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정지출 여력은 이론적으로 무한하다

  • 기자명 전용복
  • 기사승인 2019.05.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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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폐이론> 시리즈

 

'재정지출 확대=세금부담 증가' 주류 경제학의 시각

영국의 마가렛 대처 전(前) 수상(1979-1991)은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1970년대에 들어 세계경제는 소위 ‘자본주의 황금기’에 종말을 고하고,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최악의 경제상황을 경험하고 있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겠다는 ‘복지국가 영국’의 정부재정은 극심한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1976년에는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도 했다. 1979년 영국의 보수당과 대처가 집권하자 영국은 새로운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추진했다. 새로운 정책방향이란 긴축과 민영화, 규제완화였다. ‘사회는 없다, 개인으로서 남성과 여성, 그리고 가정만이 존재할 뿐이다’(1987)라는 신념하에, 그는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도입했으며, 금융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사회복지지출도 축소했다. 이를 하나의 패키지로 추진하면서 대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철의 여인’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2013년 대처가 사망하고 국장(國葬)을 준비할 때, ‘그녀의 장례를 민영화하라’는 구호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 보수당이 집권하고 추진하려다 실패했던 정책들을 대처가 집권하며 강하게 밀어붙여 원하던 목표를 달성했던 것이다. 그 이후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영국과 유사한 정책 패키지가 유행처럼 도입되고 실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반대자들과 대중을 향해 대처는 다음과 같은 경제 관련 국정 철학(?)을 설파했는데, 이후 인류를 지배하는 경제담론이 되었다(현재에도 그렇다).

 

“가정경제 운영의 문제를 이해하는 여성이라면 국가경제 운영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1979)
“공공의 돈(public money)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납세자의 돈만이 있을 뿐입니다”(1982)

 

위 두 인용문은 재정 삭감을 주장하며 대처가 한 말이다. 대처 이전에도 주류 경제학은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 언술은 이후 오늘날까지도 정부재정에 대한 대중적 통념으로 자리잡아 있다.

 

첫 번째 인용문은 일반 가정경제의 운영원리와 정부의 재정 운영원리가 동일하다는 주장이다. 일반 가정 혹은 기업이 장기간 소득보다 더 많이 지출한다면, 빚을 많이 지게 되고 결국 파산할 것이다. 동일하게 한 나라의 정부도 재정적자가 지속되면 부채가 증가해 파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적자의 공포를 이보다 더 쉽게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언술은 정부재정의 재원을 말하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은 세금으로만 충당된다는 말이다. 정부의 지출 확대는 곧 세금인상과 같다는 뜻이다. 위 인용문이 수상으로서 공식적 언급임을 감안하면, 그는 대중들에게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세금 더 부담하시겠습니까?’라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류 경제학이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재정건전성’ 관념이 대중적 언어로 전파되었다. 참으로 영리한 전략이다. 국가재정을 가계부와 같은 것이라고 단언함으로써 토론과 대안적 상상의 범위를 유리한 방향으로 한정한다. 그렇지 않다는 점을 주장하려면 다소 길고 지루한 강연이 필요할텐데,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강의할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 정부가 지출하는 모든 돈은 당신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 은근히 알려준다. 이 두 명제를 합하면, 세금을 더 걷지 않는 한 재정적자를 지속할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이제 마지막 한방이 남았다. ‘게을러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당신이 세금을 더 내시겠습니까?’

 

이것은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정부도 이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총수입이 총지출을 따라가지 못하면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그래서 다른 누군가에게 빚을 계속 진다면 국가의 부채도 덩달아 증가하게 됩니다. 최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하였는데, 기본적으로 총수입과 총지출의 균형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알기쉬운 재정: 우리나라 재정의 이해> (재정규모 섹션), 국회예산정책처

 

이는 대처의 재정관념과 정확히 동일하다. 정부재정의 운영원리가 일반 가정경제의 그것과 같다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유럽 여러 나라들의 최근 재정위기는 ‘주권통화를 포기’한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칼럼에서 더 자세히 설명한다).

 

대부분의 경우 쉬운 설명이 미덕이다. 대중을 이해시키면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해하기 쉽다고 꼭 진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대개 복잡해서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대중을 선동하기에는 긴 설명이 적합하지 않지만, 선동이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특히 공공정책에서라면. 그런데 그 ‘입증책임’이 다른 진실을 주장하는 쪽에 있다는 점이 문제를 어렵게 한다.

 

정부 부채는 큰 문제 아니라는 앨런 그린스펀

 

대처의 언술이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순전히 정치적 레토릭이었는지, 아니면 ‘전문가적 믿음’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대처가 경제와 재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경험이 ‘신념’만큼 풍부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며 약 19년 동안(1987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미국의 중앙은행, 흔히 ‘Fed’ 또는 ‘연준’이라 부른다)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전혀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2005년 3월 2일 하원예산위원회(committee on the budget House of Representatives)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미국 사회보장기금(Social Security)의 재정건전성(solvency) 강화방안에 대해 질문하는 Paul Ryan 하원의원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부과방식(pay-as-you-go) 연기금이 파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부가 원하는 만큼 통화를 창조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지급하는데 그 어떤 제약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연금을 포함하여 사회보장기금의 재정건전성 문제보다는-역자) 연금 수급자들이 구매할 실물 자산을 충분히 생산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재정건전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은퇴자들이 소비할 수 있는, 현금과는 구분되는, 실물 생산을 보장하는 금융시스템의 구조가 진정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현금은 그 자체로 보유하면 좋은 것이긴 하지만, 연금이 지급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실물자원이 창출되고, 그래서 연금으로 그것을 구매할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회보장기금의 재정건전성 질문에 그린스판 전 의장은 그에 한정하지 않고 정부재정 일반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사회보장기금도 정부재정 일반의 한 부분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보다 최근에는 미국의 의료서비스 지원제도(Medicare) 때문에 정부의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있고,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미국 쎄인트 루이스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은 다음과 같은 공식 논평을 게재했다.

 

“정부는 기업이나 가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는 달러화로 가치가 매겨진 부채를 지는데, 연방정부만이 유일하게 달러를 제조한다. 따라서 연방정부는 결코 채부를 변제하지 못하는 상태, 즉 부도날 수가 없다.” 
Fawley, B.W. & L. Juvenal 2011. “Why Health Care Matters and the Current Debt Does Not”,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October 2011).

