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와 안보이슈 활용한 '감성 포퓰리즘'의 승리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19.05.3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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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17대 인도 총선이 지난 4월 11일부터 시작하여 5월 19일까지 치러졌는데, 전체 523석 가운데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Bharatiya Janata Party)이 303석을 차지하여 지난 2014년 이후 다시 한 번 인도국민당 단독 집권이 가능하게 되었다. 수상에 연임한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는 인도의 초대 수상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네루(Jawaharlal Nehru)에 이어 두 번째로 5년의 임기를 다 채우고 연임에 성공한 수상이 되었다. 정치사적으로는 네루, 인디라 간디에 이어 세 번째의 강력한 통치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지난 총선 때는 대부분의 선거 전문가들이 인도국민당과 모디의 압도적 승리를 예측하였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대부분이 모디의 수상 연임은 가능하나, 단독 정부는 어렵고 연립 정부 정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결과는 예측이 훨씬 빗나간 절대 압승이었다. 모디의 절대 압승 승리 이유는 무엇일까?

 

1. 위기 때마다 프레임 전환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지난 5년 동안 모디가 지배해 온 게임의 룰을 들 수 있다. 지난 2014년에 모디를 선택한 인도인의 희망은 경제 발전에 그 초점이 맞춰졌다고 보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경제 발전 정책은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전문가들 평가다. 농촌 경제는 침체하고, 취업률은 떨어지고, 일자리 창출은 일어나지 않고, 거시 경제 지표는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화폐개혁이 가져다 준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모디는 그 프레임을 교묘하게 바꾸어버렸다. 그는 그럴 때마다 힌두 근본주의에 입각한 문제를 부각시켰다. 때로는 암소 도살 사건을 꺼냈고 때로는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의 보호 문제를 꺼냈고 때로는 여성이 힌두 사원에 출입하는 문제를 때로는 느닷없는 영화 문제를 꺼내 적극적으로 문제 삼았다. 물론 그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런 문제를 제기한 게 아니고 대부분은 그가 속한 당인 인도국민당의 전위 조직인 의용단일가(Sangh Parivar)에 속하는 수많은 극우 운동단체들이 조직적으로 교묘하게 만들어낸 프레임 바꾸기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때로는 무슬림이나 불가촉천민에게 폭력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하게 하기까지 하였다. 

자극적인 사건이 커지자 언론은 자동적으로 논리적이고 정책적인 경제 성과에 대한 문제보다는 더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힌두 근본주의나 종교 공동체 갈등에 기사를 더 많이 싣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디와 인도국민당은 언론을 통제하지는 않았으나 언론이 어떤 기사를 좋아하고, 그들이 돈에 얼마나 얽매어 있으며, 어떤 사회 문제가 돈이 되는 기사가 되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언론은 노회한 정치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였다.

모디는 2002년 구자라뜨에서 일어난 무슬림 학살 때 보여준 바 있는 전형적인 대중 선동가 정치인이다. 그는 2002년 무슬림 학살 때 여러 차례 분명하게 말은 하지 않으면서 뉘앙스로 이해시키는 언어를 구사하여 대중을 자극하였다. 우리 힌두가 몰살당했다, 누가 죽인 줄 다 안다, 우리는 그들을 다 죽일 것이다,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등의 주어와 목적어가 불분명한 언어를 동원해 군중을 자극하였고 그 결과 적게는 2천 여 명, 많게는 5천 여 명이 학살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군중을 자극하였다. 선거 개시 한 달도 못 남은 시점에서 모디는 드디어 자극적인 언사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예의 주어 목적어가 분명치 않은 언어다.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다 죽여야 합니다.”라는 발언이 가장 좋은 예이다. 그는 선거를 한 달 여 남긴 2019년 2월 16일 파키스탄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일으켜 40 여명의 인도 민병대원이 죽은 테러에 대해 그는 수차례 자극적인 언사를 통해 단호한 응징을 군중에게 약속하였다.

 

2. '인접국 갈등' 안보 문제 적극 활용

2019년 2월 14일 인도령 카시미르 주의 한 국도 상에서 인도 민병대에게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자살 트럭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민병대 4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거가 있기 두 달 전의 일이다. 수상 모디는 서울에 와서 서울평화상을 맏고 귀국한 다음 날인 2월 26일 인도 공군기가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영내에 있는 테러리스트 캠프를 공습하여 40 여 명의 테러리스트를 사살했다고 발표했고, 국민들은 환호하였다. 

