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사진 탄생에는 케이티가 있었다

  • 기자명 박상현
  • 기사승인 2019.04.1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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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시간으로 4월 10일, 천체물리학 학술지 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에서 역사적인 사진을 한 장 발표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블랙홀의 사진이다. 그런데, 그 사진과 함께 노트북 컴퓨터로 블랙홀 사진을 바라보면서 “크리스마스날 아침의 아이처럼” 행복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젊은 여성의 사진 한 장이 소셜에 퍼지고 있다. 누굴까? 이번에 블랙홀 사진을 찍은 케이티 보우먼(Katie Bouman) 박사다. 

출처: 케이티 보우먼의 페이스북 커버 사진

보우먼은 블랙홀 사진을 어떻게 찍었을까? 먼저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이번에 찍은 블랙홀은 '처녀자리 A’ 혹은 M87이라는 번호로 알려진 은하의 한 가운데에서 중심축 역할을 하면서, 태양계가 존재하는 우리은하(Milky Way Galaxy)의 60배가 넘는 구상선단을 붙들고 있는 엄청난 중력의 원천이다. 하지만 너무나 큰 밀도와 중력으로 인해 빛까지 빨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별과 달리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너무나 멀리있기 때문에 그동안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이론적 설명과 증명을 통해 존재를 확인했을 뿐,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천체물리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아무리 거대한 블랙홀이라고 해도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지구 크기의 천체망원경이 필요하다고 한다. 찍으려고 하는 블랙홀의 사이즈는 지구에서 보면 달표면에 놓인 오렌지 하나의 크기인데,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앞선 망원경으로 달표면을 찍은 사진도 픽셀 하나 안에 150만 개의 오렌지가 들어갈 만큼 해상도가 낮다. 그런 망원경은 현실적으로 만들 수 없는데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2017년, 당시 MIT의 대학원생이었던 케이티 보우먼은 (어제부터 인터넷 성지순례 코스가 되고 있는) 한 TED Talk에서 그걸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다.

TED Talk 영상에서 대학원생이라기 보다는 고등학생 처럼 긴장한 모습의 보우먼은 지구 곳곳에 위치한 8개의 대형 천체망원경을 이용해서 많은 사진을 찍은 후 그 데이터를 연결하는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즉, 크고 좋은 한 대의 카메라가 없으니 작은 카메라로 블랙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지점을 향해 많은 사진을 찍은 후, 거기에서 얻어진 데이터를 모아서 사진을 완성하겠다는 거다. 

2017년 동영상 속에서 “지금 당장은 볼 수 없지만, 앞으로 2, 3년 안에 블랙홀 사진을 볼 수 있다”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그 대학원생이 2년 만에 (이제는 박사가 되어) 결과물을 전세계에 발표한 것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논문 저자로만 수십 명의 연구자들이 올라온 큰 프로젝트다. 하지만 케이티 보우먼 박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TED Talk과 소셜에 퍼진 사진 만은 아니다. 언론에서는 여성인 보우먼의 역할을 (근래들어 새롭게 주목 받았던) 마거릿 해밀턴(Margaret Hamilton) 박사가 NASA의 아폴로 프로젝트에서 했던 역할과 비교하고 있다. 달착륙을 위한 아폴로의 항법 코드를 쓴 것으로 유명한 해밀턴 박사처럼, 이 프로젝트에서 결정적인 알고리듬을 쓴 것이 보우먼 박사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뒤에서 코드를 작성하는 젊은 여성 과학자들은 마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처럼 취급을 받았고, 우주복을 입고 하늘을 날아가는 우주비행사나 대중 앞에 천재 구루처럼 등장하는 남성 과학자들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히든 피겨스’ 같은 영화의 인기를 비롯해 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보우먼에 대한 주목도 그런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본인도 밝히고 있지만, 보우먼이 천체물리학자가 아니다. 대학원에서 소위 EE라고 부르는 전기공학(electrical engineering)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칼텍(Cal Tech)에서 CMS(computing+mathmatical science)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6년 전,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블랙홀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을 연구하는 바람에 끼게 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거나 측정하는 법”을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블랙홀이 연구에 딱 들어맞은 셈이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많은 천체물리학 전공 연구자들 대신 TED Talk에 등장한 것도 어쩌면 그 프로젝트를 가장 비주얼하게 설명해줄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뉴스가 터지면 초기 보도에는 항상 부정확한 내용도 실리지만, 한 매체에 따르면 보우먼이 처음 ‘사건의 지평선 프로젝트’에 대해서 들어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던 2007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려 12년 동안이나 이 연구를 해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확한 인생사야 시간이 지나면 자세히 알려지겠지만, 어제와 오늘 케이티 보우먼 박사는 생애 최고의 날을 보내고 있을 듯 하다. 정작 주인공의 얼굴에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리게 나온 사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은하의 블랙홀 사진도 찍는 세상에, 앞에 앉은 사람 얼굴도 초점을 맞추지 못하냐”고 웃기도 한다) 속에서 행복해하는 보우먼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얼마나 많은 어린 여자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공학을 선택하게 될까를 생각하면, 어쩌면 이 보우먼의 사진은 보우먼이 얻어낸 블랙홀 사진보다 인류에게 더 크고 중요한 일을 해주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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