 

대처와 반대로, 미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정부의 부채는 큰 문제가 아니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주권통화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정부의 ‘부채’는 민간의 부채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정부의 부채는 나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빚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 지출은 세금에서 오지 않는다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실업을 줄이고 복지서비스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가장 흔한 반응은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How will you pay for it?)라고 조롱조로 되묻는 것이다. 정부재정을 가계의 재정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재원은 세금으로밖에 조달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도한 적자재정은 정부를 파산하게 하거나 증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도를 담고 있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MMT 지지자들은 ‘이미 모든 정부지출이 행해지는 방식 그대로!’라고 응수한다. 이에 대해서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부도 중앙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두고 있고, 정부재정을 관리할 의무와 책임은 중앙은행에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은행의 은행이기도 하고, 정부의 은행이기도 하다. 흔히 세금 징수나 정부지출도 이 정부계좌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중앙은행에 개설되어 있는 정부계좌를 통한 재정운영’이라고 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정부가 사용하는 화폐는 반드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 즉 지급준비금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금 징수와 재정지출은 반드시 지급준비금의 증감을 가져온다. 이렇게 되면 재정운영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중앙은행도 단순한 재정 관리인의 입장일 수가 없게 된다. 재정운영 결과 금융시장 변동에 대처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우선 세금을 징수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민간은행(전산망)을 통해 세금을 징수한다. 민간부문은 현금을 제외하고는 중앙은행이 아니라 민간은행이 발행하는 신용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신용화폐가 세금 납부에 사용되지 못한다면, 은행의 신용창조 활동도 심각한 제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금에 사용되지 못하는 ‘돈’이라면 잘 유통되지 않을 것이고, 민간은 은행예금을 지불수단으로 수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금 고지서가 발급되면 납세자는 현금이나 거래은행에 예금되어 있는 신용화폐를 이용해 세금을 납부한다. 그러면 납세자의 예금 잔고(민간은행의 부채)가 감소하고, 은행은 해당 액수만큼의 지급준비금을 중앙은행에 개설되어 있는 정부의 계좌로 이체한다. 그 결과 정부의 계좌 잔고가 증가하게 된다.

 

이를 <표 1>처럼 단순화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를 이용해 설명해 보자(아래에서 제시하는 대차대조표의 숫자는 모두 ‘변동액’을 의미). 정부가 100억 원의 세금을 징수하고, 납세자는 은행예금으로 세금을 납부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납세자들의 예금 100억 원이 감소한다. 은행들은 이를 중앙은행에 개설된 정부의 계좌(L3)로 이체하는데, 이때 지급준비금을 사용한다. 이는 민간은행들의 지급준비금(L2)은 100억 원 줄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급준비금은 중앙은행의 부채이다. 민간은행의 지급준비금 감소는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 부채가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앞의 칼럼에서 언급한 지급준비금의 세 번째 역할, 즉 세금납부와 정부의 지출수단이 이것이다.

 

<표 1> 단순화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 세금을 징수하는 경우

자산

부채

A1 : 국채 및 민간발행 유가증권

L1 : 현금발행액

L2 : 민간은행 지급준비금 

-100억원

A2 : 외화자산

L3 : 정부예금 

+100억원

 

 

중앙은행의 입장에서 부채 총액에는 변화가 없다. 민간은행의 지급준비금 예치금이 정부의 예금으로, 중앙은행 내부에서 옮겨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경제 전체에 유통되는 본원통화량이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본원통화는 유통되는 현금(지폐와 동전)과 민간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지급준비금의 합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들어온 정부예금은 본원통화량으로 계산되지 않는 것이다.

 

본원통화, 특히 은행들의 지급준비금 감소는 중요한 경제적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다. 예컨대 세금 징수로 민간은행들이 필요로 하는 지급준비금(의무지급준비율 준수, 지급결제 수단)이 부족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앙은행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의 절체절명의 임무는 기준금리(정책금리) 방어인데, 지급준비금이 부족해지면 기준금리가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세금 징수로 민간이 요구하는 지급준비금이 부족해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지급준비금 금리가 상승할 조짐이 보이면, 중앙은행은 민간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매입(A1 증가)하여 부족한 지급준비금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 <표 2>는 징세 이후 벌어지는 중앙은행의 공개시장운영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중앙은행은 자산으로 국채(A1)가 100억 원 증가했고, 민간은행들은 지급준비금(L2)은 100억 원 증가하여 납세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아갔다(이는 징세로 줄어든 지급준비금 전액을 공급한 것으로 가정한 결과이다. 이런 공개시장운영 총액이 이보다 작을 수 있지만(아래 참조),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표 2> 단순화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 세금징수로 부족해진 지급준비금을 공급하는 경우

자산

부채

A1 : 국채 및 민간발행 유가증권

+100억원

L1 : 현금발행액

L2 : 민간은행 지급준비금

0원

A2 : 외화자산

L3 : 정부예금

+100억원

 

 

두 가지 결과를 주목하자. 첫째, 정부의 재정운용은 통화정책과 무관치 않다. 세금을 징수하거나 재정지출을 하면 본원통화량, 특히 지급준비금이 변한다. 이 예에서처럼 대규모 징세가 이루어지면 중앙은행이 개입하여 부족해진 지급준비금을 보충해야 한다(재정지출은 그 반대의 공개시장운영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국채는 통화정책 수단이다. 우리나라는 국채가 부족하여(?) 한국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이 주요 통화정책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월 말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하는 국채는 16.7조 원에 지나지 않는 반면, 171.4조 원 이상의 통화안정증권이 발행되어 민간 금융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다(국채 혹은 통화안정증권 등이 발행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재정을 지출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를 <표 3>을 이용해 설명해 보자. 이제 정부가 이렇게 거두어들인 세금을 지출(?)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MMT는 세금이 재정지출 재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직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일단은 세금으로 지출한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해 보자). 정부의 지출도 민간은행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정부는 지급준비금만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정부가 100억 원을 기초연금으로 지급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정부의 한국은행 예금 100억 원이 감소한다. 그리고 이는 민간은행의 지급준비금 계좌로 이체된다. 민간은행 입장에서는 지급준비금 100억 원을 수령했고, 그에 상응하는 돈을 기초연금 수급자들에게 자신의 차용증서인 ‘예금’으로 지급한다. 어르신들의 통장에 총 100억 원이 찍히는 것이다.

 

<표 3> 단순화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 정부가 지출하는 경우

자산

부채

A1 : 국채 및 민간발행 유가증권

+100억원

L1 : 현금발행액

L2 : 민간은행 지급준비금 

100억원

A2 : 외화자산

L3 : 정부예금 

0원

 

 

이제 정부의 중앙은행 예금액은 0원으로 줄었고, 민간은행 지급준비금은 100억 원 증가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이 과정에서 통화량, 즉 본원통화량이 100억 원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렇게 정부지출 증가로 늘어난 지급준비금이 기준금리를 끌어내리려 하면, 중앙은행이 개입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도하여 이 초과 지급준비금을 흡수해야 하는 것이다. 민간은행 입장에서는 이자가 지급되지 않는 잉여 ‘현금’을 보유하기 보다는 이자가 지급되는 ‘국채’로 교환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국채는 일종의 민간은행 저축수단인 셈이다.

