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자책점 1위' 류현진은 다저스 수비 도움을 얼마나 받고 있나

  • 기자명 문기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6.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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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의 호투가 멈출 줄을 모른다. 한국시간 17일 미 캘리포니아주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7피안타 2실점으로 역투했다. 탈삼진은 8개를 솎아냈고 사사구는 없었다. 승리를 기록하지 못한 채 8회 구원투수 로스 스트리플링과 교체됐으나 2실점은 모두 비자책점으로 기록, 평균자책점은 오히려 1.26 로 하락했다.

 

류현진의 고공행진은 여러 지표를 통해 드러난다. Baseball-reference.com에 따르면 류현진은 19일 기준 평균자책점, 탈삼진/볼넷 비율 (K/BB)에서 1위, 다승과 이닝당 출루허용률 (WHIP)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평균자책점이다. 19일 기준 류현진은 93.0이닝을 투구한 가운데 1.2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들 가운데 압도적인 1위일 뿐 아니라, 라이브볼 시대 전반기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90이닝 이상). 언론 역시 류현진의 활약을 조명하며 기록적인 평균자책점에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류현진의 평균자책점은 분명 역사를 통틀어 봐도 손에 꼽히는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하지만 류현진의 선전을 평균자책점만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더 나아가 평균자책점이 투수를 평가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인지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름이 의미하듯 ‘자책점’은 전적으로 투수 자신의 책임인 걸까? 그렇지 않다면, 과연 자책점의 어디까지가 투수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책점의 대부분은 안타를 통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피안타는 좋지 않은 구위와 제구력의 결과물로 여겨지는 만큼, 안타를 맞는 것은 투수의 책임이 가장 큰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타자가 때려낸 공이 안타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알맞은 속도와 각도로 날아가야 하고, 야수들의 순간적인 수비 동작이 닿지 못하는 위치에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투수일지라도 타구가 날아가는 방향과 낙하지점을 제어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투수는 자신이 상대할 타자, 자신의 뒤를 받쳐 줄 야수들과 바통을 넘겨받을 투수, 자신이 그날 등판할 구장 등 직간접적으로 실점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소들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렇듯 안타, 더 나아가서 실점은 설령 자책점이라 할지라도 투수의 능력 밖에 있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관여하여 발생하는 현상임을 알 수 있다. 평균자책점만을 토대로 투수의 역량을 온전히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투수는 타구의 결과에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영향만을 미친다는 가설은 오늘날 통계자료를 활용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세이버메트릭스의 핵심 전제로 자리잡았다. 1999년 미국의 야구팬 보로스 맥크라켄이 인플레이 타구가 안타가 될지 아웃이 될지 여부는 투수의 능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가설을 제기, 투수의 역량을 평가할 때 이를 배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그 시초이다. 타구가 안타가 되기까지 투수가 손을 쓸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으니 피홈런, 탈삼진과 사사구 위주로만 성적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게 부상한 지표가 바로 인플레이 피안타율 (BABIP)이다. BABIP은 쉽게 이야기해 페어 영역에 떨어진 타구에 대한 타율인데, 맥크라켄의 분석에 따르면 에이스 투수와 패전처리 투수의 BABIP은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며 장기적으로 리그 평균인 3할 언저리에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후 수많은 연구와 분석을 거쳐 투수가 BABIP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은 26프로에서 29프로 사이임이 밝혀졌다 (상대 타자 39-47프로, 수비 13-21프로, 운 11-13프로). 맥크라켄의 초기 가설은 부분적으로만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적어도 안타에 있어서는 ‘운칠기삼’ 이라는 표현이 사실이었던 셈이다. 그에 따라 피안타율과 자책점을 중시하던 전통적인 기준과는 달리 사사구와 탈삼진 등 투수가 직접 통제 가능한 요소들에 주안점을 둔 대안 지표들이 등장하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인 FIP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이다. FIP의 산출 공식은 다음과 같다.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FIP) 수식. 출처:fangaprhs.com

 

수식에서 볼 수 있듯 FIP는 안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피홈런 (HR), 사사구 (BB, HBP)와 삼진 (K)만을 사용하여 계산한다 (FIP constant는 FIP를 평균자책점의 형태로 변환하기 위한 상수로, 해마다 리그 전체 지표를 참조하여 만들어지나 현대 야구에서는 대개 3.10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시즌 별 상수값은 여기서 확인 가능). 투구 외적으로, 특히 수비로 인해 발생하는 변수를 아예 배재한 값인 것이다. 통계쟁이들이 임의로 만든 수치를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FIP는 ERA만큼이나 높은 신뢰성을 가진 스탯으로서 오늘날 전문가들 사이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다음은 2000년대 이후 1500이닝 이상 투구한 현역 투수들의 ERA와 FIP를 비교한 결과이다.

통산 평균자책점이 낮은 순으로 정렬. 대체적으로 ERA와 FIP의 차이가 매우 작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fangraphs.com.

