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재미'가 가장 중요한, '글로벌 아티스트' 지비키 고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5.0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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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토록 구체적으로 느껴본 예도 드물 것이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유학 준비를 하다 늦깎이로 들어간 예술대학의 단편영화 워크숍. 퇴로는 없었다. 좋든 싫든 해내지 못하면 졸업에 차질이 생긴다는 제도의 벽이 가로놓여 있었으니까. 맨 처음 손을 내민 이는 ‘늦깎이’라는 면에서 비슷한 처지이던 같은 학번 동기다. 고교시절 특채 연기자로 데뷔, 극장용 장편영화의 주연까지 했던 그에게 단편영화 제작에 당장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배웠다.

허나, 그런 그조차 해법을 줄 수 없는 또 다른 난제가 바로 캐스팅이었다. 편의점 사장인 중년 남성 역. 재학생에게 맡기면 코미디로 장르가 바뀌어버릴 판이나, 학생 단편영화의 악역캐릭터를 흔쾌히 맡아줄 프로 연기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비교적 어른스러운 외모의 복학생에게 희망을 걸었지만 시나리오를 읽더니 난색을 표했다. 사면초가. 한국연극협회가 발간하는 월간지 기자를 하던 선배에게 떼를 썼다. 수습으로 들어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고사했던 인연을 무기로. 다음날 오후쯤이었을까.

“01X-XXX-XXXX. 대충 설명은 해놨으니까 내일 연락드려.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 초등학생ㆍ중학생일 때 데뷔해서 단편은 물론이고 극장용 장편영화도 많이 하셨던 분이야. 동문 아니라도 한참 선배니까 인사 잘 하고.”

핸드폰 번호와 함께 깍쟁이 같은 말투가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짧은 메일, 그리고 프로필 하나가 도착했다.

사실이었다. 필자보다 11세 연상인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기라성 같은 유명 감독들의 작품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단편영화도 두 편 있었지만 하나는 이른바 ‘준(准)프로’로 통하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 다른 하나는 세 군데의 국제영화제에서 입상한 독립영화 감독의 것이었다. 심호흡을 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윤기 있는 목소리. 캐스팅 수락 이유는 ‘절실함’이었다. 물론 긴장감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그러나 분장과 의상 피팅을 위해 최대한 편한 차림의 그가 온화한 얼굴로 약속장소에 나타난 시점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캐스트장. 거의 모든 재학생이 참여하는 대공연에서 신체훈련과 액팅코치는 물론, 자질구레한 애로사항까지 해결해주는 배우들의 맏형. 첫 촬영 이후 그는 우리에게 캐스트장으로 불렸다. 최소인원으로 진행된 한 번의 지방로케를 뺀 모든 촬영 현장에서 팀원들은 늘 그가 오고 나서야 안도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신에서도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봐주던 그에게 수시로 자문을 구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작 <유토피아> 제작진에게 ‘마구스’역의 지비키 고가 갖는 위상을 듣는 순간 떠오른 근 20년 전 추억. 12년, 20대를 오롯이 바친 ‘절실함’으로 대작, <유토피아>를 완성한 이토 슌타 감독의 태산처럼 믿음직한 캐스트장을 만났다.

미국 영화매거진《할리우드 리포터》는 2018년 5월 7일, 지비키 고를 “세계무대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일본 배우”의 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이날은 그의 마흔 두 번째 생일이었다. ⓒ Go Jibiki

홍상현: 

<유토피아> 초청 상영 당시 서울에 오지 못했다. 부탁하신 대로 모두에서 한국 관객 여러분께 인사말씀을 전할 기회를 드리겠다.

지비키 고:

안녕하세요.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지비키 고라고 합니다. 우선 이런 인터뷰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너무 기쁩니다. 제가 출연한 <유토피아>를 초청해 주신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어요. 영화제에 오셔서 직접 관람해주신 관객 여러분과 영화제 관계자 여러분께도 이 기회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홍상현:

따로 시간을 마련하지 않았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웃음) 첫 질문이니 가볍게 가보도록 하자. 좋아하는 한국 영화감독이나 배우가 있나?

지비키 고:

(웃음) 한국 영화는 워낙 훌륭한 작품이 많아, 늘 주목하고 있다. 모든 작품이 멋지지만 이 질문을 받는 순간 떠오른 것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심각한 작품만 보는 것 같은데, 배용준 주연의 <태왕사신기>라는 TV드라마도 무척 좋았다.