 

재정정책이 금융시장에 주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자산을 조정한다. 이때 사용되는 수단이 국채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분리되기 어렵다. ‘중앙은행 독립성’은 개념적으로도 현실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은 비현실적이고, 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주류 경제학과 보수주의자는 현실을 외면하는 부류이다.

 

정부의 재정운용이 지급준비금의 증감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은 대중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주류 경제학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도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장과 정부의 관련 부서에서 이는 상식에 속하는 문제이다. 사례를 살펴보자. 기획재정부 국고과는 2010년 5월 28일자로 “국고금 관리체제 선진화 방안”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 가운데 “국고금 관리의 특수성”(2쪽) 섹션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그림 1).

 

<그림 1> 재정운용과 통화정책 사이의 관계

 

여기서 말하는 통화란 정확히 말해 ‘지급준비금’을 뜻한다(이렇게 중앙은행 발행 화폐와 민간은행 발행 화폐를 구분할 때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림 2>는 매일 발표되는 신문기사의 일부이다. 기자는 재정지출은 지급준비금의 증가, 세입은 지급준비금의 감소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그림 2> 재정운용과 지급준비금

 

최근 MMT를 비판하는 견해가 많이 보도되고 있다. 이들은 대개 MMT의 정책제언을 ‘돈을 찍어 재정지출을 늘리라는 주문’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는 MMT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거나 악의적인 비난이다. MMT의 주요 목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당사자들은 항변한다. 실제 재정과정을 분석한 결과 ‘정부는 이미 화폐를 창조하여 지출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MMT 지지자들이 담대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부지출은 지급준비금을 지출하는 것이고, 그 지급준비금은 중앙은행이 창조한 것’이라는 분석적 결론이 곧 ‘돈을 찍어 재정지출을 늘리라’는 주장은 아니다.

 

실제의 재정지출 과정

 

세금이 재정지출의 재원이 아니라는 주장을 객관적으로 다시 점검해 보자. 세금으로 들어온 정부예금이 지출하면 감소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두고 주류 경제학은 재정지출이 세금으로 충당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실체의 일면만을 보는 것이다. 세금을 징수하면 지급준비금(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정부가 사용하는 화폐)이 감소하고 정부가 지출하면 지급준비금이 증가한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도 진실이다. 다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들에 따르면, 정부예금이 고갈되면 지출할 수가 없다. 중앙은행의 정부대출을 금지하고,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직접 매입할 수 없도록 법이 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세금 없이는 지출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있다. ‘중앙은행 독립성’의 현실 형태가 이것이다. 하지만 이는 ‘임의로’ 정한 제도가 그렇다는 뜻일 뿐이다. 만약 이 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폐지한다면, 누구의 주장이 현실을 더 잘 묘사하는 것일까?

 

재정정책과 통화량 변화의 관계를 살펴보면 보다 이해하기 쉽다. 세금 징수로 감소했던 통화량(본원통화)이 정부지출로 다시 증가한다. 그렇다면 증가한, 또는 새로 나타난, 통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중앙은행이 창조한 것이다. 민간은행이 무(無)에서 신용화폐를 창조하듯, 중앙은행도 무(無)에서 지급준비금을 창조한다. 정부는 이것을 지출한다. 따라서 중앙은행과 정부는 한 몸이고, 정부는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 창조 능력(사실상 무한하다)만큼 지급여력이 있다(여기서 논점은 정부의 지급여력이다. 그것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부정적 효과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상기하자).

 

그렇다면 정부부채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단순히 정부의 수입(세금)과 지출의 역사적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부채가 100조 원이라면, 해당 정부가 설립되고 지금까지 거두어들인 세금에 대비하여 100조 원만큼 더 지출했다는 뜻일 뿐이다. 이것은 정부부채가 과도하면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부부채의 본질 혹은 성격에 대한 것이다. 정부부채의 본질은 정부재정 유출입의 역사적 기록이다. 부채가 과도하다고 정부지출 여력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이 주장을 다음의 예를 통해 설명해 보자. 세금이 부족하면, 즉 정부의 중앙은행 계좌 잔고가 부족해도 정부는 지출할 수 있는가? 이를 금지하는 법만 아니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정부의 요청에 따라 무에서 지급준비금을 창조하여 지출하면 된다. <표 3>에서는 정부가 100억 원을 지출했음에도 한국은행 정부예금 잔고가 0이었다. 사전에 세금으로 100억 원을 징수했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이제 사전에 징수한 세금이 없고, 그래서 현재 정부예금 잔고가 0이라 가정하고, 정부가 지출한다고 해보자. 그 결과는 <표 4>에 나타나 있다.

 

<표 4> 단순화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 정부가 국채발행 없이 적자재정을 운영하는 경우

자산

부채

A1 : 국채 및 민간발행 유가증권

L1 : 현금발행액

L2 : 민간은행 지급준비금 

100억원

A2 : 외화자산

L3 : 정부예금 

-100억원

 

 

여전히 정부는 100억 원을 지출했다. 그 돈은 중앙은행이 지급준비금을 발행하여 댔다. 정부는 원하는 만큼 무한히 지급준비금(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중앙은행은 본원통화를 창조하여 정부의 지출요구를 실행하고 있다. <표 4>에서는 다만 정부의 예금잔고가 0인 상태에서 지출함으로써 정부는 중앙은행에 –100억 원 빚을 지게 되었다. 또한 중앙은행도 민간에 대해 지급준비금의 형태로 100억 원 빚을 지게 되었다(지급준비금 혹은 현금 발행액은 중앙은행의 ‘부채’로 인식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정부(중앙은행)는 지급준비금을 창조하는데 제약이 없고, 정부만이 이렇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정부예산이 ‘가계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따라서 대처가 틀렸다(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도 틀렸다). 그린스펀 전 의장과 세인트 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주장이 이것이다.

 

물론 현실에는 이를 제약하는 다양한 제도들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등 선진국들은 정부 계좌에 예금 잔고가 부족하면 지출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정부 잔고가 부족하면 국채를 발행하여 충분한 정부예금 잔고를 확보한 후에야 지출할 수 있다(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한국은행으로부터 40조 원까지 빌려서 지출하고 회계년 내에 상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액수는 매년 변경된다. 하지만 미국은 정부의 중앙은행 대출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정부가 징수한 세금보다 더 지출을 하려면, 중앙은행이 아니라, 민간으로부터 빌려서 지출하라는 것이다. 국채는 정부가 민간에 제시하는 차용증서이다.

