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상 부채 많으니 공무원 뽑지 마라? 매년 반복되는 '연금부채' 왜곡 보도

  • 기자명 민주언론시민연합
  • 기사승인 2019.05.0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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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2018회계연도 국가결산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재정수지는 세수 실적 증가로 3년 연속 크게 개선”되었고, “국가채무는 전년 대비 20.5조원 증가하여 GDP대비 30%대(※680조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09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를 보였”다고 재정 상태를 긍정적으로 자평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재부의 자평과는 달리 언론들의 보도 내용은 매우 험악했습니다.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가 ‘국가부채 1700조’의 원인?

신문사

보도제목

지면배치

보도량

(사설)

중앙일간지

경향신문

작년 장부상 국가부채 1683조원

17

1

동아일보

국가부채 사상 첫 1700조 육박…공무원·군인연금이 절반 이상 차지

1

2(1)

조선일보

공무원‧군인에 줄 연금빚 940조

1

5(1)

중앙일보

국가부채 1682조 공무원‧군인연금 지급할 돈이 940조

1

3(1)

한겨레

서민삶 팍팍한데 나라곳간은 빵빵…‘균형재정’의 역설

8

1

경제지

매일경제

국가부채 1700조인데…정부 또 추경

1

4(1)

한국경제

공무원 증원이 부른 국가 빚폭탄 1700조…연금충당부채만 1000조 육박

8

1

△5개 중앙일간지와 2개 경제지에 보도된 ‘국가부채’를 언급한 기사량과 대표 기사 제목, 지면 배치 비교

 

한겨레를 제외한 대다수의 언론에서는 국가부채를 1700조 원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국가부채를 1700조라고 보도한 언론 중 경향신문을 제외하면, 공통적으로 그 원인이 ‘공무원 군인연금 충당부채’라고 보도했습니다. 보도 제목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과 ‘공무원 충원 정책’을 부각했고, 조중동과 매일경제는 사설로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조선·중앙·동아 및 경제지들의 보도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습니다.

1. 국가 부채는 1년 새 127조원 증가해 사상 최대인 1700조원에 육박했다.
2. 증가분 127조원 중 94조원이 연금충당부채며, 총 연금충당부채는 940조원에 달한다.
3. 이것은 2030세대가 갚을 빚이며, 공무원 충원 정책으로 빚은 늘어날 것이다.

 

국가 간 비교 곁들인 경향신문과 재정 확장 요구한 한겨레

반면, 경향신문은 <작년 장부상 국가부채 1683조원>(4/3, 박은하 기자)에서 국가부채의 규모, 종류, 증가 이유 등을 전달하며, 기사 말미에 국가 간 비교도 곁들였습니다. 한겨레는 다른 신문과 논조가 판이하게 달랐는데, <서민삶 팍팍한데 나라곳간은 빵빵균형재정의 역설>(4/3, 노현웅이경미 기자)에서 유일하게 ‘연금충당부채’를 제시하지 않고, 정부 재정수지와 국가채무 수치만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균형 재정의 덫’에 빠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재정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것을 주문했습니다.

 

신문 따라 달라지는 수치와 대책…이유는?

이처럼, 똑같은 회계결산 자료를 두고, 기재부와 경향‧한겨레에서는 상대적으로 재정이 괜찮다고 하고, 동아‧조선‧중앙‧경제지에서는 국가부채가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빚이 얼마나 되는지 판단하는 기준이 하나가 아닌 여러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물이 반 정도 차 있는 컵을 보고 어느 한쪽에서는 ‘컵에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컵에 물이 반 밖에 없다’고 한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만약 이 컵에 물을 더 채울 것인지 덜어내야 할 것인지 의견이 갈린다면 어떨까요?

