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로 노동자 스트레스 분석한 박사학위 논문도 있다

  • 기자명 김우재
  • 기사승인 2019.04.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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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부실연구를 아주 쉽게 검색할 수 있다. 학문에서의 엄밀함을, 모양만 그럴듯한 현란한 수식어와 관용구로 포장하는 행태는, 소칼이 <지적사기>를 통해 드러냈듯이 꽤 오래된 학계의 관행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학문을 논문으로 접하지 않는다. 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잘 소화시켜 내놓았을 때, 그 책으로 학자들의 언어를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논문이 유통되는 세상은 학자, 그들만의 세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만약 학술논문의 유통에 이해관계가 끼어들 경우, 학술논문이라고 해도 조작되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논문표절, 데이터조작 등의 연구윤리와 관련된 경우, 언론과 대학의 감시에 의해 들통나는건 시간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만약 학술지를 만드는 학회가 통째로 ‘논문출판’이라는 이익추구를 위해 학문적 엄밀함을 버린다면? 또는 학위를 주는 대학과 대학원이 이익추구를 위해 학문적 엄밀함을 버리고 돈만 내면 대충 학위를 수여한다면? 이런 일에 대한 국가적 재난방지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사과학 비판과 소수자의 권리

어떤 학문이 엄밀한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법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이 가장 엄밀한 학문이며, 사회과학, 인문학, 종교의 순으로 엄밀함이 감소한다는 선형적 이해에도 정당성이 없다. 과학은 인류가 발견한 지식 중 가장 믿을만한 체계라는건 이미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지만,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따라서 과학을 가장 우위에 놓고 모든 지식체계를 서열화하는 과학주의는 위험한 사상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과학적 지식의 불완전성을 근거로 삼아, 과학이나 유사과학이나 피장파장이라고 주장하는 건 더 위험하다. 유사과학이 개인 혹은 컬트와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건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유사과학에 과학적 권위를 입혀,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행위는 사회에 해가 되며, 공권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창조과학자가 창조론을 과학교과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때, 백신을 거부하는 운동의 구성원들이 자녀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나아가 이웃과 사회 전체에 전염병 위협을 가중시킬 때, 영구기관을 믿는 사람이 공직자 후보가 되었을 때, 이런 상황들은 사적 영역에서는 소수자의 권리로 판단해도 되는 사이비 과학이 위험해지는 경계들이다(내가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의 창조과학회 활동을 비판하며 글연재를 이어갔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얼마전 가짜학회에 참석했던 조동호 후보자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후보에서 임명철회된 사건이 있었다. 이미 뉴스타파에 의해 와셋/오믹스 등의 가짜 학회가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청와대는 후보자의 발언만 믿고, 구글검색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후보자의 가짜 학회 참석을 포착하지 못했다. 이런 사태는 과학기술계의 내부 작동원리에 익숙하지 않은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의 미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면 적어도 과학기술계인사검증에서 이런 어이없는 후보자가 등장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매뉴얼은 초본이 공개되었고, 향후 ESC에 의해 장기프로젝트로 연구되어 보완될 것이다). 매뉴얼 제안에 대한 댓글 중, 유사과학 활동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 주장을 한 인물은 과학기술학을 전공한 듯한 학자였고, 유사과학계와 토론하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펴며 브루노 라투르라는 과학사회학자의 ‘판도라의 희망’을 근거로 들었다.

 

라투르는 ‘실험실 생활’이라는 책으로 이름을 알린 과학사회학계의 유명한 학자다. 그의 책은 한국에 대부분 번역되어 있고, 과학사회학자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행위자연결망이론(ANT)으로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라투어의 책을 근거로 과학기술계 공직자의 유사과학 활동이라는 검증기준을 비판할 수 있는가이다. 라투르는 소칼의 지적사기 사건에서 비판당한 당사자이기도 하며, <고등미신>이라는 책에서도 과학도 다른 학문들처럼 구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구성주의 혹은 상대주의)을 편 적이 있다. 하지만 과학사회학계에서조차 스트롱프로그램이라 부르는 이런 극단적 상대주의는 이미 소멸 중이고, 라투르조차 과학전쟁 당시 과학사회학 진영이 과학을 공격한 시도가, 지구온난화 부정이나 백신반대세력 등에게 과학적 권위를 부정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했음을 인정하고, 이제부터라도 과학에 대한 신뢰를 다시 건설해야 한다고 말한다(Vrieze, J. D. (2017). Bruno Latour, a veteran of the “science wars,” has a new mission. Science Magazine.)유사과학이 문제가 되는 건, 이들이 공공의 영역으로 넘어와 사회에 피해를 줄 경우다. 또한 바로 그 시점에 과학기술계가 이를 막기 위해 나서는건, 소수자에 대한 탄압이 아니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브루나 라투르가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사이언스매거진.

 

관용을 거부하는 논문들의 실태

한국 학술생태계에서 검색되는 논문들 중엔, 사이비 과학자 혹은 단체에 의해 작성된 수 많은 학문적 부산물이 널려 있고, 이들을 걸러내는 일은 제대로 훈련받은 학자에게 시간과 보수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렇게 학문적 엄밀함을 기준으로 부실한 논문을 걸러내는 것이 학회의 역할이지만, 한국에는 아예 사이비 학회를 만들어 기업처럼 운영하며 사이비 학문을 양산하는 세력이 있다. 지난번에 보고한 ‘뇌연구’를 각종 사이비 과학과 섞어 학위를 남발하는 대학원은 그나마 최근에 등장한 세력이다.