 

그렇다면, 이 규정이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창조를 통한 정부지출’ 명제를 부정하는 것인가? 정부예금 잔고가 부족하면 국채를 발행하게 한 제도적 제약 때문에, 정부지출 과정의 본질이 변하는가? 그렇지 않다. 민간의 국채매입 자금도 중앙은행이 (과거에) 발행한 지급준비금이다.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정부와의 거래에는 항상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급준비금만 사용된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 이를 매입하는 민간(은행과 일부 비은행 금융기관들)은 지급준비금으로 그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채를 매입하는데 사용되는 그 지급준비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급준비금은 중앙은행만 발행한다. 따라서 그것은 과거 혹은 당대에 중앙은행이 발행한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시점에서 시장에 이를 인수할 지급준비금이 부족하면 중앙은행이 나서서 저리로 빌려주기도 한다.

 

*국채 발행의 종류와 현황

국채가 거래되는 시장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관찰하는 것은 ‘이미’ 발급된 국채가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다. 이것을 ‘2차 시장’이라 부른다. 여기서 국채 매매에는 민간은행들이 발행하는 신용화폐가 사용될 수 있다. A은행이 2차 시장에서 최씨가 보유한 국채를 매입할 때, A은행은 대출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대금을 지불할 수 있다. 즉,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매입하는 국채를 자산으로 기록하고, 부채로 최씨의 예금을 기록하면 된다. 물론 최씨의 예금은 A은행이 무에서 창조한 것이다. 은행들 간에는 지급준비금과 신용화폐가 병용된다. 은행간 지급결제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지급준비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간 국채거래는 지급준비금을 빌려주고 빌려오는 수단으로 많이 사용된다. 이미 발행된 국채를 거래하는 2차 시장과 대비하여 ‘발행시장’ 혹은 ‘1차 시장’이 있다. 이는 ‘새로’ 발행하는 국채를 매도하는 시장이다. 

국채의 발행 주체는 정부이지만, 발행과 매도(경매)의 전 과정은 중앙은행이 관장한다. 발생시장에 참여하는 금융기관을 프라이머리 딜러(primary dealer, 혹은 국고채 전문딜러)라 부른다. 발행시장에서는 지급준비금으로 결제해야 하는데, 프라이머리 딜러에게 지급준비금이 부족한 경우, 혹은 시장 전체적으로 지급준비금이 부족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를 대비하여 우리나라는 프라이머리 딜러에게 ‘여유 공적자금’을 저리(익일물 콜금리 즉, 초단기 시장금리의 70%)로 대부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한국은행의 증권업무 해설, 2017.12., 78쪽). 이들은 대개 발행시장에서 국채를 인수하는 즉시 2차 시장에서 매도하여 자금을 회수한다.

 

국채는 꼭 발행해야 하는 것일까

 

현대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 하에서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영하려면 민간에게 이자를 지급하면서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민간이 정부에 빌려주는 돈도 중앙은행이 제공한 것이다. ‘정부의 재정적자는 민간은행으로부터 빌려서 충당해야 한다’는 제도적 제약으로 한 번 우회하기는 했지만, ‘정부는 중앙은행이 창조하는 지급준비금으로 지출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참이다. 이것은 그러한 제도적 제약이 바람직한 것인가의 문제와는 무관하게 그러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이것이 ‘적자지출의 부정적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물론 부정적 효과라는 것이 허구이거나 과장되었음은 다음 칼럼에서 상세히 다룬다).

 

제도를 변경하고 국채 대신 중앙은행이 재정의 적자분을 보전해 주는 방법은 불가능할까? <표 5>는 국채를 발행하여 정부의 예금 잔고를 유지하면서 지출하는 경우에 나타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표 4>와 다른 점으로, 첫째, 이제 정부예금 잔고가 음(-)이 아니라 0으로 되었다. 민간으로부터 지급준비금을 빌려서 지출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국채발행과 지출 과정에서 지급준비금이 변동한다는 점은 반복해서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국채를 발행하여 매도하면 민간의 지급준비금이 감소한다. 정부가 지출하면 민간의 지급준비금과 본원통화량이 다시 증가한다. 지급준비금, 즉 본원통화량이 감소하고 증가한다는 사실은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여 지출한다 하더라도 ‘정부지출은 여전히 중앙은행의 통화 창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표 5> 단순화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적자재정을 운영하는 경우

자산

부채

A1 : 국채 및 민간발행 유가증권

L1 : 현금발행액

L2 : 민간은행 지급준비금 

0원

A2 : 외화자산

L3 : 정부예금 

0원

 

 

둘째, <표 4>와 비교해 보면, 정부가 지출했음에도 민간은행의 지급준비금 예치금이 증가하지 않았다. 이제 민간은행은 대신 100억 원어치의 국채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정부지출은 민간은행에게 지급준비금을 지급하고, 민간은행은 정부지출 수령자에게 ‘신용화폐’인 예금을 만들어준다. 결국 정부지출로 증가한 지급준비금은 민간은행들 수중으로 들어간다(표 4). 그런데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게 되면 그 증가한 지급준비금은 채권으로 전환되어 민간은행들이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표 6> 단순화된 민간은행 대차대조표 :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지출하는 경우

자산

부채

국채 및 민간발행 유가증권 

+100억원

중앙은행 예치 지급준비금 

0원

기초연금 수급자 예금 

+100억원

 

 

민간은행들의 대차대조표 변화 결과는 <표 6>과 같다. 정부가 적자지출을 하면 민간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은 100억 원 증가한다. 이를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지급하는데, 어르신들의 통장에 은행 자신이 발행하는 신용화폐인 예금을 창조해 드렸다. 그래서 예금부채가 100억 원 늘어났다. 민간은행이 보유하는 지급준비금에 대해서는 이자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이를 활용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매입했다. 그 결과가 <표 6>에 나타나 있다.

