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준우승, '효과적 체력안배'와 '냉정한 스피릿' 있었다

[김지석의 스포츠 분석] FIFA U20 월드컵 준우승 결산

  • 기사입력 2019.06.17 11:39
  • 최종수정 2019.06.17 15:48
  • 기자명 김지석

대한민국 20세 이하(U20, Under 20) 축구대표팀이 2019 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에서 우크라이나에 1대 3으로 패하며 아쉽게 우승은 놓쳤지만, 대한민국 남자 축구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에서 결승에 오르며, 1983 세계청소년축구 4강, 2002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넘어서는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아시아권 국가로는 1999년 일본 이후 20년 만에 U20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며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그러나 대표팀의 빛나는 도전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승전 패배에 대한 일부 팬들의 특정 선수를 향한 비난과 감독의 결승전 공격 전술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FIFA U20 월드컵 준우승의 쾌거를 이룬 우리 대표팀의 본선 여정에서 나타난 잘 된 부분들과 결승전 패배의 결정적인 대목들을 짚어본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20 남자축구대표팀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단체 사진을 찍었다. 출처: 대한축구협회

A. U20 대표팀의 성공 원인

 효율적 경기 운영과 체력 안배

(*필자는 스포츠과학을 전공하였으나, 축구 전술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포메이션 등 전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예선 3경기와 16강, 8강, 4강, 결승까지 대표팀의 경기당 볼 점유율은 예선 2차전 남아공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대팀에 비해 높지 않았다(예선 1차전 포르투갈전 39%, 예선 3차전 아르헨티나전 39%, 16강 일본전 39%, 8강 세네갈전 50%, 4강 에콰도르전 42%, 결승 우크라이나전 전반 38% 최종 50%). 남아공전 점유율 56% 역시 볼 소유 시간상 우리가 완전히 지배한 경기라고는 볼 수 없다.

이처럼 대표팀은 점유율(= 경기의 지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전체적으로 수비에 무게를 두며 걸어 잠그다가 볼 소유 시 빠르게 카운터 어택을 가하는 전형적인 ‘역습’ 축구를 펼쳐왔고, 큰 효과를 거두었다. 흥미로운 점은 결승 상대였던 우크라이나 역시 8강 콜롬비아전 40%, 4강 이탈리아전 43% 등 매 경기 상대에 비해 낮은 점유율을 기록하고도 결과를 얻어냈는데, 우리 대표팀과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역습 축구와 결과는 점유율 축구가 몰락하고 역습축구가 급부상했던 2018 러시아 월드컵의 특징과도 연결된다.

경기 전체에서 높은 볼 점유율을 유지하며, 수비시에도 90분 내내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는 형태의 경기운영은 체력소모가 대단히 높아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체력적 수준이 매우 높다. 지난 2018년 7월 20일자 뉴스톱 기사에 필자가 이미 언급한대로 수비라인을 내려 체력소모를 최소화하다가 상대공격 차단 시 빠르게 역습하는 형태의 축구는 운동생리학적 측면에서 에너지 효율성이 매우 높은 경기운영 방식이다. 즉, 우리가 내려설 때 상대 입장에서는 공격라인을 높게 올리게 되고 역습을 허용하면 먼 거리를 빠르게 복귀해야 하므로 상대 입장에서는 큰 체력 소모가 발생하게 된다. 반대로 우리 입장에서는 근피로(muscle fatigue)를 최소화하며 유지하고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집중된 힘으로 상대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효율적인 플레이가 되는 것이다. 수비 위주의 역습축구와 함께 대표팀은 상대가 지쳐가는 후반전은 전방에서부터 압박의 강도를 높이며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플레이를 펼쳤는데, 대표팀의 전체적인 압박 밸런스와 조직력이 좋았기 때문에 승부처마다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대표팀은 대회 일정상 상대에 비해 하루를 덜 쉬고 나섰던 8강 세네갈전에서 체력적 문제가 예상되었지만, 이러한 수비위주의 역습 축구로 경기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물론, 세네갈전은 3대 3 스코어의 난타전 양상을 띄었으나, 경기 초반을 웅크리며 최대한 스태미너를 유지한 덕에 120분간의 혈투와 승부차기에서 끝까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집중력(=정신력)은 체력에서 나온다.

