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왜 2시간만에 '개원 합의' 뒤집었나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6.25 10: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기사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김준일의 행간'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행간'은 매일 중요한 이슈 하나를 선정한 뒤 그 배경과 주목할 사안을 설명하는 코너입니다.

24일 여야3당 원내대표가 국회 정상화 합의안을 도출했습니다만 2시간만에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합의안이 부결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80일간 이어졌던 국회 파행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렵사리 도출됐던 합의안은 왜 자유한국당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일까요. 이들 정당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요. <갈팡질팡 국회 정상화> 그 행간을 짚어보겠습니다.

MBC 뉴스 유튜브 화면 캡처

 

1. 아쉬울 것이 없다

합의안에 대한 부결은 정치권의 현재 상황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두 달 넘게 이어지는 국회 파행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고, 언론도 연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체감온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각 정당은 급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는 겁니다.

정당 지지율을 보면 국회 정상화 기간과 파행 기간 사이에 특별한 차이가 없습니다. 리얼미터 기준으로 지난 3월 4주차 자유한국당 정당지지도는 30.1%, 6월 3주차 정당지지도는 30.0%로 거의 똑같습니다. 같은 기간 민주당도 37.2%에서 38%로 대동소이합니다. 지지층이 충분히 결집한 상태에서 정당 지지율이 '박스권'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정당 지지율이 유지되고 있는데 굳이 국회로 들어갈 이유가 없는 겁니다.

각 정당은 국회 파행 원인을 상대방 정당에서 찾고 있습니다. 한국당 의원총회에서는 특히 패스트트랙 합의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습니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패스트트랙 날치기'에 대한 여당의 사과도 없고, 합의처리도 아닌 합의정신을 살린다는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반대로 여야 4당 입장에선 국회선진화법을 어기고 '동물국회' 원인을 제공한 자유한국당의 강경한 태도를 적반하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치는 명분과 실리, 두 축으로 움직입니다. 명분의 근거 중 하나인 정당지지도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당분간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2. '믿음 없는' 믿음

합의안이 한국당 의원총회를 통과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패스트트랙 합의문구 때문입니다. 합의안에는 ‘3당 교섭단체는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은 각 당의 안을 종합하여 논의한 후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당초 한국당은 ’합의처리 한다‘를 문구를 직접 넣는 것을 요구했지만 일부 양보한 것입니다. 

그런데 합의안에 적힌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한다'는 문구에 대해서 여야 원내대표 해석이 엇갈렸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했지만, 이인영 원내대표는 “‘합의처리 한다’와 ‘합의처리 위해 노력한다’ 중간에서 절충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습니다. 문구 해석에서부터 파국의 불씨를 담고 있었던 겁니다.

이전에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희박했다면 지금은 '믿음의 진공상태'입니다. 여야 모두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이미 패스트트랙 날치기를 한 민주당이 합의처리를 약속한 것도 아니고 합의정신을 살리겠다고 한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불법행위도 불사했던 한국당이 정말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합의처리할 의사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는 상황입니다. 합의처리 문구를 빌미로 시간끌기 하면서 결국 법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속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정치와 거래는 상호신의를 바탕으로 이뤄집니다. 극도의 저신뢰 정치환경에서 국회가 이른 시간안에 개원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3. '답 없는' 재신임

어제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재밌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합의안 부결이 결정된 후 한 의원은 “의원들이 (나 원내대표를) 재신임을 더 해주자”고 말하자, 다른 의원은 “아니 그건 당연한 건데 뭘 쓸데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당간 합의안이 총회 추인을 받지 못하면 책임론이 불거지고 협상자 교체까지 거론됩니다. 그런데 한국당은 합의안을 강하게 비토했지만 책임론은 나오지 않은 이상한 상황이 연출된 겁니다.

언론기사에 따르면 나경원 원내대표가 의원총회 발언을 쭉 듣더니 먼저 ‘추인 안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후 나 원내대표는 합의문 부결과 관련해 “의총에서 합의문을 부결시킨 것은 저에게 더 큰 협상 권한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한국당내에서는 나경원을 흔들려는게 아니라 진짜로 협상결과에 불만족했다는 것이고 나경원 외에 별다른 대안도 없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나선다고 나 원내대표만큼 할 수도 없을 거란 인식이 있단 겁니다. 사실 나 원내대표는 각종 발언을 쏟아내서면서 자유한국당의 '강공'을 주도해왔는데요. 비판여론에 밀려 협상쪽으로 한발 넘어왔지만 당내 분위기가 그렇지 않자 다시 강경파로 넘어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국당은 나 원내대표를 재신임했지만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국회 파행이 지속되지만 ① 정당 지지율에 변화가 없고, ②상대방에 대한 신뢰는 지극히 낮고, ③협상대표단도 변화도 없는 상황입니다. 단시간 내에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변수는 한국당의 아쉬움입니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파행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윤석열 검찰총장‧김현준 국세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북한 어선 입항 사태 등 안보 관련 상임위는 개최 참석한다는 방침입니다. 다만 여야4당이 한국당을 끼워줄 리가 만무합니다. 국방위의 경우 민주당 소속 안규백 위원장이 굳이 열 이유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여야4당 주도로 국회가 열리면 '한국당 패싱'이 본격화될 것입니다. 한국당이 장외투쟁에서 주목을 못받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2019년 6월 26일 오전 11시 수정: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에서 이 기사에서 언급한 여론조사 관련, 누락된 부분을 추가할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1. 조사의뢰자: YTN

2. 조사일시: 3월 4주차(3월25일~29일), 6월 3주차(6월17일~21일)

3.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