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제대로 소장하거나, 아예 소장목록에서 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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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제대로 소장하거나, 아예 소장목록에서 빼거나
  • 김신
  • 승인 2019.07.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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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의 디자인 칼럼]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현황과 디자인의 현주소

한국화 654점 13.3%

회화 1693점 34.5%

드로잉 & 판화 456점 9.3%

사진 1088점 22.1%

디자인 18점, 0.4%

서예 87점 1.8%

조각 427점 8.7%

설치 148점 3.0%

뉴미디어 190점 3.9%

공예 152점 3.1%

팩트는 진실은 아니어도 어떤 ‘태도’를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 현황표는 이 미술관이 각 장르별로 소장한 작품의 수를 보여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소장품을 10개의 장르로 분류했다. 한국화, 회화, 드로잉 & 판화, 사진, 디자인, 서예, 조각, 설치, 뉴미디어, 공예, 이상 10개다. 여기에 디자인이 포함된 것을 디자인업계의 사람으로서 영광스러운 일로 판단해야 할까? 왜냐하면 나는 늘 디자인은 미술관용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현황표

 

이 10가지 장르 중에서 가장 많이 소장된 장르는 회화다. 1,693점을 소장했고, 34.5%에 해당한다. 그 다음은 사진으로 1088점, 22.1%다. 3등은 한국화로 654점(13.3%)이다. 4등은 드로잉 & 판화로 456점(9.3%)이다. 이 네 장르의 공통점은 2차원의 예술작품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79%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차원의 회화, 한국화, 드로잉 & 판화, 사진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여기에 조각, 설치, 뉴미디어까지 포함하여 이른바 순수예술 장르의 비중은 95%다.

 

나머지 5%를 공예가 3.1%, 서예가 1.8%, 그리고 디자인이 0.4%을 차지하고 있다. 공예, 서예, 디자인은 기타로 분류될 것이다. 0.4%밖에 소장하지 않은 장르를 별도로 구분한 것은 앞으로 이 장르의 가능성을 본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드로잉 & 판화’는 두 가지 장르를 하나로 합쳐서 456점이다. 반면에 독립된 항목으로 구분된 공예와 디자인은 합해도 170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18점이라는 극도로 적은 숫자의 장르를, 반올림해서 0.4%의 비중을 차지하는 디자인을 굳이 별도의 장르로 표기했을까? 독도는 그 크기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숫자가 보잘것없어도 지도에 반드시 표기된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그런 것인가? 앞으로 한국의 예술계를 이끌어갈 그런 장르? 아니면 미술대학 졸업생 중 디자인 전공자의 수가 많다는 것을 좀 너그럽게 배려해준 것인가? 또는 눈치를 본 건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디자인은 아트가 아니다. 그러니 신성한 뮤지엄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 그러면 왜 18점을 애써 구입했을까? 디자이너가 기증한 건가?

김현이 디자인한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이상철이 디자인한 <뿌리깊은나무> 창간호
최정호가 디자인한 명조체

 

 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 모델 현대자동차 포니

 

나는 궁금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한 그 18점의 디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마어마하게 많이 대량생산된 디자인들 중에서 18점을 뽑았다면, 그것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한국의 작품으로 국한한다면, 금성사의 최초의 라디오? 현대자동차의 포니? 최정호의 명조체 원도? 안상수의 안상수체? <뿌리깊은나무> 창간호? 서울올림픽의 로고와 마스코트? 이런 것들이 소장되었을까? 아니면 예술을 흉내 낸 어떤 아티스틱한 디자인?

 

나는 근심스럽다. 예전에 서울시립미술관이 기획한 공예전을 본 적이 있었다. 그 공예전에 출품된 공예품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유용한 생활공예가 아니라 공예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만든 예술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흙을 구워서 만든 조각품 같은 것이다. 만약 그런 작품을 소장했다면, 그것은 공예 장르가 아니라 조각 장르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공예 소장품은 과연 어떤 작품일까? 이런 걱정이 드니 서울시립미술관의 디자인 컬렉션도 혹시 말만 디자인이고 도자 조각처럼 ‘순수 디자인’을 모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기준으로 뽑았다면 오히려 납득할 수 있다. 18점이라는 그 숫자를. 순수한 디자인이란 현실에서 태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디자인과를 졸업한 사람의 순수한 작품이 아닐까? 다시 말해 그 작품의 장르보다 그것을 만든 이의 출신 성분으로 디자인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수장고를 보지 못했으므로 상상할 뿐이다. 단 앞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이 디자인의 가능성과 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그 분야의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면 꼭 제안하고 싶은 말이 있다. 반드시 실용적인 목적으로 대량생산 되어 대중의 생활 속에 뿌리내리고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을 뽑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대자동차의 포니와 최정호의 명조체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것은 단지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아름답고 한국인의 미의식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디자인은 당대의 열망이 담겨 있으며, 어마어마한 열정과 노력의 결실이다. 그런 디자인을 가려 뽑지 않을 거면, 또는 그런 능력이 없다면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장르에서 디자인 항목을 빼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그냥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다”, 또는 “미술관은 오직 순수 예술만을 뽑는다”고 기준을 세우면 그만이다. 디자인 전문가로서 나는 별로 아쉬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디자인을 컬렉션 할 의지가 있다면, 생활 속에 뿌리 내린 디자인을 컬렉션해주길 기대해본다.

*2019년 7월 9일 오후 2시 40분 1차 수정: 필자의 요청으로 글 마지막 문장을 수정했습니다.

 

김신   kshin2011@gmail.com    최근글보기
디자인 미술 비평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을, 2011-2013년까지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다. 디자인사, 디자인론, 디자인기호론,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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