 

정부지출로 민간은행에서 증가한 지급준비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경우(표 4)와 국채로 보유하는 경우(표 5, 6)의 결정적 차이는 이자지급 여부이다. 보통의 경우 민간은행의 지급준비금에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 지급준비금을 많이 보유하게 되면 은행의 수익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은행은 최소한의 의무지급준비금만을 보유하고자 한다. 초과지급준비금이 발생하면 다른 은행에 대출하여 수익을 올리거나 수익을 낼 수 있는 다른 자산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것을 은행의 저축수단이라 부르자. 국채는 민간은행들에게는 좋은 저축수단이다.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영하는데 국채만을 활용해야 하는 필연적 이유가 있을까? <표 4>처럼 중앙은행에 빚을 지는 방식으로 적자재정을 운영하면 왜 안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주류 경제학의 답변은 재정적자에 따른 통화량 증발을 억제하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표 4>와 같은 경우를 재정적자의 화폐화(monetization of debt)라 부른다. 재정정책으로 불필요한 통화가 공급되면 인플레이션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 금융시장의 작동원리를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결론이다. 지난 번 칼럼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주장이 성립하려면 다음의 두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재정적자로 초과지급준비금이 발행되면 그것이 곧바로 민간부문으로 흘러들어가야 한다. 즉, 정부적자의 화폐화로 엄청난 신용화폐(부채와 예금)가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민간부문에서 통화량이 증가해도 생산량은 증가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생산물에 비해 통화량이 많아지고 생산물 1단위 당 거래에 사용되는 화폐량(이것을 가격이라 부른다)이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상세히 설명한 것처럼 이 두 전제 모두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첫째, 지급준비금이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민간이 사용하는 신용화폐(대출)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민간부문에 유통되는 통화량, 즉 신용화폐 증가는 반드시 생산물의 증가와 함께 이루어진다. 민간부문의 통화는 모두 부채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돈을 빌려 더 많은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면 민간부문이 돈을 빌리고 신용화폐를 창조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의 예처럼 기초연금을 지급한다 하더라도, 상시적이고 만성적인 수요부족 상태에서 그로부터 수요가 발생하면 생산이 유발될 수 있다.

 

주류 경제학의 위 두 전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초과지급준비금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지출로 민간은행들의 지급준비금 보유량이 과도하게 증가하면 중앙은행이 그 초과지급준비금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주류 경제학의 주장은 이러한 통화정책과의 연관성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초과지급준비금이 발생하면 목표금리가 하락하고, 중앙은행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그 초과지급준비금을 흡수해야 한다. 이자율 목표제 하에서 재정적자의 화폐화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자 하더라도,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국채 대신 중앙은행이 통화를 공급하는 방법

 

종합하면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용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아니라 민간은행으로부터만 돈을 빌려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정부가 반드시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MMT는 ‘국채는 재정조달 수단이 아니라 통화정책(공개시장운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고, 정부가 자발적으로 공급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확장해 보면 분명 이런 측면이 있다. <표 4>처럼 정부가 세금 없이 지출하게 되면 (또는 이보다 약한 가정으로 세금 수입이 있되 그 보다 더 많이 지출하는 적자재정을 운영하는 경우로 일반화해도 된다) 정부의 지출은 ‘중앙은행에 대한 빚(debt)’으로 남게 된다. 국채를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도 정부기구(현재 세계적으로 민간이 운영하는 중앙은행은 없다. 미국의 연준도 정부와 의회의 통제를 받는다. 세간의 음모론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연준의 소유권 여부와 무관하게 운영상 정부기구라 할 수 있다)이므로, 이는 그저 정부기관 사이의 내부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법적으로 이는 금지되어 있다.

 

그렇지만 법적인 제약 말고도 국채와 같이 통화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긴 하다. 정부의 지출은 민간은행들의 지급준비금을 증가시킨다. 민간은행들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다 하자. 하지만 정부지출로 지급준비금이 증가하고, 민간은행들이 필요한 지급준비금보다 더 많은 지급준비금을 갖게 되면 기준금리가 하락한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방어해야 한다. 방법은 잉여 지급준비금을 흡수하는 것이다. 민간은행 입장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이에 응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중앙은행이 가진 자산, 즉 이자가 지급되는 저축수단을 민간은행이 가진 지급준비금과 교환하는 것이다. MMT 지지자들은 이러한 이자지급 수단, 혹은 민간은행의 저축수단이 국채라 주장한다. 국채는 오히려 민간 금융기관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국채 이외의 방법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면 ‘통화정책을 위한 한 가지 수단으로서 국채’라는 개념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국채 이외에 초과지급준비금을 흡수하고 기준금리를 방어할 다른 방법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정부는 적자재정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표 4>처럼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려 지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대안은 (필자가 아는 한 세계적으로 유일한) 우리나라 한국은행처럼 중앙은행이 직접 국채와 유사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한국은행은 ‘통화안정증권’이라는 중앙은행 채권을 발행하여 공개시장운영에 사용하고 있다(수출로 벌어들인 외환을 매입하여 외환보유고를 확대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급준비금을 발행할 권한을 갖고 있어 파산할 수 없으므로, 통화안정증권은 국채처럼 무위험 채권으로 간주된다. 민간은행들이 부도위험 때문에 이 채권을 수용하지 않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가상적으로 이를 활용해 보자. 정부가 적자지출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대신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여 정부에 지급한다고 하자.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렇게 풀린 지급준비금을 흡수하여 기준금리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지금 한국은행처럼 중앙은행 채권을 발행한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분명 정부는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만 ‘재정적자 보전을 위해 중앙은행 화폐를 직접 제공할 수 없다’는 현재의 제도를 위반하고 있을 뿐이다.

 

국채를 이용하지 않고 초과지급준비금을 흡수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은행들의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해 직접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는 2008년 10월부터 미국 중앙은행이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2008년 9월 초 ‘리먼 브라더스’라는 거대 투자회사가 파산하자, 다양한 금융수단과 금융기관들에 연쇄적인 충격을 끼쳤다. 그러자 은행들과 금융기관들은 자신의 파산을 면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현금’을 확보하고자 했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여 상호간 대출도 꺼려했다. 그 불똥이 일반 기업에까지 튀어 생산이 크게 위축되었다. 금융과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거대한 부실채권 혹은 부실 위험이 있는 채권을 처리해야만 했다. 이는 민간은행들이 스스로 신용화폐 발행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민간은행의 신용창조는 부채도 동시에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오직 중앙은행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중앙은행은 일국에서 가장 신뢰가 높고 유동적인 화폐를 무한정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이 나섰다. 2008년 10월부터 2013년 말까지 연준은 약 4.5조 달러에 달하는 민간은행들의 채권을 닥치는 대로 매입해줬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연준의 지급보증까지 합하면 그 액수는 28조 달러, 당시 미국 GDP의 두 배에 달했다고 한다. 민간은행들은 국채까지도 매도했다. 왜냐하면 ‘뱅크런’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간은행들 수중에는 엄청난 양의 지급준비금이 쌓였다. 당연히 목표금리(Federal Fund Rate, 익일물 레포 금리)도 급속도로 떨어졌다(<그림 3>에서 나타나는 금융위기 초기의 변화를 주목하자). 정상적인 경우라면 중앙은행이 국채를 팔아 이 초과지급준비금을 회수하여 목표금리를 방어했어야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리고 연준이 자처할 일 아닌가.