그런데, 파키스탄 측은 인도 공군기가 자신들의 영토 내로 들어와 공습을 가한 적이 없고,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어 모디는 그날 비가 오고 구름이 많이 끼어 파키스탄의 레이다가 공습을 포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후 파키스탄 정부는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지 않았고, 모디는 국민들에게 단호한 응징만 외쳐댈 뿐, 더 이상의 확전은 하지 않았고, 국민들은 ‘단호한 응징’에 열광할 뿐이었다. 지식인들은 모디가 말하는 공습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그가 가짜 뉴스를 만들어 퍼트리는 야비한 정치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조롱하였지만, 그것은 식자층에서의 일일 뿐, 9억이 넘는 유권자를 가진 나라에서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인도에서는 총선을 앞우도 모디 총리의 인생을 다룬 전기 영화가 개봉됐다.

3. '힌두 근본주의'에 포퓰리즘을 입히다

2014년 정권을 잡은 이후 모디 정부가 지속적으로 키워 온 신성한 어머니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힌두 국가(Hindu Rashtra) 개념 안에서 부패 없이 모두 잘 사는 복지 국가라는 개념은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복지 제도 마련으로 연결된 것 또한 이러한 힌두주의 전술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디는 여성들이 강간에 시달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권 초기에 농어촌 마을에 대규모로 화장실을 구축하는데 투자하였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바뀌지 않고, 여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화장실을 구축한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지만, 그런 근본 문제에는 별로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유권자들의 피부에 닿는 실질적인 복지 정책이었다. 이 화장실 구축 프로젝트는 여성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고, 그들의 지지를 얻는 좋은 방편이 되었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이 클린 인디아(Clean India) 슬로건이다. 모디는 인도국민회의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부패 문제를 본격적으로 끄집어내 공격하였다. 그러나 그 부패 문제를 제도적으로 뿌리 뽑고 해결하기보다는 직접 빗자루를 들고 길거리를 청소하는 등 그리고 실제로 길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과 같은 상징 행위를 보이는데 더 주력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길거리 깨끗하게 하는 사업에 매진하여 실제로 인도의 길거리가 매우 깨끗하게 유지되어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같은 방편으로 전국에 고속도로를 확충하고, 통신 설비를 크게 보완하여 피부에 닿는 경제 복지 포퓰리즘 차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인도국민당은 지난 집권 기간 동안 힌두 사원을 새롭게 건축하거나 증축하는데 많은 재원을 투자하였고, 사원 의례를 세속화 하여 신자본주의에 걸 맞는 축제로서 화려한 수익 사업으로 변형시켰다. 모든 것을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삼았다. 모디는 의료, 보건, 교육, 언론 등 사회 전반의 대 부분 분야에서 경쟁과 성과를 앞세운 시장 중심의 체제로 탈바꿈시켰다. 그래서 국내총생산은 늘고, 경제성장률도 여전히 높은 기록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도시 중산층 중심의 경제만 좋아질 뿐, 농업 부문은 두말 할 필요도 없고, 관광, 호텔, 무역 등 서비스 부문에서도 이전보다 다 나은 업적을 쌓지 못했다. 국민들의 경제 실정에 대한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졌으나, 지난 몇 년 사이에 치러진 주의회 선거에서 반(反) 모디 표로 표출되었을 뿐, 정작 연방 정부의 정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이번 선거에서는 다른 요인들에 가려져 표출되지 못했다.

 

인도 '감성 포퓰리즘 정치'의 승리가 한국에 남긴 고민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의 요인의 공통점은 이번 인도 총선 정치에서 승리한 모디와 인도국민당은 팩트와 이성은 무시하고 가짜 뉴스 혹은 신화 만들기에 몰두하는 감성 정치 전술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프레임 바꾸기나 국가 안보 서사 만들기 그리고 힌두 근본주의 문화 배양은 모두 정치가 감성 영역에서 작동되게 하는 요소들이다. 그리하여 이제 인도공화국(Republic of India)은 소수자 공존이라는 건국 이후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공화주의 전통이 사라지고 오로지 다수결의 원칙이 통치의 기제임을 보여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아니, 더 나아가, 약자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핍박하면 할수록 다수의 권력이 강화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철저한 감성 정치의 결과다. 

이성 중심의 정치가 감성 포퓰리즘을 이겨내기란 힘들다. 특히 인도 같이 분단과 종교라는 상수가 강하게 작동하는 정치판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정치는 어떠한가? 나라의 규모와 민도는 인도와 다르다지만, 분단과 지역이라는 상수가 강력한 위세를 떨치는 판이라는 범주 내에서 감성의 포퓰리즘이 주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성과 팩트로만 정치를 이해하면 그 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옳지만 실패하는 이성의 정치,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으로 들어가고 가짜 뉴스가 판치는 상황에서 좌파는 감성 정치를 어디까지 활용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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