 

표에서 볼 수 있다시피 FIP는 ERA와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특히 표본이 많이 축적될수록 ERA가 FIP에 점차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표본이 작은 단일 시즌만을 놓고 보면 두 값의 차이는 좀 더 커질 수 있다. 일례로 올 시즌 류현진을 논할 때 자주 비교되는 2015년 잭 그레인키의 경우 시즌 평균자책점은 1.66이였으나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은 2.76에 달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앞서 설명한 BABIP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책점은 많은 경우 안타를 맞음으로써 발생하나, 투수는 일단 자신의 손을 떠난 공이 안타가 될지 범타가 될지 여부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BABIP 이론의 핵심이다. 탈삼진과 사사구 개수가 비슷하며 피홈런도 딱히 늘어나지 않았는데 특정 기간 어떤 투수의 평균자책점이 유독 높게 형성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 그 투수의 BABIP이 높을 것이라 추론 가능하다. 쉽게 얘기해 억울하게 안타를 많이 맞았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평균자책점이 장기적으로는 투구 이외의 변수를 배재하여 계산한 값인 FIP로 수렴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그만큼 가변적인 (그리고 투수가 제어할 수 없는)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FIP 역시 투수가 타구에 미치는 30프로가량의 영향력을 제외하고 계산한 수치이므로 완벽한 평가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변수를 최대한 배재하여 투구 그 자체의 위력을 가늠해볼 수 있게끔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하겠다.

 

그렇다면 세이버메트릭스의 관점에서 본 류현진의 올 시즌 성적은 과연 어떨까? 대표적인 야구 통계사이트 fangraphs.com에 따르면 류현진의 2019시즌 FIP는 2.51다. 올해 크게 개선된 삼진-볼넷 비율에서 비롯된 대단히 훌륭한 성적이지만 평균자책점과는 1점 이상 차이가 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평균자책점만을 따지자면 ‘역대급’이지만 FIP는 통산 3회 사이영상을 수상한 맥스 슈어저 (워싱턴 내셔널스)의 2.19에 밀린 2위이다. 이 자료를 근거로 워싱턴포스트의 닐 그린버그는 18일 게재된 칼럼에서 슈어저가 류현진보다 NL 사이영상 경쟁에서 앞서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류현진의 ERA가 FIP에 비해 유독 낮은 이유는 낮은 BABIP에서 찾을 수 있다. BABIP은 14번의 선발등판을 마친 가운데 19일 기준 0.256으로 리그 평균인 0.292와 커리어 통산 0.296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다. 이번 시즌 LA다저스의 투수 평균 BABIP이 0.262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2번째로 낮으며, 팀의 종합적인 수비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들에서도 다저스가 최상위권에 속함을 고려하면 (18일 기준 DRS 86 전체 1위, UZR 13.9 5위) 류현진의 호투 행진의 바탕에는 동료들의 탄탄한 수비 지원이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5월 31일 류현진이 뉴욕 메츠 상대로 등판하여 7 2/3이닝 무실점 승리를 거둔 이후 포스트 매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Hyun-Jin’s balls in play are converted into outs more than any of our pitchers. Right now, as an outlier, with the defensive metrics, that gives him an even better opportunity.”
류현진이 허용한 타구들은 우리 팀 그 어떤 투수에 비해서도 더 많이 아웃처리 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예외적인 경우(outlier)로서, 팀의 수비 지표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좋은 기회를 얻고 있는 셈이지요.

 

여기에는 수비 시프트의 효과적인 설계와 적극적인 활용이 어느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Baseballsavant.com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다저스는 올 시즌 상대 타석의 43.7%에서 수비 시프트를 활용했다. 메이저리그 전체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7일 컵스와의 등판에서 6회 수비 시프트 실패로 인해 2실점한 것을 놓고 아쉬움을 표현한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시즌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류현진의 인플레이 피안타율은 수비 시프트를 적용했을 때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되려 낮았던 것으로 집계된다 (시프트 적용시 BABIP 0.252, 미적용시 0.263). 류현진 역시 장기적으로는 수비 시프트의 덕을 본 셈이다.

아리랑 TV 유튜브 화면 캡처.

행운이 다소 따랐음을 시사하는 대목도 있다. 올해 류현진의 잔루처리율 (누상의 주자 중 득점하지 않은 비율)은 92.7%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해당된다. 출루한 100명의 주자 가운데 93명 정도가 홈을 밟지 못했다는 뜻인데, 메이저리그 평균 (72.3%), 개인 통산 (72.0%) 그리고 팀 평균 (75.9%) 모두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이는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류현진의 인플레이 피안타율이 0.200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메이저리그 평균 (0.298)과 팀 평균 (0.247)에 비해 월등히 낮다. 반면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올 시즌 류현진의 BABIP은 0.285로 비교적 평범한 수준이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상황에 비해 훨씬 안타를 덜 맞았다는 이야기이다. 혹자는 류현진의 탁월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으나, 위기 관리 능력의 타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클러치 히팅 능력 (득점권 타율)이 통계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세이버 스탯에 매몰되어 류현진의 활약을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통계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못하며, 세이버매트릭스 역시 제한된 표본을 바탕으로 단편적인 지표를 제시할 뿐이다. 다만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란 말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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