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 못한 '떡밥'과 개연성 없는 '흑화'...시즌8이 욕먹은 이유

  • 기자명 박현우
  • 기사승인 2019.07.12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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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와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왕좌의 게임>만큼 북미와 전세계에서 흥한 드라마는 흔치 않다. <왕좌의 게임>은 국내에서 딱히 미드를 챙겨보지 않는 사람에게마저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흥했다. 시즌8 마지막 에피소드인 “The Iron Throne”을 본 시청자는 북미에서만 낮게 잡아도 1360만명에 달했고, 이는 HBO가 개국한 이래 최고의 기록이다(링크). 한국에서도 인기는 상당한 모양인지 채널 스크린은 <왕좌의 게임>을 공식 수입해 북미 방영 후 한 주 뒤 방영했고, 넷플릭스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OTT인 왓챠플레이는 시즌이 종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시즌을 모두 업데이트했다. 정작 넷플릭스엔 HBO 콘텐츠를 찾기 힘든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왓챠플레이는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지만 넷플릭스는 경쟁자로 생각하는 건가?

보통 미국드라마는 한 시즌을 방영하면 그 다음 해에 다음 시즌을 방영한다. <왕좌의 게임>도 예외는 아니었어서 2011년에 첫 시즌을 방영하고 2017년에 시즌7을 방영했다. 마지막 시즌인 시즌8은 1년을 쉬고 2019년에 방영했는데, 그 이유는 분명치 않다. 시즌8은 마지막 시즌이고 1년을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섯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왕좌의 게임>은 1시즌부터 6시즌까지 꾸준히 한 시즌은 열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그런데 시즌7부터 에피소드 수의 변화가 생겼다. 시즌7은 일곱 편, 시즌8은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있다.

왜 에피소드가 갑자기 줄어들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추측은 가능하다. <왕좌의 게임>의 원작인 조지 R.R 마틴(이하 쌍알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는 총 7부로 구성이 되는데, 현재 5부 “용과의 춤"까지만 공개되어있다. 즉, 이 소설을 기반으로한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특정 시점이 오면 원작 없이 스토리를 진행해야한다. 실제로 시즌5는 6부인 “겨울의 바람”을 일부 다뤘는데 시즌6부터 보다 본격적으로 드라마 오리지널 스토리와 아직 출간하지 않은 “겨울의 바람"을 다루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시즌6까지는 평이 딱히 나쁘지 않았으나 오리지널 스토리와 미출간 소설의 비중이 많아진 시즌7, 8로 와서는 악평이 상당했다. 온갖 밈들이 매화가 끝날 때마다 만들어졌고, 시즌8을 다시 제작해달라는 청원까지 생겼다. 이 현실성 없는 청원에 서명한 사람의  수는 청원이 시작된 후 2주만에 140만을 찍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20190620) 160만이다. 시즌8은 사실 드라마보다 드라마로 인해 만들어진 밈이나 현상들을 보는 게 더 재밌다.

한 때 <왕좌의 게임>의 대사들은 문학적이고 곱씹는 맛이 있으면서도 스토리적인 기능도 충실히 했지만, 시즌7, 8로 오면서 대사들은 대단히 기능적으로 변질됐다. 또, “얼음과 불의 노래"는 물론 <왕좌의 게임>은 시즌 5까지만 해도 선과 악이 분명치 않았다. 그런데 시즌7, 8로 오면서 선악이 점점 분명해졌고, 그에 따라 작품이 대단히 유치해졌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이런 이유로 시즌8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이제 본론으로 가보자.

우선, 시즌8은 <왕좌의 게임>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캐릭터와 여러 설정을 무시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격 캐릭터 중 하나인 존 스노우를 예로 들어보자. 존 스노우는 시즌6에서 한 번 죽었다가 멜리산드레의 마법으로 부활한 인물이다. 이 세계에 마법도 있고 용도 있다고는 하지만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마운틴은 마에스터 콰이번위 흑마법(?)으로 부활(?)하기는 했지만 말도 못하는 좀비 같은 모습이 되었고, 원작의 케이틀린 스타크 역시 부활해 레이디 스톤하트가 됐지만 마운틴과 마찬가지로 말도 못하는 좀비 비슷한 무엇이 되었다. 이들이 부활한 이유는 명백하지는 않지만, 부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건 이 세계관에서 명백하다.

베릭 돈다리온은 케이틀린 스타크가 부활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멜리산드레가 믿는 빛의 신에 의해 부활했고, 존 스노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둘은 부활 후에 이렇다할 부작용을 겪지 않았다. 베릭 돈다리온의 경우, 기억력을 잃고 정신이 희미해진다던가 하는 식의 묘사가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에서 이런 설정은 있으나마나 할 정도로 무의미하다. 존 스노우 역시 부활 후 이렇다할 부작용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시청자들은 생각하게 된다. 베릭 돈다리온이나 존 스노우가 어떤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신'에 의해 부활하게 되었다고. 그들은 분명 남들이 못하는 어떤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거라고.

