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의 또 다른 가해자, 한국 사회

  • 기자명 김형민
  • 기사승인 2019.05.07 1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목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으나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영화가 있다. 그런데 그 강렬함은 영화의 주제의식과는 별 관계가 없는 곁가지 장면에서 비롯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 중국인 게임 프로그래머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리고 졸지에 아이를 빼앗긴 아버지는 아이를 향한 부정(父情)으로 좌충우돌한 끝에 아이를 되찾아온다는 내용이다.

상투적이라면 상투적이랄 수도 있는 내용인데 영화 도중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아동학대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을 받을 때 검사는 아버지가 아이를 키울만한 소양이 부족하다면서 아버지가 만드는 게임의 잔인한 내용을 근거로 든다. “어느 사악한 원숭이가 인간을 때려 죽이고 토막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스토리라고 했다. 그러자 중국인 아버지가 검사에게 절규한다. “네가 서유기(西遊記)를 알아?” 아버지가 제작하는 게임의 원 스토리가 다름아닌 서유기였던 것이다. 사악한 원숭이는 우리가 익히 아는 손오공이었고 동양 문화에 대해 전혀 무지한 검사의 논고에 따라 아들과 아버지의 격리가 결정되는 모습에 혀를 차며 분개해야 마땅했으나 나는 다소 터무니없는 부러움에 휩싸여 있었다. “저 정도만 갖고도 사회적인 개입이 가능하구나.” 무심코 혼잣말을 했을 때 옆에서 영화에 몰입해 있던 아내로부터 어이없다는 투의 핀잔이 날아왔다. “사오정이야? 왜 뚱딴지같은 얘기를 해?”

나는 왜 사오정이 되었을까. 그것은 문화적 차이에 대한 몰이해를 비판하는 영화의 귀퉁이에서 아이들은 자격 없는 부모를 포함한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며 필요한 경우 사회가 나서서 아이들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미국 사회의 자신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그 자신감이 튼실히 뿌리내리지 못하였음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SBS <긴급출동&#160;SOS&#160;24> 한 장면.

친권이라는 이유 때문에 막을 수 없는 아동학대

2005년 봄부터 20011년 봄까지 장장 6년 동안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나와 내 동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동 학대 사례와 맞닥뜨렸다. 기분 좋게 해결된 일도 있지만, 목구멍 어딘가에 달라붙은 가래침처럼 찝찝했던 경우도 적지 않고, 높디높은 벽 앞에서 접근할 방도를 찾아 헤매다가 끝내는 좌절해 버린 케이스도 엄청나게 많았다.

수급비 탈 때를 제외하면 아이를 온전히 팽개쳐 둔 채 술로, 도박으로, 게임으로 하루하루를 지새우던 아버지도 그 친권만큼은 강력했다. 격리를 하더라도 아버지가 “내 자식 내가 찾겠다는데.”를 부르짖으며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찾아오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를 내 줄 수 밖에 없었다. ‘친권’이라는 말, 부모의 당연한 권리를 뜻하는 그 단어가 얼마나 흉물스럽게 변신할 수 있는지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후배 하나는 그렇게 아버지 손에 끌려가는 아이를 보며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다가 손가락을 상하기도 했다.

정체 모를 망상에 젖어버린 엄마와 방에 드러누워만 있는 아버지, 그리고 퀴퀴한 쓰레기 살림 위에서, 그 머리칼 속에 이를 한 움큼 키우며 사는 자매도 끝내 우리는 밖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누군가 집 하나만 주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아버지는 미친 사람이라고 비웃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세한탄만 하고 보냈다. 아이들은 학교 갔다가 무조건 집으로 와야 했고 그 감옥 같은 방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미술 학원 한 번 다닌 적 없는 아이들의 솜씨는 문외한이 보기에는 천재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무기력한 아버지와 미쳐 버린 어머니 사이에서 그림만 그리고 지냈다.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었지만 말이 없었다.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아이들의 그림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건 아이들 일종의 ‘패닉룸’이었다.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공간이긴 하지만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게 만드는. 나는 그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리적 학대도 없고, 정신이상 진단도 받은 게 없고, 무기력하다고 아버지로부터 애들을 격리시킬 수도 없다.”는 얘기였다.