 

<그림 3> 초과지급준비금 금리(파란선)과 시장금리(일별 자료). 출처 :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다른 한편 연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어떻게든 플러스(+) 금리를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초과지급준비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어떻게 플러스(+)의 금리를 유지한단 말인가? 초과지급준비금에도 이자(초과지급준비금리, IOER이라 부른다)를 지급하면 된다. 2008년 10월 9일 연준은 실제로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해 0.75%의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하여 같은 해 12월 16일 0.25%로 인하한 후, 2015년 12월 16일까지 그 수준을 유지했다. 이후 목표금리 인상과 함께 초과지급준비금리도 상승하여, 현재에도 그것은 2.35%에 달하고 있다(이에 대한 보다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논의는 생략한다. 궁금한 독자는 Lavoie(2010)Fullwiler(2013) 참조)

 

우리나라 한국은행도 2010년 10월부터 ‘통화안정계정’ 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민간은행이 초과지급준비금을 보유할 때, 한국은행의 이 계정에 예치하면 이자를 지급한다. 2019년 3월 말 현재 이 계정 잔액은 12조 원이다. 2019년 2월 말 기준 필요지급준비금 62.06조, 실제 지급준비금이 62.16조 원임을 감안하면 작은 액수가 아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민간은행 보유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하여 초과지급준비금을 흡수한다는 점에서 연준의 IOER과 동일한 제도이다.

 

정리하자면,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영하고 그 적자분을 중앙은행이 보전해 줄 때, 초과지급준비금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중앙은행이 이자를 지급해도 국채를 발행하는 것도 동일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다른 점은 정부적자로 발생하는 부채 부담을 누구에게 지우느냐는 점이다. 국채를 발행하지 않게 되면, 정부의 적자지출은 민간은행에 대한 부채가 아니라 전적으로 중앙은행에 대한 부채로 남게 된다. 즉, 정부부채는 국채가 아니라 중앙은행 대출로 충당하게 되는 것이다(<표 4>처럼).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지 않으니, 정부부채 혹은 더 정확히 말해 ‘국채발행’과 관련된 온갖 부정적 의견들도 무의미해진다. 그렇지 않았다면 발행되었을 국채 액수(재정적자)만큼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 발행액이 더 늘어날 뿐이다. 이것이 초과지급준비금을 창조할 수는 있다(하지만 정확히 그 액수가 얼마나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래 참조). 기준금리 방어를 위해 이를 흡수하는 비용은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인데, 이것도 중앙은행이 새로 창조하여 지급하면 된다. 현재처럼 국채를 발행하는 경우 그 이자비용도 정부가 부담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적자재정을 운영할 경우 정부 대신 중앙은행이 빚을 지게 된다. 이것의 경제적 의미는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본원통화량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재정적자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중앙은행도 정부기관이고, 중앙은행의 수익은 정부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부채위기와 같은 소위 재정적자의 위험성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정부를 불신하여 투자금 상환을 요구하는 민간부문의 국채 보유자도 없고, 중앙은행이 부도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은행 발행 화폐, 즉 본원통화는 중앙은행의 부채항목으로 기록되지만, 그렇다고 이것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문제 삼는 논의는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국채 대신 중앙은행 부채(지급준비금)를 사용하는 것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융수단(marketable) 대신, 비시장적 수단(non-marketable)을 정부부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의미도 된다. 민간부문에 팔지 않으니 시장의 변덕에 노출되지도 않고, 국채위기도 없게 될 것이다. 예컨대 일본의 중앙은행(일본은행)이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절반가량을 보유하는 것도 이와 유사한 방식이다.

 

* 국가부채위기의 의미: 그리스 국채위기 예시

국가부채위기가 무엇인지, 우리나라 국회예산정책처가 예시하는 그리스 국채위기를 예로 설명해보자.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그리스 정부도 대규모 재정적자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국채를 발행했다(그리스 정부부채 비율이 2008년 이후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회자되는 것처럼, 그 원인이 방만한 사회보장제도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문제는 정부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정부부채 규모를 축소해서 발표해 왔음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국채 투자자들은 즉시 투자금을 상환해달라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높은 이자를 요구했다. 보통의 채권처럼 국채도 만기가 되면 액면가대로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각국의 정부는 보통 현금을 지급하기 보다는, 만기가 도래한 국채의 만기를 연장(roll-over)하거나 새로운 국채를 발행하여 구(舊)채권과 교체하는 차환(refunding)을 한다. 그리스 국채투자자들은 만기연장이나 차환을 거부하거나, 그에 대한 더 높은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국채 이자율이 급등한 것이다. 이것이 국채위기의 현실 형태이다. 물론 이유는 그리스 정부가 부도를 내고 투자금을 지불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만기 채권에 대한 상환요구가 왜 문제일까?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지불하면 안 됐을까? 앞서 여러 번 지적한 것처럼, 그렇게 되면 지급준비금이 급격히 증가하여 기준금리가 하락하긴 하겠지만,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이 꼭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리스 국채 투자자들 대부분이 외국은행들이니, 국내 통화의 가치가 급락(평가절하,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환율상승)해서 수입물가가 부담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는 자체 통화가 없으니 환율도 없고, 그리스 중앙은행인 그리스은행도 통화를 발행해 국채를 상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는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리스은행이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만이 유로화를 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게 유로화는 사실상 남의 나라 통화인 것이다. 그리스가 유로화 표시 채권을 상환하고자 하면, 유로화라는 외국 돈을 해외서 벌어서 갚아야만 했던 것이다. 1997-98 우리나라 외환위기도 국내 통화가 아닌 달러로 빚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보다 최근의 터키의 국채 금리도 그리스처럼 20% 이상으로 급등하여 국채위기 조짐을 보였는데, 당시 국가부채 비율은 겨우 28%에 지나지 않았다. 터키의 금융불안도 결국 외채가 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국가부채 위기는 국가부채의 규모보다는 주권통화(sovereign currency)의 부재, 그리고 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지만 외채, 이것이 보다 정확한 문제의 본질이라 할 것이다.

 

이런 재정운영 원리를 염두에 두고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국채는 정부의 재정조달 수단인가? MMT 지지자들은 ‘국채는 재정조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에는) 통화정책을 위해 발행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국채가 정부의 중앙은행 잔고를 플러스(+)로 유지하기 위해 발행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출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원리적으로 보면 재정적자를 국채를 발행해서만 조달할 필요는 없다. 정부적자를 중앙은행이 통화를 발행해 보전해주고, 기준금리 방어라는 통화정책 목표를 위해서는 중앙은행 채권을 발행하거나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도 된다. 즉, 국채 없이도 재정적자 가능하고, 어쩌면 이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제도만 바꾼다면.

