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라벨에서 '희석식'이란 명칭이 사라진 이유

  • 기자명 이승훈
  • 기사승인 2019.04.17 10: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외칠 때 이를 의미하는 소주는 보통 '참이슬', '처음처럼' 등 초록색 유리병에 들어있는 알코올 도수 17도대의 일반 소주를 의미한다. 다른 용어로 희석식 소주라고도 불린다. 

소주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두 종류로 나뉜다. 첫번째 희석식 소주는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고 있는 소주로 95% 이상 알코올 도수의 이미 만들어진 주정에 물과 각종 감미료 등 첨가물을 희석하여 인공적으로 향과 맛을 만들어낸 것이다. 두번째 증류식 소주는 이와는 달리 막걸리나 약주 형태의 곡물 발효주를 증류하여 이슬을 모아 낸 전통적 의미의 증류주를 뜻하며 재료의 향미 성분을 일정 정도 가져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실무적으로 들어가면 증류식 소주에 일정 비율의 주정이 첨가되는 경우도 있고 95% 이상 알코올 도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설비인 ‘연속식 증류기’를 증류식 소주 제조에 활용하는 등 희석식과 증류식의 중간쯤에 속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개념상으로는 희석식 소주는 단어 그대로 만들어져 있는 주정에 물과 첨가물을 희석한 소주, 증류식 소주는 증류를 통해 얻어지는 소주라고 보면 되겠다.

소주라고 다 같은 소주가 아니다. 왼쪽 3개는 증류식 소주, 마지막은 희석식 소주다. 증류식 소주는 아직 많은 곳이 '증류식'이라고 표기하지만 희석식 소주는 '소주'라고만 적는다. 제공: 이승훈

희석식 소주를 만드는 주재료인 주정은 연속식 증류를 통한 반복된 과정을 거쳐 고순도의 알코올 형태를 지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증류 전 밑술인 발효주가 가지고 있던 재료의 향과 맛은 모두 휘발되어 버리고 알코올 외에는 거의 어떠한 성분도 남지 않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주정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재료의 향이나 맛은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단지 알코올 발효 효율을 높게 가져가기 위한 전분질의 함량이 재료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따라서 주정을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는 쌀, 보리, 감자, 고구마 등 전분질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용 가능하며 현재 가격이나 효율 등을 감안했을 때 베트남이 주산지인 타피오카가 가장 경쟁력이 있어 현재 대부분의 희석식 소주의 재료 원산지는 베트남이라고 보면 무방하다. 재료의 스토리, 원산지, 등급 등 와인, 맥주 등 다른 주류에 있어서 고려되는 사항들이 희석식 소주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다보니 희석식 소주에 대해서 우스갯소리로 ‘베트남 농민들을 배불려주는 술’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차이점들이 있기에 2013년 이전까지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는 주세법상에서 분명히 구분이 되어 있었다. 아래는 2013년 개정되기 전 주세법에서의 ‘주류의 종류별 세부 내용(제4조제2항 관련)’ 에서의 소주의 분류에 대한 내용이다.

출처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위 내용과 같이 원래 소주는 주세법상 구분이 되어 있고 이에 대한 정의도 명확히 내려져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2013년 주세법상 그 구분은 없어지고 소주라는 명칭 하나로 통합되게 된다. 아래는 2013년 4월 5일 시행, 주세법 제정, 개정문 중 소주 명칭 통합 사유에 관한 내용이다.

출처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통합의 이유로 드는 바와 같이 기존 주세법상 세율이 같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 구분을 둔 건 제조방법의 차이 등 여러 이유가 있어서일텐데 이에 대한 필요성 등 자세한 언급은 없고 당시 공론화 될 여지도 없이 속전속결로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는 통합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3년 주세법에서 소주 명칭이 통일되자마자 바로 대응한 곳은 기존 희석식 소주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었다. 개정 즉시 ‘희석식 소주’라는 라벨상 표기는 ‘소주’라고 바로 바뀌었으며 ‘희석식’이라는 명칭은 전제품에서 모두 사라졌다.

반면 기존 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업체들은 아직까지도 6년여가 흘렀지만 대부분의 제품들에 ‘증류식 소주’라는 명칭의 사용을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소주’라고 표기한 제품을 아직까지도 찾아보기 힘든게 현실이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봤을 때 과연 2013년 주세법을 개정해서까지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구분 표기를 없애고 통합한 건 어느 업계가 바랬고 어느 업계에 이익이 되었는지는 자명하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로비설 등 추측이 나오게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추측 할 수 있다.

세간에서 희석식 소주는 화학소주라는 둥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다는 등 여러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많이 유통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러나 희석식 소주의 주재료인 주정은 식품위생상 안전한 물질이며 이에 더해지는 첨가물들도 모두 정부 전문기관들에 의해 안전성이 검증되어 있다. 따라서 희석식 소주의 문제점으로 재료상 안전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다지 실익이 있는 접근법이 아니다.

희석식 소주의 진정한 문제점은 저가에 대량으로 양산되는 주정을 사용한 놀랍도록 낮은 제품가를 가진 강력한 가격경쟁력이다.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낮은 가격에 국내 소비자들은 쉽게 취할 수 있게 되었고 재료의 차별화나 맛의 차별화의 한계가 있는 천편일률적인 대기업 소주제품들은 재료나 맛의 차별화 등을 꾀하기보다는 자금력과 매체를 이용한 이미지 광고에 주력하고 소비자 역시 맛보다는 이미지를 소비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서 전통적인 방식이든 현대적인 방식이든 좋은 재료로 제대로 된 양조를 통한 좋은 술을 선보이려 노력하는 많은 이들이 제조법이 확연히 다른 제품을 선보이고 있음에도 이의 차별화를 표현 할 주세법상의 구분을 잃게 되었고 가격경쟁력 차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의 경우, 자국의 증류주들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의 꼬냑, 영국의 위스키, 일본의 쇼오추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자국의 매력적이고 보호 육성의 가치가 있는 다양한 증류식 소주들이 있음에도 기존에 법을 유리하게 고쳐주기는커녕 오히려 희석식 소주와의 구분조차 없애는 우를 범했던 과거가 있다.

요즘 들어 증류식 소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급속히 커가고 있고 새롭게 증류식 소주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많은 양조장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증류식 소주 시장이 발전하고 소비자들이 소주를 단지 취하기 위한 목적보단 맛과 향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는 주세법만이 아닌 다방면에서 여러 지원을 지금보다 더 성실히 수행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승훈 팩트체커는 전통주전문점 백곰막걸리 대표다. 사단법인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대한민국 주류대상과 우리술품평회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주 전문가 중 한명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