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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14주 사산' 태아 사진은 무엇을 노렸나

작년 11월 2일 허프포스트코리아는 <한 엄마가 임신 14주 만에 유산된 아기의 손 사진을 공개했다(사진)> 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영국 ‘더 선’의 보도를 인용했다. 미국 미주리 주에 사는 섀런 서덜랜드 (Sharran Sutherland)가 임신 14주 만에 아이를 유산했다. 유산된 태아가 병원에 의해 폐기물로 처리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섀런과 그의 남편은 사체를 화분에 담은 뒤 집 마당에 묻었다. 그리고 죽은 아기의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사진상의 태아는 손가락과 발가락 등이 모두 형성되어 있다.

사진출처: 섀런 서덜랜드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기사가 실린 허프포스트코리아 페이스북 페이지에 2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임신 14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태아가 인간의 형상을 한 점을 놀라워하며 유산을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임신 중절에 관한 논쟁 역시 뜨거웠다. 한 사용자는 댓글에서 “이런거 볼때마다 태아라고 별거 아니게 생각하고 낙태 쉽게 아는 사람들이 미워진다”고 말했다. 반면 사산된 태아의 사진을 놓고 낙태를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진의 진위여부 자체를 의심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허프포스트코리아의 기사가 수상쩍은 점은 한둘이 아니다. 해당 기사는 2018년 11월 2일 업로드됐지만 정작 기사가 인용한 ‘더 선’ 기사는 2019년 5월 24일 작성된 것으로 나타난다. 추후에 수정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지만 관련 언급이 없어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게다가 허프포스트코리아가 인용한 ‘더 선’은 선정적인 보도로 유명한 타블로이드 언론이다. ‘더 선’ 이외에도 ‘데일리 메일,’ ‘미러’ (2018년 11월 1일) 등 여러 타블로이드 언론에서 같은 소식을 전했다. 이들 중 어떤 기사도 산모가 올린 원문 링크를 첨부하지 않았다. 허프포스트코리아가 원본 소스 팩트체크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외신 보도를 무분별하게 ‘퍼나른’ 것이다.

뉴스톱에서 산모가 올렸다는 글 원문을 확인했다. 팩트체크 결과 해당 글에는 낙태 반대 여론을 조장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가 짙게 깔려 있었다. 허프포스트코리아의 보도는 이러한 맥락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유산된 아기의 사진’ 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도했다. 자극적인 의제 설정을 위해 글의 핵심을 빠트린 것이다. 그렇다면 원문 글의 내용은 무엇이며, 최근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낙태 문제와 관련해 해당 글이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문제의 글 <미란 J 서덜랜드를 추모하며>는 2018년 4월 24일 산모 섀런 서덜랜드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처음 게시되었다. 섀런이 임신 14주만에 아이를 유산한 지 하루가 지난 뒤다. 글에는 태아가 유산되기까지의 과정과 부부가 태아의 시신을 직접 매장하기로 한 이유 등이 자세히 담겨 있다. 결론적으로 섀런이 사산된 태아의 사진을 공개하기로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I am sharing my pictures of my beautiful little boy with everyone because people are killing their babies everyday as small as him becaue [sic] they have been lied to and believe that it isn’t [sic] a baby they are aborting its just a blob of tissue and cells etc... it has no right to life.
제 예쁜 아기의 사진을 여러분과 공유하기로 한 건 사람들이 이렇게 작은 생명을 매일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예요. 사람들은 태아가 아기가 아닌 단순한 세포 덩어리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태아의 생명권을 부정하고 낙태를 하는 거죠.