8강에서 유일하게 연장과 승부차기를 거치고 4강에 오른 대표팀은 에콰도르전 역시 체력 부분의 문제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체력소모가 발생하는 포지션인 미드필더진(축구 운동생리학에서 포지션별 체력소모는 일반적으로 미드필더>공격수>중앙수비수>골키퍼 순)의 활기를 유지하는 전략으로 예견된 문제를 상쇄시켰다. 미드필더진의 체력저하와 이로 인한 전체적인 기동력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회 중 선발출전 경험이 없던(=상대적으로 높은 체력수준을 유지하고 있던) 고재현과 김세윤을 중원의 선발로 내세우는 승부수를 던지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체력이 바로 첫번째 기술이다.

한국 이강인 선수(왼쪽)는 메시 이후로 처음 '18세 골든볼 수상자'가 됐다. 오른쪽은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우크라이나 골키퍼 안드레이 루닌. 출처: 대한축구협회

 

 창의적 조율빛나는 선방확실한 소유

우선, 금번 대회에 참가한 우리 대표팀 엔트리 모든 선수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으며, 누가 더하고 덜할 것 없이 모두가 ‘원 팀(One team)’ 안에서 동일하게 빛났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18세로 팀의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결승까지 2골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대회 ‘골든 볼(=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메시 이후 첫 18세 골든 볼 수상)한 대표팀의 ‘에이스’ 이강인의 전체적인 경기 조율과 창의적인 플레이 메이킹은 대표팀의 준우승 쾌거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르헨티나전에서 보여준 컴퓨터게임에서나 나올 듯한 정확한 크로스, 세네갈전 연장전에서 보여준 자로 잰 듯한 전진 패스, 에콰도르전에서 보여준 번뜩이는 창의성의 세트플레이, 대회 내내 보여준 투지와 넓은 시야, 상대수비 2~3명은 가볍게 벗겨내는 드리블과 정확한 킥은 이강인이 왜 한국 축구의 미래로 평가받는지를 증명한 장면들이라 하겠다.

이번 대회 우리 대표팀에서 가장 빛 난 또 한 명의 선수는 역시 ‘빛 광연’ 이광연 골키퍼이다. 대부분의 팬들은 공격에서의 득점에 열광한다. 그러나 실제로 골키퍼의 ‘슈퍼 세이브’ 하나는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분위기 전체를 좌우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마치, 배구에서 상대 공격을 셧아웃 시키는 블로커의 블로킹 하나, 야구에서 수비수의 멋진 다이빙 캐치 하나, 농구에서 상대의 손쉬운 득점을 걷어내는 수비 블로킹 하나가 경기 분위기를 일순간에 가져오듯, 축구에서 골리의 ‘슈퍼세이브’ 하나는 경기의 흐름을 가져오게 한다. 모든 스포츠는 결국 경기 흐름의 싸움이다. 4강 에콰도르전 후반 추가시간 95분에 골과 다름없는 상대의 슛을 막아낸 장면 등 매 경기 고비마다 이광연이 보여준 수차례의 ‘슈퍼 세이브’는 집중력이 떨어진 수비라인에 높은 각성과 심리적 안정감을, 공격라인에는 새로운 에너지를 제공해 주며 대표팀의 상승 무드를 만들어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이운재, 2015 호주 아시안컵의 김진현,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조현우 등의 예에서도 보아왔듯이, 골키퍼의 경기당 2~3개의 지속적인 ‘슈퍼세이브’는 대회에서 결과물을 가져오기 위한 필수요소로 여겨진다.