 

홍상현:

영화 데뷔작이 한국에 팬이 많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다. 그리고 18년 만에 다시 이와이 감독의 <립반윙클의 신부>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지비키 고:

<4월 이야기> 출연은 오디션에 떨어진 게 계기였다. (웃음)

주인공이 다니는 대학의 낚시 동아리 부장 역을 뽑았는데, 떨어지고 나서 엑스트라라도 할 생각이 있거든 현장에 와 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와이 감독을 너무 좋아해서 주저 없이 달려갔다. 결국 감독의 주문으로 했던 즉흥 연기 장면이 채용되어 대사까지 받게 되었다. 참고로 즉흥 연기는 영어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다음 장면부터는 현장에서 이와이 감독이 직접 대사를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4월 이야기>에 출연하고 18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이와이 감독의 기획사인 록웰아이즈에서 <립반윙클의 신부> 출연 섭외가 왔다.

갑작스런 연락이라 놀랐고, 어떻게 그 소중한 배역을 제게 주셨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와이 감독이 제가 출연한 와카마쓰 코지 감독의 <실록, 연합적군>을 보셨다고 한다. 연합적군 리더를 연기하던 저를 보고 <4월 이야기>의 기억을 떠올리신 거다.

<4월 이야기>에 출연한 지 18년 뒤, 지비키 고는 다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립반윙클의 신부>에 캐스팅되었다. 독립영화의 대부 와카마쓰 코지 감독의 대표작 <실록, 연합적군>에서의 열연 때문이었다. ⓒ 2016 A Bride for Rip Van Winkle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 오디션에 떨어졌지만, 엑스트라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촬영장으로 향한 지비키 고는 결국 특기인 영어를 구사하는 즉흥연기로 출연의 행운을 얻었다. ⓒ 1998 April Story

홍상현:

그간의 발전상에 감명을 받으신 거겠지. (웃음) 여하튼 알려진 필모그래피 상으로는 데뷔가 22세 때로 되어있는데. 세칭 “사립 명문대” 법학부를 다녔다. 이 부분이 좀 이례적이다. 일본은 대학진학률도 한국의 절반 정도인데다, 장래 목표와 관계없는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비교적 많지 않다.

지비키 고:

공식 프로필에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 있는데, 무대연기를 시작한 건 사실 14세 때다. 계기를 설명하면, 저는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6년을 싱가포르와 미국에서 보냈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일본으로 돌아왔는데, 아무래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날로 풀이 죽어가던 저를 걱정하신 어머니가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극단 와카쿠사라는 아동극단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신 거다. 그것이 연극과의 첫 만남이었다.

거기서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있었다. 그동안 CM나 영화는 물론 드라마 고정출연까지 했으니 연기자 데뷔는 그때 했다고 봐야겠지.

 

홍상현:

아역출신이었나. 몰랐던 사실이다. 용케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지비키 고:

진학한 학교도 하나같이 “장래에 배우가 된다”는 전제하에 선택한 곳들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활동 때문에 대학입시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고. 그래서 같은 재단 학교 출신자에게 어드밴티지가 주어지는 이른바 ‘내부진학’이라는 걸 했다. 물론 그런 환경을 마련해야 했기에 고등학교 수험이 엄청나게 어려워졌지만. (웃음)

대학에서 법학부 정치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연기를 하고 싶어서 졸업논문을 쓸 필요가 없는 학과를 선택했다. 다만 내신 성적이 나쁠 경우 정치학 전공을 할 수 없어서 공부를 하느라 힘이 들었다. (웃음) 대학시절의 관심사는 ‘평생 연기자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였다. 고민 끝에 ‘영상 연기를 위해서도 무대에서의 연기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졸업 후 엔(円)ㆍ연극 연구소라는 무대 연기를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갔다.

 

홍상현:

비슷한 액팅 스쿨이 무척 많을 텐데 굳이 그곳을 택한 이유가 있나.

지비키 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와타나베 켄키시다 쿄코미타니 노보루 등이 활동하던 '연극집단 엔'이라는 극단의 부속 배우양성소였으니까. 거기서 2년간 무대 연기를 공부한 뒤 영상의 세계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제 데뷔를 22세부터라고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홍상현:

다음 화제는 ‘글로벌’이다.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수상자로 톰 크루즈와 공연한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작품에 나왔고, 베를린영화제 출품작인 <다리 마루상>과 <FIT>에 출연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동명작품을 리메이크한 이상일 감독의 <용서 받지 못한 자>도 베니스영화제 출품작이었다. 지난해에는 넷플릭스가 배급하는 할리우드 영화에 캐스팅되기도 했다.