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미국은 대체적으로 임신 24주 (약 6개월)에 이르기까지는 산모의 낙태권을 인정하고 있다. 1973년 낙태 금지 및 처벌 법률을 위헌이라 판단한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섀런에 따르면 태아는 임신 10주차부터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12주차에 이르러서는 웃기도 한다. 어느 모로 보나 갓 태어난 아기와 다를 바 없는 태아를 임신 6개월이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고 섀런은 반문한다. 수정된 지 불과 14주밖에 지나지 않은 태아일지라도 얼마나 ‘인간’에 가까운 존재인지 강조하기 위해 사진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글 말미에서는 낙태를 했거나 고려하고 있는 산모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용서와 치유를 찾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임신 중절을 금지하는 기독교 교리에 정당성을 보태는 의미에서 사진을 올렸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색 결과 이와 같은 목적을 갖고 사산된 태아의 사진을 올린 산모를 더 찾을 수 있었다. 팔로워 2400명 이상의 반 낙태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펠리샤 캐쉬 (Felicia Cash)가 대표적이다. 섀런과 마찬가지로 펠리샤 역시 지난 2017년 임신 14주차에 태아를 유산했고 태아의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낙태 반대를 호소했다. 해당 게시물은 인터넷 언론 인사이트를 통해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유산된 태아의 사진을 활용해 임신 중절의 잔인성을 고발하는 전략이 전세계 반 낙태 진영 사이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에는 미국의 한 낙태 반대 단체가 선전 자료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산모가 올린 태아 사진을 허가 없이 도용하여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태아의 이미지를 통해 대중을 윤리적으로 자극하는 ‘충격 요법’으로 볼 수 있다. 태아를 수정된 순간부터 성인과 동등한 생명권을 지닌 존재로 상정한다는 점에서 ‘생명 존중’ 프레임과 맥락을 같이한다. 한국에서도 지난 4월 11일 낙태죄가 헌재에서 헌법 불합치 선고를 받은 가운데 기독교 언론을 중심으로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자료가 다수 배포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산된 태아의 사진을 근거로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사람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임신 초기의 태아를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사고 능력의 유무, 고통을 느끼는 지 여부 등 여러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 섀런 서덜랜드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임신 10주차의 태아도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했으나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태아가 고통을 느끼는 시점은 시상 (thalamus)과 대뇌피질 (cerebral cortex) 사이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임신 20주에서 30주 사이라는 것이 학계의 추정이다.

<A Defense of Abortion> 책 표지.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대로 태아를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가 가지는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 보자.

아침에 깨어난 당신은 의식이 없는 바이올린 연주자 옆에 누워 있다. 신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바이올린 연주자를 살리기 위해 음악 애호가 협회에서 당신을 납치한 것이다. 당신의 신장은 바이올린 연주자의 신장과 연결되어 혈액 투석을 돕고 있다. 신장이 연결된 상태로 9개월이 지나면 바이올린 연주자는 살 수 있지만 당신이 그 전에 연결을 끊으면 죽고 만다.

위의 사고실험은 주디스 자비스 톰슨의 1971년 논문 “낙태에 대한 변호 (A Defense of Abortion)”에서 처음 제시된 것으로, 임신중절 문제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톰슨에 따르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연결을 끊는 것은 정당하다. 바이올린 연주자의 생명권에 타인의 신체를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점거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연결을 끊는 행위를 연주자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침해된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낙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산모의 의사에 반하는 임신의 경우 낙태는 빼앗긴 신체에 대한 산모의 온당한 권리 행사로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의회가 관련 법조항을 새로이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입법 과정에서 공론화가 이루어지면 한국도 미국처럼 낙태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한바탕 태풍이 불어닥치기 직전의 ‘폭풍전야’ 인 지금, 사안에 대한 정확한 정보 검증과 논점 파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문기훈 팩트체커  moonkiho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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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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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봉천 2019-07-24 21:54:18

    낙태를 한다는 것은 한 생명을 죽이는 살인과
    같다. 왜 이런일 때문에 고민해야 하며 아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있다. 한번도 남에게 해끼치
    지 않고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아들에게 너무
    큰 시련을 주신 하느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과연 내가 앞으로 하느님을 믿고 의지해야 할지
    고민됩니다.
    내일 아들에게 또한번 시련 주신다면 나는 결코
    하느님을 믿지 않을 것 입니다.   삭제

    • 둥둥 2019-07-12 13:00:52

      노리긴 뭘 노립니까. 진실을 말한거지.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 나이도 만나이 따로 쓰지요. 부득이한 경우엔 낙태가 허용되고 있음에도 더 자유롭게 낙태하게 해달라는거 아닙니까. 근본적 목적은 누구를 위한걸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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