 

사례① 만화 주인공들의 혈액형과 성격관계 분석 

지난 글에선 할 수 없이 사이비 대학원의 논문에 대해서만 말해야 했지만, 학술정보검색사이트에서 혈액형 성격으로 검색되는 가장 최근의 국내 학술지 논문은 '만화<나루토> 속 캐릭터의 혈액형에 따른 성격과 관계 분석'이라는 2015년의 논문이다 이 논문은 만화 스토리 작가들이 캐릭터의 성격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람 성격에 대한 이해를 위해, 혈액형별 성격유형을 이용하는 것이 유용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학술논문이며, 조선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박경철 교수(홈페이지)에 의해 발표됐다. 이 논문은 혈액형별 성격이 네 가지로 단순하다는 편리성을 지녔고, 만화 <나루토>의 주인공들이 작가에 의해 모두 혈액형이 부여되었다는 점을 이용해 캐릭터의 혈액형과, 캐릭터가 만화 속에서 보여주는 성격의 관계를 분석한다. 이 논문의 저자는 혈액형별 성격유형에 별다른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고, 결론부에서도 “혈액형과 성격이 관련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가 아닌 ‘혈액형과 성격에 대한 믿음’을 상상의 산물인 캐릭터의 성격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라고 부연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믿음이 혈액형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구분짓는 기준이 되며, 특히 파급력이 큰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런 그릇된 믿음이 권위를 갖게될 우려에 대해, 저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제목만 들어도 과학적 근거가 의심스런운 이런 논문이, 학문이라는 이름의 권위로 작동하게 될 때, 그리고 그런 비과학적 권위가 사회에 누적될 때, 우리가 겪게 될 고통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아마 회사 면접에서 혈액형별 성격으로 채점을 하는 사회 정도를 상상하면 좋을 듯 싶고, 그런 일은 실제로 한국에서 벌어진다(구글 검색을 해보면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채용과정에서 면접후보의 혈액형을 묻는다. 기가 막힌 일이다). 

한국선천적성평가원 홈페이지에 실린 한국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논문들.

사례 ② 사주팔자와 감정노동자 직무스트레스의 관계  

뇌교육을 사칭하는 대학원 학위 논문 중에는, '콜센터 상담사의 사주구조와 회복탄력성, 직무스트레스의 관계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도 있다. 이 논문은 동양학 전공 논문으로 제출되었고, 연구의 목적은 감정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와 회복탄력성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주구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는 내용이다. 설문조사를 통해 연구를 진행했고, 통계분석까지 완료한, 사주팔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정상적인 사회과학 논문으로 보일 수 있는 그런 연구다. 설문지를 통해 추정한 사주팔자와 직무스트레스 및 회복탄력성의 관계는 뭘까? 

논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조절력은 봄 출생이 여름 출생보다 높고, 가을 출생보다 높게 나타나 계절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한다. 게다가 가을에 태어난 사람이 대인관계가 높고,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무려 유의미한 수준으로 긍정성에서 높은 수치를 보인다고 한다. 대부분의 결론이 이런 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기술이다. 

최근 통계학자들은 피-해킹 (p-hacking)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귀무가설을 사용해 가설을 기각하는 임의적 방법인 P-밸류를 이용해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호도해서는 안되며, 그건 심각한 학문적 불감증이라는 것이다저자는 사주의 구조적 특성에 따라 회복탄력성이나 직무스트레스의 영향이 분명하며, 따라서 감정노동자들의 직무선택에서 사주명리적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끔은 복잡한 논문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상식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은지 알기 위해 점집에 가서 직무상담을 받는건, 개인적 차원의 취미일 수는 있어도, 이런 학술논문을 통해 권위를 획득해 공인된 상담의 영역으로 들어와서는 안되는 위험한 행동이다. 만약 이런 논문들이 이런 대학원을 통해 계속 쌓여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 세력이 현재 벌이고 있는 일들로 추측해 보면, 그들은 이런 논문들을 근거로 특허를 내고, 상담센터를 만들고, 자격증을 만들어, 무속신앙을 제도권으로 옮겨와 공공의 영역에 진출하고야 말 것이다. 대통령이 점집 무당에게 국운을 물어 정책을 결정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일에 그냥 눈감아도 괜찮다. 그리고 한국은, 바로 그런 대통령을 탄핵한지 이제 겨우 3년이 지난 사회다. 아직 우리 곁엔, 국정농단의 적폐가 켜켜히 쌓여 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논문 리스트. 사주명리학이 수시로 제목에 등장한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부실 논문들의 천태만상

이런 장난 같은 논문들을 희화하고, 비웃으며 지나칠 수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이런 사이비들이 아무리 설쳐도, 학술생태계의 건강성이 이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가짜학회 사건과, 한국 교수들의 조직적인 참가, 나아가 한국에 난립한 부실학회와 대학들, 그리고 이들이 쏟아내는 부실논문들의 실체와, 이런 활동에 사이비 종교 및 조직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한국의 제도권 학계에도 사이비 과학은 이미 깊게 스며들어 진지하게 연구하는 학자들을 농락중이다. 다음 글에선 바로 그런 사례들을 다루어 볼 것이다(이 대학원의 논문들은 그 대학원의 주인이 창시한 뇌관련 여러 상품들을 학문적으로 검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논문들은 명백한 이해충돌에 해당한다. 이미 말했지만, 이런 논문이 이미 수백편이다.)

김우재, 과학뉴스를 의심하는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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