컵에 물을 더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컵에 물이 최대한 덜 들었다고 주장할 것이고, 따라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컵에 물이 최대한 많이 들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부채 기준을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재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채 통계는 국가채무(D1), 일반정부 부채(D2), 공공부문 부채(D3)으로 분류‧관리”하며, 이와 별개로 ‘재무제표 상 국가부채’를 집계하고 있습니다. 기재부가 제시한 표에 따르면, ‘국가채무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부채를 말하며, 일반정부 부채는 여기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를, 공공부문 부채는 비금융공기업의 부채까지 합산한 부채’입니다. 또한, ‘일반정부 부채와 공공부문 부채가 IMF가 설정한 국가 간 비교 기준이지만, 공공부문 부채는 세계에서 7개국 뿐이라 공공부문 재정 건전성 관리에 활용’됩니다.

기재부의 2017회계연도 국가결산 자료와 비교해 보면, 2018년도의 나랏빚은 GDP대비로 각각 국가채무는 38.6%에서 38.2%로, 일반정부 부채는 43.8%에서 42.5%로, 공공부문 부채는 63.3%에서 60.4%로 감소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 2018년에 국가부채는 감소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문제의 ‘연금충당부채’가 포함되는 재무제표 상 국가부채는 국가부채의 범위를 최대한 넓게 잡은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보고서 <국가부채의 재구성과 국제비교>(2014/4/30, 김영신허원재)에서도 인정하듯, “국가부채 대상 포함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국제기준 권고사항 이상의 국가부채 산정으로) 우리나라 국가부채의 과대평가 등 초래할 수 있는 불필요한 혼란에 대해선 국가 간 비교에서의 유의점을 명시하여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연금충당부채의 증가로 재무제표상 국가부채는 2017년 1555.8조 원에서 1682.7조 원으로 늘었으니 2018년 국가부채는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언론들의 주장은 정반대였더라도 사실관계는 하나였던 셈이죠.

 

충당부채 증가로 정부 탓 하는 것은 과장

그렇다면, 어떤 관점으로 이번 국가부채 보도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번 국가부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연금충당부채’입니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직접 갚을 의무가 있는 부채입니다. 그리고 국가부채는 국가채무뿐만 아니라 공기업 부채, 4대연금 부족액, 민자사업 손실보전액 등 국가가 보증을 선 채무를 포함한 것입니다. 공기업 부채는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LH공사 등 공기업이 채무를 못 갚으면 정부가 보증을 섰으므로 대신 갚아야 하는 부채를 말합니다.

연금충당부채는 현재 연금 수급자와 재직자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액을 현재가치로 추정한 재무제표상의 부채입니다. 정부가 직접 빌린 돈이 아닙니다. 연금충당부채를 계산할 때는 할인율 추정치가 하락하거나, 부채의 지급기한이 다가올수록 부채의 현재가치가 더 커지는데요. 늘어난 연금충당부채 중 약 85%가 이렇게 해서 계산된 할인율 인하 등 재무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부채입니다.

그러나 연금충당부채는 나중에 국가가 줘야 할 돈만 계산하기 때문에 실제로 연금충당부채 중 국가 세금으로 보전해야 하는 부채가 얼마가 될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공무원‧군인 연금의 적립액 대비 수급액 비율(※수익비, 공무원연금의 경우 1.44배)를 고려해 보면 이 중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부분은 잘 쳐줘야 절반 이하입니다. 이것이 기재부가 4월 3일자 보도자료에서 “(국가부채 대부분이) 재무적 요인에 의해 증가”했으며, “제무제표상 부채 전체가 나라빛 또는 국민 1인당 세부담이 아니”다고 해명하는 이유입니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연금이 국가재정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면서도 연금부채를 국가 간 채무를 비교하는 공식 지표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OECD에 따르면 우리와 유사한 회계기준을 도입한 25개 국가 중 불과 11개 국가만이 공무원·군인연금의 연금충당부채를 국가 부채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연금충당부채 증가를 다룬 조선일보 기사.