굳이 신을 끌어올 필요도 없다. 세계관의 사실상 신 역할을 하는 작가가 한 캐릭터를 굳이 죽음에서 부활시킨다면 작가는 그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부여해야한다. 어떤 특별한 일을 하지도 않을 캐릭터를 부활시킨다면 부활은 아무 의미도 없어진다. 부활 후에 별 일을 하지 않을 거라면 그냥 죽은 상태로 두는 게 드라마 문법상 맞고 그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드라마가 종영한 지금, 베릭 돈다리온이나 존 스노우가 부활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은 계속 든다.

일단, 베릭 돈다리온은 아리아 스타크를 구하는 과정에서 죽었다. 그는 얼마 안 있어 나이트킹을 암살하게 되는 아리아 스타크를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수차례 부활한걸까? 백번 양보해 그렇다치면 베릭 돈다리온과 함께 아리아 스타크를 구한 하운드는? 하운드는 단 한번도 죽은 적이 없고 죽은 적이 없으니 부활한 적도 없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나온다. 하운드처럼 부활하지도 않고도 아리아를 도울 수 있는데 애초에 베릭 돈다리온은 왜 수차례 죽고 부활했나? 이전 시즌들에서 떡밥은 잔뜩 뿌렸는데 정작 회수는 안하거나 엉성하게 했다. 시즌8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존 스노우는 더 심각하다. 존 스노우는 아조르 아하이로서 부활을 했다는 게 가장 지지 받은 팬 이론 중 하나였다. 팬들은 그가 나이트킹을 죽이거나 적어도 죽는데 관여할 거라 생각했다. 단순한 팬들의 바람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여러 떡밥들은 존을 그 길로 인도했다. 존은 시즌8 전에 나이트킹의 부하(?)인 화이트 워커와 전투를 벌여 승리했고, 이때 나이트킹은 존을 유심히 쳐다봤다. 화이트 워커 하나를 처리했음에도 전투는 계속 됐고, 존은 결국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이트킹은 도망치는 존을 비웃듯이 두 팔을 올려 쓰러져 죽은 자들을 모두 자신의 부하로 일으켜세웠다. 이렇게 둘의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다.

굳이 이 장면이 아니더라도 존은 시즌 내내 북에 있으면서 와이트(좀비)를 처음 접했고, 와이들링과 나이트워치 간의 역사적인 평화 협정을 맺게도 했고, 나이트킹들을 막기 위해 세븐 킹덤들을 휴전에 이르게 하고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게 하는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존은 시즌1부터 시즌8까지 나이트킹 하나 잡으려고 달려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나이트킹을 죽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존이어야했다. 나이트킹을 죽일 게 아니라면, 존에게 발라리안 강으로 만들어진 검이 애초에 주어질 이유가 무언가?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 화이트 워커 하나를 잡기 위해서? 그렇게치면 아리아에게도 발라리안 단검이 있지 않냐고? 맞는 말이다. 시즌7에 와서 얻기는 했다. 기묘하고 절묘한 타이밍이다.

용을 가진 대너리스 타르가르옌도 나이트킹을 죽이는 후보에는 오르지 않았다. 대너리스는 마치 유론의 그것처럼 놀랍도록 정확한 나이트킹의 창 던지기 기술로 비세리온을 잃어 나이트킹을 죽일 동기는 충분하지만 나이트킹은 여전히 그 창 던지기로 대너리스의 용을 처치할 수 있었다. 용은 나이트킹의 부하(?)인 수많은 와이트(좀비)들을 처리하는데는 효과적이었지만, 나이트킹에게는 효과적일 거라 기대되지 않았다. 나이트킹은 화이트 워커와 마찬가지로 발라리안 강으로 이루어진 칼로만 죽이는 게 가능할 터였다. 그게 지금까지 드라마가 꾸준히 보여주던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아리아에 의해 그렇게 되기는 했다.

아리아 스타크는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세계관 내 전투력 최강 캐릭터이기에 나이트킹을 죽이는 게 딱히 놀라울 건 없다. 하지만 아리아는 나이트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아리아 스타크는 나이트킹이나 화이트 워커에 의해 가까운 사람이 죽지도 않았고, 딱히 나이트킹 관련한 스토리도 없다. 그가 왈도 프레이를 죽이는 건 이상할 게 없고, 스타크 가문을 ‘이 지경'으로 만든 세르세이 라니스터를 죽이게 된다해도 스토리 맥락상 이상할 게 없지만, 나이트킹은? 맥락이 부족하다. 적임자가 아니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작가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B 와이어스(이하 D&D)는 아리아가 나이트킹을 죽이게 한다. 왜? 시즌8의 에피소드 뒤에는 작가를 포함한 제작진들의 코멘트가 담겨있는데 여기서  D&D는 말한다. “우리는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어요. 존은 언제나 영웅이었고 구원자였죠. 그런데 나이트킹을 죽이는 순간에서만큼은 달라야한다 생각했어요. We hoped to kind of avoid the expected. Jon Snow has always been the hero, the one who’s been the saviour, but it just didn’t seem right to us, for this moment." 이게 다다.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바와 다른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지금까지 7년간 쌓아왔던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아리아가 나이트킹을 죽이게 한 거다. 대체 뭣이 중헌가? 스토리를 그럴듯하게 설계하는 것? 아니면 스토리 다 무시하고 시청자들을 놀라게하는 것?