지비키 고:

배우를 시작했을 무렵부터 막연히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발상이 자연스러웠던 건 성장기의 경험 때문일 테고. 다만 일을 선택하는데 있어 ‘글로벌’을 의식한 적은 없다. 그 역시 사고의 폭을 제한할 수 있으니까. 그저 출연작 가운데 해외에서 평가받는 작품이 많아 운이 좋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홍상현:

그 밖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인상에 빛나는 독립영화의 대부, 와카마쓰 코지 감독의 작품에 다수 출연한 이력이다. 최근 와카마쓰 프로덕션의 부활을 선언하고 선두에 서있는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의 작품에도 얼굴을 비쳤다. 보통은 이런 연기자에게 “인디스피릿”이라는 수식이 붙기도 한다.

지비키 고:

살짝 난폭한 어조로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인디스피릿이 없습니다.”(웃음) 없다기보다 딱히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동시에, 이를테면 “자주제작(自主制作) 영화” 같은 표현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 영화가 '인디'이든 '메이저'이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티켓 가격에도 차이가 없고. 제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은 오직 그 작품이 재미있는지 아닌지 여부이다.

 

홍상현:

모처럼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연기자를 만나니 반갑다. 결국 자타공인의 ‘빛나는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거대기획사 소속이 아니라 프리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 상황도 예술가적 주관을 중시하는 본인의 의지에서 기인한 건가?

지비키 고: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비슷한 맥락인데,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은 게 인디스피릿 때문은 아니다. 다만, 와카마쓰 코지 감독님의 영향은 있다. 당신은 고고(孤高)하며, 무리 짓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셨다. 그런 감독님 곁을 오랫동안 지키다 보니 저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고고하다”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와카마쓰 감독님은 주변 사람들을 무척 소중히 하는 분이기도 했다. 가족이나 동료, 후배들이 생활을 꾸릴 수 있도록 회사를 만든다든가, 여러 가지 궁리를 하셨으니까.

앞으로의 삶에서 얼마나 와카마쓰 감독님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나, 행동으로 증명하고 싶을 따름이다.

<유토피아>의 격투장면에서 지비키 고는 승마, 필드하키, 검도에 가라테로 다져진 수준 높은 액션연기를 보여준다. ⓒ 2018 Utopia

홍상현:

드디어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다. 상상력의 스케일이나 프로젝트의 실현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출연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지비키 고:

필모그래피에 심각한 작품이 많아 종종 오해를 받지만, 저는 액션이나 판타지, SF 장르도 대단히 좋아한다. 아니, 그보다, 영화 좋아하는 분들치고 판타지나 SF영화 싫어하는 분들이 계실까? (웃음) 그런 제게 들어온 첫 번째 판타지 영화 캐스팅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판타지의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아이처럼 들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홍상현:

그런 흥분이 현장에서도 이어지던가?

지비키 고:

촬영기간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는 일이 별로 없다. 그보다 제가 촬영한 작품 자체를 생각하는 편인데, <유토피아> 촬영장은 제 커리어 가운데서 주저 없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즐거운 곳이었다. 완성에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린 영화도 없었을 뿐더러, 시사를 하면서 이만큼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 영화도 없었다.

<유토피아>는 지비키 고의 첫 번째 판타지 영화다. 캐스팅 제안을 받은 그는 “판타지의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아이처럼 들떴다고 한다. ⓒ 2018 Utopia
지비키 고(가운뎃줄 왼쪽에서 세 번째)는 <유토피아> 에 대해 “완성에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린 영화도 없었을 뿐더러, 시사를 하면서 이만큼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 영화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 2018 Utopia

 

홍상현:

유토피아인으로 등장하는 연기자 중에 유일하게 유토피아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수많은 CM에서 내레이션을 했던 매력적인 보이스를 활용하려는 감독의 의도 아니었을까?

지비키 고:

저는 피리를 사용해 텔레파시로 이야기한다는 설정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촬영하는지 사전에 알지 못했다. 해서,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배우의 리액션을 찍을 때, 카메라 뒤에서 연기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토피아를 정확하게 익혀두었다. (웃음) 결국 모든 분량이 녹음 없이 촬영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허탈해했지만. (홍상현ㆍ지비키 고, 일동 웃음)

 

홍상현:

뭐든 일단 열심히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 같다. (웃음) 그간 출연했던 작품들에서의 이미지 때문인지 평소 이렇게 유쾌한 스타일일 거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지비키 고:

극중에서 마구스가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것은 원래의 설정이었으니 제 보이스의 퀄리티와 관계가 없겠지만, 그로인해 설정이 보다 효과적으로 기능했다면 연기자로써 무척 기쁜 일이다.

