의 토머스 조지 롱스태프 등반대가 인도 북부 히말라야의 트리술(7,120m) 봉에 올라 인류 최초로 7천미터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8천미터를 넘는 봉우리에 대한 도전도 끊임없이 계속된다.

전설로 남은 산악인들 중 가장 먼저 8천미터에 도전한 사람은 영국 출신의 혁명적인 등반가, 앨버트 프레드릭 머메리(1855-1895)였다. 그는 오늘날에도 고산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이 하나의 신념으로 품고 있는 ‘등로주의’(등산의 목적을 등정에 두지 않고 등정에 이르는 과정에 두는 이념)를 처음 제창한 사람이다. 그는 1879년에 마터호른을 오르면서, 아무도 시도할 엄두를 못 내던 코스였던 ‘츠무트 능선’을 선택해 성공함으로써 이름을 알렸다. 그는 현지 지형에 도통한 가이드를 따라 산을 오르는 것을 온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등반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과 성취감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등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데 있다’고 한 그의 철학을 살피다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정신을 ‘머메리즘 Mummerism’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등로주의'를 주창한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왼쪽)와 그의 산악 등반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카프카스의 고산을 섭렵한 머메리가 도전한 곳은, 현지의 원주민들조차 ‘악마의 산’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낭가파르팟(8,125m)이었다. 1895년 6월 20일, 그는 세 명의 영국인 대원과 두 명의 구르카 족 포터와 함께 길을 나선다. 거대한 8천미터급 산에 도전하기엔 너무나 소규모의 팀이었고, 등산 기술과 장비를 생각해도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행동이었다. 그들은 6,100m 지점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눈사태를 만나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만다. 히말라야 등반사 최초의 조난사고였다. 인류가 8천미터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아직도 27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고, 낭가파르밧이 정복되려면 58년이 더 흘러야 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탁재형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이자 작가. 14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해외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다. 2013년부터 여행부문 1위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다. 전 세계의 술 이야기를 담은 <스피릿 로드>와 여행 에세이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등을 펴냈다.

탁재형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저작권자 © 뉴스톱,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탁재형 팩트체커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