그저 집 안에서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엉덩이를 수십 대씩 두들겨 팬 뒤, 다른 친구들로 하여금 “무엇을 잘못하여 맞았는지”를 발표시켜서 칭찬 스티커를 준 교사가 있었다. 2학년 애들의 엉덩이가 보랏빛으로 뒤덮였다. 이 젊은 교사는 임신한 여성이었다. 힘에 부쳤는지 쉬는 시간마다 스무 대 씩 100대를 채웠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렇게 맞아야 한단 말인가. 이 문제로 교육청을 찾았을 때 교육청 관료는 정말로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는 절대로 ‘아동학대’가 아니며 단지 체벌이 과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지휘 감독한다는 공무원에 따르면 아동학대란 “팥쥐 엄마가 콩쥐 괴롭히듯 아무 이유 없이 못살게 구는 행위”이지 교사의 체벌은 그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방의 한 가스검침원 아주머니가 제보를 해 왔다. 집에 들어가 보니 애가 온몸에 멍이 든 채 비썩 말라 있더라고. 분명히 학대를 받는 것 같더라고 했다. 달려가 확인해 보니 제보 시점이 이미 시간이 흐른 뒤라 아이의 멍은 지워져 있었지만 비썩 말라 있는 것은 여전했다. PD 두 명이 그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건너편 아파트에서 잠복하다가 아이의 계모가 아이에게 뭔가 이상한 걸 억지로 먹이는 걸 본다. 정황상 (확증은 없으므로)아이의 오줌이었다. 너무 멀리서 봐서 정확하지 않았고 그것만으로 집에 뛰어들 수도 없어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는데 다음날 앰뷸런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는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 아이가 “넘어져서” 뇌출혈로 죽었다는 것이다. 이 황망한 사태에 PD고 작가고 자기들이 죽인 것 같다고, 조금만 일찍 갔더라도 살릴 수 있었을 거라고 엉엉 울었다. 그나마 찍은 자료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넘겼지만 학대의 증거는 되지 못했고 뇌출혈 외의 흔적은 없어서 사고사 처리되고 말았다.

제도의 미비, 완고하기만 한 사회적 통념, 교육 관료의 머리에서조차 실종 상태에 빠진 개념과 저열한 인식들, 잔인하기까지 한 폭력의 손아귀는 그렇게 뭉쳐지고 쌓아올려져 하나의 벽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가 만났던 아이들은 벽 저편에서 상처받고 방치된 채,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세상으로부터 차단된 채 사회에 대한 증오를 키워 나가는 괴물 같은 존재로 커 가거나 스러져 갔다. 친아버지에게는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의붓아버지에게는 성추행을 당하다가 끝내 목졸려 죽어간 저 어린 목숨 앞에서 몸을 떨며 분노하는 것은 응당한 일이나 적어도 나에게는 새삼스럽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아동보호에 있어서 양보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아동학대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도 그리 먼 과거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깡깡 시골 촌로의 입에서도 아동학대라는 단어가 어렵지 않게 들먹여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동학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확산은 그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늘상 폭력을 휘두르는 알콜릭 아버지부터 일반 시민, 심지어 가장 아동학대의 피해에 민감해야 할 경찰과 교사, 그리고 교육 관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아동학대에 둔감하다. 나아가 ‘인권 침해’라는 말이 술 취한 깡패의 입에서도 술술 나오는 세상이 되었으나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인권이 체계적이고도 실질적인 보장이 이뤄지고 있다는 확신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서유기를 폭력적인 원숭이의 연쇄살인의 기록으로 몰아붙이는 미국 검사의 무지는 분명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그 맹랑한 과잉보호조차도 아동의 권리에 관한한 양보가 없고 부모라는 이름에 비하여도 꿀리지 않을 만큼의 훌륭한 아동 보호 시스템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우리에게도 그런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는 시스템이 하루 바삐 확립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동과 관련된 일이라면,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학교든 병원이든 가정이든 냉철하게 개입하여 그들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보호하겠노라 정중히 명함을 건넬 수 있고, 그 권위에 사회 구성원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체계가 대한민국 시민 사회 내에 튼실히 뿌리 내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국가와 사회가 바뀌려면 우리들 하나 하나가 바뀌어야 한다.

아동학대 현장에서 천신만고 끝에 구한 아이를 그룹홈, 즉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함께 보호하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좀 평수 넓은 아파트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만 떠들면 아동보호기관 직원들이 안절부절했다. 걸핏하면 쉿 쉿 하면서 아이들을 단속했다. 이유는 아파트 주민들이 흰눈으로 쳐다본다는 것이다. 그룹홈 같은 게 왜 우리 아파트에 있느냐며 눈을 흘기고 관리사무소에 항의하고, 그곳에 온 아이들이 행여 자신의 아이들과 접촉할까 우려하는 낯빛이 알몸처럼 선연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그 아파트 주민들이 나빠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 역시 TV를 보고 분노하고 어떻게 애들한테 저런 일을 벌일 수 있느냐며 가해자들을 저주하고 인터넷 댓글로 사형시켜라 말아라 정의감을 과시하는 나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른 의미의 가해자가 된다.

더 이상은 서유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아이를 빼앗는 미국 사회의 자신감을 부러워하지만은 않아야겠다. 문제의 자신감은 국가로부터,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나부터 조금 더 바뀌어야겠다는 의지와 그 합계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사실상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걸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 하나가 책임의식을 더 갖지 않는다면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실망하지 말고, 지나치게 기대하지도 말고 책임감을 버리지 말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