최전방 공격수 오세훈의 볼 소유력과 연계플레이, 조영욱/엄원상 등 공격수들의 속도 또한 대표팀 ‘역습’ 전략의 마침표를 찍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하였다. 만일, 포워드가 기술이 부족하여 전방으로 공급되는 볼이 소유되지 못한다면 곧 상대에게 재역습을 허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의 반복은 수비라인이 상대의 공을 뺏더라도 연결할 곳이 없어 볼을 걷어내는데 급급한 상황을 유발하게 된다. 일명 ‘뻥 축구’가 연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표팀은 193㎝의 장신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볼을 소유할 줄 알고, 머리와 발을 모두 활용하여 다음 과정으로 연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오세훈이라는 포워드가 있었기에 조영욱, 엄원상과 같은 속도감있는 공격수들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축구는 결국 골을 먹지 않고, 골을 넣으면 이기는 경기이다. 볼점유율 뿐 아니라 경기당 슈팅 수에서도 대한민국은 16강 일본전 10:10(한국), 8강 세네갈전은 18:13(한국), 4강 에콰도르전 13:8(한국) 등으로 모두 열세였다. 그러나 매 경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효율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고 완성도 높은 마무리를 가져왔음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계속해서 막아내고 하나 걸리면 넣었다는 얘기다. U20 대표팀의 성과는 수비불안과 골결정력 부족이라는 오랜 숙제를 가진 우리 A대표팀의 미래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이다.

U20 월드컵에서 수많은 선방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골키퍼 이광연. 출처:대한축구협회

 심리적 견고함과 원팀 스피릿

U20과 같은 연령대별 대회에서는 일반적으로 팀 간 기술적 우열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1979년 마라도나, 1991년 피구, 1997년 앙리, 2005년 메시, 2007년 아구에로, 2013년 포그바, 그리고 2019년 이강인 등과 같이 청소년 시절부터 기술적 수준이 남다른 괴물선수(!?)도 종종 나타나지만, 연령 제한을 둔 대회의 특성상 성장기 선수들로만 구성된 모든 팀들의 전반적인 기술 수준은 고만고만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10대 후반 ~ 만20세 선수들로 구성된 U20 대회는 성인무대와 달리, 기술 수준의 차이보다는 심리적 업다운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예들을 볼 수 있다. 우리 대표팀도 과거, 심리적인 측면이 무너지며 브라질에 10대 3으로 패하는 등 졸전을 거듭한 1997년 말레이시아 세계 청소년대회에서 어린 선수들의 심리적 동요가 경기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과거 우리 A대표팀의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심리적 냉철함의 부족이었다. 뜨거움은 있는데 차가움이 부족하여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경기가 잘 풀릴 때는 곧 느슨해져 확실히 경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거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금새 조급해져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때로는 인상을 찌푸리며 상대와도 불필요한 다툼을 벌이는 등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부분이 현재의 A대표팀 일부에게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된다. 좋은 팀일수록 상대나 환경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더욱 집중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번 U20 대표팀에서는 모든 선수들이 ‘냉정과 열정(=침착함과 투지)’을 함께 갖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대회 첫 경기인 포르투갈 전에서 전반 7분만에 골을 허용하고 계속된 수세 상황에서도 잘 버텨냈고, 비록 경기에는 패했으나 후반전에서는 전혀 다른 경기력으로 분위기의 반전을 이루어 낸 것을 시작으로,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남아공전에서는 상대의 골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음에도 다급해하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끝내 승리를 가져왔다. 대회 최대 우승후보로 여겨지던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전혀 위축되지 않는 플레이를 보이며 완전한 승리를 일구어 냈고, 한일전 특유의 긴장감이 있었던 16강 일본전 역시 시종 밀리던 경기 흐름에도 흔들림 없는 침착함과 투지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난타전의 양상이 펼쳐진 8강 세네갈전은 우리 선수들의 ‘냉정과 열정의 끝’을 볼 수 있는 경기였다. 1대 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후반 인저리타임 마지막 공격에서 ‘버저비터’ 골을 작렬하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는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었고, 그럼에도 플레이에서는 시종일관 냉철함을 잃지 않는 정신력도 보여주었으며, 승부차기에서는 첫 두 명의 키커가 골에 실패하였음에도 당황함 없이 끝내 승리를 가져오고 마는 근성과 냉철한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4강 에콰도르전 역시 몸을 던지는 방어와 결정적인 순간 머리조차 주저함 없이 내미는 투혼의 수비를 보이며,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에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상대의 슛을 방어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대표팀 선수들에게 느낄 수 있던 가장 큰 강점은 대회 내내 선수들의 표정이 밝았다는 점이다. 예전 대표선수들에게서 느껴지던 지나친 비장함이나 긴장에 압도된 경직성이 아닌, 우리 플레이에 잘 집중되어 있는 몰입감과 자신감에서 오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그 나이 청년 다운 표정들을 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공(功)은 늘 동료에게 돌리고, 오직 팀만 강조하는 선수들의 인터뷰와 자세, 필드에서 지고 있어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팀, 동료들에게서 그러한 믿음이 상호간에 생겨나 있는 팀, 이러한 팀이 가장 무서운 팀인데, 우리 대표팀에서 그러한 냄새(!?)가 대회 내내 느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필드 위의 선수, 뛰지 못한 선수, 코칭 스탭 모두가 하나된 ‘완전한 원 팀’을 이루어 낸 점이 바로 이 대회 우리 대표팀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U-20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의 준우승을 이끈 정정용 U-20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보낸 지난 2년의 시간이 특별했고, 다시는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라고 평가했다. 출처: 대한축구협회