 

홍상현:

<유토피아>에서는 격투장면에서 승마, 필드하키, 검도에 가라테로 다져진 체력에 무술감독 수준의 액션연기가 빛난다. 지금까지의 출연작에서도 액션신은 모두 직접 해냈다. 무엇보다, 그것이 내면을 표현하는 연기와 조화되고 있다는 점이 대단하다.

지비키 고: 

과찬의 말씀 감사하다. 제가 연기한 마구스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에 해당한다. 유토피아를 자신의 이상으로 삼고, 세상을 변혁하기 위해 한 번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하거든. 연기를 할 때 반드시 그 배경이 되는 설정을 해둔다. 필요할 경우 그에 앞서 있었을 법 한 신까지 세세하게 가정해서 노트에 메모한다.

<유토피아>에 출연하면서 제가 창조한 마구스라는 인물의 과거는 장렬한 것이었다.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해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 있다는 비장한 결의를 가지고 싸우는 그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마구스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타이틀 롤에 해당하는 캐릭터. 지비키 고는 연기에서의 모티베이션(motivation)을 위해 마구스가 등장하는 모든 신의 사전 설정을 노트에 메모해 두었다고 한다. ⓒ 2018 Utopia

홍상현:

연출자의 디렉션(direction)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창조해가는 연기자. 멋지다. 결국 연기도 창조적 작업이니까.

지비키 고:

예전에 한 프로듀서로부터 “어떤 작품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재미있는 작품이라면 뭐든 좋다.” 그랬더니 “아마추어의 대답”이라며 웃어버리더라.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제 대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재미있는 작품, 그리고 정말 저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라면 어떤 캐릭터든 도전해보고 싶다.

다만, '재미있다'는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캐릭터가 인간의 아름다운 부분은 물론, 추한 부분까지도 표현하는, 또한, 관객 여러분께 뭔가를 남겨드리거나, 생각의 여지를 드릴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면, 연기자로서 그 이상 행복한 일이 있을까. 물론 다른 한편으로 머리를 비우고 팝콘을 먹으며 볼 수 있는 영화도 좋아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께서 “즐거웠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만한 작품에도 출연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더없이 즐거운 일일 것이다.

 

홍상현:

앞으로의 포부와 그밖에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부탁한다.

지비키 고: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티스트비자를 취득했다. 지금 촬영 중인 영화도 미국 작품이다. 재미있는 작품이라면 국경을 넘어 무엇에든 참여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제게 이런 기회를 주신데 대해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언젠가 한국의 관객 여러분을 직접 뵙게 될 날을 진심으로 고대하고 있다. 아울러 이토 슌타 감독과 음악감독에 촬영감독까지 맡았던 시이나 료의 열정이 깃든 <유토피아>를 보실 기회가 더 많은 한국 관객 여러분께 주어진다면 좋겠다.

<유토피아>의 촬영이 이루어질 당시. 지비키 고는 자신의 출연 여부와 관계없이 줄곧 현장에 나왔다. (오른쪽은 이토 슌타 감독) ⓒ 2018 Utopia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스포츠선수 같은 탄탄한 몸에 <실록, 연합적군>에서 보여준 강렬한 아우라(aura)를 뿜어내는(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니 대단히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그와의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필자가 던진 키워드는 ‘5월 7일’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와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도쿄대 시절, 온갖 수식(mathematical formula)으로 가득한 그의 수리경제학 이론에 다가가던 필자가 일단 친근감을 느끼기 위해 찾아낸 연결고리. 그의 생일은 필자와 같은 5월 7일이었다. (년도는 다르지만)

1945년 이날 나치독일의 국방군지도참모장 알프레드 요들은 프랑스 북동부 랭스에서 연합군에 대한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했고, 1954년 베트남 북부 디엔비엔푸에서 베트민군에게 패배한 프랑스는 70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를 끝냈다. 그리고 2018년 5월 7일 필자는 생일을 축하하는 저녁식사를 하러 가기 전 도쿄의 시모기타자와 토리우드에 들러 <유토피아>를 보았다. 

미국의 영화매거진 《할리우드 리포터》가 세계무대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네 명의 일본 배우에 대해 보도한 것도 그날이다. 기사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의 카도와키 무기<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의 아베 준코<하나레이 베이>의 무라카미 니지로, 그리고 1976년 5월 7일 태어난 지비키 고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필자가 단편영화를 만들던 시절의 바로 그 구세주처럼, 정확히 11세 연하의 이토 슌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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