 

결론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출 여력은, 흔히 부정적이라 인식되는 적자재정 운영의 효과를 논외로 한다면, 이론적으로 무한하다. 중앙은행이 무(無)에서 화폐를 창조하여 정부지출 자금으로 지원해도 된다. 또한 공개시장운영 수단으로 꼭 국채를 이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대안적인 초과지급준비금 흡수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법과 제도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도는 인간의 고안물이고 항상 변경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공공의 복리에 부합하지 않는 법과 제도는 즉시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채의 성격이 무엇이든, 실질적으로 그것 없이도 정부는 ‘국채위기’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적자지출을 수행할 수 있다는 실용적 결론이 중요하다.

 

세금 대신 국채?

 

주류 경제학과 보수적 정치가들이 전파하는 통념에 따르면, 정부지출의 주요 재원은 세금이다. 정부가 세금을 초과하여 지출하고자 하면, 국채를 발행하여 민간으로부터 빌리거나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대주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세금, 국채, 또는 중앙은행 화폐 발행은 서로 대체 가능한 ‘대안적 재정조달 수단’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세 가지 방법 중 각각의 방식으로 얼마만큼씩 재정을 조달할 것인지, 사전적 계획이 가능하다고 주장된다. 다음 칼럼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이로부터 국채위기, 인플레이션 등 ‘국가부채는 위험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것을 소위 정부의 예산제약(Budget Constraint)이라 부른다.

 

따라서 국채발행이 위험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예산제약의 개념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 재정조달 방식은 상호 대체 가능한 재정조달 수단이 아니고, 사전적으로 계획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를 논의를 바탕으로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정부는 사전적으로 세수를 예측할 수 없다. 세율이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왜냐하면 세수는 실질 경제성장과 물가로 구성되는 명목GDP에 따라 변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목GDP는 역으로 세수와 재정지출의 함수이다. 예컨대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로 표현되는 확장적 재정정책은 재정승수효과를 통해 명목GDP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환율과 수입품 가격 등도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명목GDP와 세수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을 사전에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세수는 사전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둘째, 현 제도 하에서 세수의 사전적 계획이 불가능하므로 정부재정이 적자라면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지급준비금을 발행하여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일방적으로 정부가 계획한다고 해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민간 금융부문에 매각했다고 하자. 그런데 이것이 지급준비금을 과도하게 흡수하여 기준금리를 높이는 효과를 낳게 되는 경우, 중앙은행이 지급준비금을 발행하여 국채를 되사줘야 할 것이다. 이는 의도하지 않게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여 국채를 매입한 것이 된다. 즉, 이 경우 재정적자가 민간으로부터의 차입으로 충당된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이 보전한 것이 된다.

 

셋째, 더 나아가 지급준비금의 과부족 여부도 정부나 중앙은행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지급준비금 총액이 주어졌을 때 과부족 여부는 금융시장이 결정하고, 금리변동을 통해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민간은행의 신용화폐 공급량은 대체로 민간부문의 화폐수요가 결정한다. 예컨대 민간실물부문의 경제활동이 활발하면 신용화폐 수요가 증가하고, 민간은행의 신용화폐 창조도 활발해진다. 이는 다시 의무지급준비금과 지급결제용 지급준비금의 수요를 증가시킨다. 초과지급준비금량은 중앙은행과 민간은행, 그리고 민간실물부문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중앙은행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계획할 수는 없다.

 

넷째, 이런 실물적 요인 외에도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선호’에 따라서도 지급준비금의 과부족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금융시장의 상황에 따라 금융기관들이 채권이나 기타 금융수단보다 ‘현금’을 선호하여 더 많은 지급준비금을 보유하길 원할 수도 있다. 그러면 목표금리가 상승하고 중앙은행은 이를 억제하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여 지급준비금을 공급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세금 대신 국채발행 혹은 중앙은행 화폐발행을 상호 대체적으로 선택하거나 계획할 수 없다. 민간보유 국채발행 혹은 중앙은행 화폐발행은 세금과 수평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정부의 재정활동과 민간의 경제활동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지출을 세금으로 충당하지 않으면 반드시 국채를 통해 민간으로부터 빌리거나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려야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재정 관념은 완전히 현실을 오도하는 것이다.

 

화폐(지급준비금)를 공급하는 두 가지 경로

 

경제가 성장하면 당연히 ‘통화량’ 혹은 일반적으로 말해 금융자산도 증가해야 한다. 이하 논의를 위해 지난 칼럼으로부터 상기할 점이 있다. 현대 경제에서 민간은행이 발행하는 부채, 즉 신용화폐가 대부분의 금융자산이고 통화량으로 측정된다. 이 민간부채들을 유동성 정도에 따라 분류하고 현금과 대비하여 ‘금융자산’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시 중앙은행 화폐인 지급준비금으로 뒷받침된다. 따라서 이하에서 ‘금융자산’ 혹은 ‘순저축’ 등의 용어는 통화량과 같은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예컨대, 순저축의 증가 혹은 금융자산의 축적은 흔히 통화량 지표로 사용하는 M1, M2, 혹은 L 등의 증가와 동일하다. 물론 민간은행이 발행하는 신용화폐의 증가는 (비례적으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중앙은행 발행 화폐인 지급준비금의 증가를 함축한다.

 

이를 다음의 국민계정 항등식을 통해 살펴보자.

 

식 (1)

 

 

식 (1)의 좌변의 GNP는 경제 전체의 소득 원천으로 국민소득을 나타낸다. ‘소득은 어떻게든 처분된다’는 원리에 따라 처분내역을 구분하고 우변에 나타낸다(C : 최종민간소비, I : 민간투자, G : 정부소비, (X-M) : 순해외수출, NF : 순해외수익, 따라서 (X-M+NF)는 경상수지(Current Account Balance 혹은 대외수지라고 함. 이하에서는 CA로 표시). 이 식은 한 나라의 살림 전체를 보여주는 ‘기록’으로서, 양변이 항상 같은 항등식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면, 그것은 ‘기록 오류’이지 경제가 달리 작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100만 원 벌었다면(좌변에 100만 원 기록),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소비 혹은 저축)를 기록(우변)하면 양자는 항상 같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다음으로, 민간부문의 저축(S) 혹은 금융자산 축적을 최종소비 및 납세 후 잔액으로 정의하자(S=GNP-C-T). 또한 각 경제주체들을 구분하기 위해, 양변에 똑같이 세금(T)으로 빼고 항목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다시 쓸 수 있다.