국가부채 비판의 핵심은 정부의 ‘공무원 증원’ 비판

이처럼 연금충당부채는 할인율 가정에 따라 큰 폭으로 변할 수 있고, 심지어 정부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증가하는 부채입니다. 그런데도 조중동 및 경제지들이 하루에 15건의 기사를 쏟아내며 연금충당부채를 겨냥한 것은 현 정부의 공무원 증원 정책을 비난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을 통해 임기 중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명을 확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공공부문 일자리'란 '일반정부 고용'에 공기업 고용까지 모두 포괄한 것입니다. 이처럼 공공부문에서 81만명의 일자리가 확충되면 전체 고용 대비 공공부문 고용 비율은 약 11.9%가 됩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 자리로 엄청난 인심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무원 고용 비율은 지극히 낮은 것이 사실이라고 합니다. 노컷뉴스 <팩트체크/공무원 증원이 국민에게 죄짓는 짓이라고?>(2018/9/11)에서는 2017년 OECD가 발간한 '한 눈에 보는 정부' 보고서를 인용해서 “2015년 기준 OECD 국가의 전체 고용 대비 일반정부 고용 비율은 평균 18.1%였다. 한국의 경우 7.6%로 채 절반이 되지 않았다. 일본(5.9%) 다음으로 낮은 수치”라고 평했습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사회보장제가 잘 되어 있다고 평가 받는 북유럽 국가는 공공부문 고용이 전체 고용의 30%에 육박했다. 전체 피고용인 1/3 가량이 정부로부터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도리어 OECD는 이를 지적하며 “아시아 지역 OECD 국가는 공공부문 근로자 비율이 매우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연금제도 개선 필요하지만, 공무원 마녀사냥은 왜곡

한편 조중동과 경제지들은 공무원연금으로 인한 국가의 부채로 곧 한국이 망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보도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4일 성명 <연금충당부채는 세금으로 갚는 나라빚이 아니다>에서 “매년 국가결산보고가 이뤄지는 4월이면 “공무원.군인연금 나라빚만 얼마”라는 식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행태가 처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작년 4월 5일에도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성명 <공무원연금은 국민부담의 나라빚이 아니다>에서 “(이같은 보도에 대해)국가 결산과 관련된 회계원칙에 대한 몰이해와 공적연금을 약화시키려는 보수집단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분석”했습니다.

올해도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보수.경제지 등 일부 언론이 국가 결산과 관련된 회계원칙에 대한 의도적 몰이해, 또는 공적연금을 약화시키려는 보수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정부에 대해서는 “국민 불안을 야기하는 거짓뉴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연금개혁의 필요성은 누구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구감소 고령화로 인한 근무기간의 연장이나 연금 수급의 합리적 조정 등 정상적인 노력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앙일보처럼 공무원을 ”일반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젊은 공무원들로부터 기여금을 블랙홀 빨아들이는“ 존재로 그리는 것은 왜곡에 가깝습니다.

 

언론은 국가부채에 관한 정확한 정보 전달해야

지난 정부에서 국가부채의 빠른 증가에 대한 우려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국제비교가 가능한 국가부채가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지, 재무적 요인으로 인한 부채 증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일반정부 부채와 공공부문 부채는 2010년대 중반부터 집계되었으므로 직접 비교가 가능한 국가채무(GDP대비)만 비교하면, 노무현 정부에서 11.1%, 이명박 정부에서 3.5%, 박근혜 정부에서 6.4% 각각 증가하다가 문재인 정부에서는 2년 째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국제비교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국가부채의 규모를 공공부문 부채까지 최대로 확대해도 부채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부채가 줄었지만 더 줄여야 한다’거나, ‘경기침체 국면이므로 부채를 늘리더라도 재정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정부가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는 무리한 주장입니다. 또한, 국가부채 산정방식이 다양한 만큼, 언론들은 단순히 국가부채의 액수만을 강조하며 겁주기에 나설 것이 아니라 국가 부채 산정 방식의 차이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더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4월 3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편집자 주: 공무원연금 충당부채 언론보도는 충당부채에 대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으며, 규모가 아니라 수지차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재정전문가인 이상민 팩트체커가 2018년 3월 뉴스톱 기사에서 지적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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