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날개'를 단 발레리나, 이시바시 시즈카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5.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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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하나 쌀쌀했던 전날에 비해, 흐려도 한결 푸근해진 날씨 때문이었을까. 16세기 지어진 고찰의 이름을 딴 역에 내려, 한때 양잠장(養蠶場)이었던 공원을 가로지르는 내내 명주실로 촘촘히 짜놓은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 들었다.

2014년 3월 29일은 꽤 괜찮은 토요일이었다. 3년 전 런던에서 처음 본 피닉스 댄스 시어터 출신 안무가가 연출한 공연을 관람하러 가기에는. 리젠트 파크의 꽃송이들처럼 화려했던 퍼포먼스를 떠올리며 몇 분을 보냈을까. 무대에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사람, 잘 지내요?>를 통해 다시 본 이시바시 시즈카의 몸짓은 2014년 3월 세지온 스기나미(Sesión Suginami)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 2017 “Utsukushii hito saba?” SSTF

그곳에 만 스무 살의 이시바시 시즈카가 있었다. 163센티미터의 키, 커트 머리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부신 미소년을 연상시키던. 군무가 이어지는 순간에도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가 작용했던 건 객석까지 전해진 에너지 때문이었다. 커튼콜까지 내내 숨을 죽인 것을 감안하면 ‘포획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후에 듣게 된 그녀의 이력은 강렬한 첫인상을 납득시켜주었다. 네 살 무렵 발레를 시작, 보스턴과 캘거리의 무용학교를 거친 뒤 지체 없이 프로 데뷔.

그리고 3년 뒤, 무대가 아닌 스크린에서 그녀의 춤을 보았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지진재해를 입은 고향을 위해 만든 단편영화, <아름다운 사람, 잘 지내요?>에서였다.

연기자 전업. 물론 그녀의 모친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란><꿈> 등에 출연한 명배우이며, 부친도 록 뮤지션 출신 연기자다. 하지만 소속 아티스트가 단 둘뿐인 사무실에 들어가, 주인공의 클래스메이트는 물론, 작품의 스틸사진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역조차 마다하지 않던 딸의 모습이 그렇게 달가웠을 리는 없다. 더욱이 그것이 한 세대를 대표하는 무용가로서의 미래와 맞바꾼 것이었다면.

다행히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첫 주연 작품인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베를린국제영화제를 거쳐 부산국제영화제에 왔고, 그녀에게 키네마준보 베스트 텐 신인여우상과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신인여우상, 그리고 41년 전 어머니가 수상한 블루리본상 신인상을 안겼다. 1년 뒤 개봉한 두 번째 주연 작품,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역시 베를린국제영화제를 거쳐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일본영화비평가대상 신인여우상에 이어 주연여우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시바시 시즈카는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까’가 아니라 ‘관객에게 무엇을 전할까’에 연기의 초점을 맞추는 배우다. ⓒ Plage

홍상현:

지난해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가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올해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한국과 관련한 기억이 각별하다고 들었다.

이시바시 시즈카:

“과분한 호의를 베풀어주신 전주영화제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한국의 관객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그녀는 이 부분을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보스턴 유학시절 아시아계가 드문 환경에서 늘 상냥하게 대해주시던 한국 출신 피아니스트 분이 정말 큰 의지가 되었다. 또, 타지에서 살다 보면‘밥’이라는 게 단순히‘먹을 것’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나. 지칠 때마다... 한국식당에서 가서 힘을 내던 기억이 새롭다. 너무 좋은 분들이셨다.

 

홍상현:

지난 2월 한국에서 개봉한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놀랍게도, 이 영화의 원작은 시집이다.

이시바시 시즈카:

오래전에는 ‘시(詩)’가‘노래(歌)’의 동의어였다고 한다. 음악에 담겨 있는 언어들을 사랑한다. 사이하테 타히의 원작을 읽고 나니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감각’이 남더라. 재미있었다.

 

홍상현:

예술가에게 충만한 감성만큼 좋은 무기가 없지. (웃음) 한세대를 대표하는 무용가로 성장할만한 재목이었는게데 연기자의 길을 택했다.

이시바시 시즈카:

과찬이시다. (웃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몇 번의 공연에 참여했지만, 일본은 무용가가 춤만 생각하면서 살아가기 쉽지 않은 환경이더라.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나 우울해 하던 차에 전과는 조금 다른 감성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하고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을 좀 더 경험하고 싶었고, 그 와중에 지금의 매니저를 만나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홍상현:

이 언저리에서 좀 껄끄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결하고 넘어가자. (웃음) 어린 시절 당신은 연기자인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배우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이‘가업’에 대한 의무감에 따른 게 아니란 건 확실하지. (웃음) 오히려 전혀 다른 곳에서‘연기’에 흥미를 느꼈다.