다른 문제도 있다. 존 스노우는 시즌8이 되어서 드디어 자신이 아에곤 타르가르옌이며, 왕이 될 적자라는 걸 알게된다. 그는 이것을 샘웰 탈리를 통해 알게 되는데, 샘웰 탈리는 이 사실을 브랜 스타크를 통해 알게 된다. 브랜은 샘웰 탈리에게 존이 진정한 왕의 자격을 가지고 있으니 빨리 그에게 이 사실을 전하라고 한다. 이때가지만 해도 브랜은 존이 왕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브랜은 윈터펠의 수장이 되라는 티리온 라니스터의 말에 “저는 윈터펠의 수장이 되길 원하지 않고, 그 무엇도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시즌8 초반만해도 브랜은, 드라마는, D&D는 존 스노우가 왕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시즌 파이널 에피소드로 가면 존 스노우가 굳이 타르가르옌 피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었나 싶어진다. 그는 왕이 되지도 않고 대너리스를 죽였다는 이유로 나이트워치로 유배를 가기 때문이다.

정작 왕이 되는 건 몇 에피소드 전만해도 윈터펠의 수장이 될 생각이 없다고 했던 브랜이다. 브랜은 티리온 라니스터에 의해 추대되는데, 추대의 변이 문자 그대로 기가 막히다.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는 왕이 될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한데 브랜이 가장 뛰어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브랜은 시즌 내내 딱히 한 것도 없고, 세 눈 까마귀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도 이 세계에는 딱히 없다. 브랜의 이야기는 그래서 스타크를 포함한 칠왕국의 사람들을 설득하기엔 힘이 약하다. 하지만 현장에선 그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심지어 스타크 가문이 독립을 요구할 때는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고 자신들도 독립하고 싶다는 의견 표명 하나도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 동네가 이렇게 평화로웠나?

굳이 존 스노우가 아니더라도 브랜보다 스토리가 좋은 캐릭터는 차고 넘친다. 재밌는 건 몇 에피소드 전만해도 권력에 관심 없다고 했던 브랜의 반응이다. 그는 티리온이 왕이 될 생각이 있냐 묻자 왕이 될 생각이 없으면 왜 굳이 힘들게 여기까지 왔겠냐고 반문한다. 윈터펠을 거절한 건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인가? 이처럼, 시즌8은 이전 시즌들의 대부분 설정들을 무시하고, 심지어 시즌8의 내용마저 없던 척 한다. 존 스노우만 가지고도 글이 이렇게 길어질 정도다. 대너리스, 티리온, 세르세이 이야기하려면 책 한 권 써야한다.

결말도 문제적이지만, 사람들이 더 크게 불만을 갖는 건 급격한 전개다. 대너리스가 갑자기 미쳐서 히틀러처럼 사람들을 학살하는 건 개연성도 없고 설득력도 없다. 한 시즌 혹은 몇 시즌을 거치며 그가 타락하는 과정을 보여줬으면 모를까, 갑자기 흑화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힘들다. 대너리스는 지금껏 사람들을 여럿 죽여오기는 했지만 자비로운 모습도 꽤나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원작자인 쌍알마틴은 드라마가 몇 시즌 더 제작되기를 바랬고, 방송사인 HBO 역시 이 인기 많은 드라마가 계속 제작되어도 상관 없다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D&D였다. 이 작가들은 새로운 스타워즈 트릴로지의 각본을 맡게 됐는데, 거기에 몰두하기 위해 <왕좌의 게임>을 급하게 마무리했다는 게 넷상의 정설이다. <왕좌의 게임>이 없었다면 D&D는 스타워즈 시리즈와 관련한 제안을 받지 못했을 거다. 그들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준 건 <왕좌의 게임>이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왕좌의 게임>을 내팽개친다? 이건 상도덕이 아니다. 최소한 다른 작가들에게 바톤터치는 했어야 했다.

오리지널 스토리에 약하다는 건 입증됐으니 그들이 만들어낼 새로운 스타워즈가 어떤 모습일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참고할만한 쌍알마틴의 잘 만들어진 원작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각본을 맡은 적이 있다. 여기서 그는 그 말 많은 데드풀의 입을 막고 눈알에서 레이저가 나가게 했다(링크). 관객들의 기대를 깨뜨리기 위해서였을까? 데드풀은 심지어 순간이동도 한다. 마치 아리아가 나이트킹 뒤에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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