B. 결승전 패배 원인

① 너무 올려버린 라인

역습을 주무기로 하는 두 팀이 만난 결승. 두 팀 모두 그동안 가장 잘 해오던 수비 위주의 역습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리 대표팀은 다소 공격적인 라인업으로 경기를 시작한다. ‘라인 내리고’ 선수비 후역습이 아닌, ‘라인 끌어올린’ 공격적 경기를 하다 보니 우리의 뒷 공간을 상대역습에 반복적으로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스피디한 역습이 주무기인 팀 답게 우크라이나는 찾아온 기회들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역습을 주도한 상대 공격수 7번 치타이슈빌리(Tsitaishvili), 10번 불레차(Buletsa), 11번 수프랴하(Supriaha)의 속도, 기술, 피지컬, 역동성은 우리 수비수들이 1대 1로 상대해서는 이겨내기 쉽지 않은 수준이었다.

활동력과 스피드를 가진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라인의 커버 플레이로 2대 1 협력수비가 반드시 필요해 보이는 선수들이었으나, 우리 팀 라인 전체가 높이 올라서 있다 보니 역습 허용 시 긴 거리를 따라 내려와야 하는 상황에서 수비가 이들을 잡아내지 못했다. 더욱이 결승전까지 가며 고갈된 체력은 우리 수비수들의 괴로움을 배가시킨 것으로 보이며,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흐름을 끊어 내기 위해 범한 파울들이 실점의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상대의 허점을 찌르고자 내세운 공격적 전략이었으나, 상대의 강점을 살려준(!?), 상대가 잘하게끔 해 준(!?) 패착이 되고 말았다. 

 

② 체력과 스피드 저하

결승까지 약 3주간 7경기(평균 약 3일당 1경기)를 펼친 우리 대표팀. 비록 상대도 같은 수의 경기를 해왔지만, 속한 그룹 및 토너먼트 배정상 상대적으로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하며 연장승부까지 있었던 우리 대표팀의 체력은 매 경기 우려 가운데 있었다. 또한 유럽/아프리카 등 좋은 신체 강도를 가진 팀들과의 경기에서 피지컬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매 경기 강하게 부딪혀야만 했던 우리 대표팀은 결승에서의 체력 저하가 우크라이나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더욱이, 이러한 체력과 스피드의 저하가 우크라이나 공격수 7번, 10번, 11번 선수들의 역습에 대한 대응력 부족을 악화시켰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③ 초반득점  심리적 안도와 소극적 플레이

이른 시간 득점이 오히려 경기를 그르치게 하는 경우를 축구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데,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결승전 초반 의외의 득점이 어린 우리 선수들에게 달콤한 심리적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방심하지 않았고, 느슨해지지도 않았음은 분명하나, 정상적인 플레이가 아니라 지키는 플레이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경기의 너무 이른 시간부터 어린 선수들의 무의식 가운데 자리잡았음은 어쩔 수 없는 사실로 보여 진다. 경기를 시청하는 모두의 마음에도 ‘지키면 되겠다’는 마음이 생겨났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경기 후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이른 득점 후 너무 일찍 지키고자 하는 플레이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후, 동점을 허용하며 상황은 악화되어, 비기고 있음에도 지고 있는 듯 심리적으로 쫓기며 부담을 갖게 되었다.