 

식 (2)

 

식 (2)의 첫 번째 항은 민간부문 전체의 재정수지, 두 번째 항은 정부수지, 세 번째 항은 대외수지를 나타낸다. 흔히 재정수지 대신 ‘순저축’ 혹은 금융자산 축적이라 부른다. 이는 국민계정 항등식으로부터 단순한 대수적 조작을 통해 변형된 식으로, 식 (2) 역시 항등식이다. 즉, 기록이 정확하다면 세 항목의 합은 항상 제로(0)이어야 한다.

 

식 (2)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예를 생각해 보자. 우선 국내경제에 집중하기 위해 대외수지의 효과가 없는 경우, 즉 대외수지가 균형(CA=0)이라 가정해 보자. 이때 정부부문에서 세수보다 지출이 100억 원 적어 재정흑자를 기록했다면(T-G=100 > 0), 민간부문 전체의 수지는 100억 원만큼 적자(S-I=-100 < 0)여야 한다. 이는 부(-)의 순저축으로 민간의 금융자산이 감소함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민간의 부채가 증가한다는 의미이다. 민간의 금융자산이 감소하고 부채가 증가하면 민간부문은 조만간 지출을 축소할 것이고, 그 결과 수요부족 문제가 악화된다. 생산이 줄어들고 국민소득 전체가 감소하는 것이다. (정부부문의 적자는 반대의 효과를 낳는다). 결국 민간부문이 순저축(S-I > 0)을 기록할 때, 다른 말로 민간부문에 부채가 아닌 순금융자산이 증가할 때, 경제성장도 지속될 수 있다.

 

정부재정의 흑자가 민간부문의 금융자산을 축소하는 이유는 민간부문 내에서 각 경제주체들 사이의 거래로는 ‘새로운’ 금융자산이 창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간부문 전체로 볼 때, 일방의 저축(채권)은 상대방의 부채(채무)를 의미하므로, 민간부문 전체적으로 부채와 저축이 상쇄되어 합은 0이 되는 원리이다. 예컨대 은행이 대출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은행의 대차대표는 확대되지만 자산(대출채권)과 부채(차입자의 예금)이 동시에 증가할 뿐 순자산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차입자 또한 마찬가지다. 부채가 증가했지만 자산도 증가했으므로, 순자산은 동일하다. 이와는 달리 정부가 직접 고용하고 임금을 지급하면, 민간부문은 부채 증가 없이 금융자산이 증가한다. 국내 경제주체들끼리 서로 빌리고 빌려주는 대신, 외국와 무역을 통해 흑자를 보더라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다. 결국 민간부문의 순금융자산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간부문 외부인 대외부문이나 정부부문으로부터 주입되어야 한다. 대외수지가 일정하다면, 정부가 적자이면 민간은 흑자를 경험하여 금융자산을 축적할 수 있다. 반대로 정부가 흑자재정을 운영하거나 대외수지가 적자이면 민간부문의 순금융자산은 축소되고 민간경제는 침체하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반드시 민간부문 외부(정부 혹은 해외)로부터의 지출에 의한 주입이 있어야 한다.

 

민간부문에 금융자산을 주입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실효성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발행한다 하더라도 민간은행과 민간실물부문이 이를 ‘빌려가지 않는 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민간은행들이 민간 신용창조 과정을 전담하는 현대 통화제도 하에서 통화공급은 민간부문의 통화수요 제약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중앙은행을 통한 통화공급 확대는 가계와 기업의 ‘부채’ 증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바람직하다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민간경제에 금융자산을 공급하는 두 번째 방법은 정부가 적자재정을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것보다 더 많이 지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지출의 수혜를 입는 민간부분은 금융자산(통화량), 즉 소득이 늘어나게 된다. 예컨대 정부가 직접 고용하여 임금을 지불하면 가계는 더 많은 민간은행 예금을 갖게 되고, 민간은행들은 더 많은 지급준비금 혹은 기타 이자를 지급하는 금융자산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지출은 부채를 민간에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빚을 지고, 대신 가계와 기업의 소득을 높이는 방식인 것이다.

 

정부부채, 정부의 숙명

 

요컨대, 성장하는 경제는 더 많은 금융자산(통화량)을 요구한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그것을 공급하는 방식은 민간의 부채를 늘려 해결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정부가 재정적자를 통해 그렇게 하면, 민간경제는 부채의 증가 없이도 필요한 통화를 얻을 수 있다. MMT 지지자들은 후자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정부부채 총액은 증가해 왔다(1990년대 초 캐나다처럼 일시적으로 축소된 경우는 가끔 있지만, 예외적이었다). 이 때문에 민간부문이 금융자산을 축적하고 경제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재정적자는 정부의 숙명이다. 재정지출을 축소하거나 균형재정을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은 정부의 의무를 부정하고, 경제성장을 멈추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런 이유로 정부부채의 규모를 측정할 때 흔히 ‘경제규모 대비 정부부채 비율’(정부부채/GDP)을 사용한다. 그런데 정부의 재정적자가 증가한다고 해서 경제규모 대비 정부부채 비율도 자동적으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재정적자로 경제성장이 더 빠르면 오히려 이 비율이 감소하기도 한다. 아래 <그림 3>은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를 보여준다. 미국 일반정부의 부채 총액은 결코 감소한 적이 없다. 하지만 경제규모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역사적으로 등락해 왔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의 기간을 주목하자. 따라서 재정정책의 초점은 ‘건전한 재정’이 아니라, 경기부양이어야 한다. 이것이 정부와 민간 모두의 윈-윈 전략이다. 재정건전성 전략은 ‘언 발등에 오줌누기’처럼 단견이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정부적자는 숙명인 것이다.

 

<그림 3> 미국의 정부부채/GDP 비율과 정부부채 총액(명목). 출처 :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부채총액은 저자 계산

 

정부는 적자를 져야 할 운명이라면, 이것은 우울한 운명인가? ‘재정적자는 위험하다’고 믿는 주류 경제학의 통념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번 칼럼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부재정의 운영원리와 성격이 가정경제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면, 이는 불필요한 고뇌가 된다. 다음 칼럼에서 재정적자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따져볼 것이다.

필자 전용복은 2010년부터 경성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8년 미국 University of Utah에서 수요측 요인으로 중국경제의 빠른 성장을 설명하는 논문을 작성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주류 경제학 대부분이 현실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믿으며, 대안적 경제이론을 탐구해 왔다. 특히 대안적 경제성장론, 화폐ㆍ금융론, 재정정책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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