이시바시 시즈카:

(웃음) 유학 시절 봄방학을 맞아 뉴욕에 놀러갔는데, 거기서 <내 이름은 아셔 레브>(챔 포톡 작)라는 작품을 보았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모자를 쓰거나 재킷을 바꿔 입으면서 다른 배역을 연기하는 연극이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연기를 보는’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털어놓자면, 한때는 부모님을 아시는 분들이 혹시 순수한 저 자신을 보지 못하시면 어쩌나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부모님이 계셔서 저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마음 속 갈등이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사라져버리더라.

 

이시바시 시즈카는 첫 주연 작품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로 블루리본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41년 전 어머니가 받았던 상이다. ⓒ ㈜디오시네마

 

홍상현:

충분히 이해한다. 자라온 환경 상 본인이 정한 진로와 관련해서 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까지 꺼내는지 의아했을 수도 있으니까. 거대기획사 소속도 아니니 충분히 힘든 나날을 보냈을 테고.

이시바시 시즈카:

그래도 생각해 보면 저는 정말 사람 복이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훌륭한 작품을 경험하면서 어떤 현장에서 좋은 영화가 태어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으니까. 공연(共演)한 배우도 누구랄 것 없이 모두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어떻게 작품에 임하는지를 가까이에서 보고 배웠다. 지금도 제가 맡은 배역의 비중이나 작품의 규모가 아니라, 만남 자체에 기쁨을 느낀다.

 

홍상현:

이렇게 ‘포지티브(positive)’라는 당신의 키워드가 나왔다. (웃음) 여기서 당신의 배우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또 하나의 작품을 이야기해봐야겠다. 바로 <더 니카이도스 폴(The Nikaidos' Fall)>. 나라국제영화제 프로젝트 작품인 이 영화는 칸국제영화제 3회 수상 경력을 가진 가와세 나오미가 총괄프로듀서를, 그리고 이란인 여성감독 이다 파나한데흐가 연출을 맡았다. 필자는 당신이 <더 니카이도스 폴>을 통해 국적과 언어, 인종을 뛰어넘는 작품에서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시바시 시즈카:

말씀처럼 <더 니카이도스 폴>은 처음으로 해외 감독과 함께한 작품이며, 제게는 많은 것을 경험하는 기회였다. 이다 감독과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그녀와 각본가, 촬영감독 외에는 모두 일본인이다 보니 현장에서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많이 드러나더라. 이 작품을 하면서 이란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제한이 가해지기도 하고, 특히 여성감독에게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촬영 당시에는 ‘정말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어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끝끝내 영화를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이다 감독의 굳건한 의지에 거듭 감동했다. 그래서 위축됨이 없이, 작품을 위해 100퍼센트의 역량을 투여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녀와 함께 싸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홍상현:

보스턴 출신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웃음) 배우로서 대선배이고 연기의 컬러도 강한 가토 마사야(※ 한국에서 제작한 <사요나라 이츠카>와 <바람의 파이터> 등에 출연한 그는 한국인 친구들이 많다)와 갈등하는 캐릭터(딸)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이시바시 시즈카:

많은 분들이 떠울리는 강한 인상과 달리, 가토 씨는 많은 해외 작품 출연 경험을 살려, 다들 감독의 요망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무조건 ‘노(No)’라고들 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면서 캐스트를 북돋아주시는 배우이셨다. 그렇게 수많은 힘든 상황을 함께 해쳐나가는 사이에 유대감이 형성되어 가토 씨가 마치 진짜 아버지인 것처럼 연기할 수 있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미야케 쇼 감독은 소통을 중시하는 연출로 유명하다. 이시바시 시즈카는 이 작품에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가슴으로 느끼면서 연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 2018 “And your bird can sing” Hakodate Cinema IRIS

 

홍상현:

슬슬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로 넘어가자. 이 작품은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 이어, 당신을 다시 한 번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작 히로인으로 만들어주었다.

이시바시 시즈카: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때만 베를린에 갈 수 있었다. 영화제를 즐기는 시민 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영화라는 예술장르에 대한 애정도 느껴지고. 상영이 일본 개봉 전에 이루어졌기에 반응이 어떨지 조마조마했는데,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 여러분께서 정말 진지하게 작품을 봐주시고, 영화가 끝나자 따듯한 박수를 보내주신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후로는 사정상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을 포함해서) 해외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부디 앞으로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홍상현: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작품성도 뛰어날뿐더러, 청춘영화로써의 매력이 넘친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 성공적일 수 있었던 원인은 역시 미야케 쇼 감독과 캐스트의 케미스트리(chemistry) 아니었나.

이시바시 시즈카:

미야케 감독과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이전에 단편영화 작업을 함께 했다. 캐스트와 워낙 편안한 느낌으로 소통하는 분이다. 뵙기 전에는 작가주의 감독의 이미지가 강해서 뭔가 무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뵙고 보니 편안한 동네 오빠 같은 느낌이었다. (홍상현ㆍ이시바시 시즈카 일동 웃음)

 

홍상현:

(웃음) 다시 조금 진지한 주제로 가보자. 필자는 결론적으로 당신의 연기자 전업이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배우니까. ‘연기처럼 연기하는’ 어떤 전형성과도 무관한.