 

③ 협력수비에 에워싸인 이강인

이강인이 볼을 잡는 순간 2~3명의 상대 수비가 밀착마크로 에워싸는 장면은 경기 내내 목격되었다. 물론, 이강인의 탈압박과 상대 수비를 벗어나는 개인기는 여전히 돋보였지만, 이전 경기들에서 볼 수 있었던 허를 찌르는 ‘챌린지 패스’는 여의치 않았다. 우리 공격의 시작점인 이강인 차단을 위한 상대의 대비가 비교적 잘 되어 있었다.

 

④ 전반을 1대 0으로 지켜냈다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만일 전반을 1대 0으로 지켜냈다면 어땠을까? 후반 우크라이나는 당연히 공격적으로 들어왔을 것이고, 그로 인해 넓어진 상대의 뒷공간을 우리는 엄원상과 같은 빠른 공격수를 활용하며 공략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반을 1대 0 리드 상황으로 버텨냈다면, 후반 추가득점에도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상대의 우세한 공격력에도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었을 텐데, 이 부분을 실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실제 경기에서는 후반 초반 우리가 오히려 추가실점을 허용하며, 이후 우크라이나가 수비라인을 완전히 내리고 걸어잠궈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이는 후반 투입되어 상대 수비 뒷공간을 노려야 했던 엄원상의 플레이가 차단되는 원인이 되었다. 배후 공간이 필요했던 엄원상 앞에 밀집된 수비가 계속해서 펼쳐진 것이다. 우리에게는 엄원상이라는 마지막 무기가 지워져 버린 순간이었다.

U20 월드컵대표팀 환영행사가 17일 낮 12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출처: 대한축구협회

U20 준우승위대한 성과

결승전 우크라이나에 패배가 아쉽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우승할 자격이 있는 (객관적으로 우리보다 여러 측면에서 강점이 보이는) 분명한 강팀이었다. 결승전 부진했던(?) 일부 선수들의 플레이와 감독의 결승전 전술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선수들과 코칭스탭은 이미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을 경험했고, 대한민국 축구의 새로운 도약점을 마련했다. 그들의 U20 월드컵 준우승은 위대한 성과다.

준우승 결과에 울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유~ 뭐하러 울어요. 저는 후회 안합니다. 준우승했지만 우리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한 이강인의 어느 인터뷰처럼, 모든 선수와 코칭스탭, 경기장에서, 그리고 늦은밤 TV로 응원한 우리 모든 국민은 한마음으로 후회없이 뛰었다. 모두가 ‘원 팀’이었다.

우리 선수들의 지금의 준우승이, 인생 처음으로 우리 대표팀이 FIFA 대회 결승에서 뛰는 모습을 보며 감격해하던 모든 이에게, 언젠가는 더 큰 무대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길 기대한다. 1983 세계청소년, 2002 월드컵, 그리고 이번 2019 U20 월드컵 모두 우리가 4강, 준우승을 해내리라 예상한 이 없었다. 그러나 해냈다. 또 언젠가 예상치 못한 순간 기적 같은 드라마를 써주는 우리 대표팀, 우리 선수들이길 기대하고 믿는다.

2019 FIFA U20 월드컵 대표팀, 대한민국은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김지석   kjs7952@gmail.com    최근글보기
운동생리학자. 서울대 체육교육과 졸업 뒤 미국 템플대에서 박사, 유타대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거쳐,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트레이닝 방법론, 운동과 노화, 운동과 비만 등의 분야에 연구를 이어오고 있으며 운동생리학을 실제 스포츠에 적용하는데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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