이시바시 시즈카:

그렇게까지 칭찬해주시니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웃음) 현장에서 요구받는 어떤 디렉션(direction)에 대해서든 필사적으로 대응한다. 연기라는 것을 제대로 배워본 일이 없어서다. 이 캐릭터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무엇에 슬퍼하고, 또는 기뻐하는지를 매순간 고민하고,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그렇게 맡은 배역에 제 의식을 맞춰간다는 느낌을 유지하니 많은 도움이 되더라. 다만 그렇게 배역에 접근하는 탓에, 가령 깊은 슬픔을 안고 있는 인물을 연기할 때는 아무래도 기분이 쉬이 가라앉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런 시간들조차 제가 ‘연기’라는 퍼즐을 풀어가는 단서가 되어주었지만.

 

이시바시 시즈카를 다시 한 번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작 히로인으로 만들어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현재 국내개봉이 추진되고 있다. 그녀의 연기를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더없는 희소식일 것이다. ⓒ 2018 “And your bird can sing” Hakodate Cinema IRIS

 

홍상현:

실제로 학교에서 연기를 배워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배움의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담을 가지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통해서도 충분히 검증이 가능하듯, 당신은 이미 나름의 스타일을 가진 훌륭한 배우니까. 다만, 한 가지. 조금 전 언급하신 그런 ‘헌신적인 메소드(method)’ 때문에 더러는 지치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다.

이시바시 시즈카:

그래서 최근에는 일 이외의 시간을 더 소중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소통과 공감의 능력을 기르기 위한. 혼자 아무리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슬픔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관객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제까지의 제가 주어진 캐릭터의 시점에서 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면 앞으로는 조금 다른 태도로, 어려운 역이라도 즐기는 느낌으로 해보고 싶다.

 

홍상현:

미야케 감독이 언급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연출과 같은 맥락에 있는 이야기 같다. 캐스트에게 논리적으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요구를 하기보다, 함께하면서 각자 느끼는 바를 표현하도록 유도했다는.

이시바시 시즈카:

만약 미야케 감독이 모든 것을 일일이 말로 설명하셨다면, 지금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와 좀 다른 영화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예컨대 “이 캐릭터는 지금 이런 상황이니까 이렇게 해봐”라고 하면 하면, 우선 머리로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았겠나. 미야케 감독은 그보다 가슴으로 느끼면서 해답을 찾아나가기를 바랐고, 그것이 유효했다.

칸국제영화제 3회 수상 경력의 가와세 나오미가 총괄프로듀서를, 이란인 여성감독 이다 파나한데흐가 연출을 맡은 <더 니카이도스 폴>에서, 이시바시 시즈카는 국적과 언어, 인종을 뛰어넘은 작품에서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좌로부터 마치다 케이타, 시라카와 카즈코, 이시바시 시즈카, 이다 파나한데흐, 가토 마사야, 타나카 요지, 아살란 아미리ㆍ각본) ⓒ 2018 “The Nikaidos’ Fall” LDH JAPAN, Emperor Film Production Company Limited, Nara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제가 출연한 작품들에 많은 사랑을 주셔서 깊이 감사드리고, 한국의 배우 분들이나 감독 분들과 국경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습니다. 참여하는 작품마다 진지하게 임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해가고 싶어요. ”

끝으로 한국 관객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한 그녀가 다시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한국 배우 분들의 연기를 접하면, 다들 몸속에 흐르는 피가 뜨겁다는 느낌을 받아요. 내면에서 끌어내는 감정으로 스크린을 가득 메울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공부가 모자라 한국영화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고양이를 부탁해><도희야> 등을 보면서 배두나 배우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맥락상 첫 질문에 나왔어야 할 대답이었다. 문득 그녀가 보스턴 유학 시절 만난 한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한 박자를 쉰 것과, 처음 무용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을 무렵 그녀의 생물학적 연령을 떠올렸다.

1994년 7월 8일생. 현재 만 스물다섯도 되지 않은 나이. 2013년 귀국 직후 데뷔했으니 당시 열아홉 살. 치열한 경쟁을 경험하며 한 사람의 사회적 개인, 바로 사실상의 성인이 되어야 했던 건 그 이전일 테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찾아간 한국식당에서 테이블에 놓여진‘밥’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가늠해보노라니 뭔가가 목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작별을 고하며 악수를 나누다 살짝 눈을 감으며 마음속으로 기도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한 마디를 던졌다.

‘언젠가 그토록 좋아하는 배두나 배우와 공연하는, 혹은 정재은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날이 오기를.’

※ 이 인터뷰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이 결정되었을 당시, 엠바고를 전제로 도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극단 베드&메이킹스의 <조촐한 나날>을 약 두 주 동안 무대에 올리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과 영화제 관계자, 그리고 관객 여러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헌신적인 태도로 인터뷰를 준비하고, 성실히 임해주신 이시바시 시즈카 배우와 주식회사 플라쥬의 하마 유키 대표께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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